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조지 카슈베티 교회(Kashueti St. George Church)
루스타벨리(Rustaveli) 거리의 국회의사당 건물 건너편 트빌리시 중심부에 있다. 교회 앞에는 헌 책을 펼쳐놓고 팔고 있다.
자유 광장(Freedom Square)
루스타벨리 대로 초입에 있으며 광장 중심에 있던 레닌 동상 때문에 레닌 광장으로 불렸는데, 소련 붕괴 이후 레닌 동상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조지아 수호성인 '게오르기우스' 기념비를 세웠다.
게오르기우스는 중세 기독교인들이 고난을 마주했을 때 찾았던 14명의 구난 성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서기 303년 로마의 박해로 순교했는데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악한 용을 무찔렀다는 전설 때문에 성화 속에 백마를 타고 용과 싸우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를 상징하는 것이 조지아 국기의 하얀 바탕 위에 그려진 붉은 십자 일명 성 게오르기우스(Saint George's Cross) 십자이다.
게오르기우스의 십자가가 그려진 조지아 국기는 2003년 이곳 광장이 중심이 된 '장미 혁명 ' 이후 국기로 지정되었다.
장미 혁명(Revolution of Roses)은 2003년에 부정부패와 연루되었던 대통령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를 퇴진시킨 조지아의 무혈 혁명이다.
국회 의사당 앞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와 푸틴을 규탄하는 사람들.
킨칼리(Khinkali), 또는 힝칼리라고도 한다.
만두 안에 소고기를 넣고 만두 위에 고수와 후추를 뿌려 먹는 조지아식 만두이다. 버섯이 들어가기도 한다. 만두안의 육수부터 먹는다. 육수가 뜨거우니 조심해야 한다. 꼭지 부분은 밀가루가 너무 두툼하고 딱딱해서 먹지 않아도 된다.
아나누리 성채(Ananuri Fortress )와 진발리(Zhinvali) 호수
요새의 역할도 하고 안에는 아나누리 성모 교회와, 사람이 거주하는 시설이 함께 있으며, 진발리 호수를 내려다 보고 있다. 호수 색깔과 성당의 자태는 한 폭의 그림 같다.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로 가는 도중에 휴게소에 들릴 겸 내린 곳이다.
카즈베기에서 일박한 후 고리로 갈 때, 다시 보게 된 진발리 호수는 날씨가 좋아져서 그런지 에메랄드 빛깔이 더욱 아름답다.
라시아 군사도로(Russian Military Highway)
트빌리시와 러시아 블라디카프카즈를 연결하는 208km의 도로로 무척 험준하지만 경치는 아름답다.
옛날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실크로드의 주요 무역로로 이용되었지만, 구소련 연방 시절에는 소련이 조지아까지 군수품을 나르고 남 오세티아에 주둔할 군사들을 수송하기 위해 만든 군사도로라 한다.
카즈베기는 러시아 국경과 맞닿아 있어서 러시아로 향하는 대형 차량의 행렬이 줄을 잇는데, 우크라이나 전쟁후엔 국경이 정체되어 길위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국경이 열리기를 몇날 며칠 한없이 기다리는 길이 되었다고 한다.
이 군사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길 중 하나라고도 하며, 6월에도 이런 빙하가 곳곳에 널려 있다.
조지아 군사도로는 코카서스산맥의 험준한 산맥을 관통하며 전체 길이는 약 208킬로미터이고, 가장 높은 곳은 2300미터 정도.
산사태가 있을 경우 도로가 막히는 것을 대비하여 이런 반 터널식 도로를 개설했다고 한다.
카즈베기(Kazbek)
카즈베기는 조지아 북부의 작은 마을로,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에서 150km 떨어져 있다. 정식 명칭은 ‘스테판츠민다(Stepantsminda)’ 이고 옛 이름인 카즈베기(Kazbegi)로 불리고 있다. 트레킹을 즐기는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숙소의 베란다에서 카즈베기 산과 게르게티 성 삼위일체 성당이 너무나 멋지게 보인다.
비가와서 게르게티 성 삼위일체 성당까지 트레킹 하려던 계획을 접고, 뷰가 멋있다는 룸스호텔에 찾아가니 비가 그친다. 몇몇 일행들은 트레킹을 했고, 다른 일행들은 택시를 대절해서 갔다는데 도중에 비도 그치고 너무 좋았다고 한다. 과연 내일 아침 일찍 날이 개어 줄 것인가? 하늘에 맡기기로 하고 그냥 오늘을 즐기자.
게르게티 성 삼위일체 성당이 바라다 보이는 룸스호텔 발코니에서
산 정상의 게르게티 성 삼위일체 성당의 불빛이!
숙소의 방안에서 이런 야경을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즈베기(5054m)는 얼음산 이라는 뜻이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깃든 산, 즉 신으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어, 그 벌로 산 위에 묶이어 날마다 독수리에게 자신의 간을 쪼아 먹혔다. 이러한 형벌은 3천년이나 계속되었는데 이 근처를 지나던 헤라클라스에게 발견되어 풀려났다는 신화.
다음날 아침에 비가 그치고 날씨도 괜찮아져서 7시에 출발한다는 기쁜 소식이 들린다. 5명씩 4륜 구동 미니밴으로 출발!!
도로 시작점에서 관계자들이 막아놨던 쇠사슬을 풀어준다. 가이드의 정성이 한 몫 해 준 것같다. 조지아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이 곳을 비가 와서 못갔다면 두고두고 후회스런 일이 되지 않았을까?
게르게티 성 삼위일체 성당 (Gergeti Trinity Church)
높이 2200m 산 정상에 세워진 교회로, 14세기에 지었다고 하며 츠민다 사메바(Tsminda Sameba)라 불린다.
케비(Khevi)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십자가 돔 (Cross-Cupola, 중세 시대 가장 성행했던 돔 위에 십자가가 있는 건축양식) 교회다.
전쟁 시기에 성 니노 십자가 (Saint Nino's Cross)를 비롯한 므츠헤타 (Mtskheta)에서 가져 온 소중한 유물을 이곳에 보관하였다.
구름 위에서 노는 기분이 이런 것인가!
카즈베기 산이 구름 속으로
이 곳 이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조지아 여행을 꿈꾸었다고 말하는 장소.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보여주니 고마운 일이다.
구다우리 전망대(Gudauri View Point).
깊은 협곡 위 해발 1,800m 높이의 언덕 꼭대기에 세워 져 있다. 1783년 러시아와 조지아 간에 체결된 게오르기예프스크 조약 200주년을 기념하여, 1983년 만들어진 우정의 탑이다. 모자이크 타일로 조지아의 문화와 역사를 벽화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게오르기예프스크(러시아에 있는 역사적인 도시 이름) 조약' 은 조지아가 무슬림인 이란과 오스만튀르크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같은 기독교 국가인 러시아에게 도움을 청해 러시아의 보호령으로 들어가는 조약.
구름속에 숨은 카즈베기 산
빙하가 흘러 든 동그란 저수지
풍광이 너무 멋있어 절벽위에서 저마다 포즈 잡기 바쁘다. 바로 뒤는 천길 낭떠러지!!
우플리스치케(Uplistsikhe Cave) 고대 동굴 도시 유적
고리(Gori) 동쪽으로 1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기원전 6세기경에 앞에는 강이 흐르고 뒤로는 높은 산이 막아주는 천혜의 요새와 같은 바위산에, 청동기 도구를 이용하여 사암을 파내어 만든 고대 동굴 도시이며, 이곳에 정착한 그들은 태양신을 섬기는 종교 도시로 1,000년동안 번영을 구가하였다.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금, 은, 동 보석을 비롯한 여러 시대의 유물과 도자기 등이 발견되었다. 유물 중 상당수는 수도 트빌리시에 있는 국립박물관에 보관 중이라 한다. 여왕의 방, 포도주 저장고, 극장, 물을 옮기던 터널, 물길, 돌계단 등이 남아 있다.
BC 6세기~AD 4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종교, 정치, 문화 중심지였던 곳이다.
AD 4세기 조지아에 기독교가 전파되고 국교로 공인되었다. 기원 전에도 이 동굴 안에서 기독교 활동이 이루어진 흔적이 있다고 한다.
11세기 초에는 지중해, 흑해, 카스피해,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던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으로 한때 인구 2만 명을 자랑하던 거대한 도시였다. 1240년 몽골의 침략으로 많이 파괴되었고 1920년 지진으로 동굴도시 중 그나마 남아 있던 부분도 많이 무너졌다.
'크베브리'라고 하는 조지아 전통 와인 제조용 항아리들도 이 유적에서 발굴이 되었는데, 아주 오래 전부터 조지아 전통방식으로 와인이 제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세기에 동굴 위에 세워진 바실리카(Basilica)
스탈린 박물관(Joseph Stalin Museum)1879~1953
1951년부터 건립된 박물관으로 고리(Gori) 타운 중앙광장에 있다. 건립 당시에는 지역 역사박물관이라는 명분으로 건립되었으나, 1953년 사망한 스탈린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박물관 앞에는 넓은 정원과 스탈린 동상이 서 있으며, 스탈린 생가와 스탈린 전시 박물관, 스탈린 전용객차가 있다.
박물관 측면에 있는 방탄장치가 장착되어 있는 개인 전용객차는 비행기를 싫어했던 스탈린이 1941년부터 사용했던 것이다. 얄타회담과 테헤란회담 때도 이 기차를 타고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리(Gori)
고리 지역은 11세기 직후부터 무역의 중심지로 활기를 띠었다. 이 지역의 요새를 정복하면 시다 카르틀리(Shida Kartli) 지역 전체를 통제할 수 있었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오세티아인, 이란인, 페르시아인 등 적들은 요새를 정복의 목표로 삼았다. 이들의 침략으로 파괴되고 재건을 반복하기를 수차례. 1920년에는 지진으로 크게 손상되었다. 고리는 트빌리시에서 76Km 지점에 있다.
스탈린의 70회 생일 때 각국에서 보낸 선물을 보관하는 전시실.
중국 인민 해방군에서 '만수무강'이라는 휘장을 보냈다. 그러나 스탈린은 만수무강하지 못하고 4년 후, 한국전쟁이 끝나기 전인 1953년 3월에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아래 오른쪽은 스탈린의 데드 마스크.
스탈린은 1945년 12월 모스크바 삼상 회의를 통하여, 한국을 미국과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를 하는 것으로 결정하여 분단의 단초를 제공하고, 한국전쟁 때는 북한을 도와 남한을 적화하려 했던 구소련의 지도자로, 1937년에는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킨 장본인이다.
우리에게는 450만명 이상을 살상한 사람으로, 히틀러와 맞먹는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 조지아인들의 스탈린에 대한 평가는 반반이라고 하여 의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