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데, 근현대 동아시아 민족국가(한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 의 일대 비극이라고 할만한 곳은 동쪽 한반도의 한국과 동남쪽 인도차이나의 베트남일 것입니다. 이들 국가는 역사가 일컫길 이념 대립의 장이자 냉전의 절정이라고 합니다. 최근 들어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통합진보당과 같은 불순분자들이 등장하는 불안한 시국이 지속되고 있습니다(다른 뭔가 더 큰 한 방이 떠오르시겠지만 필자는 마티즈를 타고 싶지 않음을 미리 밝힙니다) 이러한 때에 훌륭한 과거사를 보고서도 반면교사의 예를 알지 못한다면 그 어찌 지성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에서 이 글을 시작합니다.
인도차이나가 지금에 비해 더 많은 나라로 구성되어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는 아래쪽에 흰 글씨로 적혀 있습니다.
흔히 베트남을 밀림에서 갓을 쓰고 땅굴이나 파고 다니는 미개인으로 보는 인식이 한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한중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와 비교하여 전혀 짧지 않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지역입니다. 그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인종들이 살아간다는 것 또한 별로 놀랄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공산 정권을 거치면서 지금은 베트남인이라는 단어 아래에 거의 통합되어 있습니다.
과거 수많은 왕국들이 전쟁을 벌여왔습니다만 프랑스 상륙 직전의 인도차이나에는 크게 톤킨, 안남, 코친차이나, 랴오스, 캄보디아의 5개국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서 잠시 통합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평화롭게 지내나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1940년, 프랑스가 독일의 손에 무너지면서 식민지들에 대한 모든 connection들이 기초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새롭게 정권을 잡은 비시프랑스는 과거 제국(둘 이상의 민족을 아우르는 국가) 정도의 정치적 역량을 보유하지 못 한 친나치 인사들의 소꿉놀이에 불과했고 드골장군이 이끄는 자유프랑스는 나라 이름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중북부 아프리카의 통제마저도 원활치 못 했죠. 그렇게 41년이 되면서 일제는 大東亞共榮을 외치며 동아시아에서의 세력을 점점 넓혀가고 명목상 비시프랑스의 지배하에 있던 인도차이나도 그 마수를 피해가진 못 하게 됩니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에서 비롯된 강한 자결주의를 가지고 있던 톤킨, 안남, 코친차이나인들은 크게 공산세력과 왕당세력으로 나뉘어 비시프랑스가 지배권을 가질 무렵부터 '게릴라'로 널리 알려진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합니다. 무능한 비시프랑스와 신생아 일본제국을 상대로 그들은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었고 마침내 1945년 일장기가 내려질 때 베트남을 독립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준비 해둡니다. 한편, 비시를 무너뜨리고 부활한 프랑스는 다시 한 번 제국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자 했습니다. 그를 위해 전쟁이 끝나고 겨우 1년이 지난 1946년, 베트남에 원정군을 보냅니다. 물론, 몽골도 막아낸 지구방위대 베트남은 8년에 걸친 전쟁 끝에 1954년 제네바 회의에서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를 포기한다.' 는 내용에 도장을 찍게 만들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빛나는 성적을 내었던 공산세력과 왕당세력이 랴오스, 캄보디아와는 달리 베트남이라는 이름의 한층 거대해진 독립국을 손에 넣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톤킨, 안남, 코친차이나 전체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만은... 곧바로 위도17도선을 따라서 북부의 공산베트남과 남부의 자유베트남으로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정부수립을 위한 총선을 진행합니다. 초기 300일 간은 월경이 자유로웠고 북부의 자본주의 지지자들과 남부의 사회주의 지지자들이 서로서로 넘어갔다는 것은 한반도와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분단과 자유월경이 미래에 어떤 불씨가 되었는가를 보기 위해 이들은 1년도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듬해인 1955년. 그 유명한 월남전쟁이 곧바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수가 볼 수 있는 커뮤니티에서 어떤 논리를 전개할 때 기본적인 설명을 먼저 하는 것이 예의라 생각하여 일부 찾고 일부 상상하여 글을 적었습니다. 앞으로 이어갈 제가 원래 적고 싶었던 글은 누가 누구를 뭘로 죽이니 같은 부분은 관심사가 아니기에 넘어가고 정치,외교적인 측면에서 주목하고자 합니다. 주관의 합리성 결여, 근거의 역사성 결여, 문장의 논리성 결여와 같은 오류가 중간중간 발견될 것입니다. 이럴 때는 주저말고 덧글을 통해 이 글을 함께 만들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코친차이나는 캄보디아로부터 강탈한 영토에 화교들이 많이 살았고 안남은 본래 참파의 땅인데다 이전에 통킹과 안남으로 남북분단이 되었던 전적이 있긴 합니다.
제가 동남아시아 역사는 사실 이번에 처음 끄적여 보는 중이라 많이 부족합니다. ㅠㅠ 제가 이해하기론 톤킨, 안남은 나라는 같되 문화적 차이가 크고 코친차이나는 캄보디아 크메르 루즈가 수복하려 들었기에 (다음 글에 쓸 겁니다) 당시까지는 오히려 캄보디아라고 봐야할 영역이 아닌가 싶어 그냥 분리했습니다. 시원하게 +_+
베트남이 참으로 우리와 닮은점이 많지요. 동아시아 전통사상인 유불선 삼교의 철학적 문화를 가지고 있고, 꽤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지배기간이 우리보다 500년 더 길지만요 흠이라면 20세기의 폭풍같은 역사속에 공산화의 굴레속으로 들어가버린점이 참 슬픔니다
공감합니다 ㅠㅠ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 요즘 관심이 많이 갑니다...
@WorldEnder 통일전후 상황에 관해서 다룰때 남베트남의 패망원인이 민주세력이나 간첩세력의 농간으로 무너졌다식의 표현은 많이 없기를 바랍니다. 주 원인은 그게 아니거든요 저도 베트남 전쟁의 정황에 관심이 많아서 많은 관심을 쏟았는데
http://cafe.daum.net/Europa/3L0P/5583
이런 글도 써봤고 한번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CARDCAPTOR SAKURA 훌륭한 우려 감동적입니다 ㅜㅜ 전혀 고려도 안 하다가 덕분에 생각나서 추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통진당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지만... 확실히 베트남과 대한민국만큼 이념으로 인한 비극이 커다란 나라는 없지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