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기온이 무려 12만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4년 만에 지구를 덮친 ‘슈퍼 엘니뇨’ 탓이 크다. 엘니뇨는 무역풍이 약해져 적도 열대 태평양지역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상태로 수개월 넘게 지속하는 현상을 말한다.
기온 상승으로 전례 없는 무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역대급 장마가 지나갔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니 불볕더위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좀 더 시원하고 색다르게 여름을 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최근 어느 곳보다 알차게 여름을 보낼 수 있는 곳으로 경기도 수원이 꼽히고 있다고 해 직접 다녀왔다.
수원 비행기구 ‘플라잉 수원’에 올라 본 야경 사진에 플라잉 수원 외관을 더해보았다.
수원 도심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는 관광 열차 화성어차와 우리나라 전통 무예 국궁체험 마지막으로 하늘을 나는 열기구 플라잉 수원까지 화끈한 액티비티를 소개한다.
기분 좋은 여름 바람과 함께하는 화성어차
빨간색으로 칠해져 더 강렬한 느낌이 나는 화성어차
가장 먼저 화성어차에 탑승했다. 화성어차는 순종황제가 탔던 자동차와 조선시대 왕이 타던 가마를 혼합해 만든 이색 관광열차다. 2002년 처음 도입한 화성어차는 현재까지도 수원화성의 주된 관광 거점을 소개하는 길잡이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수원시는 이 어차를 운행하기 위해 어차 전용 도로까지 만들며 관광객 맞이에 힘썼다. 어차 전용 도로는 보통 차도지만 중간에 인도 사이를 지나가기도 한다. 도시 한복판에서 도로를 넘나들며 수원 풍광을 한층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게 어차의 큰 매력이다.
화성어차 정류장과 화성어차 외관
현재 운행 중인 화성어차는 총 4대다. 운행노선은 ‘순환형’과 ‘관광형’ 두 가지로 나뉜다.
소요 시간이 약 20분 정도인 순환형은 연무대에서 출발해 화성행궁을 거쳐 다시 연무대로 돌아오는 노선이다. 안내원에게 미리 얘기하면 중간 거점인 화홍문, 화서문, 화성행궁에서 내릴 수 있다. 순환형은 매일 오전 9시 4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총 20차례 운영한다.
관광형은 약 50분이 걸리는 장거리 노선이다. 화성행궁에서 출발해 연무대와 팔달산을 거쳐 다시 화성행궁으로 복귀한다. 이 노선 탑승 시 연무대, 화서문, 팔달산 등 중간 거점에서 하차할 수 있다. 이 어차는 매일 오전 9시 50분부터 오후 4시 40분까지 총 7차례 운행한다.
원래 관광형 노선만 있었으나 관광객들의 요청에 따라 짧게 자주 다니는 순환형 노선이 만들어졌다.
(좌) 어차 전용 도로를 지나는 모습 / (우) 어차를 타고 지나며 본 한옥 양식 카페
성곽을 지나는 어차
한여름의 화성어차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 뺨을 상쾌한 바람으로 식혀준다. 어차에 올라 어딜 봐도 녹음이 짙은 수원의 여름 풍경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문화재를 한눈에 담기에 가장 편한 방법이다.
아울러 어차에서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중국어·일본어로 된 음성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어차 측에서 따로 제공하는 건 없으며 개인 이어폰을 들고 와야 한다. 어차 전체에 음성 해설이 울려 퍼져서 이어폰을 가져가지 않아도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온 가족이 즐기는 수원화성 국궁 체험장
푸른 초지가 펼쳐진 수원 화성 국궁체험장 전경
‘활의 민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국궁 체험장이 화성에 있다. 국궁 체험은 순환형 화성 어차 매표소와 같은 ‘연무대 매표소’에서 표를 살 수 있다. 화성어차 탑승 장소와 국궁 체험장 역시 매표소와 가까이 붙어있다.
연무대는 조선 정조 시절 당시 정조 본인이 직접 창설한 국왕 호위 전담 부대 장용영(壯勇營)이 무예를 연마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서양식 활인 양궁과는 색다른 매력을 가진 우리나라 전통 무예 국궁을 체험하며 역사적 의미를 더할 수 있다.
(위) 수원화성 국궁 체험장 전경, (아래) 국궁 체험을 즐기는 체험객들
국궁은 영점 조준기가 달린 양궁과는 다르게 보조 역할을 하는 조준기가 없다. 오직 감에 의존해 신중하게 과녁을 조준하는 게 국궁의 특징이다. 양궁의 최대 사거리는 90m에 불과하지만 국궁은 최대 사거리가 자그마치 145m다.
수원화성 국궁 체험장 과녁 사거리는 30m로 초보자도 쉽게 쏠 수 있다. 국궁 체험장에 조선시대 왕만이 쓸 수 있었던 ‘곰 과녁’을 놓아 체험에 재미를 더했다.
(좌) 보조선이 그려져 있는 체험장 (우) 경기 후 잔디밭에 박힌 화살을 직접 뽑는 재미가 있다
국궁 체험은 1회 체험 시 10발까지 쏠 수 있으며 약 15분 정도 소요한다. 활을 처음 쏜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수십년 경력의 숙련자가 국궁의 이해를 돕고 기본자세 또한 가르쳐준다. 물론 안전사고에 대한 대비도 안내한다.
국궁 활시위를 직접 당겨보니 팽팽한 긴장감이 팔뚝에 올라왔다. 팔이 바들거릴 정도로 활시위를 당겨야 끝까지 당겨진다. 국궁은 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활대를 잡아야 편하고 왼손잡이는 그 반대다.
곰 과녁에 맞은 화살(선생님 가르침 덕에 나름 명중률이 높았다)
여름에는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운영한다. 겨울에는 체험 마감 시간이 오후 5시로 짧아진다. 아울러 국궁 체험과 순환형 화성어차 매표소가 같은데다 화성어차는 20분 간격, 국궁 체험은 30분 단위로 진행하는 만큼 두 활동 체험 시간을 조율하면 연이어 참여할 수 있다.
수원 야경의 모든 것…플라잉 수원
어디서든 눈에 띄는 플라잉 수원 외관
한국에도 튀르키예 열기구 명소 ‘카파도키아’ 못지않은 열기구 명소가 있다. 바로 수원 화성에 있는 열기구 ‘플라잉 수원’이다. 플라잉 수원은 최대 상공 150m 높이에서 도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비행기구다.
대부분 사람이 이 기구를 열기구로 알고 있고 이 글에서도 편의를 위해 열기구로 일컬었으나 사실 플라잉 수원은 열기구가 아니다. 정식 명칭은 ‘계류식 헬륨기구’로 폭발성이 없는 헬륨가스를 채워 유랑하지 않고 일정한 장소에서 비행하는 기구를 뜻한다.
플라잉 수원은 연중무휴다. 평일은 정오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운행하며 주말 및 공휴일 운행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마지막 비행은 운행 종료 30분 전이니 주의해야 한다.
밤에는 조명이 들어와 더 멋있다
플라잉 수원은 2016년 첫 운행부터 현재까지 무사고를 기록하며 수원 관광 명물로 자리 잡았다. 6년 동안 플라잉 수원을 안전하게 조종한 임용석 조종사는 “강풍이 부는 날엔 무리해서 운행하지 않으며 기상 조건에 따라 고도를 최대 60m까지 낮추는 등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플라잉 수원은 바람으로 인해 운행 취소되는 경우가 잦다. 취소 시 푯값 전액을 환불해 준다. 실제로 기자가 찾은 이날도 이른 오후에 타려고 했으나 당일 기상 조건 악화로 인해 운행이 저녁 8시까지 지연됐다.
여름에는 일몰 시간이 늦어져 8시쯤 돼야 해가 지기 시작한다. 해 질 녘에서야 겨우 바람이 잦아들어 고대하던 플라잉 수원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바람이 꽤 불어 약 80m 상공이 최대 높이였다. 직접 타보니 아래에서 구경하던 것보다 체감 높이가 훨씬 높아서 절로 오금이 저렸다.
플라잉 수원에서 마주한 평생 잊을 수 없는 해 질 녘
높이에 경악하다 전경을 둘러보니 어느새 하늘과 눈높이가 맞아있다. 온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든 모습을 높은 곳에서 보니 더 오묘하고 신비로웠다. 석양이 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원 화성 성곽에 조명이 하나둘씩 켜지며 장관이 펼쳐졌다.
석양이 지며 하나둘씩 불이 켜지는 성곽
플라잉 수원을 즐기기 적절한 시기에 관한 물음에 이진사 플라잉 수원 비행 가이드는 “바람은 예측이 불가능해서 확답을 주기는 어렵다”면서도 “시간대로 따지자면 해 질 녘에 하늘이 곱게 물들 때와 짙은 어둠이 깔려 환상적인 야경이 펼쳐질 때가 가장 좋다”며 탑승 시간대를 추천했다.
또 이진사 가이드는 “바람 때문에 운행이 취소될 때는 실망하지 말고 연무대 근처 가게에서 파는 연을 사서 연날리기를 해도 좋다”며 유쾌한 비법을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