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757〉
■ 위로 (윤동주, 1917~1945)
거미란 놈이 흉한 심보로 병원 뒤뜰 난간과 꽃밭 사이 사람발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그물을 쳐 놓았다. 옥외 요양을 받는 젊은 사나이가 누워서 치어다보기 바르게-
나비가 한 마리 꽃밭에 날아들다 그물에 걸리었다. 노오란 날개를 파득거려도 파득거려도 나비는 자꾸 감기우기만 한다. 거미가 쏜살같이 가더니 끝없는 끝없는 실을 뽑아 나비의 온몸을 감아 버린다. 사나이는 긴 한숨을 쉬었다.
나이보담 무수한 고생 끝에 때를 잃고 병을 얻은 이 사나이를 위로할 말이-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밖에 위로의 말이 없었다.
- 1948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거미란 놈이 거미줄 치는 걸 유심히 관찰해보면 참 신기합니다. 보통은 기척이 없을 때 집을 짓지만 때론 눈앞에서 하는 경우도 제법 보입니다. 잘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줄을 높은 공중에서 여유작작하게 타면서 한두 시간 정도면 집을 완성하고, 자신은 더 높은 끝에 안 보이게 숨어 있더군요. 그리고 먹이가 걸리기를 기다리는 데 그 인내심이 보통이 아닙니다. 몇 시간은 물론 어떤 땐 며칠을 기다리고 있습디다.
사실 거미는 주로 파리, 모기, 멸구, 나방 등 해충들을 먹이로 하므로 익충이 맞습니다만 우리 눈에 거미는, 아주 무서운 곤충으로 보일 것입니다. 우선 그 모습이 징그럽고 무서운 데다 독을 지니고 있고, 노력 없이 게으르게 먹이만을 기다린다고 여기는 점, 그리고 가냘프고 이쁜 나비, 잠자리 등이 거미줄에 포획된 장면을 많이 보는 것 등에서 연유된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런 까닭에 이 詩에서도 거미는 당연히 악역으로 묘사되었더군요.
이 詩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병들고 힘이 약한 존재를 위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거미는, 흉폭하고 부정적이며 교활한 대상 즉, 일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편 병실에 누워있는 무기력한 젊은이는 주권을 잃은 우리나라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2연에서의 거미줄에 걸리는 나비는 일제에 반항하는 독립투사나 지식인들을 의미할 것이며, 이들이 아무리 저항해도 거미줄에 걸린 나비같이 교활한 거미에게 온몸을 감기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병약한 젊은이는 바라보고 긴 한숨을 쉴 뿐,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거미를 죽이지는 못하고 거미줄을 헝클어 버리는 것으로 위안하며, 일제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자신을 포함한 나약한 지식인들의 처지를 자책하는 모습이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