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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제 원문보기 글쓴이: 진모
<경악할 사실> 출동한 해경고속정은 4척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한 일은?
세월호가 보낸 메시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침수중입니다.” “구조해 구세요.” “침수중입니다.” “살려 주세요.” .....
그들은 처음에도 “침수중입니다.”
나중에도 “침수중입니다.” “침몰중입니다.”
“구조해 주세요.” 라고 애원했습니다.
세월호에서는 지금 “침몰중“이라고 “배가 많이 기울어서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빨리 좀 와 달라”고 선장을 비롯한 많은 승객들이 해경에, 119에 긴급구조를
요청하였습니다.
“침수” “침몰” 중이라고 해경에 빨리 좀 와 달라고 요청한 세월호에는 대략 500여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침몰중이라고, 구조해 달라고, 살려달라고, 지금 당장 침몰할 것 같다고 긴급 구조신호를 보낸 인원이 최소 500여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언론에 보도 되었던대로
해군함정 20척, 해경경비정 10척, 해군 SSU, UDT, 해경특공대 정도는 긴급 투입됐어야 마땅했습니다.
당장 침몰할 것 같다는 500여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해군함정 20척, 해경경비정 10척 정도는 즉시 투입했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들을 살릴 생각이 있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투입된 구조대는
보시다시피
달랑 해경경비정 한 척, 고무보트 하나, 헬기 3대, 환자들을 이송하기 위해 나중에 투입된 행정선 한 척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500여 승객을 구조해 줄 의지를 가진 자들의 행태라고 볼 수 있을까요?
500여 승객이 당장 침몰할 것 같다고, 50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빨리 좀 구해 달라고 그렇게나 애원을 했는데도 말입니다.
이 자들(해경과 박근혜 정부)는 500여 승객을 구조해 줄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고 봐야 맞는 것입니다.
(이런자들을 위해서 해경의 늦장구조와 부실구조에 대한 판례가 엊그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또 다시 경악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은 4월 16일,
세월호 침몰 현장에 출동한 해경경비정은 위의 사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단 한 척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4월 16일, 그 날 세월호 침몰 현장에 출동한 해경경비정은 실제로는 무려
4척이나 되었습니다.
YTN 보도 화면입니다.
<헬기3대 고속정 4척 사고 현장 도착, 구조중>
이란 이 보도 내용도 “해군함정 20척, 해경경비정 10척 긴급투입”이라는 말처럼
“허위보도”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헬기3대, 고속정 4척이 사고 현장에 도착 했었다는 보도는 사실입니다.
저는 사건 초기에 중앙일보에 보도된 위와 동일한 장면의 사진을 다운받아서 저장해 놓고 있었습니다.
세월호 부분만 확대된 장면이었지요.
세월호 선수쪽에 해경고속정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해경고속정은 단 한 척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진상으로만 최소 3척이나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선박들이 해경 고속정이 맞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는데요,
그러나 역시 님들께서 찾아주셨습니다.
“헬기3대 고속정4척 사고 현장도착”이라고 보도한 YTN의 저 보도사진을 말입니다.
위 사진 속의 해경고속정은 그냥 보여지는 것만도 최소 3척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해경고속정이 서 있는 세월호 선수 부분을 확대한 후
경비정들 아래로 수평선을 그어 보면 이 배들은 동일선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파란선 왼쪽 끝부분에 있는 선박까지 합하면 현재 세월호 선수부분에 대기하고 있는 선박은 최소 4척이나 되는 것입니다.
헬기3대, 해경고속정 4척이 현장에 도착했다는 YTN의 보도는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공개된 해경 구조 동영상이나 헬기에서 찍은 구조 동영상에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던 123정 이외의 해경고속정들이 무려 3척이나 더 현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진이 찍힌 시각은 대략 언제쯤이었으며 이 자들은 언제부터 현장에 있었던 것일까요?
아래 한겨레의 사진은 여러분들이 최초 사고 위치로 알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두 사진에서 세월호 주변에 떠 있는 부유물들과 세월호 함미의 잠근 부분 또 기울기를 비교해 보면 YTN에서 보도된 해경고속정 4척이 찍혀있는 사진은 한겨레의 사진과 거의 비슷한 시각에 찍혔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해경123정이 최초 단독으로 도착한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그 시각에 이미 해경123정 이외 다른 해경고속정도 3척이나 더 현장에 같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호가 5층, 4층, 3층 모두 전혀 침수되지 않았었던 그 시각에 말입니다.
그러나 저 자들은 승객 구조를 위한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저 자들이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저 자들이 승객들을 구조한 증거자료가 전혀 없다는 사실,
또 저 자들은 그동안 현장을 찍은 구조 동영상에 단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로서 저 자들의 출동 목적이 결코 승객 구조가 아니었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 자들은 세월호 침몰현장에 무슨 일로 출동했었던 것일까요?
해경123정이 세월호 침몰현장에 도착해서 한 일이라고는 대기하고 있던 기관실 선원들 그리고 조타실에 있던 선장과 선원들을 싣고 온 것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해경고속정123정은 세월호 근처로 가게 되면 침몰하는 세월호에 빨려들어가기 때문에 세월호에 계류할 수 없었다던 말과는 달리 침몰중인 세월호에 최소 4번 이상을 계류하고서 작업을 합니다.
첫 번째, 선장을 데려갈 때 세월호에 접안해 있습니다.
두 번째, 해경들이 조타실에 진입할 때도 어딘가로 갔다가 돌아와서 세월호에 다시 접안합니다.
세 번째, 조타수 오모씨와 안전제일맨을 데리러 왔을 때도 세월호에 접안하고
네 번째, 구조활동을 했다는 증거로 내민 3층 선실 유리창을 깨는 장면에서 또 세월호에 접안하고 있습니다.
배를 한번씩 움직이는 것은 자동차를 전진, 후진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그 자리에 가만 있어도 될 것을 왜 자꾸만 배를 뒤로 뺐다가 다시 접안하고 또 뒤로 뺐다가 다시 접안하고 하는지 굉장히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저들을 지휘하는 본부가 현장에 같이 있었다면 그 지휘본부와 긴밀한 협조를 위해서 반드시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있었을 테지요.
또 세월호가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동거차도 앞을 빙글빙글 도는 중이었다면 세월호 선수쪽에 계속 자리잡고 있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4월 16일 아침 6시부터 그 시각 이후 해경고속정 123정의 레이더 기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숨겨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다는 사실의 다른 말일 것입니다.
그동안 오렌지맨은 대체 어느 배를 타고 왔었는지 궁금했었고
윗 글에 등장하는 <안전요원들>이란 또 어느 배를 타고 왔었던 것인지 궁금하기 이를 데 없었는데 이제 그 의문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세월호 침몰현장에 출동했던 해경고속정은 123정 단 한 척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였을까요?
어느 님이 올려주신 자료인데요,
이 글이 그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트윗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해양경찰 4월 16일 오후 7시 10분과 19분에 쓰여진 내용인 모양인데
해경 3011함에서 09시 20분경 1구,
1010함이 09시 52분경 1구,
총 시신2구(남,녀 각1구 신원미상)을 인양했습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날 4월 16일, 세월호 침몰 현장에는 해경123정외에
해경 3011함이, 해경 1010함이 같이 있었다는 말일까요?
그런데 해경123정을 비롯한 4척의 해경고속정들이 세월호 침몰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위의 사진에 찍힌 그 때에 도착했었던 것이 맞을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될 하나는 지난번 글에서 말씀드린
<최초위치>라고 표시된 병풍도 바로 앞은 변침지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둘라에이스호 문선장이 <최초위치>라고 표시해 놓은 병풍도 바로 앞,
구조 헬기가 최초로 세월호를 포착했다고 하는 병풍도 바로 앞은 변침 지점이 아닙니다.
사진의 저 위치에서 우현으로 변침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 병풍도와 충돌하게 됩니다.
그런 미친짓을 할 선장이나 조타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변침지점은 어디였을까요?
서거차도 옆, 병풍도 앞을 지나 남쪽으로 가는 맹골수로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형 유조선과 대형선박들이 하루에도 몇 백척씩 지나 다니는 정상항로였다고 합니다.
서거차도 옆을 지나 병풍도 앞을 지나는 것이 정상항로였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한 항해사님이 알려주는 변침지점입니다.
남쪽으로 내려올 때는 180도 항로로 내려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맹골수로로 진입하게 되면 135도 항로로 변침을 하고 그렇게 쭉 가다가
병풍도에서 146도로 꺽는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헬기가 포착한 사진처럼 병풍도를 바로 옆에 두고 우측으로 꺾는 것은 아닐테구요,
180도 항로로 내려오다가 1번 지점에서 135도 항로로
2번 지점 병풍도를 지나서 146도 항로로 꺽게 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급변침 지점은 2번지점 병풍도를 지나서가 아니라 1번 지점 맹골수로에 진입하기 바로 전이라는 사실입니다.
급변침 사고로 위장하여 여객선을 침몰시키고자 한다면 사고지점은 1번과 2번 중
어느 곳을 선택하는 것이 더 유리할까요?
당연 1번일 것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세월호는 맹골도를 지난 부근에서 이미 15도 정도 기울어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바로 이 장면입니다.
왼쪽 수평선 끝에 보이는 섬이 병풍도이고 오른쪽 아스라이 보이는 섬이 맹골도입니다.
해경123정은 독거도 남쪽 3킬로지점에서 정서방향으로 거의 일직선으로 달려오고 있기 때문에 왼쪽에는 병풍도, 오른쪽에는 맹골도가 보여지는 것입니다.
세월호의 현재 위치가 병풍도보다 맹골도에 더 치우쳐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해경123정이 세월호를 최초로 포착하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해경 동영상은 아래 부분에서 탁 끊어지고 맙니다. 왜 그럴까요?
세월호 부분을 잘라서 확대해 보게 되면 세월호 흘수선 표시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리고 드러난 흘수선 좌, 우를 연결해 보면 기울기가 대략 15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세월호는 2층갑판이 수면에 닿기는 커녕 흘수선조차도 침수가 되기전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호는 조금 기울어졌을망정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세월호는 맹골도 부근에서 침수 사실을 알리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미역따러 나가던 어민이 7시에서 7시 30분경 가만히 서 있는 큰 배를 보았다고 하셨었는데요, 제가 알기로는 그 분은 맹골도 주민이셨습니다.
고 박수현군이 사진을 찍었던 7시 36분경 아마도 세월호는 기다림을 포기하고 자체구조를 위해 관매도쪽으로 항해를 시작했었던 것 같습니다.
세월호가 <최초위치>라고 알려진 병풍도 앞에 섰을 때는 세월호는 이미 2층 갑판이 수면에 닿을 만큼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경123정이 달려가면서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을 당시에 세월호는 2층 갑판은 커녕 좌현 흘수선조차 아직 물에 잠기기 전이었습니다.
동영상이 왜 이 부분에서 끊겨야 했는지 이해가 가시지요?
해경고속정들은 이처럼 세월호가 대략 15도 정도밖에 기울지 않았을 때 이미 세월호를 포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세월호가 15도 기울었을 때 아무도 구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렌지맨이 등장하고 안전제일맨이 등장하고 그리고 종국에 세월호는
폭발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입이 있거든 말을 해 보시지요?
첫댓글 폭발 어뢰 맞아냐
침몰작전과 몰살작전에 구제작전을 펼치면 맞아 죽거나 밥줄이 끊어질 수밖에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구조대원 들. 한 통속들.
삭제된 댓글 입니다.
100% 동의 합니다 !!!!
왜 승객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그 대답을해라
다른소리는 개소리일뿐
박그네 알겠냐?
함량미달을 앉혀놓고 참 허송세월
이언령비언령 세월호 처벌 그렇게하자
개수작떠는 새끼들 변명도 듣기실타
스마트한세상에 아직도 구태들의 집단에 의한
아날로그 정부는 거짓에 거짓을 낳는 행적을 되풀이 하는것 같다...
여기에서의 정보도 그러하고 온 인터넷 세상에 다 알려진 사실인데
지운다고 지워질까? 감춘다고 감추어질까?
스마트한세상에 감추거나 숨길수 없음을 인지하고
이실직고하여 온 국민의 한을 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