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팔백마흔아홉 번째
헌 옷 수거함
오래전 어렵게 사는 친척이 있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행색이 몹시 초라했습니다. 후줄근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였습니다. 처음에는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가족들을 보니 정말 돈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친척들 집을 다니며 입지 않는 옷들을 거둬 가져다주었습니다. 매우 고마워했습니다. 아이들은 춤을 추듯이 반가워했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꼭 필요한 옷만 사는, 거의 새 옷을 사지 않는 버릇이 생긴 것 같습니다. 집 앞에 헌 옷 수거함이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어느 업체에서 수거해갑니다. 대개는 어렵게 사는 나라에 수출한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입을 만한 옷이라는 얘기지요. 그렇지만 유행이 지나서, 조금 낡아서 후줄근해 보일까 봐 거기에 버려집니다. 옷의 기원에 대한 기록은 4~5만 년 전이나 된답니다. 사냥한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해 입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멋으로, 품위 때문이 아니라 신체를 보호하려는 게 옷의 목적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아담과 하와가 자기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가리려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해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를 덮어주시는 의미로 하나님이 가죽옷을 입혀 주십니다. 인간은 자기의 수치를 감추기 위해 옷을 입었고,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덮어주시기 위해 옷을 입히셨습니다. 그런 옷이 이제는 나를 멋있는 사람으로 치장하고 품위를 내세우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옷이 남아돕니다. 가려야 할 수치가 많은 모양입니다. 농사짓는 호탁이 형은 옷을 버릴 일이 없을 겁니다. 농사짓는 사람이 유행 따라 멋진 옷을 입고 농사지을 리 없으니 말입니다. 별로 옷을 사지 않는 내 옷장에 있는 옷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다 입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 양말은 사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