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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을 하면 힘이 생긴다.~
# 참으로 없을 때는 소리가 없다.~
- 이글은
My kakaotok Law Life.kr
에서 퍼 온 글입니다.-
<오늘 김형학의 한마디~>
-자~
지금 만나는 사람이 나의 運命을
만든답니다.~-
# 이 글을 知人들과 共有하면
自利利他요, 그 知人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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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은
인문학(서양철학과 동양철학) 128번
#一相無相分 第9~
절대의 법은 존재가 없음이다. 에서
이어지는 글이랍니다.-
-이글은
# 생각을 하면 힘이 생긴다.~
# 참으로 없을 때는 소리가 없다.~
# 무쟁의 행도 – 아란나行arana
‘다툼 없음’에 관해 살펴볼까요?
순서로 이어집니다.-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자~
# ‘수보리야,
네 생각이 어떠하냐?
사다함이 생각하기를
내가 사다함의 과위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사다함은
이 세상에 한 번만 더 돌아온다.
一往來 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往來함이 없으므로
이름을 사다함이라고 하나이다.‘
須菩提 於意云何 斯陀含 能作是念
我得斯陀含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斯陀含 名一往來 而實無往來
是名斯陀含
자~
# 일왕래라 하면
가고 옴이 없는 세계로 간답니다.
수다원은 入流,
斯陀含은 一往來라고 한답니다.
현장은
사다함을 一來者라 옮겼답니다.
일왕래는 天上 世界에 갔다가
한 번만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랍니다.
한 번만 더 인간 세상에 왔다 가면
生死를 免하는 阿那含이 되기 때문에
다시는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는 답니다.
중생 세계에서 볼 때는
이렇게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왕래함이 없다‘는 말은
반야 바라밀의 근본 세계에서 볼 때는
가고 오는 것이 없는 것이지요.
중생들을
分別 속에서 살아가니까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는데,~
원래 반야 바라밀의 세계는
가고 오는 것이 없답니다.
참된 사다함이라 하면
가고 오는 것이 없는 세계에
들어간 것이지요.
이는
내가 사다함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자~
# 수보리야, 네 생각이어떠하냐“?
아나함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나함의 果位를 얻었다’고
생각하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아나함은
이 세상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여
不來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오지 않음으로
이름을 아나함 이라고 하나이다.
## 須菩提 於意云何 阿那含 能作是念
我得阿那含果不
須菩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阿那含 名爲不來
而實無來 是故 名阿那含
자~
## 생각을 하면 힘이 생긴다.~
구마라습이 音譯한 阿那含은 不來,
즉 인간 세상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이고요.
현장은 이를 不還者라 했답니다.
☀ 不來는 無來라고도 하는데
온다고 하는 것 자체가 없다는 것이며,
오지 않는다는 어떤 특별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不來의 세계로 올라간 사람은
自身이 不來의 세계에 올라갔다는
생각이 없답니다.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없어야 한답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대통령 노릇을 할 수 없답니다.
정말 어머니는
’내가 네 엄마다‘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역설적으로 친엄마가 아닌 경우에
’내가 네 엄마다‘라고 자꾸 말하면
그렇게 된다고 한답니다.
자기가 새끼를 번식시킬 능력이 없는
나나니벌은
나비나 나방의 애벌레의 몸 속에
알을 낳아서~
幼蟲이 그것을 속에서부터
파먹고 자랄 수 있게 한답니다.
뿐만 아니라 애벌레의 神經節에
조심스럽게 침을 놓아서 마비시키되
新鮮度 유지를 위해
’죽이지 않게 한다‘. 이 같은 경우도
이와 비슷하답니다.
자~
☀ 지금은 극락에 못 갔더라도
’나무아미타불‘을 자꾸 반복하면~
극락에 가게 되고,
☀ 지금은~
뭐인가 잘 안 된다고 하더라도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를 계속하면 빨리 이루어진답니다.
그것을 염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念彼觀音力이라고 한답니다.
자~
念力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생각을 자꾸하면 힘이 생긴답니다.
흔히 무엇을 기원할 때
百日 기도를 하지요.
108배를 석 달만 해보라.~
정말로 가슴에서 힘이 솟는 걸
느낄 수 있지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암에 걸렸는데
오로지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서
완치된 경우를 본 적이 있답니다.
병 치료도 半 以上은~
나을 수 있다는 의지에 달려있답니다.
2007년 미 LPGA투어에서
모건 프레셀에게 2타 앞선 선두로출발한
박세리는 초반에 연속 보기를 범해
역전을 허용했었지요.
더구나 프레셀이 홀인원을 하면서
승리의 여신은 그녀를 외면하는 듯 했지요.
하지만
박세리는 한 홀 한 홀 버디를
추가하며 재역전에 성공,
마지막 홀에서 프레셀은 보기를 범하고
3타차로 우승을 하였지요.
제이미 파 대회 통상 5번째 우승이면서
오랜 슬럼프를 한꺼번에 날려버린
우승이었답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건 프레셀이 홀인원을 하는 순간,
이번 대회도 내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약간은 황당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곧
’집중하자. 집중하자.‘~
속으로 외쳤습니다.
’이렇게 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모건 프레셀도 이에 언급했다.
‘박세리는 정말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싸워나가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 자체가
내게는 영광이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 願力과 欲心은 차원이 다르지요.
대망을 품고 정상에 오르는 사람은
높고 위험한 계단을 올라가면서
내려갈 일에 마음 쓰지 않는답니다.
단지 오른다는 야망이~
떨어지는 공포를 삼켜버리기 때문이지요.
시켜서 하는 것은 얼마를 가지 못하지요.
인간은
自己가 하고 싶어서 해야지~
몇 배의 힘이 나온답니다.
공부하기 싫은 자식에게
아무리 공부하라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죠.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하지요.
그런데 우리네 부모들은 남을 意識해서~
제 자식을 달달 볶는답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게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한답니다.
정말로 하고 싶은 걸 할 때는
잠도 안 자는 법이지요.
하기 싫은 일을 시켜보라.~
안 한답니다.
또한 인간은 한 만큼 認定을 받아야만
주어진 일을 잘한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데리고 逍風 갔지요.
(逍-거닐 소)
알밤이 땅에 많이 떨어져서~
그것을 줍도록 하였답니다.
’너희들 가서 밤 주워 와라.‘
그랬더니~
약삭 빠르고 욕심이 많은 학생들은
많이 주워왔고,
느린 학생들은
조금 밖에는못 주워 왔지요.
선생님은 그걸 모아서~
학생들에게 平等하게 똑같이 나눠 주었지요.
이듬 해에 또 소풍 갔답니다.
역시 밤을 주워 오라고 하니까.
한 학생이 물었답니다.
’선생님, 이번에도 똑같이 가를 겁니까?‘
’그럼, 똑같이 나눠야지.‘
학생들은 밤을 주워왔는데
이번에는~
그전 해에 比해 半밖에 안 되었답니다.
’왜, 조금 밖에 안 주워 왔니?‘
’많이 주워 오면 뭐 해요?
어차피 똑같이 나눠줄 텐데요.“
이 逸話의 示唆 점은~
이렇다.
오늘 날 우리나라가 겪는
교육 평준화 정책이나
현실과 괴리된 노동정책, 혁신도시,
부동산정책 등 경제정책을 보자.
☀ 기업가의 최고의 善은~
이익을 내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업가가 지불 해야 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 數 없이 判斷하고 豫測하고 決斷을
내려야 한답니다.
비정규직 관련 이랜드 사태나
특수고용직보호법 입법 추진 등
정치인 출신 노동부 장관의
포플리즘(인기 영합 주의) 정책이
노사관계를 더욱 꼬이게 만들고 있다고
재계는 물론 노동계 內部에서까지
비판한 적이 있답니다.
정치 논리로~
경제를 간섭하고 지배하려 하고
시장경제의 현실을 무시하고
평등주의에 기초하려 하는구나.
우리나라는
건국 시대, 산업화 시대, 민주화 시대를 거쳐
이제는
국제화 정보와 다원화 시대를 맞고 있답니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경직된 기능과 기법으로는
국제 경쟁에서 이겨 나갈 수 없지요.
☀ 정부 권한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본능적 이기주의로는~
시장경제원리가 접목될 수 없지요.
감옥과 공원을 민간에 맡겨
경직된 정부보다 효율이 높았던 사례가
있는데요.
1980년대 미국 정부는
급증하는 죄수들을
기존의 예산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
민간에 맡긴답니다.
이들 민간 회사는
운영비를 최소로 줄이기 위해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대체하고
교정 프로그램을 강화하여
기술을 연마하게 하고 인성교육도
강화한답니다.
그 결과~
기업은 흑자를 내고 재범률도 눈에 띄게
낮아졌다는군요.
자~
우리 경제는
이미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답니다.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너무 理想的이면 거꾸로 서민들을
더 힘들게 한답니다.
시장경제를 지향한다는 보수정당조차도
노동의 非 탄력성에 대한
근본적 처방이 없는 비정규직 법안을
처리한 것처럼
자기 색깔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표를 의식하는 포플리즘적 정책에~
은근슬쩍 동참하거나 때로는 더 앞서
나가는구나.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이지만은 아니지요.
기업은 기업대로
글로벌경제에 대응하기 어렵게 되고
생산성도 저하되는구나.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잘 다니던 직장에 더 이상 다닐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마는구나.
이렇게 되면
국가의 백년대계는 없지요.
그것을 절충할 길은 없을까?
바로 그것이 불교에 있지 않을까?.
자~
#‘수보리야,
네 생각이 어떠하냐?
아라한이 ’내가 아라한의 道를 얻었다고
하겠느냐?”
수보리가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인가 하면
실로 아무것도 아라한이라 할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아라한이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道를 얻었노라‘한다면
이는 곧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집착되는 것입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阿羅漢 能作是念
我得阿羅漢道不
須菩提提言 不也 世尊
何以故 實無有法 名阿羅漢 世尊
若阿羅漢 作是念 我得阿羅漢道
卽爲者我人衆生壽者
자~
# 참으로 없을 때는 소리가 없다.~
아라한은 성문의 마지막 과위로서
앞의 3위는 모두 果로 되었는데
여기에서 道로 되어 있답니다.
이는 차별적 표현으로~
修行이 極致에 이른 聖人을 말한답니다.
아라한은 無敵,
즉 번뇌의 敵이 없으며,
다시는
인간 세상에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不生이라고도 하고,
인간과 하늘에 올리는
어떤 공양도 받기에 충분하므로
應供이라고도 한답니다.
소승 불교에서
부처보다는 아래의 위치이지만,
인간이 修行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지요.
앞에서 말했듯이
부처님의 법은
잡을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법도 아니고, 비법도 아니고요.
법이라고 해서~
아라한이라고 할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世俗 諦에 따라서 臨時로
아라한이라 부를 뿐이랍니다.
‘내가 뭐다. 내가 뭐가 아니다.’
라고 하면
그건 벌써 중생의 망식이고~
헛된 생각이죠.
아라한은 아라한이라는 생각도
아라한이 아니라는 생각도
없답니다.
자~
☀그것은 잠에 푹 든 사람이~
잠들었다는 마음이 없는 것과 같지요.
누군가 방문 앞에서
‘방안에 누가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아무도 없습니다.’ 라고 한다면~
어찌 되는가?
‘아무도 없다.‘는 말은 ’있다.‘는 표시이지요.
없을 때는 소리가 없지요.
있다는 소리도 없고, 없다는 소리도
없답니다.
이렇듯
아라한이 됐다. 안 됐다.라는 생각이
없을 때
진정한 아라한이랍니다.
자~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저를 일러 無諍三昧를
얻은 사람 중에 第一이라 하셨는데
이는
욕심을 여윈 아라한 중에 으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는 욕심을 버린~
아라한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만일 생각하기를
’내가 아라한의 道를 얻었노라‘한다면
세존께서 수보리가
다툼없이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하지 않으셨을 것이오나,
수보리가 실로 그러하지 않았으므로
수보리는 다툼없이 머무는 것을 즐긴다. 고
하셨습니다.
世尊 佛說 我得無諍三昧人中
最爲第一
是第一離欲阿羅漢
我不作是念 我時離欲阿羅漢
世尊 我若作是念 我得阿羅漢道
世尊 卽不說須菩提
是樂阿蘭那行者 以須菩提 實無所行
而名須菩提 是樂阿蘭那行
## 무쟁의 행도 – 아란나行arana
‘다툼 없음’에 관해 살펴볼까요?
無諍三昧란,~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시비분쟁, 다툼이 없는 三昧란~
뜻이랍니다.
욕심의 번뇌가 다하여
‘空’의 원리에~
편안히 머무는 이의 경지를 말한답니다.
잘났다. 못났다. 잘한다. 못한다는
시비 분별이 없는 상태가 無諍三昧 이지요.
수보리는 교화 활동을 벌일 때~
다른 道를 구하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과 중상을 당했지만~
그들과 다투거나 논쟁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를 일러
無諍三昧를 얻은 이 중에서
第一이라고 하였고,
또한 空의 원리를~
잘 알기로 이름이 높아서
그를 解空第一이라 하였답니다.
욕심을 여윈 아라한이라 함은,
어디에 집착하는 마음,
그런 탐욕을 일으키는 마음을
떠나야
다툼 없는 삼매에 든다는 말이지요.
이는
탐욕을 떠난 아라한이라는 말이랍니다.
정말로 부지런한 사람은~
자신이 부지런하다는 것을 모른답니다.
정말로 마음이 넓은 사람은~
自身이 마음 넓은 줄 모른답니다.
경지에 들면~
내가 욕망을 여윈 아라한이라는 생각이
있을 수가 없지요.
아란나 행은 行의 뜻 중에
길-道路이라는 의미가 있으며
원문의 arana가 ‘다툼 없음’이란
뜻으로써~
수보리가
無諍의 行道를 얻었다는 말이지요.
이는 무쟁삼매와 마찬가지로
남들의 어떠한 비난이나 비판에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평화를 갖는다는 의미이랍니다.
다시 말하면~
☀ 空의 原理를 알아 고요한 곳에서
법을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 수행이지요.
도루묵이라는 물고기가 있지요.
임진왜란 중 선조가 피난을 갔을 때,
어부가 木魚라는 물고기를 올렸는데,
맛이 기가 막혔지요.
그래서 그 물고기의 이름을 특별히
銀魚라고 지어 주었답니다.
선조가 다시 궁으로 들어와
은어를 찾았지요.
그러나
그 은어는 이미 옛 맛이 아니었답니다.
배고픔 피난길에서 느끼던 맛과
궁중에서 편안히 먹어보는 맛은~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 물고기를 다시 木魚라고
부르라 하였답니다.
‘도루목어’가 세월을 가면서
‘도루묵’이 되었다고 한답니다.
☀ 정말 맛이 있다면~
시장할 때 먹든지 배부를 때 먹든지 간에
맛이 있다고 하지요.
☀ 정말로 잘난 사람은
언제 보아도 잘난 것이고요.
자~
‘진실’이 중요하니.~
실제로 닦아서
실제로 이루는 것이 중요하지요.
자~
☀ 참선 參禪을 一念三昧라고 한답니다.
잡념 없이 일념으로 계속 정진하면~
그것이 바로 三昧이랍니다.
일념 삼매에 들면
參禪하는 줄도 모른답니다.
自身이 지금 참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일념 삼매가 아니지요.
이때는~
하루 이틀 지나가도 모른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머리 위에 새가 올라앉아 있는데도
몰랐다고 한답니다.
그게 진정한 一念 三昧이지요.
수보리는
無諍三昧를 몸소 실천하고 있으므로
‘함이 없다 - 實無所行’는 말로
自身을 비우고 있지요.
현장은 이 부분을
‘어떤 것에도 머물지 않는다.-
以都無所住’라 옮겼지요.
바캉스Vacance라는 말은
라틴어 바카티오에서 유래된 말로
원래는 ‘텅 비우다’ 라는 뜻이었답니다.
이 용어는
학생이나 교사, 혹은 법관 등에게
주어진 비교적 긴 휴가를 뜻하다가,
20세기 들어
일반인들이 휴가를 떠나는 경우를
가리키게 되었지요.
프랑스에서는 휴가철에~
국민의 80%가 집을 떠난다고 하는군요.
장 마리 위르티제 르노삼성 사장이
‘휴가란~
본래 구속과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떠나는 것이니~
몸과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스트레스를 다 비우고~
활력과 즐거움으로 재충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는
메시지를 전임직원에게 보냈답니다.
이른바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비움의 경영‘인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정을 보자,
임원들은 사장의 눈치를 보면서
그나마 주어진 휴가를 半도 못 쓰고
되돌아온다고 하더군요.
사장 역시 회사 걱정에
휴가를 반납하고 일에 매달리기도 하고요.
국가의 중요한 업무를 맡은
한 공무원은
거의 10여 년을 휴가를 반납하고
일에 매달렸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어느 해 휴가를 가게 되었는데요.~
휴가 중에 분명히 무슨 일이 나서
自身을 찾을 것으로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 일주일이 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거 얘요.
그때 그는 깨달았다고 하네요.
세상은 비움이 곧 채움이라는 것을~
수다원은~
수다원이란 생각이 벗고,
사다함은~
사다함이란 생각이 없답니다.
아나함은
아나함이란 생각이 없고요.
아라한은
아라한이란 생각이 없답니다.
그러하기에
부처님께서 정말로
무쟁삼매를 얻었다는 뜻이랍니다.
부처님과 견주면
턱도 없이 낮은 지위인 성문들도
얻었다는 티가 없거늘,
하물며 부처님의 경지를
물어서 무엇하랴.
이렇게 여기서는
낮은 아라한의 경우를 들어
부처님의 경지를 설명하고 있답니다.
이는 법은
잡을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다지만
성문의 네 果位만 해도
분명 끊고 얻은 바가 없지 않은데,
부처님인들 어찌 얻은 바가 없겠는가? 고
의심하는 부분에 대한 대답이지요.
-See You Again-
<옮긴이 법무사 김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