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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바다 공동체
11월 13일 금요일 저녁. 산들바다공동체 조찬진 회장님,
정대성 총무님 외에 세 분의 공동체 식구들과 이야기 나눴습니다.
산들바다공동체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던 터라,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집중하여 들었습니다.
왜 ‘산들바다’일까? 아마도 산과 들과 바다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변산에 위치해 있는 공동체이니 그리 부른 것 아닐까요?
유기농 생산자 모임
처음 부안농민회에서 활동하다
유기농에 관심 있는 분들 몇이서 의기투합하여
공동체를 이뤘다고 합니다.
당시 유기농을 하는 사람들은
빨갱이로 몰렸다고 합니다.
정부의 농업 정책이라는 것이
화학비료를 엄청나게 쏟아 부으며
작은 토지에서 많은 양을 생산하는 방식이었는데
이는 땅을 혹사시키는 것이기에
땅도 죽고 그 곳에서 나는 먹거리도 죽은 것이요,
결국 그 것을 먹는 사람도
죽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유기농은 정부정책에 반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짓겠다는 용기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나라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농사짓는 것이니
반역자로 오해받은 것이랍니다.
심지어 농민회 안에서도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어렵게 시작된 ‘산들바다 공동체’는
현재 열 네 가구가 함께하고 있는데
이 중 귀농한 가구는 여덟 가구이고
여섯 가구로 대대로 이곳에 살았던 원주민 가구라 합니다.
그렇게 열 네 가구가 이웃하며 가까이 지내는 가장 큰 이유가
유기농으로 수확하는 것이 손도 많이 갈 뿐더러
주변의 편견도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이기에
한 뜻을 가진 이들의 단단한 연대가 매우 중요하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산들바다 공동체’는 마을 안에서 함께 유기농을 하는 열 네 가구가
각자의 집과 각자의 땅에서 생활하는 ‘유기농 생산자 모임’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공동체요? 생활과 소유가 일치된 공동체들이
2000년 전후하여 많이 생겼는데
종교공동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넓은 의미로 보면 대한민국도 공동체입니다.
공동체가 뭐 특별한 것인가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농사짓는 사람이 함께 모여
공동으로 재배하고 공동으로 출하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일종의 농사 공동체죠.”
정대성 총무님이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난 후 들려 준 말씀입니다.
다품종 소면적 재배
산들바다공동체는 다품종 소면적 재배를 한다고 합니다.
한 가지 품종을 다량으로 재배하게 되면 돈은 많이 벌지만
그 결과 다시 돈에 예속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상품이 되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도 있고
땅도 건강하게 지켜내기 위한 재배 방식인 것입니다.
또한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이 버는 것을 막기 위한 내부 장치도 있는데
이 역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돈’의 위협을 경계하는 것이지요. 돈이 참 무섭네요.
모든 생산의 결과는 ‘1/n’의 원칙으로 고르게 나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께 일군 유기농 생산물의 약 90%는 한 살림에 납품하고
나머지는 지역 생협에 납품한다고 합니다.
‘흙살림’의 자문을 받아 가면 ‘상품이 아닌 먹을 것’이라는
유기농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려 노력한다고 합니다.
변산공동체는 형제
산들바다공동체는 변산공동체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귀농한 여덟 가구 중 여섯 가구가 변산공동체를 거쳐 마을에 정착한 경우입니다.
이 모임 저 모임 등 한 회원이 여기 저기 속해 있는 경우가 많아
변산공동체와는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합니다.
오늘 이야기를 나눈 폐교인 마초초등학교를 공유하면서
서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근의 어려움
유기농은 소작으로 많이 짓는데, 변산이 관광지이다 보니 땅값이 비싸
땅을 매입하여 농사짓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 합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유기농 농부들이 소작으로 농사를 짓지만,
유기농을 고집하여 힘들게 땅을 유기농에 맞게 일구어 놓으면
땅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넘겨 개발한다며
건물 세우기도 하고 다른 이에게 소작을 줘 다시 비료를 뿌리기도 하여 안타깝다고 합니다.
특히 갈수록 땅값이 올라 유기농으로 재배할 소작지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 걱정이라고 합니다.
‘농사’는 관계하며 사는 살이
농사는 사람들이 협력하여 일해야만 가능한 것이기에
농촌이라는 곳은 이웃들이 서로 깊이 관계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 토대입니다.
반면 도시는 개인이 특별한 관계없이도 ‘돈’만 있으면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일과 환경이 있으니
관계 맺기를 주저하고 결국 관계 맺는 본성이 퇴화되고 마는 것이지요.
귀농 막내이면서 동네에서 얼짱으로 통하는
정택균 선생님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저는 인천에서 직장생활하다 내려왔습니다.
큰 기업에서 연봉 수 천 만원 받으며 일했어요.
하지만 내 삶이 아닌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사는 것 같았어요.
내려와서 가장 좋은 것은 하루를 내가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루, 한 주, 한 달, 일 년을 내가 계획하여 사는 진짜 내 삶을 사는 것 같아요.“
‘농사’가 ‘농학’으로 사람들의 바탕공부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식생활을 바꿔야 합니다
다음 날에는 정대성 총무님의 안내로 마초초등학교 인근 유기농 재배지를 살펴봤습니다.
세찬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어요.
마침 아침 일찍부터 일하시는 공동체 농부 한 분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원래 대대로 변산에 살던 분으로 자신 만큼 행복한 이는 세상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이 있고 산들바다공동체라는 좋은 분들을 만나
사람과 땅을 살리는 방식으로 밭을 일구고
스스로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으니 그러하다 하셨습니다.
그 건강한 모습이 감사했습니다.
농부의 안내로 밭을 둘러보다가 그 자리에서 툭툭 브로커리를 따서 주셨는데,
한 쪽 떼어 입에 넣으니 변산의 산과 들과 바다를
한꺼번에 비벼 먹은 것 같은 향기와 맛이 전해졌습니다.
농사 외에 부업으로 하는 일이 있다며 수세미가
물과 함께 가득 담긴 큰 고무 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수세미를 물에 넣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겉껍질이 벗겨지면서
속에 있는 섬유질이 드러나는데
이것이 천연수세미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이 역시 전량 한살림에 납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일행 중 누군가 이 수세미는 기름이 잘 닦여지지 않고
그릇에 상처를 내는 것 같다고 하셨지요.
그러자 농부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식생활을 바꿔야 하는 이유라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전에 우리 조상들은 이 수세미로 그릇을 닦았습니다.
유기농 수세미니 천연 수세미니, 그런 말이 필요 없었지요.
그 시절에는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했어요.
그러나 지금, 우리의 식생활이 서구화 되면서
기름을 많이 사용하는 음식을 조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기름을 닦아 내기 위해 또 다른 화학제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물과 땅이 오염되었습니다.
식생활을 바꾸면 이 수세미로도 쉽게 그릇이 닦일 것이고 오염도 주는 것이지요.
음식은 간단하게 조리해 먹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건강에도 좋고 환경도 살리고.”
잘 배웠습니다.
첫댓글 특별히 배운 것이 아닌, 삶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생활방식.. '넓은 의미로 보면 대한민국도 공동체'라는 말이 가슴을 칩니다. 과연 대한민국을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농사는 '관계'가 바탕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환경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삶..
"‘농사’가 ‘농학’으로 사람들의 바탕공부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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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시골사회사업팀 합동연수 때, 천규석 선생님께서 농학을 인문학 필수 교양강좌로 만들어야 한다 하시더군요. 공감했습니다.
주상이가 천규석 선생님 뵙고 들은 이야기를 제 집에 묵고 갈 때 들려줬어요. 그때 주상이에게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