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8일(주)
* 시작 기도
주님...
11월의 마지막 주일 아침을 맞습니다.
이제 올해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네요.
세월이 참 빠름을 새삼 느낍니다.
세월에 흐름에 같이 맞장구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을 품은 하박국선지자와 같이 그 민족을 향한 열정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죽어가는 주의 백성들을 바라보며 탄식을 하는 그 마음을 주시어 우리 주님을 닮은 자로 오늘을 살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으로 조명하여 주옵소서.
나의 거짓된 겉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오직 주의 영으로 새로워진 속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공동체 예배를 통하여 주를 기뻐하며 함께 예배하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합 2:1-11
제목 :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1.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2.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5. 그는 술을 즐기며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스올처럼 자기의 욕심을 넓히며 또 그는 사망 같아서 족한 줄을 모르고 자기에게로 여러 나라를 모으며 여러 백성을 모으나니
6. 그 무리가 다 속담으로 그를 평론하며 조롱하는 시로 그를 풍자하지 않겠느냐? 곧 이르기를 화 있을진저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는 자여 언제까지 이르겠느냐? 볼로 잡은 것으로 무겁게 짐 진 자여
7. 너를 억누를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지 않겠느냐? 너를 괴롭힐 자들이 깨어나지 않겠느냐? 네가 그들에게 노략을 당하지 않겠느냐?
8.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요 또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
9.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0. 네가 많은 민족을 멸한 것이 네 집에 욕을 부르며 네 영혼에게 죄를 범하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담에서 돌이 부르짖고 집에서 들보가 응답하리라.
* 나의 묵상
B.C 7세기말 남유다의 시대상은 매우 암울하였다.
요시아 왕에게 기대했던 다윗 왕국의 재건은 무산되고 애굽과 바벨론의 틈에 끼어 약탈을 당하였다.
무엇보다 영적 부흥의 불길도 꺼져가고 신앙은 형식뿐 급속이 쇠락하였다.
선지자 하박국은 믿는 자, 이스라엘의 악행으로 인해 하나님께 탄원한다.
이에 하나님은 무도하고 잔인한 바벨론을 통해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하지만 하박국은 하나님의 심판이 결코 사망에 이르지 아님을 확신한다.
창세전부터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거룩하시며 심판을 통해 악을 제거하고 공의를 세우실 것을 믿는다(심판 - 히, 미쉬파트, 교정하다의 의미, 시 94:15).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자행하는 강포와 폭력은 극에 달한다.
심판의 도구일 뿐인 바벨론은 스스로 교만하고 무지하여 이스라엘에게서 탈취한 것으로 기뻐한다.
마치 그물로 바다 고기를 낚은 듯이 즐거워하고 그 그물에게 희생 제사를 드리는 죄악을 저지른다.
하여 하박국은 이 일로 인해 다시 탄식하며 부르짖고 하나님의 응답을 구한다(1절).
여호와께서 하박국에게 계시(묵시)를 주시고 그것을 돌판 위에 새겨 달려가면서도 쉽게 읽을 수 있게 하라고 명하신다(2절).
이 계시는 정한 때가 있으며 그 때가 속히 이르겠고 거짓되지 아니하다(3절).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기 때문이다(3절).
계시의 내용은 지금 이스라엘에게 강포를 행하는 바벨론이 멸망한다는 것이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잠시 쓰임 받을 뿐, 그들의 악행대로 심판을 받고 멸망에 이를 것이다.
바벨론 사람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 정직함이 없다.
그러나 의인은 그의 믿음(신실함)으로 살 것이다(4절).
곧 의인은 바벨론의 교만과 강포에도 불구하고 계시를 그대로 믿는 믿음으로 살 것이다.
술을 즐기는 바벨론은 거짓되고 교만하여 가만히 있지 않는다(5절).
스올(무덤)처럼 자기 욕심을 키울 뿐 사망같이 만족을 모르고 여러 나라와 여러 민족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5절).
하지만 그에게 사로잡힌 모든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말로 그를 풍자하고 조롱할 것이다.
(6절, 쉬운성경) 너희 것이 아닌 것을 모으는 자들아, 너희가 얼마나 오랫동안 쌓아놓을 것이냐? 이제 너희가 탄압하고 강탈했던 것에 대한 대가를 받을 것이다.
바벨론을 억누를 자들이 갑자기 일어나고 그를 괴롭히는 자들이 깨어나 그를 약탈한다(7절).
노략질한 바벨론이 노략질을 당하는 것은 그가 사람의 피를 흘렸고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하였기 때문이다(8절).
재앙을 피하기 위해 높은 곳에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그에게 화가 미친다(9절).
그가 스올같이 욕심을 부리고 사망같이 만족을 모르고 탐심에 가득한 것은 결국 재앙을 면하기 위함이다.
여러 나라를 취한 것이 도리어 그의 집에 욕과 화를 부르고 그의 생명을 잃게 할 것이다(10절).
성벽의 돌들도 그를 향해 부르짖으며 천장을 떠받치는 들보가 그의 잘못을 증언할 것이다(11절).
(4절)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기서 의인은 바벨론에 의해 심판을 받고 있는 한 민족 이스라엘 공동체를 말한다.
이스라엘은 심판을 받으나 결국 의로 다시 세워지는 의인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되 멸망에 이르는 심판이 아니라 의로 세우기 위한 심판 곧 징계이다(히, 미쉬파트).
바벨론은 심판으로 인해 ‘죽을 것’이나 이스라엘은 자신의 신실함으로 인해 ‘살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현재 집행되고 있는 심판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공의를 실현하신다는 말씀을 믿어야 한다.
혼돈과 곤궁의 해결책은 악인이 의인을 치는 것 곧 보이는 상황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에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믿음은 하나님의 신실함에서 나온다.
그래서 구약의 헬라어 성경인 70인역에서는 “나(하나님)의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나는 바벨론에 의해 심판을 받는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다.
이 심판은 나의 잘못과 교만 그리고 나의 정욕의 죄로 인하여 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화를 당하는 이스라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치는 바벨론에 빗댈 수 있는 자이기도 하다.
나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주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고 아픔을 겪었는가 말이다.
나의 작은 말 실수,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동 하나가 바로 주를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을 넘어지게 하였던 것이다.
나는 진짜로 주님을 바르게 믿는가?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과 같이 왜 악인들은 잘 되고, 의인들은 고난을 받는가에 대한 의문은 없는가?
나는 복음을 알기 전에는 이런 질문에 머리가 깨질 정도로 고민이 많았다.
그것은 나의 믿음과 신앙의 종착역이 이곳으로만 알았고 또한 영생은 죽어서 가는 천국으로만 알았기에 나의 영적 지평이 열리지 않았던 이유다.
죽어서 가는 천국, 그러나 이 세상이 주는 향락이 좋기에 빨리 죽기는 싫고, 죽어서 천국은 가야겠기에 아주 자기중심적인 신앙으로 똘똘 뭉쳐서 살아왔던 자가 바로 나였다.
어느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모 신학교의 총장인 여자 목사님은 신학생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하는데 성경본문 하나 읽어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돈 이야기를 하다가 끝냈다.
그는 외국에도 수십억의 재산을 빼돌려 놓기까지 하였다.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신학생이나 후배 목사들은 그 선배 목
사가 이 땅에서 부자로 살고 죽어서도 천국에 간 것을 믿어 본
인들도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육신으로는 부자로 살고, 죽어서는 천국에 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면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인생의 목표라면 그 어디에서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볼 수 있단 말인가?
예수님은 부자나 가난한 자, 많이 배운 자나 못 배운 자, 나이가 든 자나 어린 자에 상관없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생 얻은 자로 살아가는 것은 물질의 있고 없음에 관계없이 오늘도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 하나님 나라는 날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이다.
육신으로 사는 이 세상은 고난이 없을 수 없다.
죄로 인함이든지, 연단을 위함이든지 고난은 필연적이다.
어찌하든 내가 당하는 어떤 고난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믿고 그 고난을 담담하게 수용하여 살아가는 것이 참된 복음의 삶인 것이다.
나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사는 것 그것이 진짜 복음의 삶이요 영생의 삶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내 안에도 육신으로는 부자로 살고 싶고, 죽어서는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육신의 부자는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또한 절감합니다.
하여 내게 주신 분복을 감사로 받게 하시고 내가 어떠하든지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복음의 사람, 영생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나 모든 사람에게 심판이 있음을 각성하고 오늘도 주님 앞에서 겸허히 살아가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육신이 연약하여 주님의 은혜의 손길을 구하는 형제를 긍휼히 여기사 권능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어 이런 체험을 통하여 견고한 믿음의 아들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의 날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이들에게 하늘의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