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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1월 12일 일본 외무성에서 있었던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왼쪽)과 오히라 일본 외상의 회담장면. |
5·16 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한·일회담을 서둘렀다. 산업을 일으키려면 돈이 필요했고, 돈은 ‘청구권’ 명목으로 일본에서 받아낼 요량이었다. 1961년 6월 20일 6차 회담을 재개했으나 양국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박정희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에게 조기 타결을 지시했다. 1962년 10월 20일 김종필은 오히라 외무장관과 이케다 총리를 만나 1차 탐색전을 펼쳤으나 일본은 3억달러 제공만 고집하고 있었다. 박정희는 “반드시 청구권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야 하고, 6억달러 이하는 양보할 수 없다”는 긴급훈령을 내렸다.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은 오히라를 다시 만나 이른바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작성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한·일회담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타결지었다.
금액은 6억달러(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 민간차관 1억달러)로 매듭지었으나 ‘청구권’이란 문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독도문제의 해결방안으로 독도 파괴를 일본 측에 제안하고 독도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자는 일본 측의 의견에도 합의해줬다는 사실도 알려져서 충격을 주었다. 곳곳에서 졸속 타결이라며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지만 김종필측도 할말은 있었다. 어떻게든 6억달러를 받아내려다 보니 일부 문구에 소홀하게 됐고, 일본의 외환보유액이 18억달러였을 때 6억달러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한일 청구권에 대해 ‘6억달러+알파’라는 ‘김종필·오히라 메모’ 합의로 10년간 지지부진하던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의 물꼬가 틔였다는 긍정적 평가와 군사정권의 밀실 타협이었다는 부정적 평가가 상존한다. 이후 정부 간 공식협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1963년 3월부터 독도 문제 등 굴욕적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이어졌고, 이에 6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6·3 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오늘의 인물]
2001년 11월 12일
홈런왕 맥과이어 명예로운 은퇴
‘빅맥’ 마크 맥과이어. |
“구단이 내게 줄 연봉에 어울리는 플레이를 할 능력이 없다. 계약 연장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고 부상까지 숨기는 황금 만능의 세태에 홈런왕은 기꺼이 명예로운 퇴진을 선택했다. ‘빅맥’ 마크 맥과이어(38·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2001년 11월 12일 끝내 방망이를 놓았다.
맥과이어는 지난 2001년 1월 구단과 2년간 3000만달러를 받기로 합의, 2002년 시즌 연봉 1500만달러가 보장돼 있었다. 그러나 소속 팀 카디널스가 자신과 같은 1루수로서 올 FA시장 최대어인 제이슨 지암비(애슬레틱스)를 영입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은퇴를 결정했다. 맥과이어는 1997년 카디널스로 이적하기 전까지 약 2년간 지암비와 한솥밥을 먹으며 선배로서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지암비는 맥과이어의 도움으로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1루수로 성장했다.
맥과이어는 지난 1998년 70개의 홈런을 때려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수립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군림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백인 슬러거. 하지만 지난 2년간 무릎 및 허리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올 시즌이 끝난 뒤 은퇴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돌았다.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187, 29홈런, 64타점. 특히 포스트시즌에는 4게임에서 11타수 1안타로 극심한 부진을 보였다. 맥과이어는 1986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 역대 5위인 통산 583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해, 오늘 무슨 일이... 총 61건
ㆍ2009년 · 제임스 릴리 전 한국대사 별세
ㆍ2009년 · 명래제약 창업주 이용재 여사 별세
ㆍ2008년 · 박춘호 국제해양재판관 별세
ㆍ2005년 · 부산 APEC 정상회의 개막(2005.11.12~11.19)
ㆍ2004년 ·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 MBC라온건설인비테이셔널 스킨스게임 출전위해 제주 방문
ㆍ2001년 · 미국 여객기 뉴욕서 추락. 260명 사망
ㆍ2001년 · 홈런왕 맥과이어 명예로운 은퇴
ㆍ1999년 · 안산 SW 지원센터 설립
ㆍ1996년 · 사우디항공 보잉 747-100기와 카자흐스탄 민항기와 인도 뉴델리 상공에서 충돌. 349명 사망
ㆍ1996년 · 제1회 국제 CDMA 회의 개최
ㆍ1994년 · 영국의 소설가 스튜어트 사망
ㆍ1992년 · 영종도 국제공항 기공식
ㆍ1991년 · 아태지역 경제협력(APEC) 제3차 각료회의 서울서 개최
ㆍ1990년 · 아키히토(明仁), 일본 제125대 왕에 즉위
ㆍ1990년 · 빌게이츠 컴덱스쇼 기조연설에서 `손가락 끝의 정보`라는 문구로 미래 컴퓨팅의 비전 제시
ㆍ1989년 · 서양화가 하인두 별세
ㆍ1989년 · 최점환 WBC 스트로우급 세계챔피언 획득
ㆍ1989년 · 문학평론가 임종국 별세
ㆍ1989년 · 전교조, 전태일노동상 수상
ㆍ1989년 · 스페인 노동운동가 파시오나리아 작고
ㆍ1987년 · 전화접수 우편환 송금제도 실시
ㆍ1987년 · 평화민주당 창당대회(총재 김대중)
ㆍ1984년 · 미국 디스커버리호 고장위성 사상 처음으로 회수
ㆍ1983년 · 레이건 미국 대통령, 방한
ㆍ1983년 · 일본, 랭군사건의 제재조치로 북한 과학대표단 입국 불허
ㆍ1982년 ·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유리 안드로포프 선출
ㆍ1982년 · 폴란드 정부, 11개월 만에 바웬사 석방
ㆍ1981년 · 전두환대통령, 김일성 서울방문 제의
ㆍ1981년 · 한국방송사업단 창립
ㆍ1980년 · 미국 보이저 1호, 토성 근접 촬영
ㆍ1980년 · 정치쇄신위원회, 정치활동규제 대상자 811명 발표
ㆍ1979년 · 공화당총재 김종필 선출
ㆍ1977년 · 자이레서 화산폭발, 2천여명 사망
ㆍ1974년 · 동아일보, 천주교도 인권회복기도회 기사로 경영진과 기자들의 의견충돌 12일자 휴간
ㆍ1969년 · 중국 전 국가주석 유소기 사망
ㆍ1969년 · 미국 후생성, DDT 사용금지
ㆍ1965년 · 한일협정 비준안 일본중의원 통과
ㆍ1964년 · 미국, 원자력잠수함 시 드래건호 일본 사세보항에 처음 기항
ㆍ1964년 · 최초 대일 여객선 아리랑호 취항
ㆍ1963년 · 희대의 살인마 고재봉 검거
ㆍ1962년 · 학사고시 실시
ㆍ1961년 ·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일본 방문해 이케다 수상과 한일국교정상화에 합의
ㆍ1960년 · 민주당 구파, 신당 발기인대회를 통해 당명을 신민당으로 결정
ㆍ1957년 · 미국 트리뷴지 여기자, 기사소스 증언거부로 금고형
ㆍ1955년 · 서독군 발족
ㆍ1953년 · 닉슨 미국부통령 내한
ㆍ1948년 · 도쿄 군사재판, 전범 7명에게 교수형 선고
ㆍ1945년 · 동양척식회사, 신한공사로 개칭
ㆍ1942년 · 과달카날 해전서 일본 대패
ㆍ1930년 · 런던에서 제1회 영국-인도 원탁회의
ㆍ1929년 · 영화배우 겸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 출생
ㆍ1921년 · 워싱턴 군축회의 개막
ㆍ1920년 · 조선징발령 공포
ㆍ1918년 · 독일 사회민주당, 민주공화국 선포
ㆍ1915년 ·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 출생
ㆍ1866년 · 중국 건국의 아버지 손문 출생
ㆍ1857년 · 우루과이의 제2대 대통령(1835~38) 오리베 사망
ㆍ1848년 · 그리스 언어학자 하드지다키스 출생
ㆍ1840년 · 프랑스 조각가 로댕 출생
ㆍ1746년 · 프랑스 물리학자 샤를 출생
ㆍ1463년 · 동국지도 제작
[출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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