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담배와 금일봉의 비밀을 알게 되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당시, 전용열차를 타고 베트남으로 향하던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 난닝시에서 열차가 정차하자 잠시 플랫폼으로 내려와 담배를 피웠다. 이 장면은 일본 언론에 목격되어 공개되었다. 김정은이 피운 담배는 북한 고위층이 즐겨 피우는 ‘7.27’ 담배라고 추정되었다.
‘7.27’ 담배의 숫자 ‘7.27’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일을 의미한다. 북한은 이날을 미국과의 ‘조국해방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의미로 ‘전승절’이라 부르고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며 기념한다. 북한 대도시의 외화상점에서나 살 수 있는 최고급 담배인 ‘7.27’은 2보루 한 상자의 가격이 80달러(한화 약 9만1천원)로 매우 비싸 함부로 구경할 수 없는 최고급 인기 선물로 꼽힌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담배가 있다. 북한이 미국, 중국과 함께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을 체결할 때 아리랑이 울렸고, 그 아리랑을 기념하기 위해 아리랑 담배가 나왔다. 그런데 김정은은 무슨 생각으로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를 만나기 전 ‘7.27’ 담배를 피웠을까.
지난 4월 27일은 판문점 선언 1주년이었다. 남측 단독으로 치러진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때로는 천천히 오는 분들을 기다려야 합니다”라면서 남북관계가 답보상태에 있음을 밝혔다. 안타깝게도 북한은 판문점 선언 1주년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한미연합훈련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을 맹렬히 비난했다.
판문점 선언 1주년 기념식에 대해 처음부터 남과 북은 동상이몽이었다. 북한은 엄청난 북한주민을 희생시킨 끝에 핵을 개발했다. 북한에게 핵은 경제를 살리고 체제를 유지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런 보장이 없이 핵을 폐기하라는 것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이다. 남과 북이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은 같아도 그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남측은 경제를 내세우고, 북측은 핵을 앞세우고, 각각 다른 방식으로 통일을 추구하고 있는 셈이다.
1969년 전매청은 한국 최초의 고급담배인 ‘청자’를 출시했다. 청자의 인기는 대단했다. 당시 명동에 유명한 ‘청자다방’이라는 찻집이 있었는데 항간에는 ‘청자 다방에서 청자라는 여인을 만나 청자 담배를 피운다’는 고급스러운 데이트 코스를 비유한 말이 있었다. ‘청자 담배를 피우는 남자에게는 선도 보지 말고 시집가라’, ‘노래는 추자(김추자), 담배는 청자’란 유행어까지 만들 정도로 청자담배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그 무렵 나는 도로공사의 전신인 경부고속도로 건설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을지로 4가 과거 한일은행(현재 우리은행)이 있던 건물의 4층이었다. 어느 날인가, 을지로 근방 인쇄소가 많은 지역에서 도안 제작소를 운영하던 50대 사장이 나를 찾아와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받으십시오.”라면서 청자담배 세 보루와 금일봉을 주시는 게 아닌가. 얼마 전 청자담배의 도안이 채택되어 천만원 상금을 받았던 도안 제작소 사장님과는 경부고속도로 사무실에서 의뢰할 도안 업무로 종종 만나기는 했으나 왜 담배와 금일봉을 내게 주시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청자담배 한 갑도 비싼 시절인데 무려 세 보루라니! 나는 당황해하며 “도대체 왜 제게 청자담배와 돈을 주시는 겁니까?” 몇 번이나 이유를 물어봤지만 그 남자는 손사래를 치며 “내가 차 대장님에게 드렸어야 했는데 그분의 아드님께 드리는 것이니 더 이상 이유는 물어보지 말고 꼭 받아주십시오.”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도안 제작소 사장님은 일 때문에 사무실을 자주 오시다가 우연히 나의 선친이 누구인지를 아신 것 같았다.
그 날의 의문은 13년이 지난 후 소설 <지리산>을 쓴 유명 작가 이병주 씨와 만난 뒤에야 풀렸다. “도안 제작소 사장님은 차일혁 연대장님의 도움을 받은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가 대장님께서 십여 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고 아드님에게 찾아와 그때의 빚을 갚기 위해 청자담배를 선물한 모양입니다.” 라고 했다.
소설가 이병주 씨는 6.25전쟁 당시 선친이신 차일혁 경무관 밑에서 부연대장을 지냈던 K씨와 친구였고, K씨는 도안 제작소 사장과도 친구사이였다. 그래서 이병주 씨가 그간의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짐작은 하였지만 구체적인 상황을 몰랐던 나는 이병주 씨에게 6.25 당시 부친과 도안 제작소 사장 사이에 있었던 사건을 전해 듣고서야 청자담배와 금일봉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1969년은 삼엄한 군사정권 시대였고, 나 역시 경부고속도로 사무실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기에 함부로 이데올로기와 연관된 사실들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청자담배’를 주고 간 50대 도안 제작소 사장은 오랜 세월 동안 기억 속에 묻어 둘 수밖에 없었다.
만약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이 성공했다면 북한에서 ‘4.27’ 담배가 출시되었을까. 북한이 없는 남한만의 반쪽짜리 판문점 1주년 기념행사는 우리에게 경고로 다가온다. 북한은 속된 말로 ‘단물’만 빨아 먹고 사라진 것일까. 현재 남한 경제는 위기에 처해 있다. 지금과 같은 불경기는 일찍이 없었다. 국민들은 경제가 어려워 못 살겠다 아우성인데 청와대에서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은 튼튼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북한만 바라보고 있고, 세간에서는 화폐개혁에 대한 루머까지 돌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판문점 선언 1주년, 이제 정부는 현실을 깨닫고, 북한이 아닌,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 불경기부터 해결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