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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시스호 항해기
(자유의 바다) 1부. 항해시대가 열리다.
인간은 모험을 하면서 진리를 깨닫고 자연의 신비를 배우며 지식을 갖추며 힘을 기르게 된다. 인간은 인생에서 단 한 번도 모험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인간의 여생 자체가 모험이다. 모험과 자유가 있는 한 인류는 영원할 것이다.
눈을 감아보자. 그리고 상상해보자. 그 아득한 과거를 회상해보자.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뒤로 기억을 더듬어 보자.
우리 인류가 본격적으로 지구에 온 세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기이다. 바로 15세기 초이다. 돛을 올리고 닻을 올리며 노를 저어 저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그런 영화 같은 장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우리와 친숙한 영웅들의 이름도 들을 수 있다. 콜럼버스, 마르코 폴로, 마젤란 이런 유명 인사들이 명성을 날리던 시기이다.
바로 호기심과 모험 그리고 신화의 시기 대항해시대이다. 15세기 초에서 17세기 중순까지 우리 인류가 미지의 대양과 저 너머의 대륙을 찾기 위해 또는 황금과 보석 등을 발견하고 차지하기 위한 경쟁의 시기라고 할 수도 있겠다. 대항해시대 항해가들 덕분에 현재의 지도가 있었고 또한 현재의 기술력이 있게 되었다.
대항해시대의 서막을 연 탐험가는 마르코 폴로였다. 그는 동양의 신비와 수로, 향료 등을 유럽에 보고해 유럽인들의 관심을 가지게 했다. 아시아와 교류할 더 가까운 수로를 찾기 위해 열린 것이 대항해시대이다. 처음으로 항해 사업에 뛰어든 나라는 포르투갈 이었다.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는 탐험선 ‘에느바스’ 호에게 아프리카 서해안으로 탐험 항해를 명령 하게 된다. 엔리케 왕자의 첫 목표는 포르투갈이 아시아와 교역 즉 교류 할 수 있는 해양교역로를 찾고, 아프리카 대륙 어딘가에 있을 강력한 기독교 군주 ‘프레스터 존’과 만나는 것이었다. 이것은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당시 항해술과 지도를 가지고는 절대 미신이 난무 하는 아프리카 남단을 항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탐험대는 해냈다.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고 미미한 확률을 가지고 탐험선에 몸을 맡긴 채 아프리카의 최남단인 희망봉에 도달해 항해의 가능성을 알렸다. 이에 관심을 보인 스페인 왕실 이사벨라 여왕은 제노바 출신의 선원 콜럼버스의 주장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대서양을 횡단에 더 나아가면 아시아에 도달하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1492년 스페인 왕실의 원조를 얻어내고 캐랙선인 ‘산타 마리아’호와 나머지 두 캐라벨선을 이끌고 서쪽으로 항해하기 시작했다. 콜럼버스는 중간에 선원 반란 식수 부족 등 난해한 문제들을 이겨내고 결국엔 서인도 제도에 도착하게 된다. 처음 도착한 섬이 바로 산살바도르 섬이다. 당시엔 시스나 섬이라 불리었다. 스페인이 콜럼버스를 통하여 성공 하게 되자 점점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항해 사업에 소매를 걷어 붙이고 나서기 시작했다. 콜럼버스는 이에 힘을 입어 더 많은 섬들을 계속 해서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디오 들이 사는 섬, 쿠바 섬에도 갔고 그곳에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콜럼버스는 그 곳에 새 식민지도 세워서 막대한 이익을 긁어 모았다. 그는 스페인에서 영웅으로 불리우기 시작하고 왕실에서 내리는 직위까지 받게 되었다. 콜럼버스의 뒤를 이어서 바스코 다 가마, 마젤란등 많은 탐험가들이 속출했다.
한참 에스파냐가 잘 되고 있을 때 다른 나라들이 스페인이 갑자기 왕성하게 성장하는 걸 막기 위해서 사략선 즉 국가에서 해적질을 해도 된다고 허가를 내려서 해적들에게 해적질을 하게 허락한 배이다. 단 허가증에 써 있는 나라만 공격하는 허가 해적집단이다. 사략선들은 스페인 황금, 보물선들을 빠르고 가벼운 사략선을 이용해 치고 빠지는 기술로 많은 보물을 탈취해 이익을 나눠 허가증을 준 나라와 함께 나눠 가졌다.
이런 사략선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는 잉글랜드 왕국이었다. 잉글랜드 왕국은 그 동안 신대륙 발견에는 신경을 써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엔 한 번 신대륙 발견에도 힘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신대륙 발견 때문에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왕국에서 많은 이익을 벌지 않았는가. 잉글랜드 왕국은 해군들을 조직하여 정기적으로 대서양 횡단을 시도해 보았지만 한 선대도 돌아오지 않았다. 영국은 번번한 전쟁 때문에 항해술에 아직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왕이 헨리 7세로 바뀌었다. 보즈워스 전투에서 장미전쟁을 종식시킴과 동시에 튜더왕조의 개조로서 즉위하였고 내란으로 혼란한 국내질서를 바로잡고 봉건가신단을 해산시켜 귀족세력을 약화시킨 인물이다. 또한 재정을 튼튼히 하였으며, 왕권을 신장시켜 영국의 절대왕정의 기초를 굳혔다. 헨리 7세는 15세기에 들어와 왕권과 국가안보가 안정되자 군대를 국내에 주둔 시키고 시대를 따라 항해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야심이 많은 인물로 유명했다.
그는 콜럼버스와 바스코 다 가마등 많은 탐험가들이 신대륙을 발견하는 것을 보고서 배가 아파 미칠 지경이었다. 헨리 7세는 유능한 첩자를 고용하여 당장 현재 영국과 계약이 되어있는 사략선들의 해적 허가서를 불태우고 그들을 일단 해군으로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첩자들은 허가서를 불태우고 그들이 모아온 이익금도 모두 은행에 도로 집어넣어버렸다. 몇 개월 뒤 해적들은 자신들의 허가서와 이익금을 영국이 없애버린 것을 알아채고 분노에 휩싸였다. 사략선들은 대서양에서 벗어나 다시 지중해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중해 연안에 정박하여 해적질을 일삼았으며 그에 대부분은 영국해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영국은 해군들을 소환하여 맞써 싸우게 하였고 양쪽 다 많은 피해를 입었다. 프랑스가 이에 개입하여 영국군을 도와 해적선을 몰아내니 약하고 조그마한 사략선들은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렇게 작거나 보통 규모의 해적들은 대항해시대에서 막을 내리고 이용만 당하다 사라진 불쌍한 존재였다. 하지만 규모가 크고 악명 높은 해적들은 사략선 대신 거대한 갈레온 선을 타고 다니면서 여러 보물선들과 해군선들을 격파하며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누비고 다녔다. 스페인은 콜럼버스가 식민지를 개척하고 보물들을 가져오자 재정이 두둑해져 해군을 출항시켜서 카리브해의 해적단들을 물리치러 해군을 소환했다.
하지만 이 첫 번째 원정은 강한 태풍 때문에 무산이 되고 두 번째 원정에서는 23척의 함대가 카리브해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제일 처음 만난 해적단은 악명 높은 검은수염 이었다. 그는 수염마다 약한 불을 붙혀 연기가 많이 나게 해서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신비주의 비슷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칼솜씨와 사격 솜씨가 뛰어난 그의 해적단은 해군들을 가볍게 격파하고 남은 해군들까지 추격하여 약탈에 성공하였다. 스페인 해군은 아쉬움을 남기고 해적 소탕 원정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막대한 손해를 남기고 스페인은 다시 식민지 활동과 향료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 편 영국의 ‘마지네코’ 해군편대는 카리브해의 해적인 키드 선장을 잡아 의기양양해 있었다. 그들은 카리브해로 진입하여 여러 섬들을 탐험하고 기록을 하여 영국으로 귀환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스페인 해군과 마주쳐 한바탕 전투를 벌였다. 스페인 해군은 영국군을 해적으로 잘못 알고 포격을 개시 한 것이었다. 영국 해군도 스페인 해군이 해적인 줄 알고 포격을 개시 하였다. 스페인 해군은 해적을 잡으려고 일부러 스페인 기를 매달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 때문에 영국 해군들은 스페인 해군이 해적인 줄 알고 계속 포격을 개시했다. 한 편 영국기를 본 스페인군은 포격을 멈추었지만 영국군이 멈추지 않자 백병전으로 들어가 영국군을 초토화 시켰다. 영국은 함대가 돌아오지 않자 진상을 파악해보니 스페인 해군에게 격파 당한 사실을 알고 헨리 7세는 분노한다. 이제까지 영국 해군이 처음으로 신대륙에 대한 기록을 가져오는데 그 것 마저 무산 시킨 것이다.
그는 병력을 모집하여 프랑스에 상륙하여 스페인왕국으로 쳐들어갔다. 영국군은 돌격 중 프랑스 시민들을 약탈함으로써 프랑스와 다시 한 번 갈등을 맺게 된다. 영국군과 스페인군이 드디어 프랑스 서남쪽에서 맞닥뜨려 전쟁을 벌였다. 스페인군이 밀고 올라왔지만 영국군도 거세게 밀어 붙였다. 결국 조금씩 밀려나는 스페인군이 진 거였지만 그때 프랑스군이 뒤에서 영국군을 기습을 강행하였다. 도저히 자신의 나라에서 난동을 피우는 것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전쟁은 영국군의 패배로 끝나고 영국은 2년 동안 프랑스 해군과 스페인 해군들에게 해상로가 봉쇄되었다. 하지만 영국의 공물과 화해서로 다시금 자유를 얻게 되었다.
헨리 7세는 다시 영국을 가다듬고 정말로 탐험호를 뽑기로 결정했다. 그는 유럽에서 최고의 선박 건조국인 그리스에게 배 한척을 요구 하였다. 그리스는 많은 돈을 요구 하였고 영국은 그를 선뜻 받아 들였다. 그렇게 배는 구하게 되었고 선원들을 뽑을 차례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1506년 스페인의 여왕 이사벨라 여왕과 스페인의 모험가 콜럼버스가 세상을 뜨자 스페인은 충격에 휩싸인다. 모든 나라들이 이때가 기회다 싶어 모두들 돛을 펴고 미지의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스페인의 눈치만 보아 오던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도 식민지 사업에 뛰어 들었다. 헨리 7세는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진행하던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이제 모든 나라들이 돛을 펴고 닻을 올리고 미지의 바다를 본격적으로 탐험하기 시작한다. 드디어 우여곡절 끝에 기나긴 300년동안의 대항해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과 많은 영웅들을 탄생시킨 바로 그 시기가 말이다.
여생은 일종의 탐험이어서 신대륙을 탐험하고 개척하는 것과 같다.
-듀이 Du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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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우시스호 입니다.
아 이 글이 말머리 안달아서 한 번 리턴됐네요;;
이런 일 없도록 주의 하겠습니다!
다음엔 더 유익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첫댓글 저 왔어요!!ㅎㅎ 와우~너무 길어서 눈 돌아갈뻔;;잼있게 보고 갑니다~~
댓글 너무 감사해요. 더욱 노력할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