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타는 다시 벼랑 끝에 몰리고, 키퍼는 한숨 돌리고.’
한화와 기아의 두 외국인 투수의 운명이 엇갈리고 있다.
한화의 마무리 투수 레닌 피코타(37)는 선발로 보직을 바꾼다.
한화의 코칭스태프는 지난 20일 수원 현대전서 마무리로 나온 피코타가 9회 현대 이숭용에게 역전 3점홈런을 허용해 팀이 7대 8로 역전패하자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최근 들어 피코타가 극도의 부진을 보이며 제 구실을 못하자 고육지책으로 내린 결정이다. 몇 차례 등판에서 거듭 ‘불쇼’를 벌이면서 신뢰를 잃었고 본인도 자신감을 상실해 더 이상 마무리로 나선다는 것은 어렵다는 판단이다.
유승안 감독은 “피코타를 몇 차례 중간계투로 활용한 뒤 선발로 돌리겠다. 대신 빈자리를 박정진에게 맡기겠다”고 말했다. 피코타도 유 감독의 결정에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피코타는 원래 한화에서 2002년 선발감으로 뽑은 투수다. 이 해 전반기 동안 8경기에 나서 3승4패 방어율 4.70의 저조한 성적을 보여 퇴출 위기에 몰렸지만 후반기에 마무리로 변신해 12세이브, 방어율 1.87의 좋은 성적을 기록해 올 시즌 재계약을 할 수 있었다.
한화는 피코타가 구질은 다소 단조롭지만 시속 150㎞에 이르는 빠른 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분위기를 바꿔 선발로 뛴다면 의외의 성적을 거둘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 감독은 “선발로도 적응하지 못하면 돌려보내는 수밖에 없다”고 못을 박고 있어 피코타에게는 이번이 마지막 시험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무위로 끝났지만 유 감독은 얼마 전 기아 김성한 감독을 만나 기아 선발 마크 기퍼와 맞바꾸자고 제안하는 등 이미 피코타에 대한 신뢰감을 버린 상태다. 이제 피코타는 1~2차례의 선발 등판에서 유 감독으로부터 확실한 눈도장을 받지 못하면 보따리를 쌀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반면 퇴출 위기에 몰렸던 기아 마크 키퍼(35)는 10여일 만의 등판인 21일 잠실 두산전에서 5.2이닝 동안 무실점하는 오랜만의 호투로 벼랑 끝에서 탈출했다. 기아는 한때 키퍼의 퇴출을 결정하고 대체 외국인선수 영입을 통해 스카우트까지 미국으로 파견했지만 마땅한 대체 요원을 찾지 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키퍼를 안고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키퍼가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퇴출 위기에서 한숨 돌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