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
연일 30℃가 넘는 더위가 지속되는 일본의 한여름,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일본의 여름을 에어컨 없이 생활한다니. 당찬 포부를 밝힌 이 사나이는 쓰지모토 마코토( 本 誠・58) 도쿄이과대학 공학부 교수다. 몸에 닿아도 젖은 느낌이 들지 않는 ‘드라이 미스트’라는 신형 냉각장치로 일본 열도를 식히겠다는 꿈을 펼치고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연구실 옆 옥상에는 세 대의 드라이 미스트 장치가 뿌연 안개를 뿜어내고 있다.
“오늘은 가정용 펌프가 완성돼 시판을 시작한 첫날입니다. 마침 개량한 펌프가 도착했는데 뜻 깊은 날 오셨네요”라며 환한 웃음으로 반긴다.
식물에는 뿌리에서 끌어올린 수분을 잎 등 표면에서 수증기 형태로 대기 속으로 방출하는 ‘증산’ 기능이 있는데 드라이 미스트는 이 원리를 이용했다 한다. 물에 압력을 가해 특수한 노즐로 안개 상태를 만들어 분출하는데, 그때 만들어진 물방울의 크기가 식물이 증산할 때 발생하는 물방울의 크기와 거의 같다.
“식물의 냉각 기능을 인공적으로 실현하는 것이지요.”
미스트(Mist)란 연무, 즉 안개 상태를 의미하는데 물방울 입자의 평균 직경이 0.016mm(농업용 분무기 0.03mm)로 매우 작기 때문에 70c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손을 대도 젖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말라 있다는 뜻의 수식어 ‘드라이’가 붙은 것이다. 물 분무를 하지만 물 입자가 미세해 곧바로 기화하므로 주변을 적시지 않는다는 것.
“물을 사용한 냉방이니 인간의 건강에 좋고, 발열하지 않으니 환경에 좋고 전기요금을 절약할 수 있으니 경제에 좋고, 게다가 열섬 현상을 막을 수 있으니 1석 4조이지요.”
드라이 미스트 장치는 크게 노즐, 배관, 펌프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물방울을 평균 0.016mm 정도로까지 작게 뿜어낼 수 있도록 만드는 펌프가 핵심 기술이다. 물에 압력을 주면 자력의 변화에 따라 신축을 반복하는 ‘초자왜소자’(超磁歪素子)를 이용해 60기압(일반 건축에서는 10기압을 사용)의 수압을 만들어 낸다. 이 압력으로 미세 물방울을 만들고, 이 물방울이 증발할 때 발생하는 기화열에 의해 주위의 공기로부터 열을 빼앗아 분무한 후 5분 이내에 기온이 2~3℃ 내려가 냉각 효과를 낸다.
실제로 드라이 미스트는 2005년 아이치 엑스포에서 글로벌 루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650m의 차양 텐트에 설치, 이동하는 방문객을 시원하게 해 호평을 얻었다. 열을 발생시키지 않는 환경 친화적인 대형 야외 냉방장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또, 2007년 4월에 오픈한 신 마루노우치 빌딩에 이어, 2008년 6월에는 롯폰기 힐스 ‘66플라자’에 도입돼 이동하는 방문객을 시원하게 했다. 지금도 27.5℃ 이상, 습도 70% 미만, 풍속 4m/s 이하가 되면 자동으로 분무를 시작한다.
게다가 전기 사용량도 기존 냉방장치의 절반 이하로 줄였다. 가정용 드라이 미스트의 경우 74W밖에 사용하지 않도록 해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한 달 240시간 사용할 경우 460엔밖에 들지 않는다. 여기에는 전기 요금뿐 아니라 수도 요금 등 운전비용이 모두 포함된다. 일반 가정용 에어컨의 1/4~1/9 수준으로 10배 가깝게 줄인 것이다. 발열 없이 주변 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도심의 열섬 현상을 약화시키는 효과도 있어서 일본 정부도 연구에 예산을 투입하며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도쿄도 도입하는 사업자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보급 지원에 나섰다.
이처럼 ‘도회지의 오아시스’를 실현하고 있는 그. 이렇게 명소에 드라이 미스트가 보급되면서 최근 그의 블로그는 연일 문의 메시지로 성황이다. 많을 때는 하루에 5000건이 넘는다. 야후에서는 ‘드라이 미스트’가 검색어 1위에도 올랐다. 그는 가정용 드라이 미스트를 완성하는 데 블로그의 도움을 톡톡히 봤다. 시행착오를 거듭한 그는 특허와 개발 중인 부품 등 몇 가지 사항을 제외하고는 아이디어와 기술, 그리고 자신의 실패담을 모두 블로그를 통해 알렸다. 지식 공유의 힘은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사용 용도에서부터 고압에 견디는 배관방법 등 다양한 의견을 보내왔다. 가장 큰 수확은 소음이 커서 가정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었던 펌프에 대한 자문이었다. 지금 펌프를 제조하고 있는 파트너 사도 블로그를 통해 아이디어를 보내온 회사라고 한다.
도심 곳곳에서 사용되는 냉각 장치 ‘드라이 미스트’. 발열 없이 주변의 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도심의 열섬 현상을 약화시킨다. |
우리 애들에겐 에어컨 바람 쐬게 하지 않아요
쓰지모토 교수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건축・도시방재의 권위자다. 도쿄대학 공학부에 재학 중이던 그는 구마모토의 한 백화점에서 화재가 발생해 그로 인한 피해 실태를 보고 도시와 건축물의 방재 연구에 몰입했다. 그런 그가 드라이 미스트 연구에 몰입하게 된 것은 도시의 열섬 현상을 막는 것 자체가 방재라고 생각하면서다. 아스팔트의 반사열, 에어컨 실외기, 지구온난화 등으로 나날이 기온이 올라가고 있는 도심. 도쿄의 열대야가 30년 전의 4배에 달하는 등, 열로 고통받는 도심을 보면서 그는 이러한 열섬 현상을 일종의 재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기존의 냉각 장치는 모두 열을 내면서 냉각해 악순환이 반복되는데 자연을 해치지 않고 이 재해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를 고민하던 그에게 떠오른 것이 분무 시스템이었다.
“자연으로 자연재해와 인공재해를 제어할 수 없을까를 고민했지요.”
그 방법은 자신의 독창적인 육아법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인공 냉방을 극단적으로 싫어했던 그는 아이들에게도 에어컨 바람을 쐬지 못하게 했다. 자택이 일본에서 가장 더운 지역 가운데 하나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있지만, 그의 집에는 에어컨이 없다. 나고야에서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난다고 하면 일본 사람 대부분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놀란다. 그럼에도 1남 2녀의 자녀를 포함해 온 가족이 집에서 에어컨 바람을 경험한 적이 없다. 선풍기로 견디기 힘들면 베란다에 물을 뿌리고 선풍기 앞에서 다리미용 분무기를 뿌려 온도를 내리며 한여름을 지냈다.
가정용 드라이 미스트 장치는 벌써 30대의 주문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과제가 많다. 가격이 30만 엔 전후로 비싸고 문을 열고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방범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펌프가 가장 비싼데, 100대 이상 팔리면 판매가를 절반 이하로 다운시킬 수 있어요. 더 보급되면 올해 안으로 일반 에어컨 가격 수준으로 실현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 같은 추세라면 그 꿈도 머지않아 실현될 듯하다. 지금 가정용 냉방 장치뿐만 아니라 오픈 카페나 애완용 동물숍, 행사장, 운동회 텐트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기 때문. 심지어 장기 휴가 때 관상용 식물이나 베란다 식물에 물을 주는 용으로 구입하겠다는 문의도 있다고 한다. 일본 전역에서 에어컨의 실외기 팬 소리 대신 조용히 안개를 뿜어내는 드라이 미스트의 조용한 분무 소리가 들릴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