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기에 국민여가수 다나 위너가 부르는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이 곡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을 가사를 붙여 편곡한 노래입니다.
맨 밑에는 원곡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런던에서 북상 열차를 타고 가다 리즈에서 기차를 바꾸고 다시 키슬레이에서 단선(單線)으로 갈아타면 약 4시간 만에 호워스 역에 닿습니다. 한적한 시골역입니다. 역 맞은편에 있는 'i(영국의 관광 안내소 표지판)'를 찾아가면 친절히 맞아 줍니다.
마을의 중심가로 가는 길은 포석 깔린 가파른 오르막입니다. 비탈길이 끝나는 곳에서 교회가 나타납니다. 지금으로부터 190여 년 전인 1820년 4월의 어느 봄날 이 교회의 목사로 새로 부임하는 패트릭 브론테 씨가 7대의 농군마차에 이삿짐과 여섯 명이나 되는 꼬마들을 싣고 올라가던 언덕길입니다.
* 호워스 마을
그 때 이 꼬마들 중 샬럿은 네 살, 에밀리는 두 살, 앤은 갓난아기였습니다.
마을 들머리에서부터 '브론테 양장점', '브론테 트위드점' 등 브론테의 이름들이 줄을 섭니다. 브론테 씨 가족이 짐을 내린 곳은 교회를 돌아나가 교회 묘지의 담 너머로 보이는 목사관이었습니다. 지금은 이 집이 브론테 기념관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끊일 사이없이 찾아와 문을 들어섭니다. 2층 석조 건물의 기념관은 230년 전인 1779년에 지어진 것을 1872년에 조금 옆으로 달아냈을 뿐 브론테 자매들을 키운 분위기는 그 때와 다름없습니다.
* 브론테 기념관(옛 목사관)
에밀리가 쓰던 방에는 어린 형제들이 그린 낙서들이 벽에 남아 목사관에 갇혀 살던 동심들이 파닥거리던 날개 소리가 들립니다. 이들은 바깥 친구들과 사귀지도 않고 자기들만의 소사회를 만들어서 버니언, 스콧, 바이런, 셰익스피어를 읽으며 상상력을 길러 나갔습니다.
식당에는 소파가 하나, 에밀리가 30세의 나이로 이 위에서 죽었습니다. 샬럿의 방에 놓인 나무트렁크는 에밀리와 함께 브륏셀에 유학갔다 올 때 사온 것입니다.
* 기념관 내부
브론테 수집가이던 미국인 본넬 씨의 기증품을 모은 별실에는 에밀 리가 쓰던 책상이 죽던 겨울날 아침에 놓였던 대로입니다. 찬 밖으로는 이끼 낀 묘석들이 나무 그늘에 줄선 음침한 교회 묘지가 내다보입니다.
집 뒤로 자그마한 정원이 있고 거기 두 그루의 전나무가 자랍니다. 1854년 샬럿이 결혼 기념으로 심은 것입니다. 에밀리는 책상을 정원에 들고 나와 이 나무 그늘에서 글을 썼습니다.
브론테 세 자매의 짧은 일대기들이 담긴 이 건물은 이 마을 출신의 로버츠 경이 1928년 사들여 브론테 애호가협회에 기증함으로써 이 해에 기념관으로 개관되었습니다. 그 이래 호워스 마을은 셰익스피어 생가가 있는 스트래트퍼드 다음 가는 영문학의 순례지로 유명해졌습니다.
* 브론테 세자매 동상
이 기념관에는 한 해 평균 세계 각국에서 20만 명의 참배객이 모여듭니다. 1893년에 설립되어 현재 2,500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는 브론테 애호가협회는 현존하는 영국의 문학애호가협회 중 가장 오래라는 것이 또한 자랑입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요크셔 주의 이 호워스 마을을 빙 둘러싼 웨스트라이딩 황야가 주인공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작품만큼 한 지방의 자연 속에 흠뻑 절여진 소설도 흔치 않습니다.
* 황야로 빠지는 뒷길
<폭풍의 언덕>의 무겁고 어둡고 야성적인 작품 세계는 곧 황량한 이 자연의 표정인 셈입니다. 에밀리는 이 황야를 쏘다니며 계절 따라 변하는 풍경과 기후를 사랑했습니다.
기념관을 돌아나가면 바로 집 뒤에서부터 황야로 이어지는 길이 나섭니다. 에밀리가 나다니던 길로 등성이를 오릅니다. 아랫도리의 초원은 검은 돌담으로 네모지게 칸막이들이 되어 그 안에서는 젖소들이 놀고 있습니다.
* 브론테 자매들이 뛰놀던 황야
이 돌담 사잇길이 구릉 위쪽에 이르면 황야가 펼쳐집니다. '무어'라고 불리는 이 황무지는 숲이라고는 없이 가도가도 히스라는 야생의 관목으로 검푸르게 뒤덮인 야산의 연속입니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깨알 같은 자줏빛 히스 꽃이 온 언덕에 주단을 깐다고 합니다.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습니다. 광야는 소설 속처럼 신비 속에 감싸입니다.
<폭풍의 언덕>에서 여주인공 캐서린은 남자 주인공 히스클리프를 '금작화와 현무암으로 뒤덮인 거친 황야 같은 교양도 품위도 없는 야성의 인간'이라고 평합니다. 이름 자체를 히스나무에서 따온 히스클리프는 이 허허한 풍경의 의인화였던 거죠.
그렇다고 해서 호워스가 1년 내내 황량하고 춥고 쓸쓸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서머싯 몸은 <폭풍의 언덕>을 세계 10대 소설의 하나로 소개하면서 브론테 자매에 대해 쓰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호워스를 어두운 곳으로 그리지만 한겨울에도 하늘 맑고 대기가 상쾌하고 황야가 부드러운 색채를 띠는 날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 히스 잡목의 황야
황야에는 브론테란 이름이 붙은 곳이 많이 있습니다. 브론테 자매가 자주 찾던 골짜기의 폭포는 이름이 '브론테 폭포', 부근의 돌다리는 '브론테 다리', 또 걸터앉게 생긴 커다란 자연석은 '브론테 의자'입니다.
방목한 양떼들이 이따끔씩 막고 서는 황야 사이의 들길은 해발 300m의 마루턱에서 톱 위든즈라 부르는 한 외딴 폐옥을 만납니다. 지붕은 날아가 버리고 층층이 쌓은 돌벽만 남았습니다. 이것이 에밀리의 소설에서 히스클리프가 살던 비바람 닿는 '폭풍의 언덕'입니다.
* 톱 위든즈(가상의 히스클리프의 집 터)
애초에는 양치기의 집이었습니다. 1933년까지는 어떤 운둔자가 혼자 닭을 기르며 살았으나 그 후로 빈 집이 되었습니다. 지붕이 무너진 것은 1970년경이었습니다. 풍우 때문이기는 했지만 찾아오는 구경꾼들이 기념으로 나뭇조각이고 돌덩이고를 마구 뜯어간 탓도 크다고 합니다.
히스클리프의 집이라고는 했으나 에밀리 브론테가 꼭 이 집을 <폭풍의 언덕> 집의 모델로 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1964년 브론테 애호가협회는 이 폐가의 벽에 기념판을 내걸으면서도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썼습니다.
'이 건물은 설령 완전한 상태로 남았더라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 묘사된 집과 전혀 닮고 있지 않다. 그러나 위치는 작자가 이 작품을 쓸 때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이 기념판은 하도 많은 문의에 대답하기 위해 붙이는 것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손은 내저어도 먼 길을 걸어서 꾸역꾸역 밀어닥치는 심취자들의 독단을 막을 길은 없습니다.
* 히스클리프의 집이 결코 아니라고 알려주는 기념판
장소는 이 톱 위든즈 마루지만 건물 구조는 에밀리가 잠시 교사 노릇을 한 로힐 가까이의 하이 선덜랜드 홀이란 저택을 빌어 쓴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로힐은 호워스 마을에서 과히 멀지 않은 곳인데 이 집이 지금 무너지고 없어 작품 속의 집과 견주어지지 않습니다.
<폭풍의 언덕>에서 비바람 몰아치는 히스클리프의 집과는 대조적으로 깊은 정적에 싸이게 그려진 집이 캐서린이 결혼해 살던 드러쉬크로스 관입니다.
톱 위든지 언덕을 내려와 5km 가량 떨어진 곳에 이 드러쉬크로스 모델이 된 폰덴 홀이라는 집이 있습니다. 입구에 '양유(羊乳), 차, 식사 팝니다'라고 써붙였습니다. 영국에 흔한 B&B(아침 식사 달린 여인숙)의 하나입니다.
* 호워스 마을
에밀리 브론테는 양모 공장이었던 이 집에 자주 놀러왔고 주인이던 히턴 가(家)의 옛 이야기를 듣고 <폭풍의 언덕>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집에 있던 많은 장서를 탐독하면서 소설에 나오는 지식들을 얻었습니다.
당시의 주인이 에밀리를 위해 심었다고 전해지는 배나누 한 그루가 정원에서 자랍니다. 정문 위에는 1801년이라는 건물 개축 연대가 새겨져 있습니다. <폭풍의 언덕>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해가 바로 1801년입니다.
* 마을에 있는 세자매 안내판
호워스는 본시 햇볕이 적고 습기가 많은 이탄질(泥炭質)의 땅이어서 폐병이 많은 마을이었습니다. 1850년 한 조사 결과는 이 마을 사람들의 평균 사망 연령이 25~28세였고, 42%가 6세 전에 죽었다고 합니다. 브론테 형제들도 6명 중 둘은 조사(早死)하고 에밀리, 앤 등 셋은 30세 전에 죽었으며 샬럿이 겨우 38세까지 살았습니다.
기념관이 된 브론테 자매의 집 맞은편 묘지 너머가 교회입니다. 브론테 자매의 아버지가 84세로 죽을 때까지 41년 동안 목사로 있던 이 교회는 건물을 1881년에 재건하기는 했으나 안에 있는 브론테 자매의 무덤은 그대로입니다. 막내딸 앤 말고는 온 가족이 여기 다 묻혀있습니다.
* 브론테 자매의 고향 호워스는 잉글랜드 요크셔 지방의 리즈(아래 참조) 왼쪽편에 있습니다.
* 호워스 지역
* 교회 뒤의 묘지(브론테 가족들이 묻혀있습니다)
에밀리 브론테와 작품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1818~1848)는 고향 호워스의 황야를 좋아하여 평생 여기서 지내면서 동생 앤과 세자매의 시집을 낸 후 소설로는 <폭풍의 언덕> 한 편을 남기고 30세의 나이로 병사한 특이한 체질의 여류 작가입니다.
세 자매 중 샬럿은 <제인 에어>, 앤은 <아그네스 그레이> 등의 소설을 남겼습니다. 무서운 인간의 비극적인 격정을 시적으로 그린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은 영국 소설 사상 가장 독창적인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 <폭풍의 언덕>이라는 집의 주인은 부랑아 히스클리프를 주워다 기릅니다. 히스클리프는 양부가 죽자 그 아들 힌들리에 학대 받고 딸 캐서린에 애정을 배반당해 집을 나갑니다. 3년 후 돌아오니 캐서린은 드러쉬크로스 관의 린턴과 결혼해 있습니다.
히스클리프는 냉혹한 복수를 시작합니다. 그는 린턴의 누이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하여 결혼한 뒤 괴롭히는가 하면 힌들리를 굴복시켜 그 아들에게 자기가 받은 대로의 학대를 가합니다. 캐서린은 그의 사랑의 집념 때문에 캐시라는 딸을 낳고 죽습니다.
히스클리프는 캐시를 자기와 이사벨라 사이에 태어난 아들과 억지로 결혼시켜 <폭풍의 언덕> 집안과 드러쉬크로스 관 양쪽을 다 손아귀에 넣고는 숨을 거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