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시간 도둑놈
나는 사람들을 싫어하지 않는다.
다 나름의 존재의미가 있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웬만하면 함께 하며 어울리려고 한다.
그렇게 어울리는 사람들 중에는 잘 생긴 사람도 있고 못 생긴 사람도 있고 돈 많은 부자도 있고 땟거리도 없을 정도의 가난뱅이도 있고 많이 배운 학자도 있고 못 배운 무지렁이도 있다.
심지어는 도박꾼에 사기꾼에 조폭 폭력배까지 있다.
가문과 배움과 신분이 어찌되고, 이력이 어찌되었든지, 그 차이 안 따지고 훌 섞어 어울린다.
그런데 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도둑이다.
도둑을 싫어하는 것은 비겁하기 때문이다.
재물을 탐하는 것에서 그 목적이 비슷한 강도야 처음부터 악의로 시작하는 것이어서, 그 대비책을 마련하고 조심하면 될 일이지만, 도둑은 몰래 숨어들어 재물을 훔쳐가는 것이어서 그 눈속임을 미리 알아채기 어려워서 비겁하다고 하는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도둑질을 한 적이 있다.
아버지가 빵집을 할 때인 초등학생 시절에는 돈 통에서 돈을 훔쳤었고,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작은 아버지 집에서 지포 라이터를 훔쳤었고, 울산에서 군 생활할 때에는 남의 집 닭장에서 닭을 몇 마리 훔쳤었다.
비록 세 번의 도둑질이기는 하지만, 두고두고 내 양심의 세계를 할퀴는 아픈 상처로 남고 말았다.
화이트로 싹 지우고 싶은 내 비겁한 이력이다.
도둑 중에서도 내 더 싫어하는 도둑이 있다.
바로 시간을 도둑질 하는 사람이다.
하도 싫어해서 그 경우에는 ‘놈’자를 붙이기까지 한다.
자기 시간 아끼려고 남 시간을 뺏는 사람이 곧 ‘시간 도둑놈’이라는 것이다.
정말 바쁜 시간에, 법무 상담이랍시고 나를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노라면 가슴이 터질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 사람일수록 상담료 한 푼 안내기 십상이다.
밉상 따로 없다.
‘시간 도둑놈’이 내겐 곧 밉상이다.
그래서 밉상인 중에 더 밉상인 ‘시간 도둑놈’이 있다.
핸드폰을 들고 통화를 해가면서 우리 사무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눈썰미 있게 찾아오면 될 것을, 이렇게 전화통을 붙들고 10여분을 통화해야 하니 열불 안 날 수가 없다.
‘이제 14번 출구로 나왔어. 어디로 가야 해? 응 그래, 골목 네거리 지났고, 홍도 참치가 있네. 거기에서 100미터 더 오라고? 그래 가고 있어. 왼쪽으로 목동고기집이 보이네. 좀 더 오면 작은 공원이 있다고? 가고 있어. 거기에 붕어빵장수가 있네. 공원도 있고. 그 왼쪽으로 포항물회가 있다고? 어딘가? 잘 안 보이는데? 아! 바로 그 집 간판 아래에 내가 있구만 그래. 거기서 얼마를 더 가야 한다고? 10미터? 거기서 왼쪽으로 꺾어지라고? 꺾어지면 미장원이 보인다고? 맞다. 보이네. 거기 몇 층? 3층? 이제 현관문으로 들어섰어. 곧 들어갈게.’
남의 시간도 소중함에 대한 배려는 하나 없다.
오로지 자기 편한 것만 생각하는 놈들이다.
2017년 2월 28일 화요일인 바로 어제도 그랬다.
경기 용인에 있는 시행사를 들러서 관련 서류를 받아 용인 처인구청 세무과에서 취득세신고를 하고 그 고지서로 취득세를 내서 용인등기소에서 등기신청을 하면 끝날 일이었다.
시간적으로 두 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을, 점심시간을 넘기고 서녘으로 해가 넘어가는 오후 6시까지 가서야 겨우 일을 마칠 수가 있었다.
시행사와 연결된 신탁회사의 담당 직원이 점심 먹으러 간다고 두 시간을 빼먹고, 점심 먹고 와서는 딴 일이 더 바쁘다면서 또 두 시간을 빼먹고, 그 다음에는 다른 분양자 것도 같이 처리해야 한다면서 또 두 시간을 빼먹는 바람에, 그렇게 하루 종일 용인 그 바닥에 머물러 있어야 했던 것이다.
부글부글 속이 끓었지만, 내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에 그 일을 맡겨준 거래처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 부글부글 끓는 내 마음을 풀어주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밥상이었다.
그곳 용인 처인구청 구내식당의 4,500원짜리 밥상이 그나마 내 끓는 그 속을 누그러뜨려주고 있었다.
우거지 국이며, 김이며, 고등어조림이며, 콩나물 무침이며, 김치며, 고추장 등, 그 밥상에 차려진 반찬들이 밥도둑이었다.
처음 차린 밥상 밥 한 그릇을 금방 뚝딱 해치우고, 또 한 그릇 더 퍼가지고 와서 먹었다.
배가 부르니 솔솔 잠이 왔다.
구청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깜빡 잠든 그 사이에,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고 말았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황혼의 태양을 바라보면서, 내 마음속 다짐 하나 했다.
이 다짐이었다.
‘내 이제 시간 도둑놈 하고는 결코 다시 안 어울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