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 새싹, 푸른 차 되다

공항을 빠져나와 조천읍 거문오름을 향해 차를 몰았다. 나무로 둘러싸인 오솔길을 몇 분쯤 달렸을까. 갑자기 시야가 트이면서 눈앞에 널따란 차밭이 나타났다. ?차 농장 ‘올티스’의 주인장 이원희·최진양 씨 부부가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
부부가 차밭을 일구기 시작한 건 13년 전이다.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고 공부하다가 우연히 차를 접하게 됐다. 제주를 점찍고 부지를 알아보다가 거문오름이 바라보이는 조천읍 선흘리에 정착했다. 거문오름 인근 2만 3000평(7만 6000㎡) 땅에 차 묘목 10만 주를 심었다. 손가락 굵기의 묘목이 단단해지고 가지를 뻗어 지금의 모습이 될 때까지 꼬박 7년이 걸렸다.
[기계 수확 가능한 평지 차밭] “차 맛을 좌우하는 세 가지 조건이 있어요. 강수량과 안개, 일교차죠. 여기가 그 조건을 제대로 갖춘 곳이에요.” 본래 열대식물인 차는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지만, 새순이 올라올 때만큼은 일조량이 적당히 조절돼야 한다. 단맛을 내는 성분인 아미노산이 햇빛을 과도하게 받으면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개가 내려앉아 적당히 차광이 되는 지역이 좋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배수다. 차나무 뿌리는 아래로 뻗어나가는 직근이다. 배수가 잘되지 않으면 뿌리가 쉽게 썩는다. 보성이나 하동의 차밭이 비탈진 산길에 있는 것도 물이 아래로 흘러 배수가 되기 때문이다. 제주도 땅은 입자가 굵은 화산토라서 배수가 워낙 원활하다. 이 때문에 평지에도 차밭을 조성할 수 있다.
“차밭이 평지라서 좋은 건 기계 수확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차 수확기계는 평평한 땅 위에 폭 1.8m 간격으로 다리를 세우고 서서 차나무 위를 왕복하며 잎을 딴다. 기계로 채취하면 사람이 잎을 딸 때보다 시간이 절약되고 인건비도 준다. 1회 수확 비용이 저렴해 한 해에 3~4회까지도 새순을 채취한다. 일일이 손으로 딸 경우 가격을 맞출 수 없어 한 해에 2회 수확하기도 어렵다.
올티스는 해발 300m에 있어 다른 지역보다 2~3℃가량 기온이 낮다. ?만큼 새순이 늦게 올라와 채취시기도 늦다. 양력 4월 20일인 절기 곡우 이전에 딴 새순을 ‘우전,’ 곡우 이후 입하(양력 5월 5일경) 사이에 딴 새순을 ‘세작’이라고 하면서 최고급으로 치는데, 이곳에선 5월 초나 돼야 첫 수확이 가능하다. 시기상으로는 5월에 딴 차이지만 품질로는 우전·세작급의 최고급 차다.
[제조방법 다양화로 맛 살려] 색과 향이 다른 녹차·홍차·우롱차 등은 본래 똑같은 잎으로 만든다. 같은 재료지만 다른 레시피를 채택해 완전히 다른 결과물을 내는 것이다. 다만, 각각의 맛에 가장 잘 어울리는 품종을 쓰면 더욱 향미가 풍부해진다. 올티스 차밭에는 다섯 가지 품종의 차나무가 고루 심겨 있다.
“덖은 찻잎과 찐 찻잎을 섞는 것이 올티스의 특징이에요.”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수확한 잎을 300℃로 달군 가마솥에 덖어서 만든다. 수분 없이 볶는 방법이다. 이를 ‘살청’이라고 하는데, 살청 하는 순간 잎의 산화발효가 멈춘다. 살청이 끝난 찻잎은 비벼주면서 잎 표면에 상처를 내는 ‘유념’ 과정을 거친다. 유념을 거쳐야 찻잎을 물에 넣었을 때 맛이 잘 우러난다. 잎의 상태에 따라 여러 번 이 과정을 반복하면 비로소 덖음차가 된다.
증제차는 덖는 과정 대신 고온 수증기로 잎을 쪄서 만드는데 일본에서 주로 마신다.
덖음차는 구수한 맛이, 증제차는 단맛과 부드러운 맛이 강하다.
올티스는 두 가지 차의 특성을 고루 표현하고자 덖음차와 증제차를 섞어 녹차상품을 만든다. 마치 맛을 위해 산지가 다른 커피 원두를 블렌딩 하는 것과 비슷하다.
산화발효차인 홍차 제다는 녹차의 제조방법과는 확연히 다르다. 살청 대신 잎을 딴 뒤 15~20시간 정도 시들도록 말려두는 ‘위조’ 과정을 거친다. 이후 유념을 시작하면 찻잎이 급속도로 산화 발효된다. 3~5시간 유념 하면서 80~100% 산화발효를 시키고 건조하면 주황빛의 달큼한 홍차가 된다. 올티스는 모든 제다 작업을 자동화했다. 시음장에 딸린 제다실에 전문기계를 설치하고 살청·덖음·증제·위조·유념을 한다. 다만, 과정마다 잎의 상태를 보고 작업의 횟수를 조절한다.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햇순을 재료로 하기에 품질이 좋다.
흔히 사람이 직접 따고 덖은 수제차가 가장 좋은 차라는 인식이 있는데, 이씨의 생각은 다르다. 기계화 덕분에 오히려 균일하게 맛을 내고 가격을 합리화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차에 대해 어려워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전통 다기를 갖춰두고 수제 덖음차를 마셔야 할 필요는 없어요. 머그컵에 티백을 넣고 즐기면 되죠. 좋은 녹차를 누구나 쉽게 마시는 문화를 만드는 데 올티스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연둣빛 여린 새싹이 깊고 진한 차가 될 때까지, 그가 차나무와 함께 버텨온 시간은 쉽지 않았을 테다. 그래서 올티스의 차 한 잔 에는 우주가 담긴 깊은 맛이 나는가 보다.
< 녹차, 가장 맛있게 마시는 법> 제대로 우린 녹차를 입안에 머금으면 깨끗한 단맛이 감돈다. 이어 개운한 쓴맛과 떫은맛이 차례로 올라온다. 세 가 지 맛이 조화를 이루는 게 녹차 본연의 맛이다. 흔히 ‘녹차는 쓰다’고 오해하는데, 이는 잘못된 방법으로 차를 우려서다. 세 가지 맛이 고루 우러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물의 온도와 우리는 시간이다.
먼저, 찻잎의 양은 물과 비교했을 때 1:100이 적당하다. 예컨대 200㎖ 물에 찻잎 2g을 넣는다. 팔팔 끓는 뜨거운 물은 금물. 단맛이 잘 우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컵에 찻잎을 담고 정수기에서 곧바로 뜨거운 물을 붓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끓는 물을 컵에 받아 20초 정도 식혀 온도가 80℃가 됐을 때 찻잎을 넣는 게 바른 순서다.
차가 우러나면 3분이 지나기 전에 찻잎을 건져내야 한다. 지나치게 오래 우리면 찻잎에서 탄닌 성분이 나와 쓴맛이 강해진다. 티백으로 차를 마실 때도 마찬가지다. 한 김 식은 물에 티백을 넣고 3분이 지나기 전에 건져낸다. 숟가락으로 찻잎을 짓이기는 것도 삼간다.
< 무더운 날 갈증해소에 좋은 ‘냉침 녹차’>커피 세계에 콜드 브루(coldbrew)가 있다면, 녹차 세계에는 냉침(冷浸) 녹차가 있다. 말 그대로 차가운 물에 우린 차다. 병에 찻잎과 물을 채우고 냉장고에 넣어 짧게는 1시간에서 길게는 24시간 우린다. 녹차는 공기 중의 냄새와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으니 반드시 뚜껑을 닫고 보관해야 한다. 티백으로도 냉침이 가능하지만, 티백이 찢어지거나 녹을 수 있으니 5시간 이상은 넘기지않는 것이 좋다. 냉침할 때는 뜨거운 물로 우릴 때보다 찻잎의 양을 많이 넣는다. 차가 지닌 찬 성질을 끌어올려 무더운 여름날 갈증해소와 수분보충에 좋다. 생수 외에도 탄산수나 우유에 잎을 넣고 우리면 새로운 맛의 녹차를 즐길 수 있다.
< 찻잎까지 마시는 ‘말차’>녹찻잎을 갈아 고운 가루로 만든 다음 그 가루를 물에 타 마시는 것을 말차라고 한다. 말차는 찻잎을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음용하기 때문에 차의 영양성분을 오롯이 섭취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맛과 향이 진해 우유를 섞은 녹차라테를 만들 때 주로 활용한다.
말차를 탈 때는 차솔이나 거품기를 이용해 물을 빠르게 휘저어 거품을 풍성하게 내는 것이 좋다. 그래야 목 넘김이 부드럽고 맛이 고소하다.
[잎 하나에 여섯 가지 차]< 자연 그대로의 백차>솜털이 붙은 아주 어린 찻잎을 자연상태에서 말려 만든 백차. 솜털 때문에 건엽이 하얗게 보여 백차라고 부른다. 백차는 인위적인 산화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아 맛과 향이 순?다. 90℃의 물에 3∼5분 정도 우려내 마시는데, 두 번 이상 우리면 맛이 크게 떨어진다.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어 여름에 마시기 좋다.
< 싱그러운 연둣빛 녹차>가장 대중적으로 즐겨 마시는 녹차는 어린 찻잎을 따 산화발효가 일어나지 않도록 돌솥에 넣고 덖거나 찐 뒤 건조해 만든다. 비발효차로 차 우린 물이 옅은 연둣빛을 띤다. 싱그러운 향과 구수하면서도 씁쓸한 맛이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녹차의 소비기간은 1년 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향이 떨어지므로 소량 포장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을 추천한다.
<맛과 향 부드러운 청차>산화도가 20∼80%에 이르는 ‘부분 산화차’로, 흔히 알고 있는 우롱차가 청차에 속한다. 산화도에 따라 차 우린 물의 색과 향, 맛이 천차만별이다.
청차를 마실 때는 잔에 찻잎을 가득 채우고 90℃의 물을 붓고 찻잎 상태에 따라 45초에서 5분 정도 여러 차례 우려내 마신다. 맛과 향이 부드러워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차다.
<떫고 쓴 맛 덜어낸 황차>황차는 ‘경미 발효차’로, 제다 과정이 녹차와 거의 비슷하다. 찻잎을 따 덖거나 찐 뒤 발효과정을 거친다. 덖거나 찐 찻잎을 상자에 넣어 발효시키는데, ?때 미생물이 번식해 찻잎 색이 누래져 황차라고 부른다. 예부터 고급차로 여겨진 황차는 녹차에 비해 떫은맛이 적고 상쾌한 단맛이 난다.
< 달큰하고 상쾌한 홍차>홍차는 찻잎을 80∼100% 산화시킨 ‘완전 산화차’다. 인위적으로 찻잎 산화를 촉진시켜 만든다. 동양에선 찻물 색이 주황색이라 홍차라고 부르지만, 서양에선 건조한 찻잎 색이 검어 블랙티라고 부른다. 홍차는 처음 우릴 때부터 진하게 우러나는 것이 특징이다. 뜨거운 물에 30초∼1분 정도 우린다.
지나치게 오래 우리면 떫은맛이 강해지니 주의해야 한다.
< 기다림? 주는 깊이 흑차>살청한 찻잎을 숙성해 발효한 차로서 ‘후발효차’라고 한다. 보이차가 흑차의 한 종류다. 흑차는 수분이 있는 찻잎을 숙성시켜 미생물 발효를 유도해 만든다. 흑차를 마실 때는 잎에 붙은 먼지를 씻는 ‘세차’가 필요하다. 찻잎을 넣은 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10∼15초 헹군 뒤 물을 버린다. 2회 세차 후 팔팔 끓는 뜨거운 물로 우린다. 숙성 정도에 따른 깊고 중후한 향과 맛이 특징이다.
[재주 많은 녹차, 일상 활용법]< 각종 미네랄 풍부한 천연 비료>찻잎에는 질소와 아미노산, 비타민, 미네랄 등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여러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특히 질소 함량이 높아 우리고 난 녹차 찌꺼기를 화분 위에 얹어두면 천천히 분해되면서 화초에 좋은 비료가 된다. 티백 안에 든 것을 꺼내 흙 속에 넣거나 녹차 우린 물을 화분에 부어주어도 효과가 좋다.
< 충치 예방과 입냄새 제거 동시에>녹차의 폴리페놀 성분은 충치균의 증식을 억제하고 구강이 산성화되는 것을 막아준다.
녹차 효과를 보고 싶다면 양치할 때 치약 위에 녹차가루를 묻혀 사용하자. 치아 미백 효과도 거두고 입냄새 제거에도 탁월하다. 마늘이나 생선 등 향이 강한 음식을 먹은 뒤에 찻잎을 잠깐 씹어주는 것만으로도 입냄새를 제거할 수 있다.
< 비린내는 없애고 살균 효과는 더하고 생선을 요리할 때 녹차를 활용하면 간단하게 냄새를 제거할 수 있다. 만약 조림을 할 계획이라면, 생선을 손질한 뒤 녹차 우린 물에 생선을 담가두었다가 요리한다. 구이를 할 때는 생선 겉에 녹차가루나 녹찻잎을 뿌리고 재워둔다. 비린내는 사라지고 살균 효과도 거둘 수 있어 일석이조다.
< 옷감 상할 염려 없는 습기제거제>녹차 성분 중에 플라보노이드와 탄닌은 습기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다. 우리고 난 녹차를 옷장에 넣어두면 천연 습기제거제로 활용할 수 있다. 통풍이 잘되는 천이나 종이에 햇볕에 잘 말린 잎이나 티백을 넣은 후 옷장 속에 걸어두면 된다. 천연 재료로 만들어 옷감을 해치지 않고 인체에도 무해하다.
< 피부미용에 좋은 녹차화장수>녹차는 비타민C가 풍부해 피부를 맑게 하고, 폴리페놀 성분이 모공을 청결하게 해 각종 트러블을 진정시켜준다고 알려져 있다. 가장 손쉽게 활용하는 방법은 화장수를 만들어 활용하는 것이다. 녹차 우린 물 100㎖에 청주나 소주 1큰술과 글리세린 2작은술을 넣으면 초간단 녹차화장수가 완성된다.
< 신발장 쾨쾨한 냄새 제거>차를 우리고 남은 녹찻잎을 잘 말려두었다가 티백처럼 구멍이 뚫린 종이에 담아 신발장에 넣어두면 쾨쾨한 냄새를 잡을 수 있다. 녹찻잎에 들어있는 탄닌과 엽록소 성분이 악취의 원인 물질을 분해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습기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어 땀이 밴 신발 안에 넣어두면 습기를 제거해 냄새를 예방한다.
출처 농민신문 글 지유리 기자 사진 최수연 기자, 올티스(www.orteas.co.kr)자료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