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설교(18.04.15)]
/ 개들을 삼가고
(이장우 목사)
빌립보서 3:1~2 개들을 삼가고 2018. 4. 15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1절을 보시면 ‘끝으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빌립보서의 끝이라기보다는 한 주제의 전환입니다. 바울은 어떤 주제를 말하든지 빌립보서의 큰 주제인 기뻐하라는 말을 합니다. 바울은 지금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소식을 듣고 편지를 쓰는 중에 또 다른 빌립보 교회의 문제를 들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주의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사도는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평소에 기뻐하면서 사십니까? 기쁜 일이 없이 거저 우울하게 살아갑니까? 많은 사람들이 별로 기뻐하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억지로 웃게 하려고 유머를 만들고 웃기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을 웃기려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남을 웃기려고 하는 그 일이 그들에게 고역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 만들어내라는 그런 말이 아닙니다. 교회도 감정적인 기쁨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인위적인 연출을 한다면 그것이 찬양이든 설교이든 육신의 일이 됩니다.
그러면 바울은 옥에 갇혀있는데도 무엇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주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주 안이라는 말은 바울서신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주 안에 있게 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씀도 됩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그의 영으로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그 영을 우리에게 넘겨주신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주 안에서 이루어진 일로 인하여 기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들과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내신 것으로 기뻐하는 자가 성도입니다.
금요일 공부하려고 오신 분 중에 교회에 처음 오신 분이 있습니다. 우리교회 집사님의 자녀 친구 어머니입니다. 금요 공부를 하면서 일찍 죽임 당한 어린 양이 찬양을 받으시는 내용이 천지 창조의 완성임을 말씀드렸는데 이 분이 공부를 마치고 어린 양이 무어냐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간략하게 창세기 3장에서 가죽 옷을 입혀주신 것으로 시작하여 출애굽 당시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것과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한 내용을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증거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죄가 무언지 또 질문이 나왔습니다. 죄라는 것이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을 보면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께 네 생물과 24장로와 천사들이 둘러싸고 만물이 둘러싸서 경배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하늘과 땅을 통일하시는 내용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담 안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자들이라서 늘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가는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나 중심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갈릴리 나사렛에 자라나신 시골출신의 예수라는 자가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 중에 우리의 타락한 본성으로 기뻐할만한 내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것이 싫다고 확 뿌리쳤는데 그만 그 사람이 죽고 말았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평소의 삶에서도 화가 나서 욱하고 행한 일로 인하여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내가 내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죄라고 하는 분을 싫다고 밀쳐 버렸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죽인 자가 그때 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내가 예수를 살해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갑자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36~39절입니다.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4)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5)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 말씀을 전하니 또 놀랐습니다. 조금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자신이 예수님을 살해한 것이라고 하자 자기는 어찌해야 하느냐며 울먹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찾아서 읽어주니 자기가 질문한 것이 그대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으시라고 전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이름도 아직 모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알게 된다면 이제부터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새로운 기쁨을 맛보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만 아니라 영원토록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는 것이며 그 분이 하신 일과 앞으로 하실 일을 인하여 우리는 영원토록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쁨을 빼앗는 자들이 나왔습니다. 물론 주님이 주신 이런 기쁨을 어떻게 빼앗아 갈 수가 있겠습니까만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한 이 세상의 신이 우리로 하여금 그 기쁨을 맛보지 못하게 하려고 방해 합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러한 기쁨을 빼앗기지 않도록 같은 말을 쓴다고 합니다. 같은 말을 쓴다는 것은 어떤 자들이 십자가의 원수인지도 밝히는 것입니다. 이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면서도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꾸 같은 말을 쓰는 것은 나에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꾸만 반복합니다.
본문 2절입니다.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고 합니다. 새로운 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살을 잘라내는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바울사도가 조심하라고 하는 내용은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말합니다. 사도들이나 바울이 전한 복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만 구원 얻는다는 복음입니다. 은혜라는 것은 우리가 아직 연약하고 죄인 되어 있고 원수 되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확증된 사랑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받아서 믿고 기쁨으로 살아가는데 율법을 주장하는 자들이 빌립보교회에 들어온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만이 아니라 이미 초대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율법주의도 들어오고, 영지주의도 들어오고, 온갖 다른 복음들이 들어왔기에 바울사도는 이러한 다른 복음들을 경계하면서 조심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 특히 오늘 본문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자들에 대하여 개들이라고 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유대 사회는 개라고 하는 말이 아주 모욕적인 말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손으로 할례를 행하는 자들을 보고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 사회에서는 몸의 할례를 행하는 것이 모세 율법보다 앞선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기에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유대인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구별됨이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몸으로 표시하는 것이 할례입니다. 사울과 같은 왕은 전쟁에서 부상을 입었을 때에 할례 없는 자의 손에 의하여 죽임 당하느니 차라리 자기 부하에게 죽여 달라고 합니다. 부하가 왕을 죽이지 못하니 자신이 칼 위에 엎드려서 자결을 합니다. 할례 없는 자의 손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느니 자살하는 것이 낫다고 여길 정도로 할례를 자랑합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도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정통 유대인데 왜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개들이라고 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창세기 17:1절을 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가 있습니까? 결코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99세에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이 말씀은 바로 앞의 16:16절을 봐야 합니다.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아브람이 사라에게서가 아니라 여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은 나이가 86세입니다. 그러므로 13년을 지나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합니다.
아브람의 생애를 간략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아브람이 갈대아 우르에서 몇 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지 나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는 데라가 주도하여 떠납니다. 데라가 인도하여 하란까지는 왔지만 더 이상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가 데라가 하란에서 죽었습니다. 하란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다시 부르실 때가 나이가 75세입니다(창12:5).
하란에서 가나안 땅에 들어왔는데 흉년이 들어 이집트로 갑니다. 이집트로 가면서 자기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합니다. 자기 아내를 빼앗기 위하여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바로 왕의 신하들이 아브람의 아내 사라를 보고 왕에게 보고를 합니다. 그러자 왕이 자기 아내를 삼으려고 데리고 갑니다. 아브람은 그 대가로 많은 재산을 받습니다. 이런 모습은 아브람의 믿음이 하나도 없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은 바로 왕을 책망하십니다. 그래서 바로 왕이 아브람에게 아내를 돌려줍니다. 아브람은 이런 일을 경험하면서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갑니다. 그리고 자기 조카 롯을 구하여 오면서 멜기세댁의 축복을 받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더욱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이루실 분으로 믿었습니다.
창세기 15:6절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내가 너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람은 자기에는 자식이 없는데 무슨 상이 있느냐며 그저 자기 집에서 기른 종이 자기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네 몸에 날씨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네 씨가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이라고 하시자 아브람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씨를 주신다는 약속을 믿는 아브람을 의롭다고 하십니다. 아브람은 결혼해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씨를 주신다고 하시자 믿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지금까지 간략하게 살펴본 대로 아브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런 믿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씨에 대한 믿음의 결론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신약이 밝히고 있습니다(갈3:16). 그런데 씨에 대한 약속을 받고서 기다려도 자식이 생기지 않자 사라가 여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주면서 씨를 받게 합니다. 이스마엘을 낳은 후에 하나님께서 13년 동안 나타나시지 않으시다가 아브람 99세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너는 왜 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너희 혈과 육의 능력으로 자식을 낳았느냐고 하신 책망이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아브람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너와 사라 사이에 자녀가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웃습니다. 사라도 웃습니다. 자신의 나이가 백세가 다 되었고 사라는 90세로 이미 생리가 끊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원래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인데 생리까지 끊어졌으니 아주 가망이 없기에 사라도 웃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은 것입니다. 인간의 혈과 육으로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이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어주시면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한해가 지나가 아브라함 사라 둘 다 믿지 않았는데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비웃음을 배경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완성이 십자가입니다. 온갖 인간의 조롱과 비웃음을 받으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99세에 할례를 하라고 하신 것입니까? 약속의 자녀는 인간의 혈과 육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능력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표시가 됩니다.
로마서 4:11절입니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 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 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은 것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에 대하여 도장을 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씨를 주신다는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믿고서 기다리지 못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스마엘 낳고나서 13년이나 기다리시다가 더 늙고 사라도 생리가 완전히 끊어진 후에 다시 약속을 주시면서 할례를 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에서 나는 것이지 너희 육체의 행위가 아님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는 육체의 능력을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을 확증하는 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할례를 자신들의 행위로 자랑하고 있으니 바울은 이들을 개라고 합니다.
로마서 4:1~10절을 봅니다. “1 그런즉 1)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ㄱ)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ㄴ)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아브라함과 다윗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받았습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만약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했다면 그것은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저주를 받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 할례를 행한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는다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바울사도는 개들이라고 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고 자기 살점을 뜯어내는 자라고 아주 과격하고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자신도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는데 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까? 자신이 그렇게 할례를 자랑하고 율법을 지킨 결과가 예수님을 핍박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자들을 잡아서 죽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으로 할례를 행하여야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는 자들을 개들이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십자가의 원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우리 주변에 어떤 개들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심을 믿지 않고 무언가 더 보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다 개들입니다. 그것인 율법주의로 나오든지, 번영신학으로 나오든지, 신비주의로 나오든지, 금욕주의로 나오든지, 어떤 특별한 영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하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부인하는 자들이 개들입니다.
요한계시록 22:13~21절입니다.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2)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성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첫째 목록이 개들입니다. 그러면 개들이란 어떤 자들입니까? 의의 세마포 옷을 입혀주셨는데 여기에 자기의 공적들을 훈장처럼 주렁주렁 매다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을 빨아내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마른 자와 원하는 자들은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으라고 하신 것은 왜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만 얻는 것을 확증하는 것인데 오히려 그것을 자기들의 자랑거리로 여기고 있기에 개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심을 부정하는 자들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