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숫자 ‘8’은 무엇일까
지난 3월 10일이었다. 조선중앙TV는 김정은 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를 위해 김책공업종합대학을 찾은 모습을 방송하면서 이례적으로 김정은이 타고 온 차량의 번호판을 공개하였다. 김정은의 마이바흐 차량의 번호판은 바로 ‘7·27598’이었다.
김정은은 차량 번호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북미정상회담, 베트남 친선방문 당시에도 번호판 없는 차량을 탔었다. 그런데 그가 왜 북한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일에 타고 온 차량의 번호판 ‘7·27598’을 조선중앙TV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한 것일까.
일본 아사히신문에 의하면 2017년 10월부터 김정은은 고위급 간부들에게 ‘7·27’로 시작하는 차량 번호판을 주었다고 한다. ‘7·27’은 앞서 ‘7.27 담배’ 칼럼에서도 밝혔듯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체결일을 가리키는 날짜로 북한은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날이라며 ‘전승절’이라 부르고 기념한다.
그러나 ‘7·27’로 시작하는 차량번호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2010년 즈음으로 추정된다. 2010년 10월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공식등장한 뒤, 당 최고 간부들과 당 공용버스의 번호판 앞 세 자리를 ‘216’에서 ‘7·27’로 바꾸도록 명령했다고 중국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가 보도한 바 있다.
‘216’은 김정일의 생일인 2월 16일을 의미했다. 김정일의 전용차 번호판과 대남담당 차량 번호판은 모두 ‘216’으로 시작하였으며, 북한에서는 최고의 길수(吉數)로 여겨지는 ‘9’를 사용해 ‘216-9999’라는 번호판을 달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공식적으로 정권을 승계한 뒤 ‘216’을 전승절을 상징하는 ‘7·27’로 변경하였다. 여기에는 큰 의미가 있다. 김정은은 3남인 자신이 후계자로 지정되면서 흔들릴 수 있는 북한의 독재 정권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명분을 담은 번호판이 필요했다. 아버지의 생일을 상징하는 ‘216’에서 자신의 생일을 상징하는 숫자로 바꿀 수도 있었지만 김정은은 그런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김정은은 이번에도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을 카피했다. 김일성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체결하여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듯이, 자신도 김일성처럼 미국과의 전쟁에서 기필코 승리하겠다는 의미로 전승절을 상징하는 ‘7·27’을 차량의 앞 세 자리로 선택하고 북한 고위급 간부들에게 배포한 것이다.
이후 북한 고위급 간부들이 주로 주거하는 평양의 은덕촌 일대에는 최고급 수입차에 ‘7·27’ 차량번호를 달고 있는 차량이 급증하였고, 이 번호를 단 차량들은 각종 교통 통제를 받지 않는 등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하노이북미정상회담 직후인 3월 10일에 공개된 김정은 차량 번호 ‘7·27598’이 상징하는 의미가 밝혀진 바 없다. 앞의 세 자리인 ‘7·27’은 북한의 전승절을 상징하지만 뒤의 ‘598’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북한 제1호인 김정은이 탑승한 차량 번호에는 분명 강한 상징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김일성은 해방 후 조선8도에서 가장 기운이 셌다는 평안도 출신 무당 ‘맹호출림’에게서 “당신의 길운은 9와 통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북한의 모든 숫자는 ‘9’로 이어진다. 공화국 창건일도 1948년 9월 9일이고, 김정일의 생일, 2월 16일의 숫자를 모두 더하면 9가 된다. 김정은의 생일, 1월 8일도 모두 더하면 9가 된다. 김정은도 전통을 따라 ‘9’와 연관된 행보를 하였다. 2016년 5월 9일에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 취임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1년 후인 2017년 5월 9일은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이기도 하였다.
김정은의 차량번호 ‘7·27’은 북한의 전승절 7월 27일이며, 그 다음 숫자인 ‘59’는 자신이 노동당 위원장에 취임한 5월 9일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마지막 숫자 ‘8’은 무엇일까. 이 숫자에 대한 해석은 독자 분들에게 맡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