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왕의 정책을 흠모하는 사람들
- 해 아래에 새것이 없나니 -
아합왕 시대 북이스라엘은 굉장히 강했다. 1861년에 발굴된 쿠르크 석비(앗수르의 살만에셀 3세의 석비)에 아합왕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여호와의 신앙”을 심하게 박해한 왕은 아니었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여호와의 선지자들에게 물어보았기 때문이다(왕상20:13~14, 28, 41~43, 21:20~27, 22:9).
아합은 여호와도 믿고 바알도 믿는 사람이었다. 기독교 목사이면서 불교나 유교나 도교의 신앙을 품고 사는 목사들처럼. 사실, 아합은 부국강병을 위해 여호와를 믿는 사람도 바알을 믿는 사람도 다 끌어안고 싶어 했다.
그는, 전쟁할 때는 전쟁을 잘하는 萬軍(גָּדוֹל 가돌/위대한)의 여호와께 물었고, 곡식이나 가축의 풍요를 위해서는 그 분야에 특화된 바알에게 물었다. 즉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의 종교정책이었던 종교 토착화와 종교 다원 정책은 100% 적중했다. 백성들이 그의 정책을 받아들이고 따라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부부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그의 정책을 따라갔던 것으로 보인다. 엘리야가 “나 혼자만 남았습니다”라고 하나님께 하소연했던 것을 보면.
엘리야는 여호와를 半만 믿는 것은 안 믿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하여 아합은 상당히 현실적이었다. 양쪽의 장점과 좋은 점만 취하여 믿자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현실을 무시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 아닌가? 사실 우리가 현실을 무시하고 어찌 복음만 믿고 살 수 있겠는가? 안 그런가?
여러분은 예수를 믿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너희는 먼저”란 너희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느냐?를 묻는 말씀이다. 엘리야의 신앙은 예수님의 이 말씀과 일치했다.
유럽 교회와 미국 교회 목사들이 아합의 종교관을 따르고 있다. 현실을 고려한 “신앙의 토착화와 종교다원주의”가 이 시대에 잘 부합된다는 것이다. 목사들의 생각이 이러니 그러고도 어찌 교회가 몰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북이스라엘 왕국은 BC721년 이 지상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