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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언니] 02
#1. 인서트
<대성주조> 현판
#2. 운학루 뒤편
담장 아래서, 은조와 강숙이 마주하고 있다. 강숙, 몰라보게 귀족적인 모습으로 변모해있고,
은조 : 그 때 확 기차에서 뛰어내려 버렸어야 돼!
강숙 : (은조 앞이니 본래 말투로, 누가 들을새라 낮게) 조용해 이것아!
은조 : (OL) 이번엔 얼마나 갈 건데? 쫓겨나거나 도망치거나 둘 중 하나잖아. 얼마나? 석 달? 넉 달?
강숙 : 이번엔 그런 게 아니라니까!
은조 : 그런 게 아냐? 뭐가 그런 게 아닌데? 이 남자 등짝에서 저 남자 등짝으루 옮겨간 거 말구 뭐가 달라진 건데? 이제 제발,
엄마 진짜 제발, 사람같잖은 남자들한테 붙어서 밥 먹지 말자, 응? 그냥 엄마랑 나, 둘이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잖아!
강숙 : 목소리 안 낮춰?
은조 : 난 싫어. 난 안 해! 엄마 혼자 해!
강숙 : 이게 다 누굴 위해선데!
은조 : 으으으으으으윽! 거짓말! 나 위해서라는 거짓말, 진짜 딱 엄마만 아니라면 입을 꿰매놓구 말겠어.
강숙 : 뭐? (은조의 등짝을 철썩철썩 치며) 이년이 근데, 너 따라와! (끌고 간다)
은조 : (안끌려가려고 버티며) 놔!
강숙 : (끌고간다, 악에 받혀서 잇사이로 새어나오는 소리로) 이 나쁜년, 니가 죽든지, 내가 죽든지...
은조 : (끌려가며 가방 놓친다) 놔!
강숙 : (한 손으로 가방 줍는다) 닥쳐!
#3. 야산, 혹은 숲속
강숙, 은조를 가방으로 마구 친다. 은조, 맞지 않으려고 가방 뺏으려 한다. 강숙, 거칠게 은조 밀쳐내고, 가방 멀리 던져버린다.
은조, 밀쳐져서 씨근대며 강숙을 노려본다.
강숙 : (이제 운학루와 멀어졌으니 맘껏 소리지른다) 그래 이년아! 이 에미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구 갖은 용을 쓰는데,
딸이란 년이 뭐? 에미 입을 꿰매? 내가 누구 때문에 아둥바둥하는데!
은조 : 나 때문이라구 하지 마! 나 때문에 살아? 엄마가? 나 위해서 살아? 엄마가? 하! 그래서 날 버렸어?
강숙 : 뭐? 버려? 내가 언제 너를 버려 이것아! 애비두 없이 너란 년을 낳았을 때부터 버릴 생각은 단 한 번두 안했어!
내 팔자 너 때문에 드럽게 꼬일 줄 다 알면서두 버릴 생각 안했다구!
은조 : 날 그 집에 혼자 놔뒀잖아! 그 징글징글한 털보장씨한테 날! 인질루 잡혀뒀었잖아!! 내가 얼마나 끔찍끔찍했었는지 알아?
강숙 : (잠시 얼어서) ....
은조 : (부들부들 떨며) ....
강숙 : (잔뜩 긴장하는) 그 인간이 혹시 너한테....
은조 : .....
강숙 : ..... 이상한 짓 했어?
은조 : (터진다, 발 동동 구르며) 그럴까봐 얼마나 무서웠는데에에!!
강숙 : ...... 그래, 장씨가 아무리 개망나니라두 대천 살 때 그 자식처럼 그런 인간은 아냐, 내가 그건 알아,
아니까 거기다 널 혼자 놔뒀지이.
은조 : 거짓말. 상관 없잖아, 내가 어떻게 돼든. 굶는지 먹는지 자는지 깨는지, 절대 일초두 안 궁금한 사람이면서
날, 왜 불렀어? 왜 불렀는데? 나 갈 거야. 잘 먹구 잘 살아! (가는)
강숙 : (등짝 철썩 갈기며 붙잡아 세우는) 이게 진짜 왜 이렇게 핏대를 세워?
노인네 무르팍 세우는 거마냥 쩍하면 세우네 건방지게!
은조 : (악 쓴다) 왜 때려----!!
강숙 : 잘 들어. 여기 이 남자는 절대 그런 사람 아니야. 혼인신고두 제대루 해줄 거구, 너랑 나랑은, 어느 번듯한 집 호적에
오르는 거야. 우리두 호적이 생기는 거야. 거기다 부자야. 내 새끼한테 번듯한 집이 생기는 거야. 이게 마지막이야.
우리 이제 그지같은 남자들한테 밥 빌어먹지 않아두 되구, 그 작자들한테 도망쳐 여관잠 안자두 되구,
너 학교두 제대루 다닐 수 있구. 마지막이야. 여기서 살아야 해. 더 이상 다른 덴 없어.
은조 : 정말 더 이상 다른 덴 없어?
강숙 : 없어.
은조 : ......
강숙 : ......
은조 : 만약, 여기서두 쫓겨나거나 도망치게 되면,
강숙 : .....
은조 : 그 땐 정말 우리 둘만 믿구 사는 거야. 다른 사람한테 의지하지 말구.
강숙 : .....
은조 : 약속할 수 있어?
강숙 : 약속해.
은조 : ......
강숙 : ......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다, 노을이 모녀의 얼굴을 물들인다.
#4. 운학루 대청마루 (밤)
대성과 은조가 찻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어색하게 마주앉아있다. 적당한 거리.
강숙이 은조와 대성의 정확히 가운데각쯤에 앉아있다. 은조 옆에 가방 놓여있고.
대성 : .....
은조 : .....
강숙 : 뭐라구, 좋은 말씀을 좀, 해주시지요.... (이대 나온 여자 됐음)
대성 : (어색해서) .....
은조 : ......
강숙 : ..... 어른이세요.
대성 : 큼.... 학교를....
은조 : .....
대성 : 학교를 쭉 다니지 못했다구 들었어요.
은조 : .....
대성 : 내가, 늬 엄마랑, 큼...
은조 : .....
대성 : 그래서 딸이 하나였다가, 둘이 돼....
은조 : .....
대성 : 모쪼록 잘....
은조 : .....
대성 : 학교는 여기서 잘....
은조 : .....
대성 : (구원을 요청하듯 강숙을 본다)
강숙 : (소리는 없이 입모양으로만) 잘하셨어요. (끄덕끄덕)
대성 : (안심하는 어리숙한 웃음)
강숙 : 이제 가서 쉬라구 할게요.
대성 : 그, 그래요.
강숙 : 은조야?
은조 : (대성에게 꾸벅 인사하고 일어서는데)
효선(E) : (대문 박차고 들어오는 소리와 함께) 효선이 왔다아아!!
강숙 : 효선이 왔네요.
효선 : (대청마루문 요란하게 밀어젖히며 들어선다) 꺅!
은조 : (보는) .....
효선 : (은조를 보며) 아하하하하하! 다시 만났네?
은조 : .......
강숙 : 효선이 왔니?
효선 : (강숙에게 가서 허리를 껴안으며) 네- 효선이 왔어요-
은조 : (그런 효선을 보고 어이없어서) .....
#5. 운학루 마당 (밤)
대청마루 문이 열리고 효선과 은조가 내려오자
모여서 있던 부엌할멈들과 양조장 일꾼 몇몇이 얼른 저쪽 구석으로 흩어져가며 뭐라고 수근댄다.
효선, 은조를 데리고 자기 방 쪽으로.
#6. 효선의 방 (밤)
효선, 은조를 데리고 들어온다.
효선 : 언니 방은 지금 공사하구 있어서, 며칠만 나랑 같이 쓰는 거야.
(은조의 손에서 가방 받아들며) 가방 인주구 여기 앉아. (침대 탁탁 친다)
은조 : (침대 무시하고 의자에 앉는다)
효선 : (가방 내려놓고 침대에는 자기가 앉아서) 우리가 이렇게 됐네? 기차 안에서 만났을 때 우리가 이렇게 될 거라구
상상이나 했어? 진짜 너무너무 신기하지 않아? 언닌 거 모르구 막 너라구 해서 미안했어.
그치만 언니가 진짜 어리게 생겼단 말야.
은조 : 어디서 씻니?
효선 : 응?
은조 : 샤워 어디서 하냐구.
효선 : 응 저기. (방에 붙은 욕실 가리킨다)
은조 : (그리로 가는데)
효선 : 옷 갈아입어야지!
은조 : (보는)
효선 : (벌떡 일어나 옷장 문 연다, 효선의 이쁜 옷들이 가득 걸려있다, 도로 닫으며) 여기가 아니네. (반대쪽 연다, 텅 비어있다)
언니 짐 넣으라구 여기 치워놨어. (서랍 속에서 새 잠옷 꺼내준다) 이거 새로 사논 거야, 언니 주려구. 이쁘지?
은조 : 너 원래 그렇게 말이 많니?
효선 : 응? 어떻게 알았어? (까르르르르륵) 나 말 진-짜 많아!
은조 : (욕실로)
효선 : 언니, 잠옷! (하는데 욕실문 꽁 닫힌다) ..... 나와서 갈아입어!
#7. 욕실 (밤)
이쁜 욕실 안에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서 있는 은조. 세면대 위 양치컵 두 개, 칫솔 두 개.
효선(E) : 빨간 칫솔 언니 꺼! 파란 칫솔 내 꺼!
거울장 안을 열어보는 은조. 이쁜 수건들 가득. 이쁜 목욕용품들 가득.
은조 : ......
은조, 수건 하나 꺼내서 머리에 두르고 세면대 물 틀려는데, 어떻게 트는지 모르겠다. 수도꼭지를 돌려도 보고, 당겨도 본다.
효선(E) : 눌러 언니, 꼭지 누르면 물 나와.
은조 : .....?
은조 수도꼭지 윗부분을 꾹 누른다. 물 나온다. 그 물소리 가만히 듣고 있는.
은조 : ......
#8. 효선의 방 (밤)
미등 켜놓고, 은조는 침대 위에, 효선은 바닥 이부자리 위에 누워있다. 효선, 쉴 새 없이 떠들고 있다.
효선 : 그래서 아픈 엄마 때문에 공기 좋은 여기다가 아빠가 집을 지은 거야. 그러니까 아빠가 주조장까지 다니기가
너무 멀게 됐잖아. 그래서 아예 주조장을 집 옆에다가 짓게 된 거야. 그 때부터 쭉 여기서 살았어.
아까 내가 나 몇살 때까지 얘기한 거지? 일곱 살 때까지 얘기했지? 그리구 해가 바뀌구 여덟 살이 됐어.
은조 : (듣는 동안 내내 짜증스럽게 뒤척이다가, 드디어 못참고 벌떡 일어나 앉는다)
효선 : (저도 일어나 앉으며) 왜?
은조 : 니 라이프 스토리 재미 없구, 듣구 싶지 않구,
효선 : 여덟 살 때 얘기부턴 재밌어!
은조 : (으......)
효선 : 왜냐면 내가 여덟 살 때 학교를 들어가가지구,
은조 : (벌떡 일어나 방문 여는데)
효선 : (침대 아래로 내려서며) 언니 어디가? 나두 같이 가.
은조 : (우뚝 서서 휙 노려본다) ....
효선 : 시....싫음 말구....
은조 : (혼자 나가서 방문 꽝!)
효선 : 으아.... 울언니 짱 터프하다......
#9. 안채 마당 (밤)
은조, 마루를 지나 마당으로 나온다. 관심 없는 듯, 그러나 조심스럽게 집을 훑어본다.
은조의 시선으로, 달빛에 비치고 있는 집의 구석구석, 기둥, 추녀, 처마, 우물, 담벼락....
은조, 담장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사랑채로 통하는 문이 보인다.
#10. 사랑채 마당 (밤)
은조, 조심스럽게 사랑채로 들어선다. 아까처럼 사랑채를 그렇게 훑어보는데.
기훈(E) : 이야, 반갑다 너!
은조, 흠칫 놀라서 소리 나는 쪽을 본다. 기훈, 평상에 혼자 술상 차려놓고 앉아 달 보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기훈 : 안 그래두 심심했는데. 이리 와 한 잔 할래? 손님 있을 때 빼놓군 밤에는 사랑채가 텅 비거든.
은조 : (돌아서 가는)
기훈 : 도망쳐두 별 거 없더라.
은조 : ?
기훈 : 또 도망치면 된다며? 내가 그거 전문이거든. 전문가 입장에서 뭐든 지 대답해줄 수 있는데, 뭐 물어볼 거 없어?
은조 : (돌아서는데)
기훈 : 잠깐 잠깐! 내가 물어볼 게 있어.
은조 : .....
기훈 : 너는,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니?
은조 : ......
기훈 : 난 듣다듣다 그런 소린 난생 너한테 첨 듣는다? 웃겨서 웃구, 흐뭇해서 웃구, 좋아서 웃구, 반가워서 웃구...
웃을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하필이면 왜 뜯어먹을 게 있어야 웃는다는 거니?
은조 : 지금 왜 웃어?
기훈 : 응?
은조 : 웃겨? 흐뭇해? 좋아? 반가워? 뭐땜에 웃냐구 그럼 지금?
기훈 : 내가.. 웃어 지금?
은조 : (대답 않고 문 꽝 닫고 가버린다)
기훈 : ..... 아 짜식... 사람 되게 민망하게 하네 거....
#11. 안채 마당 (밤)
은조, 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선다. 방으로 가려는데, 사랑채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은조, 문득 멈추고 듣는다. 기훈이 낮게 웅얼웅얼하듯, 노래를 부르고 있다.
#12. 사랑채 (밤)
평상에 벌렁 드러누워 달을 보며 노래하고 있는 기훈. (‘달’에 대한 스페인어 노래)
#13. 안채 마당 (밤)
새어나오는 기훈의 노랫소리를 가만히 듣고 서 있는 은조. (F. O)
#14. 인서트
빈 안방에 걸려있는, 강숙과 대성의 결혼식 사진.
#15. 여고 교정
벨 울린다.
#16. 은조와 효선의 교실
반장 : 차렷. 경례.
학생들 :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가면 교실이 어수선해진다.
은조, 책 챙겨 서랍에 넣는데, 효선과 효선의 친구들이 은조에게로 온다.
효선 : (은조에게) 매점 갈 건데 뭐 사다주까?
은조 : (말없이 다음 수업시간 교과서 꺼낸다)
효선 : (쌀쌀맞은 태도에 입을 뿌우- 내민다)
친구1 : (은조에겐지 효선에겐지 모를 애매한 시선과 말투로) 꿇었다면서.... 요? 뭐라구 불러?
그냥, 은조라구 이름 불러? 아니면...언니?
은조 : 부르지 마.
친구들 : ......
은조 : (일어서서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다)
친구1 : 야, 뭐냐. 니 언니라니까 잘해주려는 거였는데.
친구2 : 재수없어.
효선 : 어우 야아.
#17. 복도
은조, 화장실로 가는데 은조 뒤에서 찍- 미끄럼 타고 달려와 은조의 팔짱을 끼는 효선.
효선 : 같이 가 언니.
은조 : (팔 빼내고 혼자 화장실로 들어간다)
효선 : ......
#18. 카센터
맡겨놓은 대성의 자동차를 찾아가지고 나오는 기훈.
기훈이 운전하는 차가 도로로 진입해 가면, 저쪽 뒤에 서 있다가 따라붙는, 기막히게 좋은 오토바이 한 대.
오토바이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오토바이 몸체에서 번쩍번쩍 요란한 조명.
#19. 거리
기훈의 차 뒤를 오토바이가 바짝 뒤쫓는다.
기훈, 길을 비켜주듯이 차선을 바꿔준다. 오토바이, 추월하지 않고 바로 기훈의 뒤를 따라 붙는다.
룸미러로 그 오토바이를 보는 기훈 뭐야?
기훈, 속력 낸다. 오토바이, 또 그만큼 바짝 붙는다. 차 꽁무니와 오토바이가 거의 닿을 것 같다.
기훈, 차를 세워버린다. 놀란 오토바이도 급정거한다.
기훈, 차에서 내려 오토바이 쪽으로 온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사람, 헬맷을 벗으면, 기태다.
기훈, 기태를 보고 잠시 멍하다. 그가 왜 여길?
기태 : (오토바이에 헬맷 내려놓고, 엉덩이 사이에 낀 가죽바지를 잡아빼며 기훈에게로 가면서) 갑자기 서면 어쩌란 말야?
기훈 : ......
기태 :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이럴라 그러지? (가죽장갑 제대로 여미어 끼며) 여긴 어쩐 일로 왔느냐면 말이다,
(해놓고 퍽! 기훈에게 주먹 날린다)
기훈 : (나가 떨어진다)
기태 : (내려다보며 점퍼 안주머니에서 사진들을 꺼내 펄럭펄럭 기훈의 얼굴 위로 뿌리는)
이거 찍은 놈이랑 몇대 몇? 반씩 나누기로 했냐? 아니면 육대 사? 칠대 삼?
기훈 : (일어나 앉으며 사진들 본다)
기훈이 대성도가에서 일꾼으로 일하는 모습들이 잔뜩 찍혀있다.
일꾼들과 함께 누룩을 밟는, 고두밥을 너는, 대성에게 야단을 맞는, 술독을 옮기는,
출하하는 날 술박스를 트럭에 싣는 기훈들이다.
플래쉬백 - 술독 옮기며 찰칵, 소리에 주변을 둘러보던 기훈.
기태 : 니가 머리가 꽤 잘 돌아가. 이런 거 신문사에 돌리면 말거리가 된다. 응, 말거리가 되겠어. 홍한석씨 숨겨진 아들내미는
구박덩어리라서, 촌구석 양조장에서 막일이나 하는 신세라구, 그 형들이랑 아버지랑 싸잡아서 인간 말종들이라구,
아주 잘근잘근 씹어대기 딱 좋겠어, 응, 머리 좋아, 아--주 좋아.
기훈 : (일어서서 터진 입 쓱 닦고, 기태를 정면으로 본다)
기태 : 응? 뭐 할 말 있어?
기훈 : (웃는다)
기태 : 응? 웃어?
기훈 : 반갑습니다 기태형. 오랜만이에요.
기태 : 응, 할 말 있으면 해 봐. 형짜 빼고.
기훈 : 아버지 건강하세요? 기정이 형님도 잘 계시나요?
기태 : 아 나 이 자식 이거 (주먹으로 기훈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각종 가족관계에 붙이는 호칭은 빼구 말하란 말야, 어?
기훈 : 저 이런 사진 찍은 적 없어요. 돈이 필요한 어떤 못된 사람한테 된 통 걸려버린 모양인데, 사진 가져오신 거 보니까
벌써 다 해결하신 거 같구, 그러니까 더 이상 문제 없을 거 같구. 형이라구 부르는 거 싫어하시니까 그럼,
홍기태 이 개자식, 나 너한테 맞을 이유 없어! (해놓고 퍽!)
기태 : (나가 떨어지면)
기훈 : 얼씬두 하지 말래서 얼씬두 안하구 있어. 조용히 살아달래서 조용히 여기서, 운좋게 좋은 아저씨 만나서,
좋은 사람들하구 잘, 지내구 있거든? 당신들이야말루 내 앞에서, 단 일초라두 얼씬거리지 마. 알았어?
기훈, 차 타고 가버린다. 남겨진
기태 : (맞은 곳 틀어쥐고, 떠나는 기훈의 뒤꽁무니를 보면서) 저 새끼...주 먹.. 쎄..드아.... (일어서다 다시 주저앉는) 엄마야...
#20. 달리는 차 안
기훈, 씁쓸한 얼굴이다가, 라디오를 크게 틀어버린다.
#21. 학교 앞
하교길, 은조가 혼자서 나오고 있다. “언니-” 하고 애타게 부르며 효선이 쫓아오고 있다.
은조, 걸음을 빨리한다. 효선, 숨을 헐떡거리며 달려와 은조를 붙든다.
효선 : 언니. 같이 가.
은조 :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 간다)
효선 : (옆에서 따라붙어 걸으며) 아빠 엄마 오늘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이잖아. 같이 공항 가자.
기훈 오빠가 태워다 준댔어. 오빠 와 있을 텐데, 어 저깄다. 오빠--!
기훈이 대성의 차를 세워놓고 아이들을 손짓해 부르고 있다.
효선이 은조의 팔을 잡아끌며 기훈에게로 가는데, 은조, 효선의 팔을 뿌리치고 제 갈 길로 간다.
효선 : (따라가 잡으며) 언니- 언니이.
기훈 : 효선아 그냥 와.
효선 : (기훈 보며) 왜애! 같이 갈 거야.
기훈 : (이미 저만큼 가고 있는 은조를 보며) 누구 말을 듣는 애가 절대 아냐.
은조 : (가면서) ....
기훈 : 빨리 와. 이러다 엇갈리겠다.
효선 : (하는 수 없이 기훈에게 가면서) 언니- 그럼 이따 집에서 봐-
기훈, 효선에게 차 문을 열어주면서, 은조의 뒷모습을 본다.
은조, 홀로 걸어가고, 두 사람의 차가 은조 앞을 쌩 하고 지나간다.
은조 : ......
#22. 운학루와 대성도가 앞
담장을 따라 끝도 없이 늘어선 각종 바퀴달린 물건들.
경운기, 트랙터, 비료가 실려있는 트럭, 농기구상 상호가 적혀있는 봉고차, 소형 자동차, 오래된 자동차, 비싼 자동차,
한 오십 대는 족히 되겠다. 그 위에 운학루 담장 안에서 들려오는 것이 분명한, 왁자하고 시끄러운 웃음소리들.
카메라가 담장을 걸어올라가면 담장 안 풍경 펼쳐진다. 사람들로 가득하고, 잔치가 벌어졌다.
#23. 운학루 마당
동네 아줌마들이 술(당연히 대성도가에서 만든 술)과 음식을 손님들에게 갖다 대기 바쁘다.
한 무리는 분합문을 떼어내 완전히 열어놓은 대청 앞에서 뒷모습을 보이며 우르르 몰려있다.
#24. 대청 안/밖
90대 노인부터 4, 50대 정도까지 내림차순으로 대청마루에 줄줄이 앉아있는 대성의 친척들.
강숙, 부엌 할매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어른들께 큰절 올리는 중. 그 옆에서 대성이 어른들을 소개하고 있다.
(귀종조부님이세요 / 당숙어른 내외분이세요 / 당고모님, 당고모부님이세요 등등...)
그 사람들에 끝도 없이 큰절을 올리는 강숙.
은조, 대청 밖에서 대청을 감싸고 구경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그런 엄마를 보고 있다.
대성 : 재당숙모님이세요.
강숙 : (땀에 흠뻑 젖었다, 절한다. 드디어 마지막이다.)
재당숙모 : (빤---히 강숙을 본다, 50대)
강숙 : (절을 마치고 덕담이 나올 것을 기다리며 재당숙모를 본다)
재당숙모 :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캐내듯이 강숙을 계속 본다)
강숙 : ......?
대성 : 한 말씀 해주세요 숙모님.
재당숙모 : (강숙에게) 사주가 어떻게 되는가?
강숙 : ...... 예?
옆의 어른들이 갑자기 재당숙모를 쿡쿡 찌르며 하지 말란다.
강숙, 대성을 바라본다. 대성, 난처한 얼굴이 되는데.
재당숙모 : (휙 하고 고개를 돌려 대청 밖의 은조를 매섭게 본다)
은조 : ?
재당숙모 : (기싸움을 하듯이 계속 노려보는) ......
대청 밖. 어느 틈에 은조 옆으로 와있는.
효선 : (작은 소리로) 저 할머니(재당숙모)는 옛날에 무당이었는데, 지금은 교회목사님이시다? 장군신하구 예수님이
번갈아 찾아오신대. 재밌지? (하면서 자연스럽게 은조의 팔짱을 끼고는) 언니한테 뭔가 느껴지시나봐 지금.
은조 : (뿌리치면서, 뭐야, 하는 기분으로 재당숙모를 노려보는)
효선 : (뿌리쳐져서).....(고개를 돌려 저쪽을 보면)
기훈 : (저쪽에서 지긋이 웃고 서 있고)
은조 : (재당숙모를 계속 보고 있고)
재당숙모, 은조와의 눈싸움에서 마침내 밀려버렸다. 꼬리를 내리듯, 은조에게 꽂았던 매서운 눈매를 서서히 거두고,
심지어 아주 비굴한 얼굴이 되어 비슬비슬 웃고, 마침내 고개를 떨구더니, 검지손가락으로 마룻바닥을 무연하게 문지른다.
어른들, 모두 이 모양을 보고 입을 쩍 벌린다. 어른들의 시선이 일제히 은조에게 꽂힌다.
은조 : ......
효선 : (그런 은조를 보고, 재당숙모할머니를 보고, 그 앞에 앉아있는 강숙을 본다)
기훈 : (은조를 본다) ......
어른들 : (한꺼번에 와글와글) 그럼, 아이 인사도 받아야지 / 얘 올라오련(은조에게) / 이보게, 좋은 날인데 무슴슴한 소릴랑
그만 두게(재당숙 모에게) / 어이 조카, 우두망찰 서있지 말고 여식아이를 들이게(대성에게)/ 등등...
효선 : (은조의 팔을 끼며) 언니, 인사드려야지, (하고 댓돌 위로 한 칸 올라가는데)
은조 : (다시 효선의 팔을 뿌리치며 안쪽의 강숙을 본다)
강숙 : (어서 올라오라고, 눈으로 말한다)
은조 : (신발 벗고 대청으로 올라서는 데서)
#25. 안방
강숙 들어서서 안방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털썩 주저앉는다.
짜증 가득한 얼굴로, 한복 치마 휘휘 걷어올리고 버선 벗으려고 하면서 중얼중얼.
강숙 : 집구석 참 복잡하네, 일가친척 촌수는 뭐가 그리두 많구, 아 무슨 절을 사돈의 팔촌까지 시키려들어, 팔자두 드런 년,
팔자 고칠라구 들어온 집에서 뒤루 자빠져두 코가 깨.... (버선 안벗겨지다가 여기서 팍 하고 벗겨진다,
뒤로 발라당 쿵! 하며) 진다더니... (하는 순간)
대성, 안방문 드르륵 열고 들어선다. 발랑 누운 강숙과, 뻘쭘해있는 대성, 잠시 그대로.
강숙, 후다닥 일어나 앉는다.
강숙 : (이대 나온 여자) 발이 너무 부어서....
대성 : (그 앞에 앉으며) 발 이리 줘봐요.
강숙 : 아이.....
대성 : (한복치마에서 강숙의 발 꺼내 주무른다)
강숙 : (부끄러운 듯 발을 빼내려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대성 : (주무르면서) 일가 친척두 많구, 말두 많구, 일두 많은 집안이오. 당신 신수를 고단하게 만든 거 같아, 미안해요.
강숙 : 아....
대성 : ?
강숙 : 살살...
대성 : ? ..... 아. (살살 주무른다)
강숙 : 하늘 아래 은조랑 저, 둘밖에는, 아무두 없었어요.
대성 : ...... (보는)
강숙 : 다 주무르셨어요?
대성 : ..... 아. (다시 주무른다)
강숙 : 한 번두 어느 집안의 누구였던 적이 없어요.
대성 : ..... (주무르며 가만히 듣고 있는)
강숙 : 우리 은조, 지 엄마 말구는 아무두.... 아버진 물론이구 누굴 삼촌이나 고모나, 그렇게 부를 사람이 없었어요.
대성 : ......
강숙 : 지붕없는 집에 살다가 마침내 지붕 얹은 날 같아요. 고마워요. 잘할게요.
대성 : ......고마워요.
강숙 : 후회하실 거 같으면 지금 말씀하세요.... (하며 별안간 흑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대성 : ?..... 왜요? 왜 그래요?
강숙 : 누구든 절 보면 그래요, 운수가 사나워보인다구요, 빼어난 절색이면 뭐하냐구, 남편 잡아먹을 상인데.
대성 : 대체 이게 무슨 말이에요? 누가 그런 말두 안되는 소릴 해요?
강숙 : 재당숙모님이 제 사주를 왜 물으셨겠어요..
대성 : 그, 그런 게 아니에요. 공연한 생각이에요. 그 분 원래 누구한테나 사주를 물으세요.
강숙 :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뚝뚝 흘리면서) 께름칙하시면 지금 말씀하세요, 아직 혼인신고두 안돼있으니까.
대성 : (안타까워 어쩔 줄 모르며) 그런 생각 해야 하는 당신, 안쓰러워요. 나하구는 그런 걱정 안해두 돼요. (눈물 닦아준다)
약속해요. 그러지 않겠다구.
강숙 : (남은 눈물 거두며) 이쪽 발두 아파요.
대성 : ?.... 아. 그래요. (다른 쪽 버선 벗긴다)
강숙 : (그런 대성을 귀엽다는 듯 보며 몰래 웃는)
대성 : (벗기고 주무르기 시작하는데)
문 확 열리고
효선 : 아빠, 당숙 할머니가,
대성 : (후다닥 강숙의 발을 놓고 벌떡 일어선다)
효선 : .... (강숙을 보면)
강숙 : (자빠져있다)
효선 : (대성을 본다)
대성 : (민망해서 효선을 밀치고 후다닥 밖으로 사라진다)
효선 : (그러는 아버지를 일별하고, 와서 강숙을 일으킨다) 괜찮으세요?
강숙 : (일으켜져서 표 안나게 효선의 손을 놓고, 부서지게 웃으면서 상냥하게) 어른들 방에 드나들 때는
들어온다는 신호를 좀 줘야 예의겠지?
효선 : 예?...아....아하하하.... 한 번두 안그래봐가지구....제가 좀 버르장머리가 없어가지구....
강숙 : (상냥함 속에 냉기를 품은 웃음으로 효선을 보고 있다)
효선 : (냉기 같은 건 알아차리지 못하고 헤벌죽- 따라 웃는다)
#26. 운학루 사랑채
안채에서 사랑채로 통하는 사잇문이 열리고 은조가 책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은조가 문을 닫으면 사람들의 소음이 작아진다.
은조, 신발 벗고 윗사랑채 누마루로 올라간다.
#27. 사랑채 누마루
은조, 손가락으로 바닥을 쓸어본다. 먼지 한 점 묻어나지 않는다.
은조, 책가방 열어 수학책 꺼내 문제 읽기 시작한다. 읽어도 모르겠다. 책 뒷부분 해답 찾아본다. 설명 읽는다. 읽어도 모르겠다.
답답해하는 은조 얼굴 위에.
대성(E)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숙모님?
은조 : ?
재당숙모(E) : 글쎄 내가 됐다 할 때까지 혼인신고를 뒤로 미루게.
은조 : (무릎 걸음으로 소리나는 쪽을 향해 기어간다)
#28. 사랑채 뒷마당
재당숙모, 대성을 붙들고 엄중히 훈계하는 중.
재당숙모 : 보통것이 아니야. 잘못 들였어.
대성 : 숙모님.
재당숙모 : 자칫 잘못하면 패가망신하구, 에휴, 무서와. 아이구, (옹송그리며) 왜 갑자기 이렇게 몸이 떨리나 그래,
#29. 사랑채 누마루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엿듣고 있는 은조.
재당숙모(E) : 얼굴에 떡허니 써있네. 자네까지 잡아먹을 상이라구.
은조 : ......
#30. 사랑채 뒷마당
재당숙모 : 그러니 내가 살을 걷어낼 때까지 혼인신고를 말라 말이야. 알겠는가?
대성 : 숙모님. 그러지 말아주세요.
재당숙모 : 그러지 말라니?
대성 : 잘 모르시는 말씀두, 잘 아시는 말씀두, 아무 말씀두 하지 마세요. 그 사람에 대해서 뭘 아십니까?
재당숙모 : (괘씸해서) ?
#31. 사랑채 누마루 / 앞마당
엿듣고 있는 은조 위에.
대성(E) : 그 사람, 그 사람 딸아이, 이제 제 식굽니다. 제 식구에 대고 험한 말씀 하시는 거 그만 둬주세요.
은조 : .......
재당숙모(E) : 보이는 걸 그럼 어쩌란 말야?
대성(E) : 보지 마세요 글쎄!!
은조의 시선으로, 휙 하고 가버리는 대성이 보인다. 기막혀하는 재당숙모도 보인다.
은조 : ...... (시선이 앞마당 쪽으로)
대성, 뒷마당에서 나와 안마당 누마루 앞을 휙 지나쳐 사잇문 열고 안채로 사라진다.
재당숙모도 그 뒤를 따라 “이보게 조카!” 부르며 따라나간다. 사잇문 닫힌다.
그 문을 빤히 보고 있는 은조 위에
대성(E) : 이제 제 식굽니다. 제 식구에 대고 험한 말씀 하시는 거 그만 둬주세요.
은조 : (여전히 문에 시선 고정한 채로) ......
갑자기 그 문이 활짝 열리고, 기훈이 들어선다.
기훈 : 한참 찾았잖아.
은조 : (말없이 보던 책 챙겨 가방에 넣는다)
기훈 : (마루 끝에 걸터앉으며) 피난처론 별로야. 여긴 사랑채거든.
좀 있으면 나처럼 오늘밤 묵구 가실 집안 어른들이 단체루 들어오실 걸?
은조 : (책가방 들고 마루끝으로 온다)
기훈 : (은조의 신발 신기 좋게 놓아준다)
은조 : (그 신발 신고 마당으로)
기훈 : (빙글빙글 웃으며) 숨기 좋은 데 있는데, 알려줄까?
은조, 그대로 문을 향해 가는데 그 문 열리고 우르르 왁자하게 들어서는 어른들.
은조, 얼른 기훈 앞으로 간다.
은조 : 어딘데?
#32. 대성주조 정문 (밤)
간판(한자 휘호) 인서트
#33. 술창고 (밤)
(인서트) 수도꼭지를 트는 기훈의 손. 벽면에 겹겹이 쌓여있는 술통. 각 술통 아랫부분에 수도꼭지가 달려있다.
기훈, 술잔에다 수도꼭지에서 흘러나오는 술을 받고, 꼭지를 비틀어 잠근다. 술잔의 술을 맛보는 기훈.
기훈 : 국화주다. 너두 한 모금 맛볼래?
기훈 보면, 은조가 없다. 기훈, 술잔 들고 창고 안을 휘둘러본다.
저쪽 구석에서 은조가, 술통을 책상삼아 책 펴놓고 무릎에 연습장 올려놓고 ‘빽빽이’를 하고 있다.
기훈, 빈 술 선반 하나 가져와 은조 앞에 놓는다. 은조, 본다.
기훈, 술통 위의 책을 선반에 올려놓고, 은조 무릎 위의 연습장도 선반에 올려놓는다. 선반은 책상이, 술통은 의자가 됐다.
은조 : (보는) ......
기훈 : 앉아서 해. 허리 아프잖아.
은조 : (선반 위의 책을 다시 술통으로 옮겨다놓고, 노트는 무릎 위에 다시 놓고 공부 시작한다)....
기훈 : 하......
(F. O)
#34. 운학루 외경 인서트
#35. 아이들 방
은조, 교복 입는 중. 효선, 교복 입은 채로 침대에 누워 휴대폰 들여다보고 있다.
효선 : 문자를 못받은 건가? 내가 번호를 잘못 눌렀나? 근데 문자 열 개가 하나두 안갔다는 게 말이 돼?
(은조에게) 아무래두 통신사를 바꿔야 겠지? 그치?
은조 : (스커트 지퍼 채우고 책가방 든다)
효선 : 언니는 어느 통신사야? 중간에 문자 행방불명 되는 경우 없어? 없으면 나두 언니랑 같은 걸루 바꿀까?
은조 : (나가다 말고 물끄러미 본다) 너 바보니?
효선 : 응?
은조 : 어떻게 하면 그렇게 굳세게 믿을 수 있는 거니? 구효선 문자는 절대루 씹히지 않는다구.
그렇게 열심히 믿는 그 종교가 무슨 종교니? 십일조는 제대루 내면서 믿니? (나간다)
효선 : ...... 김동수, 내 문자 씹은 거야???
효선, 동수에게 “혹시 내 문자 씹는 거니?” 하고 문자 작성한다.
#36. 학교 가는 길
은조, 앞서서 걷고, 효선, 종알대며 열심히 은조를 따라붙는다.
효선 : 언니, 정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야? 열 한 개나 보냈으면, 그 중에 딱 하나라두 대답이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걔 훈민정음 모르는 거 아냐? 왜 문자를 씹지?
은조 : (입으로 바람 훅 불어서 앞머리 날린다) 야.
효선 : 응?
은조 : 너 나한테두 하루에 쓰잘데기 하나 없는 문자 열 개씩 보내잖아. 내가 답장하는 거 봤어? 왜 답장 안하는지 몰라?
효선 : 그거야, 언니는 날 맨날 보니까, 집에서두, 학교에서두,
은조 : 말을 말자. (간다)
효선 : 언니 같이 가- (따라붙다가 문득 선다) 어.....
은조 : ?
효선 : (은조 뒤에 얼른 숨는다)
은조 : ?? 뭐 하는 짓이야?
효선 : (속삭이는 소리로) 언니 저기...동수....
은조 : ?
저쪽에 동수, 학교에 가고 있다. 효선, 은조 뒤에 숨어서 안절부절못한다.
그런 효선을 보다가 동수에게로 막 뛰어가는 은조.
효선 : ? 언니? 언니?
동수의 어깨를 뒤에서 탁 잡는 은조. 동수, 본다.
은조 : 동수냐 니가?
동수 : .... 어.
은조 : 너 쟤 알지?
동수 : ? (은조가 가리키는 곳 본다)
효선 : (나무 뒤에 뽀르르 숨는다)
동수 : 어.
은조 : 너 왜 문자 씹냐?
동수 : 어?
은조 : 나 쟤 징징대는 거 정말 짜증나거든?
문자에 답장을 하든지, 싫으면 싫다구 당당하게 말하구 입을 막아버려! 알았어? (간다)
동수 : (얼떨떨한 채로) .....
#37. 무용학원
연습곡 마무리 춤동작.
선생님 : 오늘 연습 끝-.
효선과 아이들 일제히 동작을 풀고 우르르 탈의실로.
#38. 학원 탈의실
효선, 아이들과 함께 옷 갈아입는데, 효선의 휴대폰에서 “문자 왔다-” 소리.
효선, 얼른 휴대폰 열어 문자 본다. 확 하고 밝아지는 효선의 얼굴.
효선 : 동수다!!!!!!!!!
#39. 학교
빈 교실 창밖으로 노을진다. 은조, 빈 교실에 혼자 앉아서 수학책 펼쳐놓고 빽빽이 하고 있다.
#40. 운학루 안채 마당 (밤)
대성이 마당 한쪽 광에서 누룩틀을 잔뜩 들고 나온다. 뒤이어 일꾼들도 누룩틀을 들고 나온다.
대문 쪽으로 가는데, 대문이 벌컥 열리면서.
효선 : 효선이 왔다----! 아빠 다녀왔습니다, 아저씨들, 다녀왔습니다.
대성 : 왔니?
아저씨들 : (적당히 인사하고 대문 밖으로)
효선 : (안방을 향해) 엄마! 효선이 학교 다녀왔습니다- (부엌을 향해) 할머니들, 효선이 왔다--
강숙 : (부서지게 웃으면서 안방에서 대청으로, 대청에서 마당으로 한달음에 나온다) 왔니?
효선 : (휴대폰 펼쳐서 짠 하고 보여준다) 동수한테 문자 왔어!!!!
대성 : 동수?
강숙 : 그래? 동수한테 문자 왔어? 열심히 보낸 보람이 있네? 어디 좀 보여줘 우리 딸!
효선 : 아 근데, 보여줄 순 없는데.
강숙 : 그래? 비밀이야? 서운한데?
효선 : 그래두, 너무너무 비밀이라서...
대성 : (그런 두 사람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은조 : (들어서면서) 다녀왔습니다. (하고 제 방쪽으로)
대성 : 왔니?
효선 : (가는 은조에게) 언니, 고마워, 언니 덕분에 동수한테 문자 왔어!
은조 : (그냥 사라진다)
대성 : (그런 은조가 마음이 쓰이고)
효선 : (울먹울먹한다)
대성 : ?
효선 : 다신 자기한테 문자하지 말라구 문자 왔어--- (하고 으아앙 울음을 터뜨린다)
#41. 아이들 방 (밤)
은조, 문 조금 열어놓고 안보는 체하며 마당의 풍경을 본다.
효선, 강숙의 가슴에 머리를 박고 엉엉 울고 있다. 강숙, 효선을 안아주며 달랜다.
대성, 허허 웃어버리다가 은조 쪽을 본다. 은조, 문 닫아버린다.
#42. 아이들 방 (밤, 시간경과)
효선, 잠들어있고, 은조, 스탠드 켜놓고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밖에서
대성(E) : 공부하니?
은조 : (문득 연필 멈추고)....
대성(E) : 잠깐 나올래?
은조 : ......
#43. 안채 마당 (밤)
대성, 벤치나 평상 같은 곳에 앉아있고, 은조, 내키지 않는 얼굴로 방에서 나와 댓돌로 내려선다.
대성, 옆에 와 앉으라고 자리 비켜준다. 은조, 대성 앞에 와서 선다. 대성, 앉으라고 빈 자리 손으로 가리킨다.
은조 : 됐어요.
대성 : (자기도 일어선다) 오늘,
은조 : (대성이 일어서자 자기는 앉는다)
대성 : ..... (옆에 앉는다)
은조 : (멀찌감치 떨어져 앉는다)
대성 : 낮에 늬들 담임 선생을 만나구 왔다. 네가 공부를 썩, 잘 한다며?
은조 : 좀 해요.
대성 : 학교를 내처 다니지 못해서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머리가 좋은가보군.
은조 : 좋아요.
대성 : 공부 말고 또 해보고 싶은 건 없니? 효선이처럼 무용학원에 보내주랴?
은조 : 싫어요.
대성 : 그럼, 피아노나 바이얼린 같은 걸 배워보련?
은조 : 싫어요. 그냥 돈으루 주든지요.
대성 : ......
은조 : ......
대성 : 장차, 뭐가 되고 싶니? 꿈이 뭐야?
은조 : ..... 할 말이 뭐에요?
대성 : ...... 뭔가 필요하면 나한테 의논을 해라.
은조 : ......
대성 : 네가 네 장래를 위해 무슨 계획을 세웠는데 거기에 무슨 도움이 필요하면, 나한테 말을 해라. 힘 닿는 데까지 도와주마.
은조 : ......
대성 : 날 의지해도 괜찮다.
은조 : ......
대성 : 늬들 나이엔 잠을 푹 자야 한다. 일찍 자렴. (일어나 안채로)
은조 : ......
#44. 학교 교실
수학시간. 수학 선생님, 문제 풀이 설명하고 있다. 은조, 열심히 듣는다. 효선, 졸고 있다.
은조, 눈은 칠판에 고정한 채, 손으로는 열심히 필기.
수학선생 : 자 그럼 이 문제 누가 나와서 풀어보자. 이 반 수학 일등이 누구지?
애들 : 송은조요.
수학선생 : 아 그래, 송은조, 나와서 풀어볼래?
은조 : ......
수학선생 : 송은조?
은조 : ...... 싫은데요.
일제히 은조에게 꽂히는 시선. 효선도 화딱 잠에서 깨어 은조를 본다.
수학선생 : 뭐라구?
은조 : 싫다구요.
수학선생 : (어이없고)
은조 : (눈 똑바로 뜨고)....
벨 울린다. 벨이 울려도 모두 정적.
수학선생, 기막혀 하며 그냥 문을 꽝 닫고 나간다. 아이들, 입 벌린 채 그대로....
효선 : ....... 짱이다 울언니......
#45. 대성도가 마당
은조 들어온다. 해진이 일하는 모습 보인다. 해진에게로 가는.
은조 : 저기요, 어디 계세요?
해진 : 나? 여깄잖아.
은조 : ....... 효선이 아버지요.
해진 : (고개로 사무실 가리킨다)
은조 : (가리킨 곳으로 간다)
해진 : 어른한텐 인사 먼저 하는 거다. 대뜸 용건부터 말하지 말구.
대단히 건방지구 버릇없어 보이.....(하고 보면 은조는 이미 없다)....허 참.
#46.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은조를 올려다보고 있는 대성.
은조 : 다른 건 괜찮은데 수학이 좀 딸려요. 과외 시켜줄 수 있어요? 하빠 리들 말구 좀 비싼 선생으로 붙여줘요.
대성 : 수학 과외? 수학 점수도 좋다구 들었는데?
은조 : 왼 거예요.
대성 : ?
은조 : 문제랑 답을 통째루 왼 거예요. 내가 기초가 없거든요.
대성 : 수학을.... 욌다구?
은조 : (책가방 열어 빽빽이 연습장 꺼내 펼쳐 휘리릭 넘기며 보여준다)
대성 : .....
은조 : (책가방에 연습장 다시 넣는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랬잖아요.
대성 : 국어과외두 같이 받으면 어떻겠니?
은조 : 국언 잘해요. 학교에서 내가 젤 날 걸요?
대성 : 하빠리 같은 말은 듣기가 나쁜 말이구, 어른 앞에선 내가가 아니라 제가라구 해야 하구,
이런 거까지 같이 가르쳐줄 실력있는 수학선생을 한 명 알지. 언제부터 시작할래?
#47. 대성의 서재
넓은 탁상에 은조와 효선이 마주앉아있다. 은조는 책 보고 있고, 효선은 턱 고인 채 은조를 보고 있다.
효선 : 언니.
은조 : ......
효선 : 언니.
은조 : ......
효선 : 자꾸 그러면 나두 지친다?
은조 : (본다)
효선 : 아니 뭐.... 그렇다구.
은조 : (책 본다)
효선 : ...... (아무렇게나 책 펼치는데)
문 열리고 기훈 들어선다.
은조 : ???
효선 : (힘없이) 오빠 왔어?
은조 : ???
기훈 : (와서 앉는다) 시작할까?
효선 : (하품)
기훈 : (가방에서 책 꺼내 탁상에 올려놓는다)
은조 : ..... 실력있는 선생으루 해달랬는데.
기훈 : 응, 그럼 제대루 고르신 거지.
효선 : (의욕없이) 기훈오빠 서울대생이야. 지금은 휴학중이구. 머리 완전 좋아.
기훈 : 고맙다. 똑바루 앉아.
효선 : (탁상에 푹 엎어진다) 정말 싫다......
기훈 : 구효선.
효선 : 네에--- (허리 편다)
은조 : ......
#48. 서재 앞 마루
효선, 휴대폰으로 메신저 한다.
효선(E) : 난 과외 시작했다? 너는?
친구(E) : 윽. 나는 학원 고고씽.
효선(E) : 지금? 지금 학원 간다구?
친구(E) : 응 지금.
효선(E) : 나랑 조금만 더 놀자아-
#49. 서재
기훈 : (*수학 풀이 후) 이렇게 한 다음에 인수분해하면 돼.
은조 : 인수분해가 뭔지 설명해봐.
기훈 : ?
은조 : 설명해 얼른. 인수분해.
기훈 : 설마 내가 그걸 모른다구 생각해서 그러는 거니, 아님 니가 모른다는 거니?
은조 : 내가 몰라.
기훈 : ..... 중학교 때 배우는 건데?
은조 : 학교를 띄엄띄엄 다녔다구 또 말해야 해?
기훈 : ...... 그, 그래. 그럼 인수분해... (연습장 다음페이지 펼친다)
은조 : (시선이 곧바로 기훈의 연습장에)
기훈 : ...... (연습장 다시 닫는다)
은조 : 뭐야?
기훈 : 선생님이라구 불러.
은조 : ......?
기훈 : 설명해봐가 아니라 설명해주세요. 혹은 가르쳐주세요.
은조 : ......
기훈 : (엄하게) 빨리 해 봐. 얼른!
은조 : ...... (연필 확 집어던지고 일어서서 문으로)
기훈 : (기막힘)
은조 : (무슨 생각에선지 다시 돌아와 앉는다)
기훈 : ?
은조 : 갑자기 존경심이 생겨서는 아니구요 선생님, 제법 잘 가르치는 거.. 아니, 몹시 잘 가르치시는 거 같기두 하구,
선생 바꿔달란 소리 하기두 귀찮구, 난 별루 시간두 없.... 저는 별루 시간두 없기 때문에 낭비하구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
인수분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기훈 : ...... 말투가 상당히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두 큰 변화라구 생각한다. (연습장 펼친다)
은조 : (얼른 시선이 그 연습장으로)
기훈 : 그런데, 시간이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이지?
은조 : (한숨을 푹 쉰다)
기훈 : 응?
은조 : (숨 고른다).....
기훈 : ..... 응?
은조 : (터진다) 할 수 있을 때 해둘라 그러는 건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요? 이 집에서 오래오래 학교 다닐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구! 언제 쫓겨나거나 도망쳐야 할 지 몰라서, 기회 있을 때 해둘라 그러는 거란 말야!!
효선 : (그 소리에 얼른 문 열고 방으로 들어오면서) 왜? 언니 왜 그래? 오빠 무슨 일이야?
은조 : (박차고 나가버린다)
기훈 : .....
효선 : (은조를 보고, 기훈을 보고...) 응 오빠? 무슨 일이냐구?
기훈 : (저도 화났다, 방문 열고 확 나간다)
효선 : .....?
#50. 안방 앞 (밤)
효선, 대청을 지나 안방 앞에 온다. 문을 열려다 말고....
효선 : 효선인데 들어가두 돼요?
강숙(E) : 응- 들어오렴-
효선, 문 열고 들어간다.
#51. 안방 (밤)
강숙과 대성이 철지난 잡지들을 끈으로 묶고 있다가 효선을 맞는다.
효선 : 언니 안왔어요?
강숙 : 은조?
대성 : ?
효선 : 공부하다가 갑자기 울면서 나가가지구, 걱정돼가지구...
강숙 : 울면서 나가?
대성 : .... 기훈이는?
효선 : 찾으러 나간 거 같은데, 둘 다 사라져가지구....
대성 : ..... 그래? (일어서려는데)
강숙 : (흑, 고개를 외로 꼬며)....
대성 : ?
강숙 : (눈물 얼른 훔쳐내는)
대성 : ..... (효선에게) 더 찾아봐. 아빠두 곧 찾으러 나갈게.
효선 : (끄덕, 하고 문 닫고 사라진다)
대성 : (강숙 앞으로) 왜요?
강숙 : ..... 아니에요.
대성 : 말해요 얼른.
강숙 : ...... 애들이 놀려서 그랬을 거예요.
대성 : 놀려요?
강숙 : 왜 효선이랑 형제라면서 성이 다르냐구.... 그런다나봐요.
대성 : .....
강숙 : 혼인신고만 하면, 방법이 있다는데......
대성 : ......
#52. 안방 앞 (밤)
듣고 있는 효선 ......
#53. 술창고 (밤)
은조, 술통벽에 기대 앉아 씩씩대고 있다. 창고 문 확 열리고, 기훈 들어선다.
기훈 : (들어서자마자 소리를 버럭 지른다) 너 죽을래!!?
은조 : (휙 보는)
기훈 : 이게 누구 앞에서 까불어! 누구 앞에서 어리광이구 생떼야? 나 여기 주조장에서 일하구 사장님 도와 드리구
너 가르치구 하는 게 취미 생활인 줄 알아? 다음 학기 등록하구 학교 앞에 하숙이라두 얻어서, 일 년이나 휴학했으니까
학기 중에 부업 안하구 밀린 공부만 하려구, 너 이거 내, 취미 아니구 생존 문제구 인생 문제야. 알았어?
은조 : (노려보고 있는)...
기훈 : 너 가르치는 두 시간, 내 밀린 공부 시간 두 시간하구 맞바꾼 거야. 너 두 시간 가르치는 데 드는 비용, 여기 사장님,
니 새아버지가 막 걸리 ( * )통 만들어야 나오는 돈이야. 막걸리 한 통 만드는데 누룩 빚는 데서부터 시작해서 *일 걸리구,
( * ) 통 만들려면 총 (**)일이 걸리구, (**)일은 (*****)시간이야. 니가 공부하는 두 시간 이, 사장님 (******)시간하구
통째루 맞바꿔지는 거라구.
은조 : ......
기훈 : 까불지 마. 너 까부느라구 남의 인생까지 허비하지 말라구. 알았어?
문 쾅 닫고 나가는 기훈.
은조 : ......
#54. 기훈 방 (밤)
기훈 들어와서 벌렁 눕는데, 밖에서
은조(E) : 공부해.....
기훈, 일어나 앉는다.
은조(E) : 공부해요!
기훈, 씩 웃는다.
#55. 아이들 교실
교실벽에 “제 5회 교내 수학경시대회” 플래카드 붙어있다. 은조, 열심히 문제 푼다.
효선, 문제 풀다가 물끄러미 은조를 본다. 은조의 연필에 바퀴가 달린 듯, 빠른 속도로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효선, 다시 제 문제로 돌아간다.
아이1(E) : (소근거리는) 야, 어디서 술냄새 나는 거 같지 않냐?
아이2(E) : (소근소근) 아 진짜 짱나. 담탱이 또 술 안 깨구 학교 왔나봐.
감독 보던 담임, 아이들 말소리를 듣고 찔려서 엣헴! 큰기침하며 책으로 입을 가린다. 효선, 키득댄다.
얼굴이 발갛게 상기돼서 풀이에 열중해있는 은조.....
종료 벨이 울린다. 아이들, 한숨 쉬며 불만의 소음.
감독선생님 : 그만. 뒤에서부터 답안지 전달-
은조, 마지막 답을 답안지에 적고 연필 내려놓는다. 그런 은조를 보는 효선......
(시간경과)
아이들, 서로서로 답을 맞추느라고 난리가 났다.
은조, 조용히 문제지 접어 책갈피 속에 끼우고 책가방 정리하는데.
효선 : (큰 소리로) 야 니네들!!!!
일제히 : (효선을 본다)
은조 : ?
효선 : 니들 중에 나, 구효선의 아버지랑 울언니 송은조의 어머니가 재혼한 거 모르는 사람 있어?
은조 : ??
애들 : 뭐야? / 효선이 쟤 뭐래니? / 등등...
효선 : 우리 둘이 똑같이 구가나 똑같이 송가가 아닌 이유를 모르는 애 있냐구? 있으면 나와!!
은조 : 구효선.
효선 : 봐, 나 구효선이래지, 우리 언니 송은조가? 그게 뭐 어때서? 그게 뭐 어떻다구 울언닐 놀려? 누구야?
울언니 놀린 애들 다 나와!!
은조 : 구효선. 앉아.
효선 : 언니, 누구야? 누가 놀렸냐구?
은조 : 너 술 취했어? 왜 그래?
애들 : 담탱이가 술 마신 게 아니라 구효선이 술 마신 거야? / 아우 효선이 이 기지배 술냄새 쩔어 / 등등...
효선 : 언니야, 나한테 말만 해. 왜 말을 못해! 우리 성씨가 다르다구 놀린 애가 누군지 말을 해!
은조 : 너 술마셨어?
효선 : 술 아니구, 술지게미.... (히히~ 웃는다)
#56. 동사무소 몽타주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는 강숙과 대성.
접수대에 제출하는 강숙과 대성.
직원이 대성에게 뭔가 묻고, 대성이 대답하고 하는 사이, 강숙의 얼굴이 점점 경직된다.
마치 무언가를 억지로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57. 동사무소 앞
강숙과 대성, 동사무소에서 나온다. 대성, 자동차 문을 열어준다. 강숙, 차에 탄다.
대성, 빙 돌아와서 운전석에 오른다.
대성 : 이렇게 간단한 거, 미뤄서 미안해요. 은조 성 문제두 곧 해치웁시다. (시동 거는데)
강숙 : ..... (그 긴장상태 그대로).... 여보, 잠시만요.
대성 : ?
강숙 : 잠깐...화장실 좀....
대성 : (끄덕)
강숙, 다시 차에서 내린다. 동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는 강숙.
#58. 동사무소 안
강숙, 들어서더니 또각또각 동사무소 안을 가로지른다.
화장실 표시를 지나쳐, 뒷문 쪽으로 가는 동안, 강숙의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린다.
#59. 동사무소 뒤
강숙, 뒷문을 통해 나온다. 적당히 으슥한 곳까지, 후들후들 걸어오는 강숙.
강숙, 백을 열고, 동사무소에서 받은 혼인신고를 떨리는 손으로 꺼낸다.
펼치는 강숙. 구대성과 송강숙의 이름이 분명하게 부부로 기재돼 있다.
강숙, 굵은 눈물을 후둑후둑 떨어뜨린다. 이건 연기가 아니다. 정말로 복받쳐서 우는 거다.
강숙 : (울면서) 드런 년.... 드런 년의 팔자.... 나이 사십에 드디어 어느 집 며느리가 됐구나.... 어느 놈 마누라가 됐어....
송강숙이.... 축하한다 이년아..... 축하한다 이 드런 년아.....
강숙, 꺼이꺼이 운다. 마스카라가 얼굴에 범벅이 되도록.......
#60. 운학루 안채 마당
강숙과 대성이 들어선다. 강숙의 걸음걸이는 이제 확연히 당당해져있다.
강숙 : (대성에게) 먼저 들어가세요. 부엌 좀 들여다 보고 갈게요.
대성 : 그래요. (방으로)
강숙 : (부엌 쪽으로)
#61. 부엌
할매 둘이서 마늘을 까며 뭐가 우스운지 갤갤 웃고 있는데, 강숙, 부엌으로 성큼 들어선다.
할매들, 그런 강숙을 흘긋 보고는 계속 마늘을 까면서
꽃님 : 뭐 디리까?
강숙 : 나 구멍가게에 라면 사러 온 손님이에요?
꽃님, 순분 : (본다)
강숙 : 내가 라면 사러 왔냐구요? 사람 말이 말같지 않아요?
꽃님, 순분 : (얼결에 마늘 놓고 부스스 일어나면서)
순분 : 뭔 말씀이신지 당췌...
강숙 : 당췌 무슨 말씀이냐면 날 보면 그렇게 앉았다가두 일어서야 한다는 말씀이에요.
꽃님, 순분 : ?
강숙 : 그릇 있는 대루 다 꺼내요.
꽃님 : 그릇?
순분 : 그릇은 왜?
강숙 : 몇 벌쯤 돼요? 이 집안에 있는 그릇들 다 꺼내면.
꽃님 : 글씨 한 백 벌이 넘을라나, 이백 벌이 넘을라나....
강숙 : 좋아요. 백 벌이든, 이백 벌이든 다 꺼내요.
꽃님 : 글씨 그릇은 왜...
강숙 : 꺼내서, 다 닦아요.
꽃님, 순분 : ?
강숙 : 치도곤 치르구 싶잖으면, 다 닦아요. 빤들빤들하게. 알았어요?
강숙, 사라진다. 꽃님과 순분, 얼이 빠져 있다.
#62. 마당
부엌에서 나오는 강숙. 대문 밖에서부터 효선과 은조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63. 대문 앞
효선 : (들어가려는 은조를 막으며) 오호호허허하하 예이 예----- 그럼 언니야 말은, 엄마가 뻥을 쳤다는 거네?
언니 너는 그런 소리 한 적이 없는데, 엄마가 뻥을 쳤다구? 응?
은조 : (지쳐 있다) 그래.... 뻥이다 뻥. 내가 뻥이든, 울엄마가 뻥이든, 뻥이라구. 됐지? (효선을 밀치고 안으로)
효선 : 어이 송은조! (따라들어가는)
#64. 안채 마당
은조 들어서서 지긋지긋하단 얼굴로 방쪽으로 간다.
강숙 : (은밀한 것을 속삭이듯이) 은조야! 일루 와봐!
은조 : (그냥 가는데)
효선 : (들어서며) 효선이 왔다---
강숙 : (효선을 본다)
효선 : (은조를 붙든다) 언니야아, 엄마두 마침 계시니까 우리 삼자대면 좀 해보자 응?
대성 : (안방에서 대청으로 나온다) 늬들 왔니?
기훈 : (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오며) 시험 잘 봤어들?
은조 : (붙잡혀진 채로) ...이거 놔라.
효선 : (책가방까지 팽개치고 은조를 더 꽉 잡으며) 언니야아. 엄마한테 물어보자니까아?
은조 : (온 힘을 다해 그런 효선을 밀어버린다)
효선 : (나가 떨어진다)
대성 : (놀란다)
강숙 : (놀란다)
기훈 : (놀란다)
강숙 : (뒤통수에 달린 눈으로 대성을 본다)
은조 : (저도 놀라 있다)
강숙, 은조에게 걸어온다. 은조, 휙 돌아서려는데 강숙, 그런 은조의 뺨을 거칠게 후려버린다.
은조, 망연해져서 천천히, 강숙을 본다. 놀라는 대성. 놀라는 기훈.
강숙, 아이구 효선아 괜찮니이? 하면서 효선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 강숙을 망연하게 보고 있는 은조에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