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첫 걸음은 죄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인생을 허락 하셨습니다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인생은 허무함 속에 사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됨을 배웠습니다
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주어진 세상이라는 허상 껍데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세상속에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언약을 배우기를 원합니다
그 진리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 깨달음을 말씀의 검을 통해 세상의 가치로 여기고 있던 것들이 철저하게 하나하나 잘라지고 부서지면서 하나님이 주신 무한한 은혜를 깨닫게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으로 가득차 있던 불가능했던 마음을 하나님은 뚫고 들어오셔서 복음이라는 보물을 그저 아무 조건없이 선물을 해 주셨습니다
그 복음이 들어오는 순간 저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본질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의 무화과로 지은 옷을 벗겨 주시고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가죽옷을 입히시며 그 부끄러움을 가려 주셨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버지 앞에서 부끄러움이 사라졌습니다
모든 것을 고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 살았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더럽고 추악한 시간들이었는지를 아버지의 사랑으로 깨닫게 되면서 그 사랑을 배반하고 살았던 그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나의 잘못을 눈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를 떠나 있었던 그 시간들을 완전하게 용서해 주셨습니다
순간 순간 그 아버지의 용서를 믿지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말씀을 통해 용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용서는 저의 잘못 하나 하나를 사하여 주는 것이 아니라 저의 죄 자체를 처음부터 없는 것으로 여겨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죄와 무관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용서였습니다
아무 자격도 없는 자를 은혜로 양자로 입적하시고 큰 아들과 똑같은 상속권을 주신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는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한번 죽으면 끝나는 인생 살아 있을때 즐기고 느끼면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철저히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어떠한 인간들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자신의 이미지를 위해 가면을 쓰며 포장하고 있지만 한번 쓴 가면은 쉽사리 벗을 수가 없습니다
그 가면을 쓴채 죽음 직전에 가서야 자신의 가면을 벗으며 진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지만 이미 그 때는 늦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그렇게 세상의 가면이 벗겨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우리 마음을 뚫고 들어 오시는 강력한 어느 힘에 의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세상의 실체가 무엇인지 조금씩 깨닫게 되며 그 세상과 부딪히게 됩니다
그때 처음 느끼는 것이 자신에 대한 새로운 자각입니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왜 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나는 잘 살고 있는가? 라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찿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찿고 찿아도 시원하게 답을 찿을 수가 없습니다
그 세상을 헤매고 마지막으로 찿는 것이 바로 세상이 내어 놓은 종교입니다
그런데 그 종교는 그 답을 인간들의 힘으로 찿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노력으로 그 답을 찾기 위해 수도하고 정진하고 구제 봉사하며 자신보다 더 힘이 센 그 어떤 알 수없는 신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빌지만 깊이 파고 들수록 어떤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바로 죽음에 대한 부분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그 죽음을 미화합니다
인간의 자존심을 맟춰 주며 적당히 위협도 하고 적당히 그들의 죄성을 긁어주면서 그들이 원하는 답을 제시합니다
죄의 삯인 사망은 모든 인간들을 죽음앞에서 죽음의 증상인 두려움에 떨게 만듭니다
그 두려움을 이용해서 인간의 입맞에 맞춰 세상의 종교는 인간에게 맞는 죽음을 내어 놓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죽음 후에도 이 땅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그 죽음 후의 세상까지도 자신이 생각하는데로 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 잡히게 됩니다
지금 예배당에 나오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이 이런 종교와 하나 다를 것 없는 행위들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를 묵상하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그들이 죄에 대해서 잘 못 생각하고 있다는 생각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의 첫번째는 죄에 대한 자각입니다
자신이 왜 죄인인지 자신의 실체가 얼마나 더럽고 추악하고 불가능한지를 먼저 인식해야 하는데 보통은 그런 죄에 대한 자각도 없이 예배당에 나와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교활하고 추악한 죄인인지를 자각하지 못하면 절대 그 더러운 죄에서 자신을 건져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때부터 종교행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열심이 하나님을 위해 하고 있다는 착각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복음인 것처럼 다른 이에게 그것을 전합니다
계속해서 악순환을 하는 것입니다
총체적 난관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교회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까요?
죄가 무엇인지를 올바로 가르쳐야 합니다
세상이 도덕적 윤리적 사회법적으로 규정해 놓은 그런 죄 말고 성경이 얘기하는 죄, 기독교가 얘기하는 바로 그 죄를 가르쳐야 합니다
복음은 거기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인간의 죄의 역사가 선악과에서부터 시작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성경을 달달 외운다고 해서 수많은 종교 서적을 읽는다고 해서 깨달아 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눈과 귀를 열어주셔야 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수천편의 설교와 수백권의 종교 서적을 읽으면 깨달아지는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설교 한편에 의해서 그 복음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이 담긴 올바른 설교 하나가 저를 죄인임을 드러나게 했고 그 죄를 눈물로 고백하게 했고 거듭나게 했습니다
진정한 복음이 담겨있는 설교는 그런 힘이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십자가로 향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나를 그 복음의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매일 매일 죽게 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합니다
자기를 부인시키며 끝내는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천지 만물은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복음이 들어오면 세상도 다 복음입니다
세상의 인간들이 토해내는 역사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니 볼 수 있게 됩니다
산상수훈에서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청결은 어떠한 것이 제 자리에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를 처음 창조한 목적 그대로의 피조물의 자리 그곳으로 내려가야만 하나님을 볼수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십자가의 자리입니다
그 십자가를 통과하지 않으면 절대 하나님 나라를 볼 수가 없습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눈과 귀가 열리고 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올리고 갈급한 마음으로 글을 읽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만큼의 복음을 같이 깨달아 가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알면 알수록 너무나도 값진 보화가 무궁무진하게 묻혀 있습니다
그 보화를 하나 하나 캐어낼 때마다 세상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감동과 기쁨과 놀라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답답함과 무기력함 슬픔과 아픔도 공존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하고 평강의 마음을 허락하십니다
신앙생활의 첫 걸음은 죄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 주님께 영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