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역사상 가장 화려한 게임 쇼 얘기가 있다. 1 천만 달러 짜리 상금이 걸린 게임이다. 사실 그 돈은 범인(凡人)에게는 평생 벌어도 못 만질 액수의 돈일 테며, 누구 말 맞다나 그야말로 ‘팔자를 고칠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 내가
가장 근접한 당첨자가 됐다면, 그리고 이것이 실제 상황이라면 소감이 어떤가?
그런데 조건이 있다. 단, 다음 목록 중 한 가지 항목에 동의하여야 한다! 다음은 9 가지 조건 목록표다. “당신의 자녀를 입양 보내라.”, “일주일 동안 매춘을 하라.”, “당신의 국적을 포기하라.”, “신앙을 떠나라.”, “가족을 저버리라.”, “모르는 사람을 죽이라.”, “성전환 수술을 받으라.”, “배우자와 이혼하라.”, “당신의 인종을 바꾸라.” 이것이 목록이다. 나는 어떤 항목을 고를 것인가?
설문 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놀라운 사실은 응답자의 7%가 돈을 위해 살인도 하겠다고 말했고, 6%는 인종을 바꾸겠다고 했으며, 4%는 성전환 수술까지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내용의 또 다른 설문 조사(한 번에 여러 가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을 때)에서는, 25%는 “가족을 버릴 것이다.”, 25%는 “신앙을 떠날 것이다.”, 23%는 “일주일 동안 매춘 행위를 할 것이다.”, 16%는 “국적을 포기할 것이다.”, 16%는 “배우자와 이혼할 것이다.”, 3%는 “아이들을 입양 기관에 내놓을 것이다” 라고 대답을 했단다, 1 천만 달러를 위해서. 물론 믿고 싶지 않다.
저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항목에 응답했는가 보다 내게 더 놀라운 사실은 피 설문자 대부분이 그 질문에 응답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응답자의 2/3 가 적어도 한 가지 사항에, 어떤 이들은 여러 가지에 동의했다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저들은 돈을 소유하기 위해 기꺼이 요구되는 어처구니없는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그대라면 어떻게 했겠는가?
물론, “그건 현실성이 희박한 얘기예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라고 말할 수 도 있다. 그렇다. 우리는 1 천만 달러를 제안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천 달러나, 백 달러, 혹은 십 달러를 차지할 기회는 있었지 않았는가! 정직하게 말하자면, 상금 액수는
같지 않았지만 선택 사항은 사실 동일했다. 이러한 사실이 우리를 난감하게 만든다. 우리는 1 천만 달러에도 훨씬 못 미치는 돈에 가족, 신앙, 양심, 또는 도덕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일 수도 있다!… 얼굴이 붉어진다.
아주 오래 전에 개인의 휴대전화가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못하고, 그래서 필요할 때마다 얼마의 동전을 넣고 근처의 공중전화를 사용할 때가 있었다. 시내전화는 10 원짜리 동전부터 시작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가격이 점점 비싸 졌고, 시외전화는 동전을 미리 동전 통에 넣은 액수에 해당하는 시간 만큼만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통화가 끝나면 거스름 돈이 나오거나, 돈이 모자라면 중간에 전화가 끊기곤 했었다. 그런데 간혹, 기본 요금의 동전을 넣고 시내통화를 했는데 수화기를 내려놓을 때 그 10 원짜리 동전이 도로 또르르 굴러 나오는 경우가 있다. 아니, 넣은 것 보다도 더 많이 동전 몇 개가 함께 굴러 나오기도 한다. 기계 고장이거나 계산 착오일 게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는 대단한 유혹을 받는다, 그 십 원 짜리 하나, 혹은 이십원에… 물론 보는 이가 없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할 일은 없다. 더구나, 돈만 뜯기고 통화가 안 되었던 경우도 간혹 있었으니 이 돈은 가져도 된다는 논리 정연한 이유가 뇌리를 스친다. 나는 그 십 원에 몇 번 양심을 팔았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부끄럽다.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이자까지 붙여서 그 전화회사에 돌려주며 용서를 구하고 싶다. 도둑질을 몇 번 한 나는 양심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자식들에게 쉽게 할 수 없었다. 물론, 덕분에 타인에게 너그러워지기는 했다, 나도 도둑놈인데 뭘, 하면서... 대가를 톡톡히 지불하며 사는 셈이다.
성경은 이것을 탐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지혜롭지 못한 자의 가치관 내지는 처신이라고 말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10). 그리스도인으로서 흔히, “왜 내게는 심령의 평안이 없을까!”, “왜 내 신앙에는 생기가 없을까!”, 혹은, “요즘 나는 왜 기도가 잘 되지 않을까?” 등등으로 의아해 하지만, 이유는 의외로 너무 간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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