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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입문---한 순간이 영원이다! ‘사랑하는 임제’, 그리고 무비스님 유기성/시인
(1) 내가 불교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9년 전 송광사로 법정스님을 취재하러 가면서부터였다. 그때 나는 여러 잡지에 많은 글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데스크가 스님을 취재하라고 해서 무작정 절로 찾아갔던 것이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절에 갔으나 스님은 안 계셨고, 하룻밤 묵고 올 수밖에 없었다. 원주스님이라는 분에게 내 입장을 설명하니 공양간 건너편에 있는, 몇 칸으로 이어진 손님방 중 하나를 가리키며 그곳에서 자고 가라고 했다.
누구 하나 안내해 주는 사람도 없고, 어디가 어딘지 알 수도 없었으며 곳곳에 ‘일반인 출입금지; 팻말만 붙어 있었다. 마당을 오가는 스님들도 마치 “나한테 말시키지 마시오” 라는 듯 입 꾹 다물고, 로봇처럼 앞만 보고 무뚝뚝하게 걸어 다녔다.
할 수 없이 혼자서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무슨 나무로 지은 아담한 단층건물의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나는 헉, ...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문을 열면 정면으로 보이는 벽에 아주 커다란, 마치 퀸사이즈 침대만큼 큰 얼굴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웬 스님이 환하게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어서 와.” 웃으며 반겨주는 것 같았다.
찰나적인 영감처럼, 그 웃는 얼굴이 온통 빛으로, 환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얼굴에서 퍼져 나온 빛살들이 내 전신은 물론 내 영혼의 어두운 그늘까지 투시하듯 구석구석 고르게 비추는 듯 했다. 그것은 ‘온전히 환한 빛’ , 그 자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그게 ‘위대한 신의 얼굴’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얼굴’ 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전율했고, 그 자리에서 한동안 얼음장처럼 얼어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저토록 환한 표정은 내가 일찍이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저것이 정녕 인간의 얼굴이란 말인가?... 깃털처럼 가볍고, 햇살처럼 맑고, 꽃잎처럼 여리고, 유리처럼 투명하고, 강물처럼 잔잔하고, 보석처럼 빛나고., 봄바람처럼 포근하고, 바람처럼 자유롭고, 아기피부처럼 촉촉하고, 바다처럼 드넓고, 티끌 한 점 없이 순진무구한 얼굴......
그 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와 나, 마치 생사를 뛰어넘어 단번에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이 딱 맞닥뜨린 기분이었다. 저런 얼굴이 불교에서 말하는, 어디에도 물들지 않는 자성- 청정한 마음... 그런 걸까? 저런 얼굴에 도달하는 게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고 성불인가?...
(2)
그 방을 나와 다른 것도 기웃거리다, 피곤한 몸을 쉴 겸 공양간 근처에 있는 손님방으로 들어갔다. 방 한 켠에 작은 쟁반이 있었고, 쟁반 위에는 여름철이라 사과 몇 알과 토마토, 평범한 카스테라 등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 사이로 무슨 작은 종이 같은 게 끼워져 있길래 무심코 가까이 가, 흰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헉,... 나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했다. 그 종이에 정갈한 글씨로, “아무나 드십시오” 라고 써 있었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너무 놀래서 가슴이 벌떡벌떡 뛰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온갖 차별과 경계와 구분과 관념과 단계를 한 번에 훌쩍 뛰어넘어, 아무나 드시라니..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한대의 애정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 그날 밤, 아까 본 얼굴과 ‘아무나 드십시오’- 두 마음의 경지를 계산해 보느라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순간에 불교라는, 나한테는 생경한 종교를 다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환한 얼굴의 장본인은 ‘송광사의 구산스님’이라고 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 그의 어록을 구해 읽었는데, 여성에 대한 시각에선 부분적으로 실망한 점도 있었으나 몇 마디 불후의 명언을 지금까지 간직하게 되었다.
-망망한 저 바다, 차 한 잔일세. -인생 백년이 먼 것 같으나 숨 한 범 내쉬고 들이쉬는 데 있는 줄을 아는가? -가나오나 쾌활하여라, 아니 웃고 어이 하리~ -마음의 밝은 빛이 법이요, 마음에 거리낌 없는 것이 도입니다!
그 인간의 용량이 얼마나 크길래 대체 저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을 수가 있단 말인가?... 바닷가를 거닐며, 버스를 타고 거리를 스쳐가며,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며, 집에서 빨래를 하며.... 많은 생각을 했다.마치 ‘인생 1단이 ‘인생 9단’ 앞에서 산산히 부서지듯 그간의 내 헛된 욕망과 집착, 이기심이 무참히 깨어지는 듯 했다. 내가 꽉 움켜잡고 있던 삶의 절대적 기준들이 와르르 뿌리부터 흔들리는 것 같았다. 고요하고 맑은 호수에 때 묻고 더러운 내 얼굴이 고스란히 비추듯 지나간 내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3)
부부싸움에서 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고, 잠든 남편을 흔들어 깨우며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한밤중에 꽥꽥 소릴 지르고, “그만하고 자자”는 남편한테 내 분이 풀릴 때까지 온갖 악다구니를 다 퍼부으며 밤새도록 집요하게 독화살을 날리던 내 추악한 모습... 절대로 지기 싫어 남한테 한마디 상처받으면, 3개의 화살을 쏘아 복수해온 내 공격성, 우악스럽고 거칠고 강팍하고 냉혹한 모습... 나의 졸렬함, 유치함, 야만성에 몸서리 쳤다.
나는 죽을 때까지 아등바등해도 도저히 ‘그 사람 얼굴 같은’ 얼굴 한번 갖지 못할 것이고, 평생 돈, 돈, 돈해도 단 한번 ‘아무나 드십시오’라는 말을 못하고 죽겠지, 싶으니...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내 자신이 좁쌀 같고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이고 내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행복은 뭐고 불행은 또 무언가. 내가 과연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닥치는 대로 불교에 대한 책을 읽었고, ‘제행무상 제법무아’, 8글자를 책상 앞에 써놓고 마치 눈싸움하듯 팽팽히 쏘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겼다. - 아, 내가 저 그물 속에서 산산히 부서지겠구나... - 아, 내가 저 손아귀에서 백골이 진토 돼 한낱 먼지 되어 허공 속으로 흩어지겠구나... 기가 막혔다. 허무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느닷없는 生의 길모퉁이에서 ‘천하의 그 문제적 인간’, 임제의현 선사(?-867)를 만났다.
임제어록을 읽으며 나는 으악, 하고 뒤로 넘어가 버렸다. 그는 분명 나보다 한 수 위였고, ‘生의 의미’를 가장 명확하게 꿰뚫고 있는 사내였다. 찰나가 영겁임을, 한 호흡에 생명과 죽음이 있음을, 가장 저항적이면서 가장 창조적인, 어떠한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는 진정한 자유정신을 그에게서 배웠다. 그는 나를 통전적으로 압도했고, 나는 그에게 환장을 했다. 그의 어록을 오래도록 품에 안고 다녔고, 잘 때는 머리맡에 모셔두고 잤다.
오매불망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임제’라는 詩도 썼는데, 이상하게 처음에 한 줄 써놓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몇 년을 그대로 뒀다. 내가 가진 것 다 잃어도 너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마치 임제의 애인된 심정에서 쓴 시 구절이었다.
온세상이 화냥년이라고/ 돌을 던져도/ 단 하룻밤 긴 머리 풀고/ 알몸으로 당신 품에 안기고픈/ 서른 넘은 이 여자의 푸르른 관능 보이시나요.
(4)
... 임제를 만난 뒤에 나는 책을 덮었다. 불교공부 졸업했다.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그리고 역시 나는 태생적으로 자유분방한 사람이라 절집의 지나친 엄숙주의와 사찰의 모든 형식이 지겨워 절 근처엔 가지도 않았다. 누가 말했나? 종교는 검열이라고... 다만 미국에 갔을 때 불교쪽 친구들과 어울렸는데, 그들은 내가 임제에 대해 흥분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리어, “천수경 외울 줄 알아요?” -아니요. “반야심경은?” -못 외우는데요...
“그것 봐요, 유기성 씨가 불교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불교는 예불, 참선, 염불, 사경, 108배 등등 여러 가지 할 일이 아주 많아요. 특별히 한사람 어록만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수행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거니까 우선 천수경부터 외우세요”... 라는 충고를 듣기 일쑤였다. 그래서 외로웠다. 같이 임제를 말할 사람이 없어서...
그리고 불교신자를 따라 몇 번 절에 가봤으나 그때마다 번번이 남자스님들의 고압적이고 권위적이며, 역사의식과 사회과학적 인식이 전무한, 뻔한 법문들에 실망만 했다. 내 눈에는 그들이 어떤 고정된 틀에 갇힌 ‘불교기술자’같이 보였다. 또 내 자신이 ‘투철한 여성주의자’로서, 신도들 특히 여신도들이 남자스님들을 거의 신처럼 ‘받들어 모시는’ 분위기가 어처구니없었다. 더욱이 그간 어떻게 세뇌가 됐길래, 여신도들 대부분이 “전생에 죄가 많아 여자로 태어났다. 금생에서 열심히 닦아 다음 생에 남자로 태어나 성불하자”는 소리를 태연히 하는 걸 보며 충격을 넘어 경악했다. 그런 불교라면 난 인정할 수 없었다. 누가 말했던가. 진리를 알려면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5)
서울로 귀국해서도 한 번도 절에 가지 않았다. 불교에 흥미를 잃었고 더 이상 매력이 없었다. 미국 가지 전, 열심히 듣던 ‘불교방송 라디오(BBS)’도 거의 듣지 않았고, 가끔 심심할 때 틀어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올 2월 23일 오전, 우연히 라디오를 켰는데, ‘라디오 법회’ 시간이 이미 시작된 듯 웬 스님이 법문을 하고 있었다.
그는 “우주와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불교공부예요. 자존심의 확신이 서면 세속적인 가치들이 하찮게 보일 수밖에 없어요.”라고 했다. 나는 딱 두 마다를 들으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단순한 말의 내용뿐 아니라 어떤 영감처럼 알 수 없는 기운이 불현듯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난 분명히 그의 담담하고 편안한 목소리에 배어있는, 그림자처럼 숨어있는 ‘임제의 숨소리’를 들었다.
나는 소리나 느낌, 시각적 기억력에 아주 예민한 사람이라, 내가 오랫동안 흠모해온 임제의 호흡, 임제의 혼, 임제의 체취가 그 스님의 음성에 고스란히 살아 있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그가 분명 한조각 임제의 현신이라는 것을, 그 안에 생생히 숨쉬고 있는 ‘임제의 생명’을 섬뜩하게 느꼈던 것이다. 바람이 보이지 않으나, 찬바람 불면 머리카락이 휙 날리는 것처럼... 직지인심 견성성불이 별거랴, 불립문자 교외별전이 어디 멀리 있는 것이랴. 바로 내 코앞에 있는 것을... 나는 순간적으로 노트를 찾아 그의 말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다 받아 적었다.
“하늘을 찌를 듯한 자존심, 자긍심이 불자들이 가장 높아야 된다. 최고의 가치는 멀리 있지 않고 아주 가까이 있다. 바로 이 순간, 바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유일무이한, 궁극의 가치는 바로 이 점을 얘기하고 있는 거다. 오직 일불승(一佛乘), 사람뿐이다! ‘성문이다 연각이다’, 그도 사람이다! ‘보살이다 부처다’, 그도 사람이다!, ‘도인이다 아라한이다’, 그도 역시 사람일뿐이다! 팔만대장경이 설명하고 있는 것도 ‘인간에 대한 진정한 가치’이다. 사람의 위대함, 사람의 중요성, 그 하나만 정확히 알면 된다.
듣는 수준에 때라 거짓말 대신에, 별별 설화를 동원하고 온갖 방편과 비유를 동원하는 것일 뿐, ‘방편’은 진실이 아니다! 순전히 거짓말이다. 진실은 오직 ‘사람이 있다’는 사실뿐이다! 화엄경에서 마음과 중생과 부처라는 것도 다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부처가 6년 고행한 이유는 겨우 도덕적, 윤리적 수준에 이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진정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은, 유유일불승(唯有一佛乘), 인간의 진정한 가치였다. 나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주장한다.
그냥 안 깨닫고 ‘사람’ 하는 것과, 깨닫고 ‘사람, 사람’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사람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부처님 수준’으로 이해하는 것이 수행의 목적이다. 임제선사도 ‘무위진인(無位眞人)’, 너야말로 살아있는 참사람, 똑같은 사람이라고 당당히 선언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그 누구보다도 불우하고 가슴이 아팠던 분이다. 법화경에서도, 아프면 아픈 데로, 무식하면 무식한 데로, 병들면 병든 데로 부처임을 말하고 있다. 애꾸눈 부처님, 절름발이 부처님이다. 불행한 인생을 사는 그대로 눈을 떠야 한다.
보고 듣고 말하는 이 능력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팔만대장경보다 더 위대한 능력이다. 사람의 목표는 행복하게 살자는 것에 있다.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고, 서로 서로 부처로 받들어 섬길 때에 너와 내가 없고, 니 편 내 편이 없으며 이기고 지는 쪽이 없다.“
(6)
법문이 끝났어도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나는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가슴 벅차게 행복했다. 그의 법문 자체에 새삼스런 내용이나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 가장 쉽고 단순한 얘기는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란 걸 직감했다. 그건 최고 수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시원한 물 한잔 마신 기분이었다. 뭔가 답답하던 응어리가 한순간에 깨끗이 씻겨나간 것 같았다... 지난 수년간 불교방송에서 법문을 들었어도 뭔가 이게 아닌데... 싶었는데 그 까닭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그간 여러 스님들이 주어서 마셨던 것들은 물이 아니었다. 콜라였고 식혜였고 오렌지 주스였고 유자차였고 커피였고 냉차였고 막걸리였고 꿀물이었고 작설차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곧장 ‘시원한 물 한바가지’를 줬다. 가장 낮은 것에 있는 듯 하지만 실은 가장 근원적인 생명의 중심이고,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무색, 무미, 무취의 허공과도 같은 생수 한잔이 바로 그 스님의 수준이었던 것이다. 세상의 어떤 음료수들도 그 품격과 효용성의 가치 면에서 결코 ‘물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한다. 색깔과 향기와 맛이라는 잔가지들을 다 쳐냈을 때 끝끝내 남는 것은 오직 물이라는 투명한 액체뿐이다. 그래서 노자도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훌륭한 것은 물처럼 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물 그 자체가 도(道)에 가장 가까운 것 아니겠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명쾌하게 핵심을 찌른 그의 말들은 오래도록 되새겨보며 나는 이 사람이야말로 ‘조사의 반열’에 오른 사람임을 간파했다. ‘빈 배 같이 떠도는’ 경허스님의 수준에 도달한 분이라는 것을... 옛 선사들이 저마다 뚜렷한 개성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갔듯이, 그 역시 ‘ 인불사상’이라는 그만의 독창적인 사상으로 한 세계를 넉넉히 펼쳐 보일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도덕과 윤리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면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백척간두 같은 벼랑 끝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경계를 뛰어넘는 자유자재함’과 ‘진실되고 유연한 정신의 소유자’,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동시에 그 한 걸음이 수십 년 세월 동안 걸어온 수천 수만 보의 발자국보다 힘겨웠을 거라는 사실을, 그 한 걸음 내딛는 게 평생토록 그가 흘린 눈물방울의 응결체, 영롱한 사리 같은 것이라는 점을, 전 생애를 관통하는 그의 고뇌와 잠 못 이룬 고통의 총결산이라는 사실을, 피투성이 알몸으로 목숨 걸고 거친 설산까지 마침내 기어서 도달한, 마지막 극점이라는 것을... 난 알 수 있었다.
(7)
이런 법문을 듣고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지금까지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스님이었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을 떠올리며 전화로 주소를 문의했다. 무비스님?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나한텐 그 이름이 무빈지 빗자루인지 중요하지 않고, 교육원장이든 조계종 청소부든 상관없다. 오로지 내가 관심있는 건 그의 大자유로움, 그가 도달한 정신세계, 그것뿐이다. 돼지, 코보고 잡아먹고, 붓다 석가모니, 나이 알고 얼굴보고 존경하나?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그 스님의 얼굴도 나이도 모른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또 일부러 찾아가 어쩌고저쩌고 떠들 생각도 없다. 왜? 그가 대단한 사람이면 나도 대단한 사람이고, 그가 귀한 사람이면 나도 고귀한 존재이다. 그가 그의 영역에서 최고의 인정을 받고 있다면 나 역시 적어도 내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난 불교신자가 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절밥보단 술을 좋아하고, 참선보단 빨간 인조머리칼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명동 거리를 쏘다니는 걸 더 좋아하며, 경전보단 우체국 앞에서 100원짜리 국화빵을 파는 아저씨와 얘기하는 걸 더 좋아하고, 찬불가보단 비틀즈와 김광석과 임희숙의 재즈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진정 주목하는 것은 종교 자체가 아니라 ‘모든 종교적인 것-길가에 떨어진 나뭇잎, 아기얼굴, 어머니의 마음, 아웃사이더들의 배고픔, 짜파티스타 마르코스의 복면 쓴 눈동자...’ 들이라는 것을...
내 자존심도 하늘을 찌를 정도라 나는 그 어떤 권위에도 순응하지 않는다. 뉴욕에 있을 때 그 유명한 틱낫한 스님과 숭산스님도 어느 자리에서 거의 옷깃이 닿을 정도로 내 곁을 스쳐 갔으나 나는 그들에게 고개 숙이지 않았다. 그들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적어도 그날, 그 자리에선 나를 감동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당당함은 싸구려 오만이나 천박한 교만과는 패러다임이 다른 문제다. ‘생명에 대한 절대 평등의식’을 내가 분명히 갖고 있다는 게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8)
열 번 만났다고 아는 것도 아니고, 한번도 (직접) 만나지 않았다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나는 30분 라디오 법문을 통해 무비스님의 알맹이를 다 알아버린 기분이었다. 그의 발언내용, 한마디 한마디를 여러 번 읽고 또 읽으며 그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철두철미하게 한 길로 매진해 온 사람인지, 얼마나 처절한 구도행각을 펼쳐온 사람인지 한순간에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난 알 수 있다. 그의 발언은 최고봉에 오른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다 아는 내용 같지만 실은 누구도 이렇게 공언할 수 없다는 점을, 가장 평범한 것 같지만 수십 년 한 남자의 삶을 통째로 바쳐 生의 수천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서, 수만 개의 고비를 넘고 넘어서야 비로소 당도할 수 있는 경지라는 것을... 특히 “방편은 가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오직 단 한사람, 그 생명, ‘무비스님’일 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진정 기뻤던 것은 내가 그를 알아봤다는 점이고, 최소한 그가 있기에 ‘임제에 대해서’만큼은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또 하나, 인간적으로 부러웠던 것은, 군더더기 없는, 그의 ‘순일(純一)한 호흡’이었다. 그건 아무리 얄팍한 직관으로 글 써서 밥먹고 살아온 나로서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어떤 ‘고른 호흡의 힘’은, 수십 년 참선과 명상, 날마다 새벽에 깨어나 바른 자세로 경건하게 자기를 다듬어온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다. 그의 음성에선, 마치 깊은 산 속의 호랑이처럼 외부의 어떤 비바람에도 전혀 동요없이 오랜 세월 자기자리를 지켜 낸 자의 진중함과 품격, 그리고 그 앞에선 감히 쉽게 까불어선 안 될 것 같은 어떤 ‘바위같고 태산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건 한 길로 수행 정진해온, 가장 정도(正道)를 걸어온 구도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연륜일 것이다. 나 같은 ‘날나리 예술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진짜 부러웠다...
어쨌든 그에 대한 집중을 통해 내 속에 숨어 있던 임제를 다시금 끄집어냈고, 몇 년째 방치했던 그에 대한 시를 한순간에 일필휘지로 완성할 수 있었다. 어쩜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끝내 미완이었을지 모르는...
(9)
내 글 몇 편과 선물로 시집 한 권을 준비해 간단한 카드와 함께 그에게 보냈다. “당신에게서 임제를 봤다”, 한마디 쓸까 하다가 그만뒀다. 그냥 나만의 비밀로 남겨두고 싶었다. 수년간 라디오를 들었으나 특정인에게 연락한 건 그가 처음이었다.
얼마 뒤 그에게 작은 소포박스가 왔다. 뭔가, 열어보니 놀랍게도 ‘임제록 강의’ 카세트테잎 12개 세트와 그가 최근에 펴낸, 법화경이야기 ‘사람이 부처님이다(불광출판사)’책이 들어 있었다. 이런 걸 두고 이심전심이라고 하는 걸까? 그가 의도했든 안 했든 그는 내 마음처럼 ‘임제’를 보냈던 것이다. ‘금정산인 무비합장’이라는 깍듯한 예의를 갖춰...
포장을 뜯으며 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라 빙긋 웃었다. 첫째는, “아, 이 사람이 (평생 승려생활을 통해) 제일 좋은 거를 줬구나...” 싶었고, 둘째는,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지?) “나, 이런 건 안 들어도 되는데...” 싶었기 때문이다. 그랬다. 나는 이미 임제 선승을 직접 만난 사람이라 그에 대한 어떤 해설이나 부연설명, 다른 사람의 해석이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책에 실린 경력을 보니 그는 한국불교의 중심에 서있는 분이었고, 너무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무비(無比)스님은, 1958년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사 강원을 졸업했으며, 해인사, 통도사 등 여러 선원에서 10여 년 동안 안거하였습니다. 그 후 오대산 월정사에서 탄허스님을 모시고 경전을 공부한 스님은 탄허스님의 법맥을 이은 강백으로 통도사, 범어사 강주, 대한불교 조계종 교육원 부설 승가대학원장을 역임하였습니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장으로 범어사에서 수행하시면서 많은 집필활동과 아울러 전국 각지의 법회에서 불자들의 눈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역저서로 ‘화엄경 완역(전 10권)’을 비롯하여 ‘금강경 오가해’, ‘금강경 강의’, 화엄경 강의 - 근본법회‘, ’지장경 강의‘, ’무비스님과 함께 하는 불교공부‘ 등 다수가 있습니다>
누군가 갑자기 확 떠밀어버린 듯 그에 대한 먼 거리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나는 평소 ‘역사의 뒷 그늘에 무명의 흰 깃발로 펄럭이다 떠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왔기에, 이렇듯 굉장한 인물과는 별로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역시 책을 읽으며 그가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의식이 자유로운 사람’ 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그는 화엄경이 막 떠오르는 ‘아침해’라면, 법화경은 장엄한 낙조로 남기고 사라지는 ‘저녁해’라고 했고, “부처님도 법화경에서 ‘이 경전은 불교에 있어서 최고의 수준에 이른 사람들만을 위한 가르침이다, 내가 열반을 앞두고 최후의 유언으로 전해주는 가르침이다, 이 이상은 없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의 책은 이해하기 쉽고 간명하게 법화경을 강의 하고 있었으나, 그 깊이에선 다른 무엇보다 수준 높고 고차원적인 경지를 설파하고 있었다. 때론 담담하게, 때론 절실하게...
(10)
- 법화경은 불교 궁극의 가르침이며, 최상의 가르침이며, 더 이상 나아갈 데 없는 가르침입니다. - “오직 부처님이 존재하고 사람이 존재할 뿐 이승도 삼승도 없다”는 것이 법화경의 종지(宗旨)입니다. - 중생이 부처님이고 번뇌무명이 본래 부처님입니다. 생긴 대로, 마음 씀씀이대로 그대로가 부처님입니다. 30촉짜리 전등은 30촉만큼 비추고 100촉짜리 전등은 100촉만큼 비춥니다. 그 불빛의 밝기는 달라도 전기의 성질은 같듯이, 무명은 무명대로, 지혜는 지혜대로 본래 부처님입니다. 악한 행동을 하든 선한 행동을 하든 모두가 부처님으로서의 행동입니다. 고민이 있으면 고민이 있는 대로, 몸에 병이 있으면 병이 있는 대로 그 모습 그대로 부처님입니다.
- 이제는 한국의 선법문(禪法門)도 달라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원고에 겨우 겨우 꿰어 맞춘 한자법문을 쓰고 한글로 번역해서 이중으로 읽고 있는 그런 법문은 결제나 해제 때의 상당법어에서도, 영결식에서도 사라져야 합니다. 그런 법문들을 모아서 법어집이라고 세상에 내놓은들 세상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 생각해보면 실로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로지 지금의 빛이 있을 뿐입니다. 삶도 죽음도 모두가 공이라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이치를 꿰뚫고 깃털처럼 가볍게 살아가는 자세가 곧 여래의 자리에 앉은 것이라고 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 초월적인 삶도 보통 인간의 애환을 떠나서는 무의미합니다. 연꽃은 잘 다듬어진 화단이나 높은 언덕에서는 피지 않습니다. 반드시 인간의 삶의 모습과도 같은 진흙탕에서만 그 꽃을 피웁니다.
(11)
‘임제록 강의'는 무비스님이 작년 가을, 해인사 개산 1200주년 기념행사로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특별히 스님들을 대상으로 5일동안 행한 강의내용을 녹음테잎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열두 개의 테잎을 12시간동안 다 들으며 그의 바르고 정확한 임제 해석에 탄복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가장 예리하게 임제선사를 쥐고 있는 사람이었다.
현실적 한계는 인정하지만, 그러나 ‘교육원 선생님’ 답게 그가 일관된 체계적, 규범적 어조로 임제를 설명했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었다. 임제가 누군가. 가장 활발발한 전체작용과, 무사시귀인, 심법무형 통관시방, 오대산엔 문수가 없다, 살불살조,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엄청난 말들을 토해놓은, ‘천하의 大반항아’ 아니던가.
나는 “임제는 그런 모범생이 아닌데...” 혼잣말을 하며 빙긋 웃었고, 그렇듯 경건하게, 그렇듯 거룩하게, 그렇듯 대단하게 해인사에 모여 앉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한 문장 한 문장 ‘공부해서’ 과연 임제가 손에 잡힐까?...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임제는 날아오는 화살을 둘로 쪼개는 칼바람이고, 살아서 펄펄 뛰고, 비수처럼 꽂히고, 천둥, 번개처럼 번쩍하고, 막 움직이는 역동적인 에너지 그 자체이고, 확확 열어가지고, 과격하게 때려부수고, 넘어뜨리고 멱살을 잡고, 한 방에 주먹이 날아가고, 1초도 가만있질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유령불처럼 휙휙 날아다니는 생령(生靈)이다.
활화산이고 천기누설이고 지뢰밭이고 산사태고 태풍이고 해일이고 홍수고 날벼락이고 대지진이고 전쟁이고 폭발이고 섹스고 분출하는 용암이고 불나비고 외로운 사자다. 히말라야산맥이고 대서양 바다고 영하 40도의 러시아 들판이고 한번 들어가면 살아 나오지 못하는 죽음의 계곡이고 실크로드 사막이다.
임제는 3천도 기름가마, 화약, 양귀비, 독버섯, 농약, 불구덩이, 마약, 독주, 비상, 50도 위스키, 새카만 커피콩, 몰핀, 100년 된 와인, 천년짜리 산삼이고, 송곳이자 칼날이자 대포알이자 벼랑끝이자 핵폭탄이자 독화살이자 곤봉이자 골프채이자 식칼이자 죽창이다.
임제는 손 한번 들어 온 세상을 와장창 깨트려버리고 휙 돌아서, 뿌연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떠나가는 풍광한 아닌가. 한번 가면 결코 되돌아올 수 없는 긴 회랑 속을 장삼자락 펄럭이며 뚜벅뚜벅 걸어가 버리는 우레같은 사내 아니던가...
그러면서 나는 소설같이 재밋는 상상을 했다. 만약 출가한 지 40년 된 어느 깡패 같은 비구니가 있다면, 어떻게 강의했을까?... 조교시범 보이듯 실전으로 5분만에 끝냈을 것이다. 진짜 불상을 집어던지고, 멀뚱멀뚱 보고 있는 학인에게 목탁을 날려 대갈통을 부숴 버리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걸 보며 왜 그러냐고, 말리는 수좌에게 찰나적으로 뛰어가 따귀를 후려치고... 여기저기서 들고 일어나 아우성치면 신나를 확 뿌려 법당 하나를 홀라당 불질러버렸을 것이다. 그 정도는 해야 진짜 임제가 웃지 않을까? 그 정도 장면은 연출해야 전광석화처럼 스님들이 임제의 선풍을 조금 짐작이나 하지 않을까?...
아울러 ‘인간 임제’를 가지고 영화 찍어서 할리우드에 팔면, 요새 서구에서 불교인기 높으니까 떼돈 벌지 않을까 싶고, 또 영화는 두 시간이면 땡이니까 이토록 길게 12시간씩 강의 테잎, 안 들어도 되고... 걷잡을 수 없는 화염 속에서 타다다다닥... 피와 살과 뼈도 없이 어느 비구니 하나 불꽃처럼 사라져 버린다면 그야말로 임제에게 한 방 먹이고, 그보다 한 수 위에 있는, ‘생양아치 같은’ 보화선사 수준으로 선풍을 휘날리는 것 아니랴...
(12)
한순간이 영원이다! 순간이자 불멸이 ‘지금 이 생명’이다. 나는 너절하게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예수도 33세까지 살았고, 내가 존경하는 마틴 루터 킹목사도 39세에 죽었고, 불후의 명작을 남긴 빈센트 반고흐도 37세에 생을 마감했다. 또 전쟁과 기아로 스무살 이전에 비명횡사한 목숨들도 수천 명이다. 내가 뭐 대단한 존재라고 악착같이 팔십까지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단 말인가. 올해 39세인 나는 지금 여기서 떠나도 여한이 없다. 왜? 인간으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모든 행복을 다 맛보았으니까! 뭐든 한 순간에 다 버릴 수 있으니까!
특히 재작년, 우리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어릴 때 “미미(美美)야”, 나를 부르던 아버지가 68세의 나이로 쓰러져, 1300도씨 고열에서 1시간 반만에 굵은 뼈다귀 몇 개로 나와, 마침내 ‘고운 회색가루 한 대접’으로 변한 걸 보며, 나는 인생문제를 정리했다!
이젠 아무것도 연연해하지 않는다. 가난과 고독도 두렵지 않다. 생존 그 자체만이 눈부신 환희임을, 살아있는 생명, 그것만이 가장 설레이는 첫사랑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래서 이젠 어떤 칭찬과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고, 옆에 사랑이 있든 없든 내 자신의 ‘고적한 자아’를 언제든 유지할 수가 있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 진정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는, 자유롭고 강인한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아무나 내 가슴에 들어올 수 있지만, 그 누구도 내 가슴에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 이 모든 것은 生이 나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어떤 분은 나에게 ‘뛰어난 예지’가 있다고 했지만, 나한테는 ‘인간을 보는 슬픈 눈동자’가 있을 뿐이다. 가방 하나 들고 취재한답시고 온갖 삶의 지저분하고 더러운 곳들을 찾아다니며 내가 만난 것은 사람들의 고통이었다. 각양각색의 불행과 어두운 그늘과 상처, 배고픔과 한숨, 눈물과 한이 나를 너무 슬프게 했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아무도 행복하지 못한 현실이 가슴 아프고 슬퍼서 하루 종일 울었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밤거리를 쏘다니며 흐느꼈고, 밤새워 울었고, 2박 3일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으며, 특히 첫애 낳고는 온 세상 슬픔이 다 나한테 달려와 자리보전하고 한달을 울었다. 이 사람도 슬프고, 저 사람도 가엽고, 이 인물도 딱하고, 저 얼굴도 애처롭고... 그 불쌍한 인간을 바라보는 내 자신도 불쌍하고...
(13)
우리아파트에 아침마다 길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와 바닥에 시커멓게 말라붙은 껌자국을 싹싹 긁어내며 거리를 청소하는 작은 할아버지가 있다. 그는 자기운명을 자각한 듯 매일 오전 꼭 그 시각에 지극정성으로 길바닥을 청소한다. 그 모습이 하도 눈부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 발걸음을 멈춘 채 가만히... 지켜보곤 한다.
‘오페라의 유령’에 이런 대사가 있다. “가련한 존재여, 그대는 삶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 노인이 평생 절마당 한번 밟아보지 않았다 해도, 한글도 모르는 문맹자라도, 그가 이미 ‘걸어다니는 경전’이고, ‘움직이는 부처’ 아니고 무엇이랴...
“유정들도 무정들도 일체 종지 이루어~ 지이다~”를 들으며 새삼 또 하염없이 울었다. 누가 이런 말을 했을까? 유정뿐 아니라 무정까지 품에 안을 수 있는 그 사람은 과연 누군가...
그 흘러내리는 눈물줄기 사이로 그동안 “사람, 사람”하던 임제조차도 아프게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는 ‘무정까지’,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서럽고 아름다운 ‘生의 진실’을...
어쨌든 불교를 알게 돼 기쁘고, 임제선사와 무비스님을 알게 됐고, 그래서 완성된 졸시를 소개하며 내 생에 최초로 쓴 불교에 대한 글을 마치겠다. (사실 절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금정산 오빠가 ‘임제’를 보내는 바람에 내 가슴에 확, 불을 질러, 며칠째 대문밖에도 안 나가고 감히 이런 글까지 쓰게 됐다...)
사랑하는 임제(臨濟)
온 세상이 화냥년이라고 돌을 던져도 단 하룻밤 긴 머리 풀고 알몸으로 당신 품에 안기고픈 서른 넘은 이 여자의 푸르른 관능 보이시나요
단 한 번의 눈길로 붓다와 조사 박살내고 팔만대장경 때려부수고 천년고찰마저 불태워버린 당신 생사를 끊고 하루에 황금 만냥을 쓰는 당신 그리워 가슴 벅찬 이 혈기방장한 여자의 칼날 같은 정염 보이시나요
찰나에 혼을 훔친 대낮의 큰 도둑* 찾아 새벽공기 거친 숲길 속치마 바람으로 뛰어가는 이 여자의 흙투성이 맨발 보이시나요
마른하늘 날벼락 같은 당신 앞에서 무명 저고리 입고 도라지꽃처럼 춤추고픈 이 여자는 오늘도 궁벽한 生을 적멸의 눈동자로 노려보며 왼종일 화장터에서 불타는 시체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찬바람 불고 꽃잎 분분해도 당신 없이 뉘 집에 들어가겠습니까
천년의 세월 뚫고 이 가슴에 비수 꽂으며 무위진인(無位眞人)으로 떠나간 영원히 집이 없는
오, 불순한 사내여 (*:설봉선사가 임제선사를 가리킨 말)
(14) 광고문 임제록은 팔만장경에서 첫 손가락을 꼽는 책이다. --조계종의 모든 종도들은 모두가 임제스님의 법손이다. 임제스님의 법손임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임제스님의 가르침인 임제록은 조계종의 제1교과서며, 제1의 소의경전이다. 임제록을 모르고는 조계종도라고 할 수 없다. 어록 중에 왕이라고 예부터 일컬어 오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아무도 임제록을 제대로 강설한 사람이 없었다. 무비스님이 명쾌하게 강설하여 관심 있는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었다.
임제록을 공부하고 난 뒤라야 비로소 조계종의 종도라고 할 수 있다. 참으로 한국의 불자라고 할 수 있다. 임제록 강의--- 불교의 지름길--모든 일에는 지름길이 있다. 성불의 지름길---임제록 조계종의 제1의 소의경전 제1 교재 임제스님은 인류의 태양이다. 임제록은 당신의 불교를 한 차원 끌어올려줄 것이다.
(15) 서문 -- 이것이 진짜 불교다. 임제록을 강설하는 일은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부치는 것이다. 혹이다. 머리 위에 또 머리를 하나 더 얻는 것이고, 멀쩡한 살을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매우 건강한 사람을 상처투성이 중환자로 만들어 놓았다.
임제스님은 경전과 어록을 모두 똥을 닦은 휴지라고 하였다. 이제 나는 그 똥을 닦은 휴지조각을 들고 무슨 국물이라도 나오려는가 하여 쥐어짜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은 똥이 묻은 휴지를 이리 저리 헤집고 있다. 혹시 덩어리라도 건질까해서다.
임제 할 덕산 방도 죽은 송장이 눈을 부릅뜨는 일이다. 송장이 눈을 부릅떠 봐야 무슨 영험이 있겠는가. 하물며 되지도 않은 군더더기 소리로써 덧칠을 하고 개칠을 한 이 강의야 말해 무엇 하랴.
임제록을 만난 후로 나의 걸망에는 오늘 날까지 항상 임제록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1971) 겨울철 봉암사에서 지낼 때 서옹스님의 임제록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 후 나도 강의 본 책을 직접 편집하여 강의도 몇 차례 했다.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번역과 강설을 쓰고 싶었는데 이제야 그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임제록 강설은 모두가 쓸데없는 군소리고, 필자가 아파서 앓는 소리들이다. 강설이라고는 해도 별다른 내용은 없다. 단지 내 나름대로 말을 좀 더 보태서 부연 설명한 것이다. <임제록 연의>라고 생각하면 알맞다.
스님들이 돌아가시면 반드시 하는 축원이 있다. “빨리 이 땅에 돌아오시어 임제문중에서 길이 인천의 안목이 되소서[臨濟門中 永作人天之眼目]. 이다. 오래고도 심한 통증을 겪는 동안 임제록은 훌륭한 진통제였다. 명안도류(明眼道流)는 미진한 것은 보충해주시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주십시오.
***이 임제록 강의가 빛을 보기까지 크고 작은 인연을 함께한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대해탈 대자유를 누리시기를 빕니다. 낱말의 사전적 해석이나 출처를 밝히는 일은 생략하였다.
*** 점점 말세적 현상은 짙어가고 진정한 불법을 알고자하는 사람들은 줄어드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오로지 불조의 정법이 널리 퍼지고 오래 머물도록 하는데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14-3에 원문 중 없는 글자 斯 자 밑에 瓦 자 한 글자가 없음. 깨진 목소리 시(깨진 그릇 시) 방과 할은 염화시중과 불자를 드는 것, 손가락을 세우는 것 등과 아울러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표현이다. 모든 임제록 강의 청중들에게 감사한다. 청화 상인의 노고에도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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