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만든 시계보려면 모감지 빼다 비틀어지게 생겼다고 하나 더 만들래서
디자인이고 머시고 무늬만 거시기하고 도톰한 나무토막 골라서 후다닥
냉큼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가져오니 시계를 여기걸까 저기걸까 망설인다.
홋! 이번에는 내 주장을 관철시켰다. 냉동고와 계단문 사이의 윗부분에 설치해야
여러방향에서 잘보인다고 처음부터 말했었는데, 아들이 동조하니 바로 그러라
한다. 아들한테는 엄청 관대하다. 난 마마보이같아서 야단도 치곤하는데 가끔씩
이렇게 힘이 될 때도 있다. - 특히 내가 먹고싶어 하는것에 동조할 때 -
*** *** ***
“뭐가 바빠서 안방TV장부터 만들라고 기를쓰요?”
“방이 어둡잖여. 저거 빨리 치워버리고 싶어서 그러네”
저것이란 30년 정도 된 롯데파이오니아 쌍나팔 전축이다.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면서 줄곧 안방에서 TV를 짊어지며 시커멓게 버티고
있는 거물급 가구로 전락했다.
나는 음악을 듣는 것도 mp3로 전환한지 오래인데 아내는 듣지도 않으면서
내부청소도 자주한다. 아마 자신이 부여한 사연에 대한 애착심이리라.
특별한 장의자지만 제자리를 찾아 안착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 없다.
2층 홀에 두고 한가한 낮에 드러누워 낮잠이라도 자든지 책을 읽든지 할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100살짜리 싱거미싱을 올려두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저 미싱의 발틀 구해서 잘만들면 값어치 있어 보일거라는 아내의 야심에
빨리 부응해서 만들어야 자리를 잡게 되겠지만, 현재로서는 기약없다.
이번 안방TV장도 핀에서 눈에 확 띄어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디자인이었다.
게다가 핑크색 버드아이 단판으로 앞면을 장식해서 방안 전체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바꿔 버리려는 내 야심찬 계획에 들어맞기도 했다.
제작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잔손질로 시간만 무자게 잡아 묵는다.
그래도 예상한대로 방안이 후왁 밝아져서 밤에도 덜 어두웠다.
그런데 꺼져있는 TV화면은 까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걸까? 왜 개발안할까?
*** *** ***
손녀가 집에 함께 기거하니 가지고 노는 것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처음엔 한 두어달 있다 간다더니, 봄이 왔건만 이런저런 핑계로 갈 생각을
안한다. 나 역시 날로 이쁜 짓하는 아이를 안고노는 재미가 솔솔해서 가고
나면 서운할까봐 가란 말은 안한다. - 용돈봉투 얇아지면 겁나 서글플껴 -
거실 소파곁에는 협탁을 만들 예정이었는데 아이의 물건들을 챙길 정리함이
마땅히 없어서, 이참에 아예 서랍장을 만들기로 했다.
폭은 좁고 서랍이 많은 스타일로 구상하다가, 역시 핀에서 캡춰해 둔 사진
한 장이 눈에서 어른거린다. 별거 아닌데 안해 본 부분이 끌린다.
마침 남은 나무들로 해결할 수 있을만한 스타일이다.
이번에는 그 작품의 디자인에서 조금 변형을 시켰다. 전체적인 디자인에는
영향을 적게 주면서, 가지고 있지 않은 재료인 파이프를 대신해 월넛으로
죽 내리 붙였다. 있는 재료만으로 만들다보니 역시 부족한 티가 난다.
하지만 중요하게 여긴 것은 오른쪽에서 볼 때의 깔끔한 선을 위한 옆판과
서랍앞판이 만나는 부분과 서랍의 손잡이 부분에 신경을 더 썼다.
핑거조인트 비트를 사용해서 손잡이 옆면에 홈을 내었다.
손잡이를 잡고 당길 때의 마찰력 증가와 옆에서 보았을 때의 밋밋함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다.
일반적으로 중앙에 있는 손잡이와는 다르게 당기는 힘이 고르지 못할 것임을
예상해 나무레일의 윗면에 UHMW테이프도 붙이고, 서랍 옆면 홈에는 파라핀유를
발랐더니 아주 쉽게 밀고 당겨진다.
이런 귀찮은 일을 안할라고 비싼 언더레일을 쓰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서랍이
8개나 된데다 높이가 낮은 서랍도 있어서 서랍공간이 적어지게 되는 언더레일은
부적합다는 결론을 내리고 전부 나무레일로 작업했다.
만들고 보니 월넛이 좀 더 두꺼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잔여
재료의 소진이 목표이기도 했고 현저히 다른 색감의 조화가 시선을 잡는
효과가 있어 보여서 모처럼 만족도 높은 제작을 했다고 자평했다.
무엇보다도 아내의 참견없이 완성해서 무척 아주 참 기뻤다.
여기까지가 지금까지 만든 가구들이고 앞으로도 옷장이며 침대 그리고
협탁과 의자 두어개 더 만들 예정이다. 2층에도 문갑이랑 만들 것이 많다.
또 다락에도 수납공간을 미닫이로 만들어서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고,
밖으로는 추위에 강하다는 멍멍이들이라고 테라스 아래서 재웠지만 남들이
보면 학대라 할까봐 럭셔리하게 펜션형으로 개집도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할 일이 많아서 좋다. 배울 것도 나날이 많아져 더욱 좋고.
*** *** ***
틈나는대로 주로 칠이 마르는 동안 짬짬이 남들 다 만들고 있는 빵도마도
만들었다.
자투리가 나올때마다 이걸로는 뭘 만들까 하다가 나름 구역을 나누어 놓긴
했지만, 막상 쓰려고하면 눈에 안보이는 경우가 많아 빨리 처분하는게
현명한 생각이겠다.
처음엔 베란다 취목인들처럼 직쏘로 자르고 손사포질로 미세근육을 불렸었다.
이후 밴드쏘와 드릴에 부착한 드럼사포를 활용해서 시간이 절약되는 만큼
더 자주 만들게 되었다.
자르고 남은 레드오크를 직쏘로 자르고 샌딩한 후의 최초의 도마들.
이것도 이쁘고 저것도 이쁘다고 남못주겠다고 하는거 다음에 더 멋지게
만들어 준다고하고 이웃과 지인에게 나눠 주었다.
별 특징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원목이라는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아주
즐겁고 고마워했다. 좀 더 신경써서 만들걸 하는 아쉬움이 남게 되었다.
손고생 많이해서 만들고 받침에 네오듐 자석까지 끼워서 냉장고에 붙여놨다.
이제는 선물해 줄 친족인 처형 처제 조카네들까지 손가락으로 센다.
그럼 내가 주고싶은 사람들에게는 언제 챙겨주나...
적당한 크기로 만들만한 자투리가 어디 맨날 있을까?
썽썽한 원목판재도 자르고 이것저것 집성해서도 만든다.
갈수록 더 남주기가 아깝다며 한창 모셔두더니 엄청 생색내면서 준다.
“본드는 장난감이나 그릇에 쓰이는 최고급 친환경본드로 물에도 녹지 않는
것으로 붙였고라, 오일도 일반 식용유를 쓰면 산패가 되어 해로우니 전용
부처블락오일에 담궜다가 말리고 왁스로 마무리한 것이라서 겁나 좋아라우,
글고 칼맛부터가 다르당께요”
모르는 사람들에겐 가히 전문가 못지않은 설명이 되었다.
최근에 불도장 싸게 해준다고 해서 충동구매했다. 팔 일도 없으니 상호도
로고도 아닌 속마음으로 대신 디자인했다. - 소담情 -
마구리면을 위로하면 칼날이나 손목에 좋다는 칼도마도 만들어 봤다.
일반 빵도마에 비하면 손길과 시간이 세배가 넘게 든다.
딸낳은 딸이 조그맣게 저도 하나 만들어 달란다. 빵도마 겸해서 쓴다한다.
어찌 마다하겠는가. 결혼 전부터 내 제2지갑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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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갑자기 번뜩이는 눈으로 제안한다. 제안은 무슨, 표현을 순화한 것이다.
“이 정도면 얼마 한다요? 이것 네개 더 만드시요. 사돈네 식구들 주게라우.”
‘나 할 것도 많은디...’
그간 아내 등뒤에서만 칼같이 갈고 닦은 태극자하오행신공을 조속히 운행하여
일갑자공력의 전음입밀 신버전으로 바닥구석에다 불어불고 작업화 신으러 나갔다.
이왕 줄 바에야 럭셔리급으로 해서 썩 괜찮은 선물받았다는 소릴 들어야겠다.
이번 것은 또 한 수위의 작업이다. 공력이 먼젓번 도마의 두배는 든다.
흔한 바둑판무늬의 변형스타일은 피하고 눈이 어지러운 3D도 피하면서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보이는 디자인으로 골라 스업으로 수치조정 해가며 그려본다.
깎고 붙이고를 세 번 하고나서 평을 잡고 오일먹이고 닦고를 또 두 번...
오일 마르면 폴리싱 & 왁싱까지 완제품 하나 나오는데 일주일이 더 걸린다.
대량으로 공장화시키기도 어려운 섬세한 공정이 필수여서 쉽게 구하기 어렵다.
딱 하나만 만들라면 취목이 아니면 어림도 없다. 그나마 좋은 자투리가 없으면
원목판재를 새로 사서 가공해야 한다. 독특한 색상을 가진 특수목은 비싸다.
그래서 수준높은 엔드그레인도마는 시중에 파는 곳이 거의없다.
외국사이트에서 파는 가격보면 후덜덜한데, 도마에 큰 돈 쓸 일있나?
선물이라면 또 몰라도...!
보니까 또 안주고 싶어하는 눈치다. 누구꺼 하나 뺄까한다.
더 만들어야 되는데 점점 더 어려운 도마패턴에 도전하게 된다.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려고 준비중인데 A여? B여?“
“A고 B고 다 만드시시지욧!”
난 또 왜 두 개를 보여줬을까나... 갈수록 뭔가가 내맘대로 안된다.
PS: 여지껏 올린 글의 내용은 아내가 절대 모름.
혹시 우리집에 오게 되면 아내를 보면서 내 글이 겹쳐 떠오르면 절대 안됨.
바로 낌새를 알아채는 재주가 신출해서 다녀가신 후 다시는 글이란 것은 쓰지
않겠노라는 각서는 물론, 사과의 뜻으로 거액의 유혈사태를 피할 수 없음이
자명하므로 친애하는 동지들께서는 무탈한 나의 모습을 귀히 여기시고 깊이
보살펴 주시기 바라나이다. - 백마가 흑마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
< 마지막까지 아내에 대한 거시기증을 토로하고 끝냄 >
첫댓글 오늘날씨가 봄을 쫓아내는 초여름손님이 벌써 온듯하데요..
<소담情>이벤트는 5월 중에 공고합니다..
꺼져있는 TV화면은 까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걸까? --이 대목은 거의 에디슨 수준이네요. 역쉬 창조적 발상을 하는 사람은 다르시구마잉. 예술가 빛가람마님.
아니 딸바보를 넘어 손녀바보 아내사랑을 애들러표현하시는 수준은 아내바보
배울것이나날이많아져 서좋다~니 좋구만.
공들여만든작품들이예술수준이네
나무는 맴이 착한사람들이 쓰는 소재지랴잉~ 으따 요런글 야기를 하것소잉~ 걱정은 잡아매붓쇼!
그나 우에있는 시계는 하루2번만 맞는건 아니쥬? ㅎ 햐고 부럽기만 합니다
퇴직한 대한민국 남자들 중 으뜸가는 부러운 멋쟁이십니다.
박수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