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덴의 동쪽>의 주제곡
* <워터 프론트>에서 말론 브랜도
[ 영욕이 교차된 삶을 살았던 명장 엘리아 카잔 ]
<워터 프론트>의 명장, 미국의 엘리아 카잔 감독은 2003년 9월 28일, 뉴욕 맨하탄 자택에서 28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카잔은 브로드웨이에선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아서 밀러와 함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등 수많은 걸작을 만들어낸 연출자이자, 할리우드에선 말론 브랜도, 제임스 딘, 캐롤 베이커, 나탈리 우드 등 무명의 스타를 배우로 발굴하고 <신사협정>,<워터 프론트>,<에덴의 동쪽> 등 영화사에 남을 수많은 작품을 감독한 거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카시 광풍이 몰아치던 1952년 미국 의회 반미행위조사위원회에 소환돼 자신이 1934~36년 공산당원이었음을 고백하고 8명의 당원의 이름을 댄 이후, 그에게는 평생 ‘배신자’라는 꼬리표와 논란이 따라다녔습니다. 카잔은 처음엔 이름 대기를 거부했지만, 당신의 명성을 무너뜨리겠느냐는 회유와 협박 속에 증언을 선택했습니다.
* 매카시 광풍 : 50년대 초 매카시 의원이 벌인 대규모 무차별 빨갱이 색출 운동
그는 <워터 프론트>(1954)로 재기에 성공합니다. “갑자기 아무도 내 정치적 관점이나 논란을 신경쓰지 않았다. <워터 프론트> 이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하게 됐다. 그게 할리우드다.” 그렇다 하더라도 평생 그 상처는 아물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비비안 리
그리스인 부모 사이에서 1909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 예일대에서 연극을 공부했습니다. 브로드웨이의 활약을 거쳐 <브루클린에서 자라는 나무>(1945)로 데뷔한 그는 20세기 폭스 데릴 자눅 사장의 '명작 브랜드 정책'에 힘입어 승승장구합니다.
<신사협정>(1947), <거리의 혼란>(1950) 등 그의 초기작은 필름 누아르 스타일과 사회파 리얼리즘의 태도를 결합한 영화였지요. 그는 할리우드에 연극의 전통을 끌어들였고 스크린에 미국인의 거칠고 방황하는 삶을 옮겨온 장본인이자, 할리우드를 지배할 메소드 연기(배우가 역할에 몰입해 완전히 역할과 같은 성격의 연기를 하는 것)의 산실인 액터스 스쿨의 수장이기도 했습니다.
아카데미 위원회가 그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하던 지난 1999년 아카데미 식장은 카잔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임을 상징한 현장이었습니다. 마틴 스코시즈 감독과 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그에게 찬사를 보내며 기꺼이 상을 전달했지만, 에드 해리스나 아서 밀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박수를 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차가운 눈길로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 <뜨거운 양철 지붕의 고양이>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의 걸작 중의 하나인 <워터 프론트>에서 말론 브랜도가 맡은 퇴역 복서 출신 테리 멀로이는 부두 노동조합의 깡패집단을 정부에 고발한 뒤 밀고자로 몰리자 단신으로 깡패 두목 조니(배우 리 J 콥)를 찾아가 주먹싸움을 벌입니다.
“난 내가 한 일을 후회하지 않아”라고 외치는 테리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카잔의 자기 변명처럼 느껴졌지요. 한때 거대권력에 맞섰지만 끝내는 협력했던 자신의 고독한 처지를 웅변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 대표작 소개 ]
< 에덴의 동쪽 >
영화 <에덴의 동쪽>은 존 스타인벡의 동명 소설 후반부를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스타인벡은 성경의 창세기전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써서 아담 트래스크와 그의 두 아들 아론과 칼의 관계를 그렸습니다.
신의 총애를 독차지하는 동생 아벨을 너무나 질투한 나머지 죽이고 마는 카인의 내적 갈등을 심리학적으로는 카인 콤플렉스라고 칭하는데, 부친의 사랑을 갈구하다가 좌절하자 급기야는 형을 사지로 내모는 칼 트래스크의 심리가 카인 콤플렉스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것입니다. 비뚤어지고 치우친 부성애와 그로 인한 형제간의 증오와 갈등이 이 작품을 끌어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에덴의 동쪽>에서 ‘동쪽’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신의 분노를 사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었다는 동쪽 땅을 가리키는 말로 구약성서의 창세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 이후 인간이 사는 곳은 모두 ‘에덴의 동쪽’이며, 아담에게는 카인과 아벨 두 아들이 있었는데, 신이 아벨만을 편애한다고 느낀 카인이 질투심에 못 이겨 동생 아벨을 죽였다고 하여 인간은 모두 카인의 후예로 불립니다.
이 작품은 구약에서 아담의 총애를 받은 아벨을 시기한 카인의 살인을 테마로 1차 대전 중의 캘리포니아로 무대로 옮겨 스토리를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즉 이 작품의 주제는 사랑받고 싶은 인간의 영원불멸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제임스 딘의 첫 번째 메이저 영화 주연작으로 그의 천재성과 줄리 해리스의 아름다움, 매음굴의 포주 생활을 하는 어머니 역의 조 반 플릿 등의 뛰어난 연기가 잘 어우러진 작품입니다. 1956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주조연상과 남우주연상, 감독상, 각본상 부문 후보로 올랐으며 1955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극영화로 선택됐습니다.
스타인벡의 고향이자 원작의 배경이 되는 캘리포니아 주, 살리나스 계곡의 아름다운 농지와 당시 시대상을 충실히 담았다는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으며, 고뇌에 찬 둘째 아들 칼 역을 맡은 제임스 딘의 연기는 아직까지도 비평가들 사이에서 이 작품을 꼭 봐야 할 이유로 꼽힙니다.
또한 <에덴의 동쪽>은 엘리아 카잔 감독의 첫 번째 시네마스코프 작품으로, 제임스 딘의 격렬한 반항이나 질투에 불타는 모습을 시네마스코프 화면을 경사시켜서 격정적인 화면으로 빈틈없이 표현해냈으며 현악기의 멜로디와 목관악기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음색의 앙상블을 이루어낸 테마 음악 역시 뛰어납니다.
겨우 세 편의 영화(에덴의 동쪽,이유없는 반항,자이언트)에서 주연을 했을 뿐이지만, 제임스 딘은 1950년대 영화계의 핵심적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남성미 영역에서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말론 브랜도의 뒤를 이은 그는 클라크 게이블이나 에롤 플린 같은 남성적 아이콘들에 비해 훨씬 민감하고 고뇌에 찬 스타일을 선보였습니다.
* 제임스 딘은 영화 <자이언트>를 끝내고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그의 애차(愛車) 포르셰를 몰
고 LA 교외를 질주하다가 앞에서 오는 자동차와 충돌한 것입니다.
< 워터 프론트 >
이 영화는 사람의 인성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선과 악이 극명하게 대치할 때에 가끔 선한 사람의 인성이 그 위력을 발휘하곤 하죠.
영화에서 부두 노동자 테리 말로이(말론 브랜도 분)는 처음엔 자신의 주관도 없이 그저 무덤덤하게 하루하루 살아가던 악덕 조합장 자니 프랜들리(리 J. 콥 분)의 꼬붕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잠재된 테리의 인성을 자극하게 되는 그 운명적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게 바로 노조의 비리를 폭로하려던 조이 도일의 죽음이었습니다.
한때 유망한 복서였던 테리는 집 옥상에다 비둘기를 키울 정도로 착한 심성을 가진 외로운 청년이었지만 내기 시합에 관계된 형 찰리 말로이(로드 스타이거 분)의 부탁으로 일부러 져준 뒤로 자니의 졸개가 되어 그동안 시시껄렁한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 테리가 오빠의 죽음을 캐려는 조이의 여동생 이디 도일(에바 마리 세인트 분)을 좋아하게 되면서 서서히 그의 밑바닥에 깔려있던 양심과 자존심을 찾아갑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테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이 지역 담당 배리 신부(칼 말덴 분)입니다.
이런 테리의 변화는 결국 형 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격분한 테리는 조사위에 출두, 부두 노조의 온갖 부정과 비위와 살인행각 등을 까발립니다. 일종의 내부자가 된 겁니다. 그리고 아직도 자니의 영향력 아래 있는 부두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 테리가 분개하여 형을 죽인 자니를 찾아가 격렬한 싸움을 벌입니다.
자니의 부하들에게 죽도록 얻어맞고도 일어나서 일터로 향하는 테리, 다른 노동자들도 자니의 협박을 무시한 채 처연하게 그 뒤를 따른다는 게 이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입니다.
평소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자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엘리아 카잔 감독은 1948년 4월 뉴욕 부두의 한 근로자의 피살 사건을 토대로 소설가이자 칼럼니스트인 버드 슐버그에게 시나리오를 의뢰합니다.
슐버그는 1 년여에 걸쳐 뉴욕 부두 노동자와 노조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뒤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동안 카잔 감독은 헐리우드의 영화사들을 찾아다니며 제작 문제를 상의했으나 한결같이 퇴짜만 당했습니다.
노조나 노동자 문제는 들쑤셔 영화를 만들어봤자 공연히 화만 자초하고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였죠. 작가 슐버그와 카잔 감독이 의기소침해 비버리힐스 호텔에 묵고 있을 때 우연히 거기서 거물급 제작자 샘 스피겔을 만나 시나리오 줄거리를 들려주자 즉석에서 제작 결정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폭발성 소재를 다루겠다는 이들 3인(제작자와 감독과 각본가)의 용기가 없었다면 <워터 프론트>는 영원히 빛을 보지 못했을 뻔했던 명작입니다.
카잔 감독은 부두 노동자들의 악조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고 호보켄에서 올로케 촬영을 했고 일부는 뉴욕항에서 찍었는데 실제로 노동자들이 촬영을 하다가 갱들의 위협을 받기도 하여 전속 경호원들을 두고 35일 만에 촬영을 마쳤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 보인 다큐멘터리적인 카메라 워크는 카잔 감독의 절정기 작품으로 손색이 없었으며, 특히 이 영화에서 벅찬 감동을 주는 것은 배우들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였습니다.
뉴욕 엑터스 스튜디오의 중심 세력이었던 카잔 감독은 이 스튜디오 출신인 말론 브랜도와 리 J. 콥, 칼 말덴, 로드 스타이거 등으로부터 생동감 넘치는 명배우들의 연기 대결장으로 만들었으나 누구보다 브랜도의 메소드 연기가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브랜도는 이 영화에서 테리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으며, 그를 사랑하는 이디 역의 마리 세인트는 데뷔작인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