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이 어디서 났느냐 물으니 계엄군과 전투해서 노획한 것이라고 답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계엄군은 당시 M16유탄발사기를 보유하지 않았습니다. (5) 무전기를 어디서 구했느냐 질문한 결과 박남선은 총기들과 함께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답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군용 무전기가 아니었고, 무기고 저장품목도 아니었습니다. (6) 박남선은 1980.5.26.밤중에 비로소 구성된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의 상황실장이었는데도 불구하고 2017.7.7. 변론조서에서는 광주사태 기간 내내 시민군 총지휘관이었다고 허위 진술하였습니다.
이렇게 법정에서 위증을 했고, 주장 모두가 사실이 아니라 위계였음이 명백하게 증명되었는데도 “판사가 볼 때는 박남선의 주장이 맞다”고 판결한 것입니다.
나. 심복례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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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여인이 심복례 제62광수 심복례 제139광수(홍일천)
심복례는 매우 희극적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심복례는 2015.9.23. 신청서에 자기가 제62광수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광주판사 이창한은 2015.9.25.에 이 주장을 인용해 주었습니다. 그 후 심복례는 이 인용내용을 부인하였습니다, 자기는 제62광수가 아니라 제139광수(김정일 첫부인)이라고 주장을 변경하였습니다. 1심 이의신청 사건을 맡은 김동규 부장판사는 “심복례는 제139광수가 맞다”고 변경된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제139광수 사진은 1980.5.23.에 촬영되었습니다. 5.18은 5.27. 진압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자 증거들(증9.10)을 보니 심복례가 광주에 도착한 날은 5.30.이었습니다. 알리바이 자체가 틀리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판사들이 대한민국 그 어느 법원에 또 있을 것인지, 살이 떨립니다.
이런 허무맹랑한 거짓 주장들을 모두 증명했는데도 광주판사들은 광주사람 전남사람이 아닌 타지역인들이 증명한 것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광주사람들은 1995년의 검찰기록을 부정합니다. 재판기록도 부정합니다. 광주 사망자가 166명이라고 검찰이 확인해 주었는데도 5.18단체들은 북한이 주 장하는 그대로 2,000여명이라고 주장합니다. 광주 법관들이 재판을 하는 과정 역시 이와 같습니다.광주사람들이 주장하면 거짓도 참말로 판단하고 타지역사람들이 주장하면 증명이 있어도 무시하는 것입니다.
3) ‘5.18영상고발’ 발행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에 나타난 난장판 판결들
(1) “형사사건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 대법원 판례는 민사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새로운 법리(증11, 6~7쪽)
광주판사는 결정문 제6쪽에서 ‘법인이 명예훼손을 당한 경우에는 손해배상 및 처분을 청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일반적 내용을 담은 대법원 판례 ‘선고 96다17851 판결’을 들어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 판례가 이 사건에 적용될 수 없다 판단하였고, ‘설사 형사사건에서 무죄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였는지 여부는 별개의 관점에서 검토하여야 한다’는 특수 내용을 담은 대법원 판례 ‘선고 2006다6713 판결’을 인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2개의 판례로 ‘대법원 2003. 9. 2. 선고 2002다63558 판결’을 뒤집을 수가 없습니다. ‘선고 96다17851 판결’의 판시는 민법 제764조 의 '명예'의 의미 및 민법 제764조 의 규정이 종중 등 법인 아닌 사단에도 적용되는지 여부(적극)에 대한 것으로 그 판결요지는 이러합니다. [1] 민법 제764조 에서 말하는 명예라 함은 사람의 품성, 덕행, 명예, 신용 등 세상으로부터 받는 객관적인 평가를 말하는 것이고 특히 법인의 경우에는 그 사회적 명예, 신용을 가리키는 데 다름없는 것으로 명예를 훼손한다는 것은 그 사회적 평가를 침해하는 것을 말하고 이와 같은 법인의 명예가 훼손된 경우에 그 법인은 상대방에 대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 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청구할 수 있고, 종중과 같이 소송상 당사자능력이 있는 비법인사단 역시 마찬가지이다.”입니다.
‘선고 06다6713 판결’은 동료형사가 덩치 큰 어깨에 공격당하는 것을 본 다른 형사가 공포를 쏘았는데도 소용이 없자 실탄을 발사하였는데 그 총탄이 우측흉부에 맞아 사망한 경우를 재판한 매우 특이하고 판결에 대한 논란들이 분분했던 사건입니다. 형사사건에서는 경찰공무원에 무죄가 선고되었지만 민사사건에서는 경찰관이 다리 같이 비 치명적인 부위를 쏘았어도 상황이 진정될 수 있었는데 흉부를 쏘았다며 경찰관 과실을 40%로 인정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전자의 판례는 법인단체와 비법인 단체가 명예훼손을 당한 경우 손해배상과 함께 명예 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청구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당위성 판례인 것이고, 후자의 경우는 경찰관이 직무수행상 총을 쏘았다 해도 생명에 치명적인 부위를 쏘아서는 안 된다는 데 대한 판시입니다. 이런 성격의 판례를 여기에 적용시키는 것은 매우 부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자의 판례나 후자의 판례는 모두 피해를 당하는 단체 및 개인이 일개 객체로 특정되어 있는 경우에 대한 판례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명예훼손의 대상이 하나의 집단이나 하나의 인격체로 분리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지만원은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연구한 바를 발표한 것이지 5.18단체나 개인을 지명한 바 없습니다. 이처럼 명예훼손을 당하는 객체가 특정될 수 없다는 것이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 판례의 핵심인 것입니다. 지만원은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했고, 광주현장의 얼굴들이 북한의 고위층 인물이라고 했지, 5.18단체나 광주-전남지역 개개인을 거명한 바 없습니다. 개인 또는 단체들은 5.18역사와 동일시 될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듯 5.18관련하여 개인 또는 단체를 특정하지 않은 사건에 대하여 피해대상이 특정된 판례를 적용시킨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대법원 2003. 9. 2. 선고 2002다63558 판결’에는 아래와 같은 판시가 있습니다.
[판시사항1]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적 사실적시가 집단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명예훼손으로 인정되기 위한 기준: 이른바 집단표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그러한 방송 등이 그 집단에 속한 특정인에 대한 것이라고는 해석되기 힘들고 집단표시에 의한 비난이 개별구성원에 이르러서는 비난의 정도가 희석되어 구성원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 이르지 않으므로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명예훼손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봄이 원칙이지만, 다만 예외적으로 구성원 개개인에 대하여 방송하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구성원 수가 적거나 방송 등 당시의 주위 정황 등으로 보아 집단 내 개별구성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때에는 집단 내 개별구성원이 피해자로서 특정된다고 보아야 하고, 그 구체적 기준으로는 집단의 크기, 집단의 성격과 집단 내에서의 피해자의 지위 등을 들 수 있다.
(2) “판사가 직접 판단해 보니 노숙자담요의 광수분석은 전혀 신빙성이 없다”는 궁예식 판단(증11, 13쪽)
“노숙자담요가 작업한 작업방식, 작업시간, 구성원 등에 대한 주장을 입증할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과, 5․18민주화운동 당시 촬영된 사진과 이 사건 화보집에 수록된 북한군 소속 인물들 사진의 촬영 시점, 촬영 장소, 사진 속 인물들의 시선, 얼굴의 형상과 인물들의 자세, 착용한 의복, 두발형태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채무자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이 사건 화보집에 수록된 5․18민주화운동 현장 사진 속 인물들과 북한군 고위관료들이 동일인이라는 채무자의 주장을 신빙할 수 없다” (증11, 13쪽)
가. 이 판결내용에는 첫째 사실오인이 있고, 둘째 영상과학 전문가의 전문분석 결과를 아무런 입증 증거 없이 법관이 순발적인 생각과 편견으로 무시한 반헌법적 반민주적 처사가 들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법관이 왕”인 세상, “법관 맘”이 지배하는 세상이 전개돼 있음을 실감합니다. 이는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독재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나. 피신청인 측에서 제출한 준비서면을 읽지도 않고 무조건 무시: 결정문의 기초사실 1-나(결정문 제4쪽)에는 “신청 외 노숙자담요는 이 사건 홈페이지에 2015. 6. 13.부터 2016. 5. 17.까지 4차례에 걸쳐 별지2기재와 같이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글(이하 ‘이 사건 게시글’이라 한다)을 작성하였다.”는 기재가 있습니다. 이 네 개의 게시물에는 “노숙자담요가 작업한 작업방식, 작업시간”등에 대한 입증이 완벽하게 증명돼 있습니다. 노숙자 담요는 기초사실 기재내용과 같이 최소한 “2015. 6. 13.부터 2016. 5. 17.까지” 11개월 동안에 걸쳐 그의 작업방식을 그 네 개의 게시물을 통해 충분히 입증하였습니다. 얼굴 특징들을 분석했고, 기하학적 분석을 하였습니다. 이는 영상분석의 교과서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분석 기간도 기초사실 내용과 같이 최소한 2015. 6. 13.부터 2016. 5. 17.까지 11개월 이상입니다. 노숙자담요가 게시한 4개의 글은 다래와 같고 그 글은 광주법관이 삭제하라 명령했습니다.
(1) ‘계엄군에 체포된 최룡해 제36광수 비교분석’(2015.6.13.)
(2) ‘제323광수 국방위원 12명 전원 5.18참전(2016.2.10.)
(3) ’5.18광수 북한침략군 집단광수 입증증거‘(2016.3.2.)
(4) 황장엽과 박남선의 입모양과 입술 인중의 비교(2016.5.17.)
위 4개의 게시물을 보면 작업방식이 확실하게 제시돼 있습니다. 또한 노숙자담요의 영상분석 방법은 도서목록1(5.18화보)의 제179-103쪽에 매우 자상하게 증거 돼 있습니다. “광수영상자료의 중요성”(화보 제179쪽), “여기에 사용된 영상분석 기법과 능력”(화보 제180쪽), “황장엽을 대상으로 한 영상분석 사용 사례”(화보 제184-188), “장진성의 얼굴을 모델로 한 영상분석 사례”(화보 제189-193).
이상과 같이 광주법관이 삭제하라고 명령한 4개의 게시물은, 그것을 본 대부분의 국민들이 찬사와 감탄을 아낌없이 보냈던 글들입니다. 분석방법에 감탄한 것입니다, 이에 더해 지만원 측은 소을4호증에서 김공휴의 얼굴과 제323광수(주규창)의 얼굴을 과학적 매너로 정밀하게 분석하여 법원에 제출하였습니다,이 이상 어떻게 영상분석 작업의 방법을 더 설명할 수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또한 법원이 인정한 작업기간만 해도 11개월 이상입니다. 이렇게 작업방법과 작업시간이 웅변적으로 제시돼 있는데 어떻게 해서 그런 것이 ‘입증돼 있지 않다’ 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촬영된 사진과 이 사건 화보집에 수록된 북한군 속 인물들 사진의 촬영 시점,촬영 장소, 사진 속 인물들의 시선, 얼굴의 형상과 인물들의 자세, 착용한 의복, 두발형태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채무자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이 사건 화보집에 수록된 5․18민주화운동 현장 사진 속 인물들과 북한군 고위관료들이 동일인이라는 채무자의 주장을 신빙할 수 없다”는 판결은 광주법관의 순발적인 판단이 노숙자담요의 분석보다 월등하기 때문에 법관의 판단이 영상분석의 전문성을 충분히 증명한 노숙자담요의 분석결과와 분석방법을 덮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내가 볼 때 노숙자담요의 분석은 틀렸다” 과연 이러한 판단이 법관의 판단 범위 안에 있는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솔직히 지금부터 무려 1,100여년 이전인 후고구려의 왕 궁예의 관심법과 무엇이 다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4) 역사적 사실에 대해 20년 전에 법원이 판단한 내용, 전두환이 당시에는 몰랐던 내용, 국방장관-국무총리가 모르는 내용, 미국정부가 37년 전에 몰랐던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학문적 연구도 하지 말고 연구결과를 발표하지 말라는 판결이 있을 수 있는지 규명해주시기 바랍니다.
1997.대법원 판결, 5.18특별법을 위시한 5.18관련법, 2013.5.국방장관과 정홍원의 발언, 1980.5.9. 및 6.6자 미CIA문서, 2016.5.신동와의 인터뷰에 응한 전두환 부부의 대화내용을 종합하면 5.18은 순수한 민주화운동이고 북한군 개입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확정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뒤집는 어떠한 표현도 정당화 될 수 없다(증11, 10~11쪽)
(1) 지만원측은 1980.7.3.자 준비서면에서 5.18을 북한특수군이 주도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증명하였습니다.
가. 5.18사건 제37년이 지났는데도 그것을 지휘한 사람이 나타나 있지 않았고
나. 1995.7.18.자 검찰의 “5.18관련사건수사결과” 제92-93쪽의 9개 줄 등에 도저히 광주사람으로는 볼 수 없는 외지인 600명의 존재와 그 족적이 확인돼 있고,
다. 1985.5. 안기부작성의 ‘5.18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자료에는 5.21. 12시부터 오후4시 사이에 전남지역 17개 시군에 숨어 있는 38개 무기고가 불과 4시간 만에 털려 5,403정의 총기를 탈취했다는 기록이 있고
라. 5.18-21.까지 광주인들은 시위의 주역이 아니었으며, 광주인이 주역이었던 시기는 계엄군이 물러간 5.22.부터였다. 5.22. 오전 9시경 광주유지들이 도청에 모여 시작한 일은 시국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무기반납 등을 놓고 갑론을박 하는 일이었다.
라. 1980. 당시 가장 객관적인 수단에 의해 확인된 바로는 총상 사망자 116명 2중 85명(75%)가 카빈총 등 무기고에서 나온 총기에 의해 사망했던 사실이었고.
마. 5회에 걸쳐 무기고를 공격한 사실이 1997대법원 판결문에 기록돼 있음에도 광주시장과 5.18기념재단은 ‘광주시민은 절대로 무기고를 털지 않았다’고 주장함으로써 5.18을 대표하는 두 인물이 교도소는 광주 모르게 외지인이 털었다는 것을 입증했다.
바. 도청에 조립한 폭탄 2,000여발을 해체한 사람들은 있는데 조립한 사람이 없다.
사. 자가용운전시대도 아닌데 광주에는 어떻게 장갑차 4대, 군용트럭 370여대, 버스, 트럭 등 일반차량을 포함해 도합 882대의 차량을 몰 수 있는 인력이 광주에 있었겠느냐
아. 1997.대법원 판결문에는 20개의 판시사항이 있는데 그 중 5.18이 순수한 민주화운동이었느냐에 대한 항목을 들어 있지 않았고,
자.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한다는 것은 당시 국민화합을 대 명제로 하던 시기에 정치인들이 타협하고 절충한 것일 뿐, 1997 대법원 판결에서도 판결한 바 없고, 그 어느 연구기관에서도 연구한 바 없으며, 공안사건으로 취급되어 별도의 조사가 이루어진 바도 없다. 이상 10개였습니다. .
(2) 하지만 광주법원이 “5.18에는 북한특수군이 절대로 오지 않았다”는 근거로 제시한 위 5개 항은 사실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을 만큼의 구체성과 신빙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증명이 없는 판결인 것입니다.
20년 전의 대법원 판단에서 판단하지 않았으면 북한특수군이 오지 않은 것이고, 5.18특별법에 광주시위를 민주화운동이라 정해놓으면 북한특수군이 오지 않은 것이고., 국방장관도 몰랐고, 미CIA도 몰랐고. 전두환이 몰랐던 일이면 그 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지 말아야 한다는 막가파식 판단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합니다.
광주법원은 결정문 제12쪽 3에서 “③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무자는 이 사건 화보집에서 5․18민주화운동 현장에서 촬영된 인물들의 사진과 현재 북한군의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의 사진을 비교한 결과 이들이 모두 동일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는 주장과 함께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의 사진과 북한군의 사진들을 나란히 수록하였고, 이를 전제로 ‘5․18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선언문’, ‘5․18 당시 친국가적이었던 광주, 북한공작 결과 반국가적으로 변해’, ‘광주에서 촬영된 폭동 현장의 얼굴들은 대부분 북한의 고관들’ 등의 제목 아래 5․18민주화운동은 광주시민들이 주도한 시위가 아닌 북한 당국이 투입하여 광주에 소재하던 북한특수군이 주도한 침략전쟁이었다는 취지의 내용을 서술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지만원 측이 제출한 위 10개 사항에 대해 광주법관이 제대로 일지도 않았다는 것을 임시하는 내용의 글입니다. 위 10개 항의 제시는 화보와는 전혀 무관한 내용들이고 정부의 공식 문서에 입각한 자료입니다.그런데 광주판사는 지만원이 오로지 화보에만 근거하여 5.18을 북한군이 저지른 침략행위였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기재하였습니다. 이는 사실의 왜곡에 해당할 것입니다.
가. 5.18이 북한군 소행이라는 결론은 2014.10.에 채무자가 발간한 ‘5.18분석 최종보고서’에 Q.E.D.(이상으로 증명되었음을 표시하는 수학용어) 즉 종지부를 찍었다는 표현으로 내놓은 결론입니다. 영상고발은 덤(redundancy)인 것입니다.
나. ‘5․18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선언문’은 영상분석 결과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내용입니다. 이 내용은 1997.대법원 판결이 6개의 사실오인을 했다는 것을 증명한 글입니다. 지만원측이 제출한 2017.7.3.자 준비서면에는 ”4. 북한개입의 증거“라는 제목 하에 제10쪽으로부터 31쪽까지 무려 22쪽에 걸쳐 영상분석과는 전혀 관계없이 정부의 공식 문서와 톱-레벨의 5.18유공자들이 5,18기록 문서에 증언했던 내용들을 가지고 5.18은 북한군이 일으켰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연구결과를 요약하여 제시한 것입니다. 이런 분명한 사실을 놓고 광주법원은 5․18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선언문‘이 순전히 화보를 전제로 하여 작성되었다 판단하였습니다. 준비서면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입니다.
다. 광주법원은 또 ‘5․18 당시 친국가적이었던 광주, 북한공작 결과 반국가적으로 변해’ 라는 채무자의 글 역시 화보를 근거로 하여 작성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는 3개의 사진이 주 내용을 이루는 아주 짧은 글입니다. 광주의 어린 여식들이 계엄군과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지고 있는 사진 1매와 계엄군이 거리를 청소해주는 모습이 담긴 사진 2매입니다. 이 사진들을 놓고 지만원은 “5.18당시에는 광주가 친국가적이었는데 북한의 계속적인 심리전에 의해 반국가적으로 변했다”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 광주와 전남은 전두환에 대핸 지지율이 매우 높았습니다. 이 판단 역시 지만원측이 제출한 준비서면을 전혀 읽지 않았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합니다.
5) “육안으로만 보아도 내가 제 몇 번 광수다”라는 주장을 100% 인용하는 야만적 조폭식 판결이 이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지 규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광수라고 주장하는 광주-전남 사람 5명이 정말로 피해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본안사건인 민사사건에서 정밀히 규명돼야 하지만 일단은 이 5명이 자기가 광수라고 주장하니 이 5인에 관련 게시 글은 다 삭제해야 한다” (증11, 15쪽)
증11 결정문 제15쪽의 기재입니다. “다만, 채권자들은 이 사건 신청원인 중 하나로 이 사건 화보집에서 채무자에 의해 거론되는 제36광수, 제71광수, 제8광수, 제326광수, 제151광수가 채권자 양기남, 박남선, 박선재, 김공휴, 망 박동연과 각각 비교․분석됨으로써 각각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바, 이 사건 화보집에서 거론되는 이들 각 인물들과 위 채권자 등의 동일성 여부, 이로 인한 인격권 침해 여부 및 그 정도 등은 추후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친 본안판단을 통하여 명확하게 규명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위 부분에서 채권자 5명이 신청서에서 주장한 것은 과학적 분석에 의한 주장이 아니라 모두가 다 “육안으로만 보아도”였습니다. 그런데 광주법관은 결정문 15쪽에서 “제36광수, 제71광수, 제8광수, 제326광수,제151광수가 채권자 양기남, 박남선, 박선재, 김공휴, 망 박동연과 각각 비교․분석됨으로써 각각의 인격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기재하였습니다.
이는 노골적인 사실의 왜곡입니다. 신청서의 그 어디에도 채권자 각각은 그들이 주장하는 해당광수와 비교분석한 바 없습니다. 그들이 제출한 신청서의 키워드는 “육안으로만 보아도”입니다. 본인과 해당 광수의 얼굴을 나란히 놓고 비교분석한 바 없습니다. 채권자 5명은 달랑 오래 된 사진 몇 개 내놓고 “육안으로만 보아도 내가 제 몇 광수다” 이렇게 주장하였습니다. 채권자 각각은 “육안으로만 봐 달라”고 진정하였는데 어째서 광주법관은 채권자들의 얼굴과 광수의 얼굴들이 비교분석 되었다는 허위사실을 기재하고 그 허위사실에 터 잡아 무조건 관련 글들을 삭제하라 명령하는 것인지 공포감마저 듭니다. 광주법관들이 타지역 국민들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기 전에는 이런 비인격적인 마구잡이식 권력을 휘두를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긴급성을 요하는 사건이라 해도 최소한 각기 주장의 타당성 여부 정도는 짚고 가야 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라나 광주법관은 “사실관계는 모르겠는데 채권자들이 주장하니 일단 채권자들의 주장을 법원이 강제로 집행한다”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생각할수록 살이 떨리고 가슴 떨리는 악몽입니다.
증거자료
증1. 전두환 회고록 결정문
증2. 2002년 광주지방법원 판결문
증3. 2011-12 안양지원-서울고법-대법원 판결
증4. 5.18유공자심사위원 전원사퇴 보도한 중앙일보
증5. 서울교회가 5.18단체들로부터 당한 수난 보도
증6. 1995 검찰의 ‘5.18광련사건수사결과’
증7. ‘5.18영상고발’ 가처분사건에 제출한 지만원 측 준비서면
증8. 5.18추모공간에 있는 심복례의 증언
증9. 구글에 기록된 심복례 증언
증10. 박남선 심복례 등의 법정 증언 속기록
증11. 5.18영상고발 가처분사건, 지만원에 대한 결정문
증12. 손해배상 소송 판결 보도
증13. 이창한 부장판사의 결정문
2017.8.12.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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