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hryne before the areopagus 1861 -
이 그림은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Jean Leon Gerom 1824~1904) 이 그린 “배심원 앞에 선 프리네”라는 그림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백옥 같은 피부의 아름다운 여인이 무슨 연유인지 수많은 남성들 앞에서 옷이 벗겨진 채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가리고 서 있다.
작품 속의 여성 프리네(Phryne)는 기원전 4세기경 보이오티아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본명은 메사레테(Muesarete) 이며, 그녀의 누르스름한 피부색 때문에 주위에서는 두꺼비라는 뜻의 프리네(Phryne) 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마도 너무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질투심이 만들어 낸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프리네(Phryne)는 고향을 떠나 주로 아테네에서 살았으며, 빼어난 미모와 재능을 지녔고, 정치, 문화, 예술 등의 교양을 갖춘 헤타이라(Hetaira)라고 불리는 고급 창녀였다.
헤타이라(Hetaira)는 그리스어로 ‘연인’이라는 뜻으로 품위 높은 교양과 지식을 겸비한 매춘부를 의미한다. 조선시대 황진이를 연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매춘부라 하지만 당시엔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애첩 역시 헤타이라(Hetaira) 출신일 정도로 사회적 지위가 상당했으며, 가정을 가진 남성이 헤타이라(Hetaira) 침실을 찾는 것은 당시의 사회적 통념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와 재능을 이용해 많은 재산을 모으기도 했으며, 테베의 성벽을 재건할 때 “알렉산드로스대왕에 의해 파괴되고, 헤타이라(Hetaira) 프리네(Phryne)에 의해 복원되다.”라는 문구를 성벽 위에 새기는 조건으로 공사비를 부담하겠다고 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기원전340-330년, (로마시대복제품) -
여인의 숭고함과 소녀의 청순함 여성의 관능미 모두를 갖춘 그녀는 당시 예술가들의 시선을 한데 모았고,
당대의 유명한 그리스 조각가 프락시텔레스(Praxitilles)가 미의 여신인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여신상을 제작할 때 그녀를 모델로 하여 조각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 아프로디테는 헤타이라(Hetaira) 프리네(Phryne)의 몸을 빌려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프리네(Phryne)는 아마도 전 세계 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웠던 여인이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는 세계 최초의 민주국가이며 또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였다.
여성의 존재가치가 중요시되지 않는 환경에서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프리네(Phryne)는 직업적으로 남자를 상대하는 헤타이라(Hetaira) 신분이지만,
당시 남성들만의 특권인 정치 사회 문화 등의 토론과 철학적 논의에 주저 없이 도전했으며 높은 품격을 지닌 자존심 강한 여성이었다.
뛰어난 미색으로 그리스를 사로잡은 그녀는 아테네 남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아무나 그녀를 가질 수는 없었다.
그녀는 품위를 철저히 유지했으며, 아무리 돈 많고 권력이 있는 남자라도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절대로 상대해 주지 않았다.
항상 선택받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그녀의 주변은 늘 그리스 최고의 엘리트들인 정치가 시인 사상가 예술인들이 서성거렸고, 그들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었다.
그녀의 이러한 인기는 많은 남성들로부터의 압력으로 작용했고 결국 화를 부르고 만다.
- Phryne on the Poseidon's celebration in Eleusis - 1894 -
고대 그리스의 가장 성대한 종교 행사로 엘레우시스 신비 의식(Eleusinian Mysteries) 이라는 연례행사가 있었는데,
이 의식이 거행되던 어느 날 바다의신 포세이돈 축제에서 프리네(Phryne)가 발가벗은 몸으로 머리를 늘어트린 채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가 비너스를 표방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당시 이 광경을 바라본 화가 아펠레스는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아프로디테 아나디오메네’ 와 ‘바다에서 솟아나는 아프로디테’라는 불후의 두 대작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행위를 목격한 당시의 고매한 도덕주의자 에우티아스(Euthias)가 그녀를 신성 모독죄로 고발했다.
성스러운 여신을 창녀 취급해 신성을 모독 했다는 것이 고발의 요지다.
당시의 신성모독은 그리스 최고의 범죄이며 그것은 곧 사형을 의미했다.
이 일이 있기 전 도덕주의자 에우티아스(Euthias)는 프리네(Phryne)에게 마음을 빼앗겨 그녀를 간절히 원했지만 거절당하자, 앙심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갖지 못할 바엔 남도 갖지 못하게 하겠다는 무서운 복수심이 불러낸 사건이었다.
결국 프리네(Phryne)가 법정에서고, 그녀의 애인이며 정치가이자 웅변가였던 히페레이데스(Hypereides)가 변호를 맡았으나 실정법상 무죄 판결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했는지 그는 배심원들의 심미적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법정에서 “신은 저 여인의 아름다운 몸을 빌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따라서 신의 의지가 깃든 저 여인을 어찌 죽일 수 있겠는가! 이 여인이 자신의 아름다운 몸을 보인 것은 신성모독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몸을 빚으신 신의 위대함을 보인 것이다.” 하며 배심원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마치 신상 제막식을 하듯 그녀의 가운을 벗겨 그 신비하고 아름다운 몸을 공개했다.
- Phryne, Elias Robert -
그녀의 알몸을 본 배심원들은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으며, 경탄을 금치 못한 나머지 찬사로 가득 찬 토론을 거친다.
긴 시간 열띤 토론 끝에 그녀에게 사상 유례가 없는 무죄를 선고한다.
배심원들의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현존하는 언어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저 아름다움은 신의 의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저 신적인 아름다운 여인은 선악의 피안에 서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저 여인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한낱 피조물이 만들어 낸 법이나 기준은 효력을 잃는다. 그러므로 무죄를 선고한다.]
신성한 장소에서 옷을 벗었다는 이유로 기소된 그녀가 또 다른 신성한 장소에서 알몸을 드러냄으로써 목숨을 건진 것이다.
한마디로 예쁜 여자는 무슨 짓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여인들이 성형수술대에 오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자르고 붙이고 깎아내도 아프로디테는 되지 않는다.
돌은 아무리 갈고 닦아도 다이아몬드 될 수 없듯이 말이다.
후에 그리스 의회는 법정에서 옷을 벗을 수 없다는 법을 발의했다는 설이 있다.
어데서 많이 접해 본 듯한 낯설지 않은 발상이 아닌가. ㅋㅋ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Jean Leon Gerom 1824~1904)은 그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이 극적인 장면을 묘사했다. 원래의 기록에는 프리네(Phryne)가 가슴만 보여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화가인 제롬(Gerome)은 그림에서 그녀의 전신을 노출 시켰으며 얼굴을 가려 그녀의 몸매를 더욱 드러나도록 극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프리네(Phryne)의 몸은 신비롭게 발광하고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법정 왼쪽 끝 어둡고 구석진 곳에는 그녀를 신성 모독죄로 기소한 에우티아스(Euthias)가 프리네(Phryne)의 가운에 가려 마치 커튼 뒤에 숨어있는 비열한 고발자처럼 묘사되어 있다.
마치 그가 죄인이 된 것처럼....
- 이 글은 전해오는 문헌들과 자료를 인용 재구성하여 작성한 것이다. -
2013년 6월 11일 열운(洌雲)이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