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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세례(洗禮)요한의 관계(關係)
<말선482-288>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관계(關係)는 가인과 아벨의 관계(關係)입니다. 탕녀(婸女)나 음녀(淫女). 거리의 여인(女人)을 통(通)해서 위대(偉大)한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첩(妾)은 타락(墮落)한 세계(世界)에서 사랑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때는 본처(本妻)건 무엇이건 첩(妾)이 도리어 세도(勢道)를 갖는 그런 시대(時代)가 되어 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래야 되느냐? 첫째 번 것은 가인편 사랑이고, 둘째 번 것은 아벨편 사랑이라 기취(旣娶)로 남편(男便)이 죽어서 다시 첩(妾)으로 시집(媤執)을 가게 되면 동네 개까지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올라가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닥치는 대로 소화(消化)해야 돼요. 기(氣)를 쓰지 않고는 못 올라가요.
<말선249-101>예수님시대(時代)에 있어서 세례(洗禮)요한과 예수님이 하나 되면 가인 아벨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상징(象徵)하느냐 하면 이스라엘민족(民族)과 유대교(猶大敎)는 가인 아벨관계(關係)입니다.
예수님과 세례(洗禮)요한이 하나가 되면 민족기반(民族基盤)은 자동적(自動的)으로 연결(連結)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갈라진 그 기반(基盤) 위(位)에 하나님과 사탄이 있는 거와 같다구요. 개인적(個人的)인 가인 아벨이 하나 되면 교회적(敎會的)인 가인아벨이 하나 되는 것은 문제(問題)없다구요.
세례(洗禮)요한은 그 정도(程度)의 기반(基盤)을 갖고 있었습니다. 7000명(名) 이상(以上)의 기준(基準)을 갖고 하나 되었다면 예수님이 절대(絶對)로 죽지 않습니다. 왜 7000명(名)이냐? 북조(北朝)이스라엘나라와 남조(南朝)유대 나라의 분쟁역사(分爭歷史)가 구약성서(舊約聖書)입니다. 그것은 어디서부터 시작(始作)되었느냐 하면 야곱가정(家庭)에서부터 시작(始作)되었습니다. 야곱가정(家庭)에서 레아와 라헬이 하나 되지 못한 것입니다. 야곱은 14년간 여자(女子) 때문에 고생(苦生)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원조(援助) 아래 레아와 라헬을 하나 만들어야 돼요.
야곱을 중심(中心)삼고 어머니가 (리브가)며느리로 온 그 자매(姉妹)를 두 사람이 어떻게 해서라도 하나 되지 않을 경우(境遇)에는 라반의 아내까지 동원(動員)해서 어떻게든 하나 되게끔 공동작전(共同作戰)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12자녀(子女)가 태어났습니다. 그것이 북조(北朝)10지파(支派)와 남조(南朝)2지파(支派)로 나눠진 것입니다. 가정적(家庭的)통일(統一)의 기원(基源)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국가적(國家的)으로 분리(分離)시켰습니다. 국가적기준(國家的基準)이 그렇게 되면 세계적(世界的)으로 분리(分離)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로 만들려고 한 것이 구약시대(舊約時代)에 예언서(豫言書)에 나오는 그 대표적존재(代表的存在)가 엘리아입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복귀(復歸)된 아담권(權)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국가적기준(國家的基準) 위(位)에 왔다고 한다면 복귀(復歸)한 국가기준(國家基準)의 입장(立場)에 선 것이 세례(洗禮)요한입니다. 엘리아에요 엘리아, 그러므로 예수님이 아벨이라고 한다면 엘리아의 사명자(使命者)로 온 세례(洗禮)요한은 가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아가 오는 것은 아벨을 반대(反對)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아벨을 지지(支持)하기 위해서예요. 아벨을 안내(案內)해서 모시고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야할 길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메시아 앞에 온다고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한 공동적(共同的)인 사명(使命)의 내용(內容)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성서(聖書)에 예언(豫言)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하나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예수님은 자기(自己) 혼자서 메시아를 선포(宣布)하고 세례(洗禮)요한의 기반(基盤)을 만든 것입니다.
가인의 입장(立場)인 세례(洗禮)요한의 가정(家庭)과 요셉의 가정(家庭)을 중심삼고 하나 된 그 기반(基盤)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례(洗禮)요한 대신(代身) 그 기반(基盤)을 복귀(復歸)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섭리적(攝理的) 사명(使命)에서 볼 때 그러한 환경(環境)을 맞이한 예수님의 비참(悲慘)함을 아무도 몰라요. 세례(洗禮)요한을 따르던 모든 제자(弟子)들이 흩어지고 예수님과 하나 되지 못했습니다. 전부(全部) 갈가리 흩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례(洗禮)요한의 실패(失敗)를 수습(收拾)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상당(相當)히 어려워요. 가면 갈수록 박해(迫害)가 전국(全國)으로 이어져 한 발도 나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立場)에 몰린 예수님은 자신(自身)의 가야할 길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알고 영적구원(靈的救援)의 길이라도 남겨서 다시 와서 수습(收拾)할 것을 생각(生角)하면서 십자가(十字架)에 달려서 간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基督敎)의 시작(始作)입니다.
그것이 세계적(世界的)으로 발전(發展)했습니다. 하나님이 메시아라고 결정(決定)한 사람은 아무리 사탄이 반대(反對)해도 하나님이 결정(決定)한 메시아의 권한(權限)은 결국(結局) 끝내는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승리(勝利)의 권한(權限)이 지상(地上)에 현실적(現實的)으로 나타난 것이 제2차 세계대전(世界大戰)을 중심삼고 세계통일(世界統一)을 이룬 기독교(基督敎) 문화권(文化圈)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계(世界)는 하나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선248-141>(1993,8,1,벨베디아수련소) 신약(新約)은 구약(舊約)의 연장(延長)이기 때문에 구약(舊約)에서 실패(失敗)한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온다고 하고, 구름을 타고 온다고 하던 엘리아가 사람으로 왔기 때문에 구약(舊約)이 실패(失敗)했다구요. 만약(萬若)에 사람으로 오지 않고 엘리아로 왔더라면 실패(失敗) 안하는 것입니다. 불수레를 타고 와서 예수를 증거(證據)ㅊ 했더라면 예수는 안 죽는 것입니다. 불수레를 타고 하늘로부터 오지 않고 지상(地上)의 사람으로 왔기 때문에 예수가 죽은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끝 날에도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겠다고 했지만, 세례(洗禮)요한과 같이 사람으로 오게 될 때는 예수님이 받은 수난(受難) 길을 되풀이할 수 있는 것이 신약성서(新約聖書)에 탕감내용(蕩減內容)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엘리아가 그렇게 나타나 가지고 예수가 우리가 고대(苦待)해 왔던 그 메시아라고 증거(證據)하고 선포(宣布)했더라면 유대인들은 자동적(自動的)으로 예수를 따랐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엘리아가 지금까지 땅 위에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留待人)들은 엘리아가 불수레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올 줄로 알고 있다구요. 영원(永遠)히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신약(新約)은 구약(舊約)의 내용(內容)이 연장(延長)된 것입니다. 엘리아와 마찬가지로 예수도 끝 날에 구름타고 오는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념(觀念)을 다 갖고 있는데 메시아가 인간(人間)의 몸을 가지고 나타나 보라구요. 전기독교(全基督敎)가 그 메시아를 완전(完全)히 반대(反對)할 거라구요. 이것이 바로 탕감(蕩減)의 길입니다. 신약(新約)도 탕감(蕩減)의 길을 가야 하는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승리(勝利)할 길이 없습니다. 구름타고 와서 ‘내가 메시아다!’하면 기독교인(基督敎人) 전부(全部)가 방향(方向)을 돌려서 따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현상(現相)은 일어나지 않는 다구요. 그렇게 인간(人間)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한 남자(男子), 하나의 완성(完成)할 이상적(理想的) 남성(男性)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삼은 완성(完成)한 참아버지가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으면 참 자녀(子女)의 씨(氏)가 연결(連結)되지 않습니다. 인류(人類)의 미래(未來)가 끊기는 거예요. 이게 문제(問題)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내용(內容)이라는 것입니다. 지금과 딱 같다구요.
세례(洗禮)요한이 반대(反對)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를 하나 만드는 데 실패(失敗)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3년 노정(路程)을 통(通)해 탕감(蕩減)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3년 노정(路程)을 통(通)해 찾기 위해서 집을 나가가지고 가정적(家庭的) 기반(基盤)에서 그걸 찾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걸 못 이루었다구요. 가정(家庭)에서 못 이루었으니 신부(新婦)가 없습니다. 예수님 편에 한 여자(女子)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나라 전체(全體), 이스라엘 백성(百姓) 모두가 반대(反對)한 것입니다.
예수가 얼마나 비참(悲慘)해요! 기독교(基督敎)를 믿는다면 어떤 여인(女人)이라도 지금은 ‘내가 예수의 일등(一等) 신부(新婦)요!’ 하겠지요? 그렇지만 자신(自身)이 그때 당시(當時)에 살고 있었다면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찾아올 수 있는 하늘 편에 설 수 있는, 여인(女人)이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생아(私生兒)라는 것을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조그마한 나라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문이 다 퍼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목수(木手)의 일을했습니다. 목수(木手)는 천(賤)한 직업(職業)이었습니다. 부모(父母)도 형제(兄弟)도 예수를 환영(歡迎)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여기 머물러 있어? 예루살렘에 가서 유명(有明)해지고 성공(成功)하지, 왜 여기 있어?’하고 조소(嘲笑)한 것입니다.
예수가 12살 때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를 그대로 내버려 두고 온 적이 있었습니다. 사흘 뒤에 찾아가서는 ‘예수야, 네가 왜 여기에 머물고 있느냐?’ 고 하자, 예수가 대답(對答)하기를 ‘내가 아버지의 집에 머무는 것을 몰랐느냐?’ 고 반문(反問)한 것입니다. 그 말이 기뻐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구요. 불평(不平)하는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를 사흘씩이나 내버려 놓은 부모(父母)가 어디 있어요? 왜 그랬겠느냐 이거예요.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를 놓고 많이 다투었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예수가 누구의 아들이냐? 내가 네 생명(生命)을 구(求)해 주었는데 왜 비밀(秘密)의 말을 못하느냐?’ 고 반문(反問)한 것입니다. 당시(當時)의 유대법(留待法)에 따르면 처녀(處女)가 아이를 배면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러니 내가 네 생명(生命)을 구(求)해 주었는데 왜 말하지 않으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만약(萬若) 마리아가 입을 열면 문제(問題)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예수와 세례(洗禮)요한은 사촌(四寸)이었다구요. 형제(兄弟)라는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하겠어요? 심각(心覺)한 이야기라구요. 예수의 입장(立場)은 뭐예요? 아벨의 입장(立場)입니다. 세례(洗禮)요한은 가인의 입장(立場)입니다. 어떻게 마리아 가정(家庭)과 사가랴 가정(家庭)이 하나 되느냐? 어떻게 가인 아벨이 하나 되느냐 이거예요. 이것이 마리아 가정(家庭)과 사가랴 가정(家庭)의 사명(使命)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면 여자(女子)도 없고 가인도 없는 거라구요. 세례(洗禮)요한은 예수의 사촌형(四寸兄)이었다구요. 형제(兄弟)예요, 형제(兄弟).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어머니 쪽의 자매(姉妹)였습니다. 그러면 예수의 아버지가 누구예요?「사가랴입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웃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구요.
누가 예수의 아버지라구요?「사가랴입니다.」그러면 세례(洗禮)요한의 아버지는 누구예요?「사가랴입니다.」 아버지가 같다구요. 같은 아버지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가인 아벨은 같은 아버지, 아담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지요? 예수 때에는 국가적(國家的)인 기반(基盤)에서 같은 아버지로부터 난 가인과 아벨이 하나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신부(新婦), 어머니가 나타날 수 없는 거예요. 그 둘이 하나 된 기반(基盤) 위(位)에서야 해와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리적(原理的) 관점(觀點)입니다.
<말선249-93> 가인 아벨을 세우는 목적(目的)은 아담을 복귀(復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장(天使長)은 아벨의 밑에 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장(天使長)의 자리는 아담의 다음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創造)의 우선(優先)은 천사장(天使長)이지만 자리는 아담의 다음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느 정도 난동(亂動)을 부리느냐 하면 3회이상(三會以上)입니다. 3회 이상(以上) 생명(生命)을 노린다구요. 소생(蘇生), 장성(長成), 완성(完成)입니다.
<말선43-280> 3.8선 이북(以北)이 우리와 대등(對等)한 입장(立場)에서 우리와 터놓고 이야기하게 될 때, 우리가 우위(優位)에 서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보다 우수(優秀)한 입장에서 그들을 먹여 살리고 사랑으로 품어가지고 녹여내지 않으면 안 될 길이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 할 때, 우리들은 이북(以北) 원수(怨讐)들을 사랑할 수 있는 훈련(訓鍊)을 해야하는 것이다.
<말선259-176> 통일적(統一的)인 그 기반(基盤)이 결국(結局) 재림주님(再臨主任)을 중심삼고 완전(完全)히 하나 되어 가지고 재림주(再臨主)로부터 무엇을 이어받느냐 하면 참사랑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참사랑을 이어받지 못했어요. 하나님과 연관(聯關) 맺은 참사랑을 이어받지 못하고 참사랑을 중심삼고 참사랑의 아기씨 혈통(血統)을 이어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재림주(再臨主)가 갖고 오는 재산(財産)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을 모시고 이 땅에 갖고 온 것이 뭐냐 하면, 참사랑하고 참사랑의 생명(生命)의 씨(氏)를 가지고 왔다는 것입니다.
<말선248-155> 예수님이 결혼문제(結婚問題)로 마리아에게 3번이나 얘기했다는 것입니다. 결혼(結婚)해야 되는 것을 말이에요. 예수님이 돌아다니면서 이적기사(異蹟奇事)를 하고 별의별 일 다 하다가 찾아왔는데 마리아가 술이 없어서 술을 만들어 달라고 하니까, 예수님의 하는 말이 ‘여인(女人)이여, 너와 나와 무슨 상관(相關)이 있느냐’고 한 것입니다. 친척집 결혼식(結婚式)은 관심(關心)가지고 도와주면서 당신(當身) 아들 결혼(結婚)은 잊어버리고 쫓아내고 무슨 수작이냐고 한 말입니다. 아들결혼(結婚)은 중요(重要)하지 않고 친척(親戚)집 결혼(結婚)이 중요(重要)하냐고 반문(反問)한 말이었습니다.
예수는 자기(自己) 집에서 문제(問題)거리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內容)은 어떤 기독교인(基督敎人)도 그걸 모른다구요. 이게 숨겨진 비밀(秘密)의 내용(內容)입니다. 선생님(先生任)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아, 선생님(先生任)이 말씀해주신 내용(內容)이 맞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영계(靈界)에 가서 이런 내용(內容)을 사실(事實)로 알고 나면 어쩔 줄 모르는 거예요. 영계(靈界)에 가서 ‘나는 몰랐다!’ 하는 변명(辨明)이 통(通)하지 않습니다.
<말선363-96> 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 죽으면서 로마 황제(皇帝)의 딸에게 장가가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사탄세계(世界)의 왕녀(王女)를 찾아야 돼요. 하나님도 그거예요. 사탄세계(世界)의 제일(第一) 귀(貴)한 잘사는 왕녀(王女)를 찾자는 거예요. 잘사는 할머니, 잘사는 어머니, 잘사는 처(妻), 잘사는 딸을 찾기 위한 놀음이에요. 국경지대(國境地帶)에 가서 원수(怨讐) 중에서 찾은 그 사람들이 일족(一族)이 되는 거예요. 사돈(査頓)이 되는 거예요. 원수국가(怨讐國家) 국가(國家)의 부모(父母)들이 교차결혼(交(結婚)하는 것을 행복(幸福)으로 알고 평화(平和)의 천국(天國)의 기지(基地)로 만들어야 사탄이 없어져요.
<말선248-141> 예수가 만일 사람으로 오지 않고 엘리아로 불수래 타고 왔다면 실패(失敗) 안 하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불수래 타고 와서 증거(證據) 했더라면 예수는 안 죽는 것입니다. 불수래 타고 오지 않고 지상(地上)에서 사람으로 왔기 때문에 예수가 죽은 것입니다.
<말선245-268> 이 땅 위에서 상대(相對)를 맞지 못한 예수는 영적(靈的)으로 천상세계(天上世界)에 올라가서 영적(靈的)인 부모(父母)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신(神)으로 오시는 것이 성신(聖神)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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