심연(深淵)
새벽 4시에 잠이 깼다. 거실 창가에 앉아 하늘을 쳐다본다. 동녘에 유난히 밝은 별이 하나 보였는데 그 별은 지구에서 가까운 금성이다. 남녘에도 밝은 별 하나가 반짝이고 있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집 앞의 호수가 잠잠하고 그 둘레에 가로등 빛이 호수의 고즈넉한 전경을 드러내고 있다.
물속 어류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히브리 경전(성경)에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었다.”(창세 1,2) 여기서 ‘어둠이 심연을 덮고 있었다.’란 무엇을 뜻하는가. 심연은 혼돈의 상태이며, 생명이 없는 어둠(죽음)의 상태를 말한다. 창조는 혼돈의 상태를 질서의 상태(생명)로 변화시키는 과정이다.
우리말 사전에 심연은 깊은 못이지만,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구렁이나 뛰어넘을 수 없는 깊은 간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무질서한 혼돈의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시몬(베드로)이 갈릴래아 호수에서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예수께서 더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가 잡혔다고 한다. 깊은 곳 혼돈(죽음)의 상태에서 고기(생명)를 건져 올림은 창조의 질서를 나타낸 표현이 아닐까.
옛 유다인들은 세례 의식을 행할 때 요르단 강에서 물속에서 잠수했다 올라오는 행위를 여러 번 반복했다. 이는 혼돈의 어둠(죽음)에서 새롭게 생명을 얻는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 순례에서 그곳에 세례 의식을 행하고 있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기억이 떠오른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고 물로 세례를 주며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재현하고 있다.
언젠가 남미 여행에서 이과아수 폭포에 갔었다. 웅장한 물소리와 함께 폭포의 쏟아지는 광경에 잠시 정신이 혼미했으며 ‘악마의 목구멍’을 연상하게 했다. 물은 소용돌이치며 떨어지는 낙수는 물안개를 일으켜서 음산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멍하게 보고 있으니, 마치 그곳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폭포수를 보고 있으니 ‘혼돈(심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잔잔한 바닷물이 갑자기 너울을 일으켜서 배를 뒤집어 침몰시키기도 하고 좌초시키기도 하니 말이다. 폭포수는 아래로 마구 떨어져 다시 유유히 흘러가며 평화로 갈라놓았다. 마침 폭포 건너편에는 물안개에 빛이 반사되어 영롱한 무지개가 나타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느낌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니 ‘노아의 홍수’가 생각났다. 신과 계약을 맺으면서 다시는 물로 인한 ‘혼돈은 없다.’며 표징으로 무지개를 내려준 장면이 연상되었다.
폭포는 물을 아래로 떨어뜨리면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가고 있다. 그것은 자유이며 낮은 곳으로 평화롭게 흐르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때로는 악마의 덫에 걸려 갈팡질팡하며 심연(深淵)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폭포처럼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며 저 강물처럼 평화롭게 살아가리라. 한동안 생각에 잠겨 깨어나니 어둠은 걷히고 동녘이 벌겋게 물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