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루스트는 '만일 세상의 종말이 내일 온다면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진정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소에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의 말은 우리들에게 용기 있는 삶을 살도록 촉구합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꼭 하고 싶어하고 바라는 것들의 뒤에는 종종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도 하지요.
한편, 프루스트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동반하고 있는 특별한 것, 평범함 속에 내재되어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끄집어내는 예리한 감수성을 강조합니다. 그는 인간의 아름다운 경험이나 추억 혹은 인식이라는 것들을 한폭의 그림에 비유 한다면, 그림 속에서 아름답거나 특징적인 것들과 함께 섞여 있는 매우 평범하고 사소한 사물들이야말로 전체의 조화로운 무늬와 형상을 이루는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림 속의 평범하거나 작은 사물의 세밀함이 전체의 그림을 떠 올리는 데에 아주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삶에서 아름다운 무늬만을 기억하고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은 잘 보이거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생은 대부분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책장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낡은 책 한권이 젊은 날 첫사랑의 추억이나 혹은 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열정을 실타래처럼 풀어 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혹은, 거실 탁자 위에 놓인 바구니를 보는 순간, 어린 시절 시골 친척 집에서 보았던 낡은 과일 바구니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 때 방안에 가득했던 과일 향기와 창호지 문 밖 화단의 붉은 장미, 그리고 뒷산의 오솔길을 따라 펼쳐진 숲과 그 안 쪽의 맑은 시냇물 소리까지 들리게 됩니다.
우리는 평범한 것들의 세세함 속에서 삶의 이미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고된 삶이 가져다 주는 상처와 슬픔의 치유가 가능합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곧 생에 생기를 주는 일입니다. 일반적인 것들에 대한 세밀한 관찰,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는 것, 그렇게 발견한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자기를 닮은 삶의 영역과 일치 시키는 작업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기쁨을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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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첫댓글 아내 : "10분후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면 당신은 뭐 하겠어요?" 남편 : "당신하고 마지막으로 뜨거운 사랑을 나누겠오." 아내 : (웃으며) "그러면 나머지 9분 30초는 뭐 할래요?"
ㅎㅎ.. 아주 좋은 해석이야! 고맙네..*`
푸루스트를 좋아하냐구요? 네! 무척 좋아합니다. 무엇을 한 사람인 줄 모르니까요.아! 압니다. "1910년에서 20년대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불국 아저씨말이죠. 그 친구 주제를 잘못 잡았죠.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이론은 이미 1905년에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으로 밝혀냈잖아요. 왜 소설가가 물리학 분야에 뛰어들었는지 모르겠군요. 하기야 당나라에서도 유명 문인중에 불로장생법의 연구에 열심이었던 사람도 있으니깐요. 결론적으로 내가 오늘 너무 일찍, 아침 9시이전에 깨서 정신이 아직 들지 않은 것같다는 느낌이라는 것은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프루스트를 소생도 거의 몰라요. 어쩐지 그의 글은 골치 아플거 같고..단지 알랭드 보통의 해석을 통해 그의 사상을 좀 맛본 것 뿐입니다. 미국에 있는 김규홍 교수가 이 글과 관련해서 보낸 동영상(Proust CAN change your life)을 보면 (영어가 잘 안들리지만) 그 결론은 내일(마지막 날)까지 미루지 말고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 뭐 그런거 같기는 하더군요* 그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방법인가? ㅎㅎ
그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이 아니라 ..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