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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당시 포로가 된 중국군
1889년 10월 6일 프랑스 파리에서 뮤직 홀과 댄스 홀인 물랭 루주가 개장되었다. 물랭 루주는 '붉은 풍차'라는 뜻으로 1889년 10월 6일 파리 세계박람회가 열렸을 때 댄스 홀로 문을 열었으며, 매혹적인 프렌치 캉캉 춤으로 인기를 끌었다. 1914년 화재로 전부 타버린 것을 1918년 뮤직 홀로 개축했으며 댄스 홀은 별도로 그 옆에 세워졌다.
1931년 10월 6일 태어남 / 1975년 4월 13일 죽음
1910. 10. 6 서울~1973. 8. 4 서울.
← 1976년 10월 25일, 광둥(廣東)에서 4인방을 비판하는 시위가 열렸다. 강청, 장춘교, 왕홍문, 요문원 등이 총검에 찔리는 그림의 플래카드.
석주명(石宙明)은 오로지 나비밖에 몰랐던 사람이다. 한 줄의 논문을 쓰기 위해 3만마리의 나비를 만지고, 6․25 때는 15만마리의 나비를 지키기 위해 피란도 하지 않고 남산 국립과학박물관을 지켰다.
본명은 CharlesÉdouard Jeanneret.
실제 작업은 주택 중심으로, 페사크 주택단지(1926), 슈투트가르트 주택박람회의 집(1927), 가르셰의 주택(왼쪽 사진 1927), 그리고 필로티 위에 떠 있는 명확한 원초적 형태라고 하는 푸아시의 사보이관(1930) 등을 완성하였다. 1927년 제네바 국제연맹 회관의 현상설계에서 그의 응모작이 최후 단계에서 심사원단에게 거부된 것을 계기로, 근대건축가의 국제적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듬해 근대건축국제회의(Congr s Internationaux dArchitecture Moderne:CIAM)를 주재하였다. 1930년대에는 파리 구세군회관, 파리의 스위스학생회관(1932), 파리교외 주말의 집(1935), 그리고 광대한 브리즈솔레유(차일)가 있는 브라질의 문교보건부(1935) 외에는 경제불황과 정치적 불안으로 인해 실제 작품은 적으며, 그래서 근대건축국제회의의 이념에 바탕을 둔 도시계획의 제안에 몰두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국제연합의 회의 사무시설을 위한 일(1946~1947)을 맡았으나 중도에서 물러나고, 이어 마르세유의 《유니테》라는 거대한 아파트(1952)를 설계하였다. 모뒤롤에 의한 이 건축은 그의 오랫동안의 도시주거 연구의 집대성이었다. 이어 자유분방한 롱샹의 교회당(1955), 리옹 근교의 라툴레트수도원(1957), 아마다바트의 미술관, 그리고 만년에 가장 정성을 기울인 인도 찬디가르의 신도시 건설이 있으며, 그곳에 최고재판소 등의 청사건축을 남겼다. 1920년대에 시작되는 근대합리주의 건축의 국제적 양식 속에 서양건축의 기조인 고전주의 미학을 조화시켜, 철근콘크리트 건축의 새로운 국면을 개척한 점에서 그의 위대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 제자로 김중업(金重業)이 있다.
[1552년] 중국에 그리스도교를 전한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 출생
← Matteo Ricci (left) and Xu Guangqi (徐光啟) (right) in the Chinese edition of Euclid's Elements (幾何原本) published in 1607.
중국명은 이마두(利瑪竇). 1571년 예수회에 가입, 클레시오 로마노에서 콜라비우스에게 수학 ․천문학 등을 배우고 인도를 경유하여 1582년 마카오에 도착, 중국 내지(內地)로의 입국을 결심하고 중국어를 공부한 후, 1583년 조경(肇慶:廣東省에 있었음)에서 정주 허락을 받고 전교(傳敎)를 개시하였다. 이어 소주부(韶州府) ․남창부(南昌府) ․난징[南京]을 거쳐 1601년 베이징[北京]으로 진출하였다. 그가 명(明)나라의 만력(萬曆) 신종(神宗)에게 바친 자명종(自鳴鐘:탁상시계) ․대서양금(大西洋琴:피아노의 전신)은 황제를 크게 기쁘게 하여 베이징에서의 정주를 허락받았다. 선무문(宣武門) 내에 주택을 구입하고, 이곳을 전교의 근거지로 삼았다.
그는 중국에서 전교하기 위해서는 독서인층(讀書人層)의 신임을 얻어야 한다고 믿고, 서양의 학술을 중국어로 번역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유클리드 기하학의 역서인 《기하학 원본》과, 세계지도 위에 각종 천문학 ․지리학적 설명을 덧붙인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이다. 그 밖에 세계지도인 《산해여지전도(山海輿地全圖)》가 있다. 이러한 학문은 중국 지식인층의 관심을 끌어 서광계(徐光啓), 이지조(李之藻) 등의 유력한 관료도 개종(改宗)하여 그의 전교사업에 크게 도움을 주었다. 저서에 《천주실의(天主實義)》 《교우론(交友論)》 등이 있는데, 《천주실의》는 한국의 천주교 성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459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뉘른베르크 지구의를 제작한 독일의 항해가, 지리학자 베하임(Martin Behaim) 출생
1459. 10. 6 독일 뉘른베르크~1507. 7. 29 포르투갈 리스본.
뉘른베르크에서 출생했다. 상업수습원(商業修習員)으로서 네덜란드로 갔다. 이어 1484년에 포르투갈로 건너가 국왕 주앙 2세의 항해고문관이 되고 항해용기구의 개량, 지도의 제작을 맡았다. 포르투갈의 항해자 디에고 캄과 함께 아프리카 서해안을 탐험하였다는 사실은 근거가 희박하나, 기니해안을 다른 항해자와 함께 항해한 것이 아닌가 여겨지고 있다.
1492년 뉘른베르크에서 세계 최초로 지구의(地球儀)를 만들었다. 그의 지구의는 콜럼버스의 지리관(地理觀)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인용되어왔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포르투갈에 있었으나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다.
[1981년]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Anwar el-Sadat, 1918~1981) 피살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육군대학을 졸업하였다. G.A.나세르와 함께 자유장교단을 결성하고, 1952년 이집트혁명 때에는 자유장교단의 일원으로서 참가하였다. 1951~1957년에 국무장관, 1957~1961년 국민연합(아랍사회주의자연합)의 서기장, 1961년에 국민의회 의장을 거쳐 1962~1964년 대통령평의회의원을 지낸 후 1964년 부통령 겸 국민의회 의장이 되었다. 1970년 9월 대통령 나세르가 병으로 사망하자 그뒤를 이어 10월 제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1973년 제4차 아랍이스라엘분쟁 때에는 직접 이집트군을 지휘하여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다.
그는 현실주의적인 온건노선을 취하여, 1977년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중동평화의 길을 열었다. 이로 인하여 1978년 이스라엘의 수상 베긴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이어 1979년 3월 이스라엘과의 평화조약에 조인하였다. 이렇듯 중동평화의 주역을 담당하고 있던 그는 1981년 10월 6일 카이로 근교 나스루에서 대(對) 이스라엘 10월전쟁 8주년 기념식장에 참석하였다가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저서에 《나일의 반란 R volte sur le Nil》(1957)이 있다.
[1956년] 한미우호통상조약 체결 합의
1956년 11월 28일 서울에서 서명하고, 1957년 10월 7일에 비준서가 교환된 한국과 미국 간의 조약.
전문(前文)과 25조로 구성되었고, 그 밖에 이 조약과 불가분의 일부로 인정되는 의정서가 있다. 이 조약은 양국간에 전통적으로 존재하는 평화 및 우호의 관계를 강화하고, 양국 국민 간의 긴밀한 경제적 ․문화적 관계를 촉진하며, 상호간 유익한 투자를 촉진하고 상호간 유리한 통상관계를 조장하는 데 목적이 있다.
양국간의 통상 ․거주 ․항해 등에 관하여 서로 최혜국민(最惠國民) 대우 및 내국민 대우를 부여하기로 규정하였다. 다만 최혜국민 대우규정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의거하여 부여되는 특별편익(特別便益)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1927년] 첫 유성영화 '재즈 싱어' 개봉
기다려! 기다려! 넌 아무것도 듣지 못했잖아!(Wait a minute! Wait a minute! You aint heard nothin yet!) 1927년 10월 6일, 주인공 알 졸슨의 목소리가 뉴욕 워너 브러더스 극장에 울려퍼졌을 때 관객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해야 했다. 영화에서 배우의 목소리가 들리다니…. 영화사에 길이 기록될, 최초의 유성 영화 재즈 싱어(Jazz Singer)의 첫 대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관객들은 비록 두 장면에서만 배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이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게는 경이(驚異)였다. 사실 영화에 소리가 등장한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은 아니었다. 한 해 전에 워너사가 바이터폰(vitaphone)이라는 장치를 이용, 영상에 영화음악을 합성한 돈 주앙이라는 영화를 소개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배우들의 육성까지는 담아내지 못했다.
결국 영예는 재즈 싱어로 넘어갔고, 워너사는 350만달러라는 기록적인 흥행수입을 거둬들여 파산 직전에서 기사회생, 메이저 영화사로 발돋움했다. 영상과 음악과 목소리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진정한 의미의 최초의 유성영화 자리는 이듬해 제작된 뉴욕의 등불이 차지했다.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는 1935.10. 4에 단성사에서 개봉된 〈춘향전〉
[1831년] 독일의 수학자 데데킨트(Richard Dedekind) 출생
1831. 10. 6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브라운슈바이크~1916. 2. 12 독일 브라운슈바이크 브라운슈바이크 출생. 법학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카롤린대학에서 수학하고 괴팅겐대학에 진학하여 M.A.슈테른, K.F.가우스, W.베버 등의 강의를 들었다. 또한 가우스의 후임이었던 디리클레의 영향도 받았다. 1854년 괴팅겐대학의 강사가 되었으며, 1858년 취리히공과대학 교수를 거쳐 브라운슈바이크 고등기술학교로 자리를 옮겼다.
수학 활동은 넓은 의미의 수(數) 전반에 걸친 거의 모든 영역에 미쳤으며, 추상성과 일반성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군(群)을 공리계(公理系)로 정의했던 초기의 연구에서도 이 경향은 명백했지만, 가장 유명한 역작인 《연속과 무리수》(1872)에서 풍족한 결실을 보였다. 여기에서 무한집합을 고찰하였고 절단개념(切斷槪念)의 도입으로 연속성을 규정하였으며, 무리수의 개념을 명확히 함으로써 해석학의 기초 수립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 밖에 이데알이라 불리는 집합의 소분해(素分解)의 연구로 대수적 수에 관한 이론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
[1866년] 캐나다 태생 미국의 무선공학자 페선던(Reginald Aubrey Fessenden) 출생
1866. 10. 6 캐나다 퀘벡 밀턴~1932. 7. 22 버뮤다 해밀턴.
캐나다 밀턴 출생. 어릴 때 에디슨의 조수로 일하였다. 1893~1900년 피츠버그대학교 전기공학 교수를 지낸 뒤, 미국 측후소에서 일기예보의 무선송신법을 연구하였다. 지속전파(持續電波)를 발진하는 고주파 교류발전기, 전해검파기(電解檢波器) 등 500여 종의 발명이 있다. 미국 무선기술의 창시자로 일컬어진다.
[1869년] 스웨덴의 서정시인 베리만(Bo Hjalmar Bergman, 1869~1967) 출생
1869. 10. 6, Stockholm – 1967. 11. 17, Stockholm
초기의 염세적이고 운명론적 인생관은 당대 정치적․사회적 위기의 압력을 받아 공격적인 인도주의로 바뀌었다.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는 20세기 스웨덴 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 우체국 직원으로 있을 당시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1933년에 퇴직했다. 첫 시집 〈꼭두각시 Marionetterna〉(1903)에서는 우울한 수동성을 표현하고 있으나 이후의 시들, 특히 마지막 3권의 시집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Trots allt〉(1931)․〈옛 신들 Gamla gudar〉(1939)․〈왕국 Riket〉(1944)에서는 유럽의 정치 발전에 대한 공격이 점차 강해진다. 그밖에 산문 작품으로 5권의 단편소설, 5편의 장편소설, 5권의 모노그래프 등과, 자전적 단편(斷片) 등이 있다.
[1887년] 멕시코 혁명 시대의 뛰어난 소설가 구스만(Martin Luis Guzman) 출생
1887. 10. 6 멕시코 치와와~1976. 12. 22 멕시코.
멕시코시에 있는 국립자유대학교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멕시코혁명에 합류하여 판초 비야의 혁명군에서 대령으로 복무했다. 1914~34년 마드리드와 뉴욕에서 망명생활을 했는데, 뉴욕에서는 〈그라피코 El grafico〉지의 편집인으로 일했다. 혁명의 경험을 회고록 〈독수리와 뱀>(1928)으로 이름을 남겼는데, 이 회고록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혁명을 이룩한 인물들을 그려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소설 〈지도자의 그늘〉(1929)로도 유명한데, 이 소설에서는 1920년대 멕시코의 정치적 부패상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밖에 주요작품으로 〈판초 비야 회고록〉(1940)․〈청년 미나, 나바라의 영웅> 등이 있다.
그밖에
2000년 장종훈,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300홈런 신기록 달성
2000년 전국 의료계, 의약분업 강행에 반대하며 4차 총 폐업
1999년 인천지하철 1호선 개통
1998년 한국은행 초석세운 미국의 아서 블룸필드 박사 사망
1997년 '프리온' 단백질 발견한 미국 프루시너 교수 노벨의학상 수상자로 선정
1994년 한국-멕시코, 이중과세방지협정 체결
1987년 MS 사무용 SW 엑셀 2.0 버전 출시
1986년 삼성전자, 세계 최초 초소형 4mmVTR 개발
1982년 아시아-태평양우편연합(APPU) 집행이사회 개막
1982년 한국-노르웨이 경제, 기술협력협정 서명
1977년 미국, MX미사일 개발을 발표
1977년 육림의 날 제정
1977년 미국-소련, 국경회담 개최
1976년 태국 군부쿠데타 발생
1976년 소련, 북한에 차관 중단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1973년 인도 원자폭탄 실험
1972년 서울 인구 600만 돌파, 세계 6위
1971년 남북적십자, 3차 예비회담. 본회담의 서울, 평양 교대 개최에 합의
1955년 반공대회헌장 조인
1955년 조선실록 간행 착수
1953년 일본 해상보안청, 독도에 표주 건립
1953년 한일회담 3차회의
1951년 동경에서 한국-일본예비회담 개최
1946년 경향신문 창간
1931년 미국 단엽기(單葉機) 미스 비도르호 태평양 무착륙비행 성공
1926년 미국에서 토키(발성)영화 성공
1913년 원세개, 중국 초대대통령에 취임
1908년 국어운동의 선구자 주시경, <국어문전음학> 완성
1908년 오스트리아, 보스티아와 헤르체고비나를 병합
1906년 소련 소비에트 결성
1905년 모스크바 카잔철도 수리공장 노동자 파업(모스크바에 처음으로)
1896년 영국 풍자만화가 뒤 모리에 사망
1875년 독립운동가 김혁 선생 출생
1860년 프랑스군, 북경교외의 원명원을 점령
671년 신라, 당군을 축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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