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정책 패러다임 전환한다
그간의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 미만인 유일한 국가(2018년 0.98명)이며 출생아 수도 30만명이 위협받는 수준이다. 반면 기대수명 증가 등으로 고령화사회, 고령사회를 지나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문제는 향후 인구구조 변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3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장래인구특별추계’에 따르면 총인구 감소시점은 기존 2032년에서 2029년으로 이전 추계(2016년)보다 3년 빨라지고,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본격적으로 고령층에 접어드는 2020년부터는 생산연령인구의 감소세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2030년 학령인구는 2017년 대비 약 240만명 감소할 전망인 반면, 고령인구는 2033년 1,427만명으로 2017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출산율 제고정책에 더해 인구구조 변화 영향
점검·대응하는 투트랙 전략
이러한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는 고용·교육·국방·지역·복지·재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사회·경제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생산연령인구의 감소는 노동공급을 줄이고 성장잠재력 약화를 초래한다. LG경제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2020년대 노동의 성장기여도는 –0.4~–0.5%p를 기록할 전망이다.
학령인구 및 병역의무자 감소는 인구증가를 전제로 설계된 기존의 교육·징병 시스템에 커다란 도전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며, 지역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공동화 현상은 적절한 공공·생활 서비스 공급에 사각지대를 발생시킬 것이다. 또한 공적연금이 충분히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령인구가 급증하면서 노후빈곤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요양·돌봄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복지지출 규모와 비중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해 국가재정에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다.
이처럼 인구구조 변화는 국가경쟁력, 나아가 국가의 존망(存亡)과도 직결되는 엄중한 문제로 정책적 대응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그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중심으로 ‘출산율 제고’라는 인구충격 완화에 정책역량을 집중해왔다. 다만 가까운 미래에 출산율 급락 추세를 반전시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기존의 출산율 제고정책만으로는 눈앞에 닥친 인구구조 문제 대응에 한계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에 정부는 인구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 출산·양육 부담 완화, 보육·돌봄 서비스 확충 등 핵심적인 출산율 제고정책을 꾸준히 추진함과 동시에, 인구구조 변화가 우리 사회·경제 각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투트랙(two-track) 정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전자가 인구구조 변화 추세를 거스르는(against) 정책이라면, 후자는 인구구조 변화를 주어진 것으로 보고 그에 맞게 우리 사회·경제 시스템을 바꾸고자 하는 적응력(adaptability) 강화정책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19년 4월, 기획재정부 1차관이 팀장을 맡고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등 14개 관계부처와 10개 국책연구기관이 참여하는 범부처 차원의 ‘인구정책TF’를 출범시켰다.
또한 TF 산하에 고용반, 재정반, 복지반, 교육반 등 10개의 분야별 작업반(작업반장: 주관부처 1급)을 설치해 소관 분야 정책과제를 개발하고 구체화하도록 했다.
논의과제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추진과제와 중복되지 않는 과제, 인구변화 대응에 직접 관련되는 핵심적·구조적 과제, 재정투입형 과제보다는 제도개선 과제 중심으로 선정하기로 했으며, 효율적인 논의를 위해 과제 수는 각 작업반별 2개 내외로 한정하도록 했다.
TF는 출범 후 약 3개월에 걸쳐 본회의 6차례, 분야별 작업반회의 40여회를 개최해 집중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4대 핵심전략과 20개 정책과제로 구성된 ‘인구구조 변화 대응방안’을 마련했으며 2019년 하반기 경제활력대책회의에 상정·발표했다.
인구정책TF, 4대 핵심전략과 20개 정책과제 제시
4대 핵심전략 중...
첫 번째는 ‘생산연령인구 확충’ 방안이다.
여기에는 고령자와 외국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이 포함된다.
우선 고령자 고용연장을 위해 2020년 ‘60세 이상 고령자고용지원금’을 근로자 1인당 분기별 27만원에서 30만원으로 인상하고,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을 신설해 자발적으로 정년 후 고령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를 지원한다.
또한 기업이 재고용, 정년연장, 정년폐지 등 다양한 고용연장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계속고용제도’ 도입을 2022년부터 검토한다.
외국인력 활용을 위해 해외 ‘우수인재 비자’를 신설하고, 체류외국인 증가와 외국동포 활용 등 이민정책 환경변화에 대응해 「출입국관리법」, 「국적법」 등 산재된 법규를 종합해 ‘통합적 이민관리법 체계’를 구축한다.
두 번째 전략은 ‘절대인구 감소 충격 완화’ 방안이다.
먼저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해 교원수급기준을 새로 마련하는 한편, 이를 교원양성기관 평가와 연계해 교원양성 규모를 조정할 계획이다.
또한 공유형·거점형·캠퍼스형 등 효율적인 소규모 학교 운영모델을 개발하고, 유휴 학교시설 복합화 사업도 추진한다.
국방 분야에서는 첨단과학기술 중심의 전력구조로 개편하고 상비병력은 50만명 수준으로 감축한다. 정원구조는 고숙련 중간간부 위주로 개편해 기존 피라미드형 인력구조를 항아리형으로 재설계한다.
부족한 군 인력 충원을 위해 전환복무를 폐지하고 대체복무 규모도 점진적으로 축소할 예정이다.
지역공동화에 대응해서는 공공시설을 거점지역에 집약하고 주변지역과 순환·연결체계를 구축해 인구감소 지역에도 국민생활 최소수준(national minimum)의 공공·생활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며,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대상을 기존의 취약계층 위주에서 한부모 가구, 노인 가구, 1인 가구, 장애인 가구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세 번째 전략은 ‘고령인구 증가 대응’ 방안이다.
우선 전문성을 갖춘 중·장년 퇴직인력의 창업을 지원하고 고령근로자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생산·제조공정의 스마트화·디지털화를 추진한다.
또한 베이비부머의 본격적인 고령층 진입에 발맞춰 ‘고령친화신산업 창출전략’을 수립할 예정이다.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위해서는 주택연금의 가입연령을 인하(60세→55세)하고, 가입주택 가격상한을 현실화(시가 9억원→공시가 9억원)하며, 근로자의 퇴직·개인연금 가입을 촉진하고 수익률을 제고하며 장기 연금수령을 유도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국토 분야에서는 고령자·1인 가구 증가 등을 반영해 고령자 주택과 소형주택의 공급을 확대하는 한편, ‘고령친화도시조성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복지지출 증가 관리’ 방안이다.
먼저 재정관리시스템 개선을 위해 조기에 장기재정전망에 착수하고 한국적 상황에 맞는 유연한 재정준칙 도입을 검토한다.
노인복지정책의 지속 가능성 제고를 위해서는 소득, 일자리, 돌봄 등 7개 영역으로 구분해 장기적인 개선방향을 모색하기로 했다.
또한 고령화에 따른 수급자 급증으로 장기요양보험의 재정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어 불필요한 지출요인을 줄여나가고 다양한 수익 확충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인구구조 변화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구조적 위협요인이며, 지금이야말로 인구문제 해결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지속적인 노력을 펼쳐나가야 할 때다.
이에 정부는 조만간 ‘제2기 인구정책TF’를 출범시켜 인구구조 측면에서 중요하나 1기 TF에서 다루지 못한 과제, 구체화가 필요한 과제, 국민생활에 밀접한 과제를 중심으로 논의해나갈 예정이다.
김영민 기획재정부 인구경제과장 2020년 0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