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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Prometheus)라는 이름은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주신(主神)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줌으로써 인간에게 맨 처음 문명을 가르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불을 도둑맞은 제우스는 복수를 결심하고, 판도라(Pandora)라는 여성을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냈다. 이때 동생인 에피메테우스(Epimetheus, '나중에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는 형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는데, 이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 사건이 일어나고, 인류의 불행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제우스의 장래에 관한 비밀을 제우스에게 밝혀 주지 않았기 때문에 코카서스(캅카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은 다시 회복되어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영웅 헤라클레스에 의해 독수리가 사살되고, 자기 자식 헤라클레스의 위업(偉業)을 기뻐한 제우스에 의해 고통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한편, 그가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 원인에 관해서는, 제물(祭物)인 짐승고기의 맛있는 부분을, 계략을 써 제우스보다 인간 편이 더 많이 가지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인간을 흙과 물로 만든 것이 프로메테우스라는 전설도 있다.
천지 창조는 세계의 주민인 인간이 마땅히 크게 관심을 가질 만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고대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오늘날의 기독교인이 성서로부터 얻은 것과 유사한 지혜를 터득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 나름의 천지 창조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이를 후세에 전했다.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땅과 바다와 하늘이 지어지기 이전에는 만물이 모두 하나였으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카오스〉라고 부르는 상태이다. 곧 세계는 잡탕으로 뒤섞인, 형태가 없는 덩어리, 오직 부동(不動)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 안에는 갖가지 씨앗이 잠재해 있었다. 땅이나 하늘이나 공기가 모두 뒤섞여 있었기 때문에 땅은 아직 단단하지 못했고, 바다는 출렁거리지 않았고, 공기는 투명하지 못했다. 이윽고 신(神)과 대자연이 손을 써서 이 혼란을 수습했다. 신과 대자연이 땅과 바다를 나누고 이를 또 하늘과 갈라 놓은 것이다.
그 때 불에 타고 있던 부분은 가장 가벼웠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었다. 공기는 무게가 조금 있어서 하늘 바로 아래에 놓였다. 땅은 그보다 무거워 아래로 가라앉았고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 땅을 떠받치게 되었다.
그 때 어떤 신이 있어서(그 신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크게 마음을 내어 땅을 정리하고 배열했다. 그는 강과 만(彎)의 자리를 정하고, 산을 일으켜 세우고, 골짜기를 파고, 숲, 샘, 기름진 논밭, 돌투성이 황야를 여기저기에 고루 심었다. 공기가 맑아지자 별도 보이기 시작했고, 물고기는 바다를, 새는 하늘을, 네발짐승은 땅을 각각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여기에 보다 고등한 동물이 필요했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 창조되었다. 창조주가 인간을 만들 때 자신과 같은 재료를 썼는지, 아니면 하늘에서 갓 떨어져 나온 흙, 다시 말하면 천상의 씨앗이 조금 남아 있는 흙을 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프로메테우스1)는 이 땅으로부터 흙을 조금 취하여, 물을 붓고 이를 이겨 신들의 형상과 비슷한 인간을 만들었다.2)
흙으로 인간(남성)을 빚는 프로메테우스(중앙). 아테나 여신이 프로메테우스 뒤에 서 있다. 아테나는, 프로메테우스가 진흙으로 빚은 인간에게 영혼을 불어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발치에 놓여 있는, 원뿔 모양의 과일 바구니가 인상적이다. 원뿔 모양의 바구니는, 그리스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풍요의 뿔〉을 상징한다. 3세기 로마의 석관(石棺) 돋을새김. 기원전 3세기의 그리스 작가 파우사니아스의 글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보이오티아 지방에 가면 〈프로메테우스의 석상〉이라는 글씨가 대리석에 새겨져 있는데, 이 근처 골짜기에는 땀 냄새가 나는, 거대한 갈색돌이 무수히 굴러다닌다. 이 지방에는, 그 돌이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을 만들던 흙덩어리가 굳은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 인간에게 직립할 능력을 부여했다. 이 덕택에, 다른 동물은 모두 고개를 숙여 땅을 내려다보는데 인간만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
천상의 불을 훔쳐 인간 세계로 내려오는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가, 속이 빈 회향나무 대롱으로 불을 붙인 곳이, 제우스의 벼락이라는 설명도 있고, 아테나 여신의 마차, 혹은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의 부뚜막이었다는 설명도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거인족인 티탄 족이었다. 그는 인류가 창조되기 전부터 지상에 살고 있었다. 이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아우 에피메테우스3)는,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능력을 부여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에피메테우스가 이 일을 해내면 프로메테우스가 그 일의 결과를 점검, 감독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에피메테우스는 갖가지 동물에게 용기, 힘, 속도, 지혜 같은 것들을 선물로 주기 시작했다. 어떤 동물에게는 날개를, 어떤 동물에게는 발톱을, 또 어떤 동물에게는 딱딱한 껍질을 주는 식이었다.
드디어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주어야 할 차례가 왔다. 그러나 가히 만물의 으뜸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도 좋을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주긴 주어야 할 텐데, 에피메테우스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말하자면 선물을 다 써버린 것이었다.
몹시 당황한 그는 형 프로메테우스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했다. 아우의 하소연을 듣고 난 프로메테우스는 여신 아테나의 이륜차의 불을 자기 횃대에 옮겨 붙여 가지고 내려와 이를 인간에게 주었다.
이 선물 덕택에 인간은 다른 동물이 감히 넘보지 못할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곧 인간은 이 불을 이용, 무기를 만들어 다른 동물을 정복할 수 있었고, 연장을 만들어 땅을 갈아먹을 수 있었으며, 아무리 추워도 거처를 데워 따뜻하게 기거할 수 있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갖가지 기술을 개발하고, 거래 수단이 되는 화폐를 주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제우스가 인간(남성)을 벌하기 위해 헤파이스토스로 하여금 판도라를 만들게 했을 때,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판도라에게 아름다움을 주었고, 헬리오스는 노래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며, 헤르메스는 아첨하는 법, 속이는 법을 가르쳤고, 아테나 여신은 좋은 옷감을 짜주었다고 한다. 19세기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그림.
여자는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이야기(꽤 웃기는 이야기)인즉, 그래서 제우스가 여자를 만들어 프로메테우스와 그의 아우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그것도 이 형제가 예뻐서 선물을 준 것은 아니고, 프로메테우스가 천상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선물로 준 것을 괘씸하게 여겨 이들과 인간을 벌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다.
최초로 만들어진 여자의 이름은〈판도라〉4)라고 했다.
판도라는 천상에서 만들어져 신들로부터 한 가지씩의 선물을 받았다. 그래서 판도라는 완벽했다. 판도라가 신들로부터 무엇을 받았는고 하니 아프로디테로부터는 아름다움을, 헤르메스로부터는 설득력을, 아폴론으로부터는 음악을 받았던 것이다.
이렇게 선물을 잔뜩 받아 지상으로 하강한 판도라는 에피메테우스의 차지가 되었다. 에피메테우스는 형 프로메테우스로부터, 제우스라는 작자와 그가 주는 선물에 주의하라는 충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덜컥 판도라를 아내로 삼아 버렸다.
그런데 이 에피메테우스의 집에는 단지가 하나 있었다. 이 단지 안에는 몹쓸 것들이 들어 있었다. 인간에게 새로운 주거 환경을 만들어 줄 당시에는 필요 없는 것들이어서 에피메테우스가 그 단지 안에다 넣어 두었던 것이었다.
16세기 화가 장 쿠쟁의 〈에바 프리마 판도라〉. 해골에다 오른팔을 괴고 있는 것으로 보면, 인류 최초의 여성 판도라가 좋은 의도에서 창조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중세의 화가들까지도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판도라는 호기심이 강한 여자였다. 판도라는 단지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판도라는 도저히 궁금증을 삭이지 못하고 뚜껑을 열고 단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그 단지 안에서, 인간에게는 몹쓸 것들인 무수한 재액(災厄), 곧 육체적인 것으로는 통풍(痛風), 신경통 같은 것, 정신적인 것으로는 질투, 원한, 복수심 같은 것들이 나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판도라는 후닥닥 뚜껑을 도로 덮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으니, 단지 속에 있는 것들은 거의 사방팔방으로 흩어진 다음이었다. 요행히 단지 안에는 딱 한 가지가 남아 있었다. 바로 〈희망〉이다. 우리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횡액을 당해도 희망만은 버리지 않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어떤 횡액도 우리 존재의 뿌리를 흔들 수 없는 것이다.
구체(球體) 위에 앉아있는 소녀는 뤼라, 혹은 수금(竪琴)을 들고 있다. 수금과 소녀는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이 둘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다. 소녀의 수금 줄은 거의 다 떨어져 나가고 한 줄밖에 남아있지 않다. 판도라의 상자에 〈희망〉 하나만 남아 있었듯이. 영국 화가 조지 와츠가 1886년에 그린 이 그림은 판도라의 상자 속에 남아 있던 〈헛된 희망〉을 그린 듯하다.
다른 설(說)도 있다. 판도라는 제우스가 인간을 축복하기 위해 보낸 사자(使者)라는 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판도라는 여러 신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상자에 넣어 가지고 지상으로 하강했다. 그런데 어느 날 실수로 이 상자 뚜껑을 열었기 때문에 다른 선물은 다 날아가 버리고 희망만이 남았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앞의 이야기보다 이 이야기가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희망이라는 것은 고귀한 보석 같은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이 어떻게 횡액이란 횡액은 다 들어 있는 상자에 쓸려 들어갈 수가 있겠는가?
어쨌든 이렇게 해서 인간은 이 세상에 살림을 꾸리게 되었다. 처음 시대는, 죄악이 발붙일 곳 없던 행복한 시대라서 흔히 〈황금의 시대〉로 불린다. 법률이라는 고삐에 끌리지 않고도 인간은 진리와 정의를 편들었다. 을러메거나 죗값을 물리는 관리도 없었다. 배 만들 나무를 구한답시고 삼림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일도 없었고 사람 사는 마을 주위에다 성채 쌓아올리는 일도 없었다. 칼, 창, 투구 같은 것도 없었다. 대지는 인간이 힘들여 갈고 씨 뿌리지 않아도 인간의 필요에 맞추어 무엇이든 거두게 해주었다. 계절은 늘 봄이어서 초목은 씨 뿌리지 않아도 저절로 싹터 자랐고, 강에는 우유와 포도주가 흘렀으며 떡갈나무에서는 누런 꿀이 뚝뚝 들었다.
이 시대에 이어 〈은의 시대〉가 왔다. 이 시대는 황금의 시대만은 못했지만 그래도 다음에 올 〈청동의 시대〉에 비하면 꽤 살 만했다.
제우스 신은 봄을 토막 내어 1년을 네 계절로 나누었다. 인간은 난생 처음 찌는 듯한 더위와 살을 에는 추위를 겪어 보았다. 은의 시대에는 주거에 필요한 가옥이 있어야 했다. 처음에는 동굴이 사람의 가옥 구실을 했고, 이어서 나뭇잎에 덮인 숲속의 구덩이가, 그 다음에는 잔가지로 얽어 만든 오두막이 가옥 구실을 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이르자 농작물은 씨 뿌리고 가꾸지 않으면 자라지 않았다. 농부는 씨를 뿌려야 했고, 소는 좋든 싫든 쟁기를 끌어야 했다.
이 시대에 이어 〈청동의 시대〉가 왔다. 이 시대에는 인성(人性)이 거칠어져 사람들이 걸핏하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경향이 두드러진 시대였다. 그러나 구제불능의 극악한 시대는 아니었다.
가장 거칠고, 가히 극악하다고 할 수 있는 시대는 바로 〈철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죄악이 홍수처럼 범람했고 겸양과 진실과 명예는 이름뿐이었다. 아니 이름뿐인 것은 고사하고, 이들 미덕이 간사함과 폭력과 사악한 사리사욕으로 바뀌어 횡행했다. 뱃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돛을 올리고 바다로 나갔으며, 배의 용골을 만들자니 산의 나무가 성할 리 없었다. 이들은 그렇게 만든 배를 타고 먼 바다를 누볐다.
이 때까지 공동으로 경작되던 땅이 조각조각 나뉘어 사유재산이 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지가 그 거죽으로 농산물을 지어내는 데 만족하지 않고 대지의 배를 가르고는 갖가지 금속과 광석을 파내었다. 이렇게 해서 유해한 철과 철보다 더 유해한 황금이 제련되었다. 사람들은 철과 황금을 무기로5) 전쟁을 일으켰다.
이 때부터 객(客)은 친구의 집에 묵어도 안전하지 못했다. 사위와 장인, 형제와 자매, 아내와 남편이 서로를 믿지 못했다. 아들은 재산을 상속받으려고 아버지가 죽을 날을 기다렸다. 가족간의 사랑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대지는 살육의 피로 더럽혀졌고 이 때문에 신들은 하나씩 땅을 버리고 떠났다. 끝까지 남아 있던 아스트라이아 여신도 마침내 이 땅을 떠나고 말았다.
제우스는 땅의 형편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 몹시 화가 났던 나머지 신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신들은 대신(大神) 제우스의 소집에 응하여 하늘의 궁전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제우스의 궁전으로 통하는 길은 청명한 밤이면 누구에게든 보일 수 있을 정도로 하늘을 가로질러 훤하게 트여 있다. 이 길은〈비아 락테아〉라고 불린다.
루벤스의 〈은하수〉. 은하수를 뜻하는 라틴어 〈비아 락테아(ViaLactea)〉는 〈젖의 길〉이라는 뜻이다. 영어의 〈밀키 웨이(Milkyway)〉는 라틴어를 직역한 말이다. 헤라가 아기 헤라클레스에게 젖을 먹인 적이 있는데, 헤라클레스가 어찌나 세게 빨았던지 헤라의 젖이 멎지 않고 뿜어져 나와 이루어진 것이 은하수라는 것이다. 헤라 뒤에는, 헤라의 신조(神鳥) 공작이 끄는 수레가 서있다. 그림 왼쪽에, 머쓱한 표정을 하고 제우스가 앉아 있다. 제우스의 발치에는, 제우스 권능의 상징인 벼락이 놓여 있다.
이 〈젖의 길〉 연도에는 고위(高位) 신들의 궁전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지위가 낮은 신들은 길 양쪽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다.
틴토레토의 〈은하수의 기원〉. 아기 헤라클레스는 헤라 여신이 낳은 아들이 아니라, 제우스의 애인 알크메네가 낳은 아들이다. 따라서 질투의 화신으로 불리기도 하는 헤라가, 지아비의 시앗이 낳은 아들에게 젖을 물렸을 까닭이 없다. 그래서 신화는 헤라가 헤르메스에 속아서 아기 헤라클레스에게 젖을 물렸다고 쓰고 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아기 헤라클레스를 안고 가서 헤라에게 젖을 물리는 이는 헤르메스가 아니라 제우스다. 아기의 발치에 있는 독수리는 바로 제우스의 신조(神鳥)다. 헤라클레스가 어찌나 세게 빨았던지 입을 떼었는데도 불구하고 헤라의 왼쪽 젖가슴에서, 젖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아스트라이아는 〈순진무구〉의 여신이었다. 이 여신은 땅을 버리고 하늘의 별자리 〈비르고〉, 곧 처녀좌가 되었다.
테미스 여신은 이 아스트라이아의 어머니였다.
아스트라이아는 천칭을 든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이 아스트라이아가 서로 상반되는 것을 우기는 두 편의 주장을 이 천칭으로 달기 때문이다.
땅을 떠난 여신들이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여 〈황금의 시대〉를 재현할 수는 없을까······. 이것은 옛 시인들이 즐겨 노래하던 시의 주제였다.
영국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가 쓴 『구세주』는 지금은 기독교의 찬송가로 불리는데, 이 시에는 이러한 소망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이윽고 죄악이 자취를 감추고, 해묵은 기만도 뿌리뽑히면
정의의 여신도 이 땅으로 돌아와 천칭을 높이 들고,
평화의 여신도 이 땅 위로 올리브 가지를 흔들고,
백의(白衣)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도 하늘에서 내려오리라.
낫을 든 시간의 신과, 칼과 천칭을 든 정의의 여신의 돋을새김. 아래쪽에는 〈호라 푸기트, 스타투스 이우스(Hora fugit, stat Jus)〉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시간의 신은 날지만, 법과 정의의 여신은 한 자리에 우뚝 서 있다〉는 뜻이다. 시간의 신, 정의의 신은 각각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로노스와 아스트라이아의 변형된 모습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 시간에 대한 법과 정의의 우위(優位)를 강조하는 이 돋을새김은 어디에 새겨져 있었겠는가? 파리 시테섬의, 프랑스 법무부 건물에 새겨져 있었다.
밀턴의 『그리스도 강탄에 부치는 찬가』 14절 및 15절을 참조하라.
그같이 거룩한 노래가
우리의 공상 안에 언제까지나 깃들여 준다면
세월의 바퀴를 되돌려 황금의 시대가 찾아오게 하리라.
마마 자국을 메우던 우리의 허영은 병들어 이 땅을 떠나고,
나병 같은 죄악도 이 땅에서 사라지리라.
그리고 지옥의 신도 죽고,
그 음울한 집은 백일하에 드러나 빛의 세계를 받으리라.
그렇다, 이윽고 〈진실〉과 〈정의〉가,
오색찬란한 〈무지개〉 주렴에 가려진 채
천상에서 인간의 땅으로 하강하리라.
그리고 〈자비〉가 어느새
천상의 빛을 한 몸 가득히 받으며
그 휘황찬란한 발로 금은실 술이 달린 구름을 밟으며 옥좌에 앉으리라.
하늘의 여신은 큰 명절이라도 맞은 듯이
궁전 대전(大殿)의 문을 활짝 열게 되리라.
제우스는 신들의 회의석상에서 만장한 신들에게 일장연설을 했다. 그는 먼저, 도저히 더 두고 볼 수 없는 지상의 타락상을 설명하고 이어서 이 지상의 인간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쓸어 버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족으로 하여금 살림을 시작하게 하면, 삶 자체가 실다울 뿐만 아니라 신들을 섬기는 태도도 전과 다를 것이 아니겠느냐고 역설했다.
제우스는 말끝에 벼락을 집어 들고 금방이라도 지상으로 던져 세상을 태워 버리려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본 제우스는 그럴 일이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세상에다 불을 질러 놓으면 천계(天界)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제우스는 계획을 바꾸어 세상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기로 했다. 그는 우선, 비구름을 흩날리게 하는 북풍을 비끄러매었다. 그리고는 남풍을 보내어 하늘을 먹구름으로 덮어 버리게 했다. 사방팔방에서 모여든 구름이 저마다 부딪치는 바람에 하늘은 순식간에 굉음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어서 폭포수처럼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논밭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농부가 1년 내내 정성을 쏟은 논밭이, 한 시간도 채 못 되어 모조리 홍수에 휩쓸려 갔다.
제우스는 천상에 있는 자기 물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포세이돈에게 바다와 강을 모조리 범람하게 하고 그 물을 대지로 쏟아 보내게 했다. 뿐만 아니라 지진을 일으켜 땅을 쑥밭으로 만들고 바다로 흘러내려온 물을 다시 역류시켜 해안을 덮치게 했다. 이 바람에 양과 소를 비롯한 가축과 사람과 집이 모두 물에 떠내려갔고, 신전도 그 안의 성소(聖所)들과 더불어 한순간에 유린되었다. 커서 물에 떠내려가지 않은 건물이 하나도 없었고, 높아서 물에 잠기지 않은 탑이 하나도 없었다.
세상은 물바다로 변했다. 보이는 것은 오직 끝없는 대해원(大海原)이었다. 여기저기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이들은 겨우 머리만 물 위로 내민 산꼭대기에 모여 있을 뿐이었다.
조그만 배를 타고 죽자고 노를 젓는 사람들도 간혹 있기는 했다. 그들이 노를 젓는 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쟁기질하던 문전옥답 위였다. 물고기는 나뭇가지 사이로 오락가락했다. 닻이 뜰로 내려지기도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양떼가 놀고 있던 곳에서 사나운 물개들이 첨벙거리며 놀았다. 이리가 양떼 사이에서, 누런 사자와 호랑이가 물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멧돼지의 힘도, 수사슴들의 빠르기도 물 속에서는 하릴없었다. 날개 쉴 곳이 없어진 새들도 나는 데 지쳐 물 위로 곤두박질쳤다. 다행히 물난리를 피한 생물도 오래지 않아 굶어 죽어갔다.
하고 많은 산 가운데서 오직 파르나쏘스 산만이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프로메테우스와 일족(一族)인 데우칼리온6)과 그의 아내 퓌라7)가 이 산 위로 피난했다. 데우칼리온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퓌라는 신들을 잘 섬기는 사람이었다.
제우스는 이 부부 이외에는 살아남은 인간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고는 이 부부야말로 흠잡을 데 없이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음을 상기하며 북풍에게 구름을 걷고 땅에서는 하늘이, 하늘에서는 땅이 보이게 하라고 명령했다. 포세이돈도 아들 트리톤에게 뿔고둥 나팔을 불게 하여 물을 물러가게 했다. 물은 명령에 순종했으니, 바다는 해변 너머로 되돌아갔고 강은 그 강바닥으로 되돌아갔다.
이렇게 되자 데우칼리온이 아내 퓌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 아내여, 혈혈단신 살아남은 여자여, 처음에는 나와 혈연으로 맺어지더니, 이제 공동의 위기에 맞서 다시금 맺어진 내 아내여, 우리에게 내 아버지 프로메테우스 같은 능력이 있어서, 아버지께서 이 세상 인간을 지으신 것처럼 우리 종족을 새롭게 지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나 우리에게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할까 보냐. 그러니 우리 저기 보이는 신전으로 가서 장차 우리가 어찌 해야 할지 신들께 여쭈어 보기로 하세.」
두 사람은 이렇게 해서 신전으로 들어갔다. 신전은 진흙 같은 것으로 잔뜩 더러워져 있었다. 두 사람은 제단 쪽으로 가보았으나 거기에서 타던 성화는 꺼진 지 오래였다. 두 사람은 계단 근처의 땅에 엎드려 테미스 여신에게 어떻게 하면 멸망한 인간을 다시 세울 수 있는지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신탁(神託)이 내렸다.
「얼굴은 가리고 옷을 벗고 이 신전에서 나가 너희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져라.」
두 사람은 이 뜻밖의 신탁에 몹시 놀랐다. 퓌라가 먼저 침묵을 깨뜨리고 한탄했다.
「저희는 이 신탁을 따를 수 없습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어머니의 유체(遺體)를 더럽힐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은 숲속의 어두컴컴한 나무 그늘로 들어가 이 신탁의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이윽고 데우칼리온이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조상에게 불경을 범하지 않고도 이 신탁을 좇을 수 있을 것이오. 이 대지가 만물의 크신 어머니이시고, 돌이야말로 어머니의 뼈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이 돌을 등 뒤로 던지면 되는 것. 신탁이 우리에게 그렇게 일렀을진대 시험삼아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오.」
두 사람은 얼굴을 가리고 옷을 벗은 다음 돌을 집어 등 뒤로 던졌다. 그러자 돌은(참으로 이상하게도) 말랑말랑한 덩어리가 되어 물체의 형태를 취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엉성하긴 하나 인간의 형상에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흡사 조각가의 손길에 반쯤 깎인 돌덩어리와 같았다. 돌의 겉면에 묻어 있던 수분과 흙은 살이 되었다. 딱딱한 부분 자체는 뼈가 되었다. 돌결(vein)은 혈관(vein)이 되니, 맡은 일이 달라졌을 뿐 이름은 그대로였다. 남자가 던진 돌은 남자가 되었고 여자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종족은 튼튼한 종족이어서 노동을 잘 익혔다. 우리가 노동에 잘 적응하는 것을 보면 우리 역시 이들 종족의 후예인 모양이다.
이브와 판도라를 비교하다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밀턴은 『실락원』 제4편(714~719)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신들이 저 나름대로 한 가지씩 선물을 안겨 주었던 저 판도라보다
훨씬 사랑스러운 이브. 오, 너무나도 닮은 슬픈 사건이여.
헤르메스에 의해 그 때 야벳의 어리석은 아들 있는 곳으로 간 판도라는 그 아름다운 자태로 인류를 홀리고
제우스의 진짜 불을 훔친 자에게 복수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이아페토스의 아들이었는데 밀턴은 이 이아페토스를 야벳8)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옛부터 많은 시인들이 즐겨 노래하는 시의 제재(題材)가 되어 왔다. 그가 인류의 편으로 칭송을 받아 온 것은 제우스가 격노해서 인류를 보고 있었을 때 그는 인류를 위해 이를 중재하고, 인류에게 문명과 기술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때문에 제우스의 성미를 건드렸고 신들과 인간의 통치자인 제우스의 노여움을 초래했다.
제우스는 사자(使者)에게 명하여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 산 위의 바위에 묶어 두게 했다.
프로메테우스가 받은 고통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 산꼭대기에는 독수리가 있어서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파먹었다. 그러나 간은 독수리가 파먹을 때마다 새로 돋아났다. 프로메테우스가 받은 이러한 고통은 만일 프로메테우스가 자진해서 제우스에게 복종을 맹세하기만 하면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앉아 있는 왕위의 안전과 관계 있는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이 책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 비밀을 끝까지 귀띔해 주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신화에 따르면 프로메테우스는 헤르메스 편에 그 비밀을 귀띔해 준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비밀이란, 메티스 여신에게서 태어나는 제우스의 자식이 장차 제우스의 왕좌를 넘보리라는 것이었다. 제우스는 그 말을 듣고는 몇 차례 동침한바 있는 메티스 여신을 조그맣게 줄어들게 만든 다음에 삼켜 버렸다. 그런데 몇 달 뒤, 제우스가 두통을 호소하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뒹굴었다. 헤파이스토스가 달려와 그의 머리를 가르자 굉음과 함께, 완전 무장한 젊은 여신이 튀어나왔다. 이 여신이 바로 아테나 여신이다. 기원전 6세기의 세 발 걸상에 그려진 이 그림은 제우스의 머리에서 아테나가 튀어나오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바뷔렌의 〈헤파이스토스의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손에는 카두케우스(하늘을 상징하는 독수리와, 저승을 상징하는 뱀이 새겨진 지팡이)를 들고 머리에는 날개 달린 투구를 쓴 헤르메스가 헤파이스토스에게 프로메테우스를 결박하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전했던 모양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이를 귀띔만 해주어도 제우스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질 터였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그런 짓을 업신여겼다. 바로 이 때문에 프로메테우스는 오늘날까지도 부당한 고통에 대한 고결한 참을성, 포학에 항거하는 의지력의 상징이 되어 있는 것이다.
바이런과 셸리는 이러한 테마를 다루었다. 바이런은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프로메테우스』 1절 및 3절)
티탄(거인)이여! 인간의 고통이 슬픈 현실이었어도
신들이 능멸해도 좋을 것으로는 여기지 못하게 했던
불멸의 눈을 가진 이여!
인간에 대한 그대의 연민이 어떤 보상으로 돌아왔던가?
침묵의 고통, 견디기 어려운 고통, 바위, 독수리, 그리고 사슬,
잘난 체하는 자가 맛볼 수 있는 고통,
그들에겐 어림없는 번민,
질식시킬 듯한 낭패.
그대의 신성한 죄는 인간에 대한 사랑.
그것은 그대가 들려준 교훈으로, 인간은 이로써 비참한 경험을 줄이고
〈인간〉을 제정신으로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한 노력은 하늘의 이름으로 좌절당했으나,
그대의 끈질긴 인내로 이겼으니 〈하늘〉도 〈땅〉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대 불굴의 정신이 보여 준 끈기와 저항에서
우리는 큰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바이런은 이와 유사한 인유를 나폴레옹 보나파르뜨에게 바치는 송시(頌詩)에서도 시도하고 있다.
혹은, 천상에서 불을 훔쳐 온 이처럼
그대로 이 충격을 견디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불 도둑처럼, 용서받지 못할 이여,
독수리와 바위의 고통을 맛보려 하시는가?
메티스 여신의 몸에서 태어나는 자식이 아버지 제우스를 능가하게 되리라던 프로메테우스의 예언은 실현되었는지도 모른다. 아테네의 우뚝 솟은 암산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것은 아테나 신전이지 제우스 신전이 아니다. 암산 정상의 신전이 저 유명한 〈파르테논(처녀 신전)〉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로메테우스와 판도라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2009. 6. 19., 토마스 벌핀치,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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