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다녀온지 거의 이주일이 다되어가서 기억을 불러 일으키기가 매우 힘이 든다. 사실은 특별히 '기억'이라고 부를 껀덕지가 있는 것도 거의 없기는 함. '아 그 날이 어린이 날이었지.' 라는 생각만이 계속 머리 속에서 맴돌았는데.. 왜 하필이면 어린이날 행사를 그곳에서 했는지, 그게 좋은지 나쁜지, 좋으면 왜 좋고 나쁘면 왜 나쁜지. 아니면 어린이날 행사를 그곳에서 했다는 것이 왜 이상한 무언가로 머리 속에 인지되어야만 하는지 이런 생각들도 했다. 어린이 동산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라는건 공간 혹은 그 장소에 특정한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다 따지고 들어가면 그렇지 않은 것도 없겠지만.
1. 형무소, 기념관, 박물관 뭐 이러한 것들은 제각기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 사이에 하나의 공통점을 뽑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기억의 장소'라고 이름을 붙여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그것도 단순히 기억의 장소라기 보다는 '기억에 대한 기억의 장소'로서 그러한 것이다. 내 기억이 아닌 어떤 것을 다시 기억하고자 하는 장소이니까. 지난 역사 혹은 과거에 대한 성찰을 하자는 거임.
'과거를 기억하자'라고 말할때에 사실 이보다 이상한 말도 없는 듯 함. 과거란 실재하는 것인지, 실재한다면 어떠한 형태로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모두들 달리 생각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이 '과거는 그 자체가 팩트들의 집합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아 그럼 너는 왜 어떻게 이 자리에 서 있느냐!'라고 물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받을만한 이들 중 누군가는 '과거는 무엇이고 현재는 무엇이기에 그리 말하는고. 나는 그것에 실체가 없다고 보노라. 단지 너희들이 과거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의 성격 즉, 과거성이라고 불리우는 어떤 것을 둘러싼 공기를 말하는 것이니라!' 라고 말을 할지도 모른다. '기억을 한다, 역사를 말한다'와 같은 것들은 어디까지나 과거성을 담보로 하여 현재의 나, 현재의 ㅇㅇ, 내일의 ㅇㅇ 등을 걸고 벌이는 하나의 도박판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굳이 과거성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키보드를 뚜두두둑하고 있는 순간에도 시간은 지나가고 있는데 도대체 어디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경계를 그을 것인지 명확치 못하기 때문임. 여튼 이럴수도 있고 저럴수도 있다는 말이지 말입니다.
아 그런데 솔직히 조금 헛소리 같기도 하다. 그을 수 없는 경계를 사실 우리는 언제나 긋고 있으니까. 기억이라는 단어에서부터 그런데. 기억이라는 말 부터가 과거의 어느 순간을 현재화하는 과정을 지칭하는 것이므로. 뭔가 꼬인 것 같은데 꼬여버린건 그냥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다시 이야기해보면 이런 기억도 단순히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기억과 저런 기억을 거칠게나마 나누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어렸을 적에 커튼을 찢어먹고 어머니께 매우 크게 혼이 나거나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역사화된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내가 커튼을 찢었었지'라고 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 같임. 그래서 아까도 '기억에 대한 기억'이라는 말을 썼음. 물론 이런 기억하기와 저런 기억하기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나의 기억도 정말로 명증한 것이라고 할 수 없으니. ㅎㅎ 방금 전에 밥을 먹었나, 안먹었나 하는 것도 계속 까먹으니 아무것도 믿으면 안됨.
요새 티비에서 나오는 광고 중에 87년 6월 항쟁의 당사자를 찾습니다~ 막 이런 것도 있던데 이런 것들을 역사화된 기억으로 분류해 보자. 이 말도 참 애매하지만. 그리고 기억에 대한 기억의 장소로서 존재하는, 우리가 방문했던 서대문 형무소 또한 역사화된 기억을 위한 것이겠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어떤 역사화된 기억의 장소로서 특정한 '목적', '가치', '당위'등을 부여받은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날 행사를 하고 있는 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내가 그곳에서 느끼고 있는 혹은 주입받는 특정한 '의도'이고, 그것이 나에게 '어린이날 즐'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아! 이런 곳에서 어린이날 행사도 하고 아주 뜻깊은 행동이로구만.'이라고 생각하시며 지나가는 어떤 할아버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여기서 어떤 특정한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가치'는 집단 혹은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주도적 권력체, 즉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임. '아, 민족적 자긍심 혹은 반일감정을 고취하여 이 나라를 한번 잘 이끌어 가보도록 합시다.' 라는 의도에서 말이다.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가 가지고 있는 과거성들 중에서 그 의도에 부합하는 조각들만을 끌어내어 조성한 것이 현재 남아 있는 서대문 형무소의 경관일게다. 이것을 뭐 '국운을 걸고 벌이는 한판 승부!'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어쨋든 그것에 영향을 줄 어떤 요인으로서는 기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것들은 정말 무수하게 많고. ㅎㅎ
(어린이날 행사 이야기를 잠깐만 다시 꺼내 보자면 나는 무언가 '엄숙함'을 기대하고 갔기 때문에 그의 저해요인인 '초딩' 행사를 하는걸 반가이 하지 않은 것 뿐이고, 행사에 있어서의 주체적 권력집단은 어린이날 행사를 그곳에서 함으로서 어린이들에게 기억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걸 의도했을 테니 '현존하는' 서대문 형무소와 어린이날 행사가 딱히 충돌하는 것은 아닌 듯! 어쩌면 나는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의도를 뛰어 넘어, 심지어는 불쾌하게 여기기까지한 위대한 사람일 수도 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좀 아니고 단지 그 '의도된 바'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무언가는 '초딩'들에 대한 그것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ㅠㅜ 초딩들에게는 일제에 대한 분노를, 어른들에게는 죽은 자에 대한 숙연함을. 으 그런데 나는 어른으로 분류되는 사람인가?;;)
으으 여튼 뭐 그렇다고 '서대문 형무소는 우리를 조작하는 도구로서 가능하므로 나쁘게 생각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하려는건 아님. 무슨 커뮤니케이션 개론 수업도 아니고 저항적/타협적/지배적 독해 능력등을 구분하여 기릅시다라고 하겠는가. ㅎㅎ
2. 분명히 그 장소는 감옥이었고,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나간 장소이다. '우리 민족'이라고 불리워지는 집단에 속했던 누군가들이 다른 덩어리들에 의해 해침을 당했던 곳일 게다.(민주화의 과정 속에서 나타난 부조리한 장면들은 차치해두고라도.) 그런데 계속 보고 있으면 정작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잘 보이지 않는 듯 하다. 기념관 안에 쓰여진 이름 몇글자? 그것이 다인가. ㅎㅎ 전쟁기념관, 서대문형무소, 독립기념관 등을 보면 뭔가 불공평한 것 같아서 말입니다. 민족 혹은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일본 혹은 독재에 대한 분노 사이에서 '죽어 넘어진 사람들'은 삭제되어 버린 듯 해서 영 찜찜함. '에 좀 아닌 것 같다. 삭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냥 이순간에 느껴질지도 모르는 분노와 숙연함 같은 것들도 그 사람들이 바랬고, 또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 라고 할 수도 있고. 또 나도 그렇게도 생각하지만 그냥 그게 다가 아닌 것 같다.
어쨋든 서대문 형무소는 쓰여지고 있는 무언가로서 존재하니까 그런 것일 게다. 기념비라고 있는 것도 마치 국사 '교과서'처럼 민족주의 계열의 운동가들을 기리고 있는데 이걸 순수하게 넋을 기리는 것입니다라고 하면 돌맞을 일이지 말입니다. 차라리 아무런 경관 조성도 하지 않았다면 어땟을까 하기도 하고.
뭐 다같이 잘해보자고 그렇게 만든 것이긴 하겠지만 여러가지 의미로 불편하다. ㅎㅎ 거대한 낚시질처럼 느껴짐. 형무소를 이용하고 있는 방법이 매우 '효과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좀 안그랬으면 좋겠음. '아 내가 진리이니 이리저리 하여라.' 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사실 그것은 좀 힘든 것 같고 '아 나는 그냥 좀 싫어.'라고 말하고 있는 중임. ㅎㅎ
감옥이 왜 나쁜지, 사형이 왜 나쁜지, 왜 사람을 그렇게 좁은 곳에 가두면 안되는지. 이런걸 궁금해 해야 하지 말입니다. 수능 치고 논술 공부할 때 몇번쯤 들어본 단어가 있을텐데, 벤담이라는 사람은 '판옵티콘'이라는 감옥의 형태를 주장했다고 함. ㅎㅎ 서대문 형무소가 이러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아 그렇구만' 하고 그치기보다는, 그게 무엇인지 안다면 '아 갇혀 잇는 사람들 정말 짜증낫겠구나. 캐잔인한데'하는 정도라도 다같이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
무엇이 맞는지, 그른지 하나도 분별 못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당장에 밥을 안먹으면 '아 배고파', 손을 베이면 '아 아프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어떤 '잔인함'에 대한 분노와 같은 것들이 말이다. 뭐 다른 것들은 각자 판단할 일이겠지만. 적어도 이정도는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하고.
3. 으, 그리고 이건 덧말 붙이는것 같아서 이상하기는 한데 고문 재현장을 보면서도 약간 이상한게 있었음. 그냥 기억이 조작되서 그런 걸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마네킹들 중 여성이 재현되어 있는 곳은 '여성 열사들에 대한 성고문'이라고 되어 있는 곳 밖에 없었던 듯. 진짜로 그랬으면 문제가 좀 있는 듯 하다. 마치 "우리 민족의 '여성'이 침탈 당했다. 그것도 독립 운동을 하는 기특한 사람을. 일제에 대하여 분노하라." 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었달까.
고 윤금이씨 사건하고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건 나중에.
첫댓글 거기서 밥 먹어봣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