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누이가 인천의 형광등 공장에 다닐 때였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서른두 살 키 작은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 누이가 열아홉 살 때였고 바로 동거에 들어 갔다.
그때 나는 열네 살이었다. 처갓집이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이런 행동을 하고도 당당한가.
하긴 열아홉 누이가 불법 임신을 했어도 우리집에서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다들 자기 살기 바빠 외면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누이는 아들 둘 낳고 나서야 절에 가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를 해준 스님뿐 하객 없는 쓸쓸한 결혼식, 옛날 연속극에 보면 찬물 한 그릇 놓고 결혼식을 올렸다는데 내 누이가 딱 그 짝이었다.
그럼에도 누이는 늘 내 걱정이었다.
나를 공부시키겠다고 약속했는데 누이가 살림을 차리는 바람에 중학교 1학년을 다니고 만 내가 한창 친구들과 어울려 다닐 때였다.
"너, 불량한 애들과 어울리다 사고라도 치는 날엔 나 콱 죽어버린다. 제발 정신 차려라." 귀에 딱지가 앉게 들은 소리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일곱 살 아이를 데리고 왔다. 남편의 아들이었다. 키 작은 남자는 결혼 경력이 있는 유부남이었던 것이다.
도망 간 마누라 때문에 그동안 어머니가 기르다 학교 갈 나이가 되자 데려온 것이다.
내가 키 작은 남자를 오랫동안 미워했던 것도 연속극에나 나오는 일을 누이에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이는 맡을 수 없다며 식음을 전폐하고 반대를 했다. 이틀을 꼬박 시어머니와 남편의 설득을 이기지 못하고 누이는 아이를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 맞겠다.
졸지에 아들 셋이 된 누이는 차별 없이 키웠다. 그럼에도 늘 주변에서 수런댔다.
조금 아이를 엄하게 다루면 계모라서 그런다 하고 자유롭게 풀어주면 친자식이 아니어서 그런다 했다.
그 아이는 누이와 나이가 16살 차이밖에 안 난다. 조카는 친어머니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곧게 자랐다. 나는 키 작은 남자가 미웠기에 그 아이도 미웠다.
가끔 누이 집에 가면 슬쩍 아이의 머리를 쥐어 박기도 했다.
그 아이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중소기업에서 착실히 근무하며 부자는 아니지만 그런 대로 산다.
나에게 구박을 받던 아이가 어느덧 흰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이 되었다.
나와 누이는 아이들 호칭에서 가끔 혼란을 겪었다. 누이에게 큰 아이는 데려온 아이지만 내게는 큰 아이가 누이의 둘째다. 지금은 나도 누이처럼 그를 큰 조카로 여긴다.
성인이 된 큰 조카가 어느 날 그랬다. 자기 어릴 때 내가 조카들 데리고 어디 놀러를 갔는데 두 동생에게는 부라보콘을 사주고 자기한테는 쭈쭈바를 사줬단다.
나는 기억 못하는 것을 그는 오래전의 그 일이 상처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요즘 외삼촌한테 가끔 문자 안부라도 보내는 놈이 큰 조카다. 동생 두 놈은 지들 살기 바쁘다.
따로 살지만 지 엄마한테도 꿈뻑 죽는다. 지금도 많은 것을 누이에게 묻고 누이의 의견을 듣는다.
누이가 며느리 복이 있어선지 질부 또한 착해서 어찌나 시어머니를 위하는지 질투가 날 때도 있다.
아이는 누이가 낮에는 공장을 다니면서 퇴근 후에도 틈틈히 부업을 했던 터라 거실 곳곳에 잔뜩 쌓여 있던 부업거리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큰 조카는 가난한 살림에도 자기를 차별 없이 키워준 엄마가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울컥 눈동자에 물기가 돌았고 나도 덩달아 코끝이 매웠다.
그 아이에게는 계모도 엄마였던 것이다. 한때는 내가 미워했던 데려온 아이, 비유가 어떨지는 모르겠으나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더니 딱 그 격이다.
내가 기적이나 요행은 믿지 않지만 운명은 있다고 믿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쩌다 누이는 이 아이와 모자의 인연이 닿았을까.
그 아이가 계모도 엄마였듯이 내게는 믿음직한 조카다.
첫댓글 계모가 전처 자식
한테 잘하는 여인 아주 드뭅니다
그런가요?
어릴 때 읽은 콩쥐팥쥐에서 계모 악행을 보기는 했지요.
제 누이는 아이한테 못해준 게 많아 늘 가슴이 아프다고 합니다.
공장 다니랴, 집안일 하랴.
아이들한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답니다.
@유현덕 누이는 천사십니다
에구
눈물없이는 읽을수
없는 글입니다
가난하던 시절
가정사가 ᆢ
그리고 글에서 님에
진심이 보입니다
님의 댓글에도 진심이 보입니다.^^
읽기에는 가벼운 일상 글이 좋은데
제 글이 다소 무겁기에 쓰고 나서 후회하곤 하지요.
그만 쓸까 했다가도 또 쓰게 되네요.^^
다음엔 클릭했다가 그냥 후딱 지나가셔도 되겠습니다.ㅎ
유현덕님의 사연은 어찌 이리 먹먹 할까요.
예전 부모님의 세대가 사연 없는 삶이 없을 테지만
현덕님의 누님의 삶도 참으로 퍽퍽하고 기구 하기 만 했네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차별 없이 키운 그 들어온 아들이
그나마 바르게 자라 그 은혜를 잊지 않으니 정말 그 수고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누님의 남은 인생은 아무쪼록 평안하시기만 바라겠습니다.
누이의 고생에 비하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혼 초기에 겪은 일은 차마 글로 쓸 수가 없을 정도랍니다.
연속극 이야기처럼 기막힌 일이 많았으니까요.
사람들이 드라마는 믿어도 실제는 잘 안 믿잖아요.^^
이제 누이 과거 이야기는 가능한 쓰지 않으려 하네요.
여기까지 쓴 것이 그래도 후련합니다.ㅎ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나 마음 깊은 곳 바닥을 드러내고 시작하더니 그날로 이어진 지금까지 길어 올리는 것마다 보석같은 삶의 물길이더라
늘 싸한 가슴 부여잡고 읽습니다
사는 건 죄다 언어로 풀어야 보석이 되는지요 ..
사는 건 모두 언어로 풀어야 보석이 된다는 말씀이 딱 박힙니다.
한편 사는 건 죄다 죄이기도 하지요.
운선님의 삶을 보며 저는 배웁니다.
스승이 따로 있나요.
사숙이든, 타산지석이든 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운선님 같은 분이 스승이지요.
모쪼록 늦깎이 학교 생활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누이처럼 어질고 차칸 계모
엿어니 조카도 친엄마 처럼
믿구 따랏을 겁니다. 차칸
조카도 대견하지마는 누이의
차카고 온화한 인품이 너무나
한국적인 여인상 어머니상을
표본 모델을 보여주는거 같네요.
몸도 성치 않으신데 댓글까지 다셨군요.^^
제 누이가 어질다기보다 큰 조카 본성이 참 착해요.
저는 사람의 타고난 본성은 속일 수 없다는 쪽이랍니다.
누이에게 복덩이가 굴러온 거지요.
몸조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제 아내가 8살에 친엄마가 돌아가셔서 계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멋 먹고 자랐기에 가슴 아픕니다.
그 계모가 난 아내의 막내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아! 민순님 아내 분도 그런 아픈 사연이 있군요.
그런 면에서 일찍 혼자된 제 어미가 평생 재혼 않고 산 것이 다행이기도 하네요.
매형이 미워서 한동안 누이집은 그가 없을 때만 갔더랬지요.
언젠가 누이 몰래 아이 머리통을 쥐어 박았는데
누이가 그걸 알고는 불같이 화를 내더군요.
내 아들 구박할려면 오지 말랬습니다.
그럼에도 착하게 자란 큰 조카가 대견합니다.
큰 일 하셨습니다.
저는 구경꾼이었답니다.^^
누님이 어려운형편에 마음고생까지 하셨네요~~
고우신마음으로 키워주신 보람이 있어 다행입니다~~
앞으로 누님 세아드님들과 행복하게 사시길 빌어드립니다~~
둘째와 막내가 가끔 속을 썩이긴 해도
큰 아들이 착해서 많이 든든하다고 하네요.
제 누이는 오랜 기간 전세로 살다고
환갑 앞두고야 자기집을 가졌답니다.
비록 작은 빌라지만,,^^
그 누님의 세월도......
참 힘드셨을것 같습니다~~
그래서 누이 인생을 보면
제가 차마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하네요.
모진 세월 헤쳐오고도 건강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누나는 천성이 착한사람이고
자형은 염치없지만 그래도 비폭력에다 가정적이었던거 같아요
큰조카는 착한 누나가 키워서 착하고 반듯하고 영민한 아이네요
착한계모도 많아요
쭈쭈바 사건은 외삼촌이 그정도 차별을 둘 정도로 꼴짭한 사람이 아니다 싶은데 꿀밤 때린거 보면 누나생각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싶기도 해요
오늘도 최고의 글이었어요^^
몸부림 님 오랜만에 오셨군요.
무거운 글 좋게 읽어주시니 다행입니다.
님이 글 센스가 있어선지 글맥을 잘 짚으십니다.
매부가 조금 무능력하고 얼굴이 두껍긴 해도
심성이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님이 제대로 보셨습니다.^^
오랜 기간 미워했어도 풀고 나니 후련했네요.
쭈쭈바 사건은 저는 기억이 없고
큰 조카만 기억하기 때문에 저는 무죄입니다.ㅎ
좋은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