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벌써 몇 대를 그냥 보냈는지 몰라요.
여기에서 이렇게 그와 마주치게 되다니...
걷는 방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한 발자국도 뗄 수가 없습니다.
병원 오 간호사님이 결혼할 남자를 소개시켜 준다고 해서
오늘 오프인 사람들만 강남역에서 모였어요.
그 중에 나랑 민간호사, 정간호사 이렇게 세명이
병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신참이라서..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서 열심히 놀았습니다.
1차 저녁 식사, 2차 맥주 집, 3차 노래방까지,
기분 좋게 3차까지 코스를 밟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그와 재회하게 된 거예요.
강남역은 자주 오는 데가 아니어서 모르고 있었어요.
집도 병원도 이쪽이랑은 거리가 멀어서 잘 안 오거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시끌벅적한 곳도 싫어하고..
근데 오늘은 오 간호사님 남자친구 분 회사가
강남역 근처라서 시간 절약 상..
우리가 이쪽으로 움직인 거였는데..
계단을 내려와 승강장 앞에 선 순간,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스크린 도어 속에서..그가 웃고 서 있잖아요.
근처 영어 학원 광고인데,
그가 수강생 모델로 뽑힌 모양이에요.
'영어에 자신이 생겨요'
하는 말풍선과 함께
<수강생 모델 김민우>하고, 이름도 써 있습니다.
민우야, 하고 이름을 부르면 그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내 손을 잡아줄 것 만 같아요.
다가가 만져보고 싶어요.
머리카락..이마..눈이랑 코랑 입술..
민우야, 우리가 자주 가던 인사동 전통찻집이랑 미술관..
삼청동 백반집이랑 수제비 집..기억나니?
아직도 나와 뒷자리가 같은 그 전화번호 그대로일까요?
아니면 새 휴대폰을 사면서 번호도 바꿔버렸을까요?
애꿎은 전화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야, 니네 병원에 과일 주스랑
냉커피 배달시켜 먹을 사람 없니? 내가 초특가로 줄게>
작년인가 친구들이랑 가락시장에 회 먹으러 갔다가,
거기에서 눈이 맞아 연애 중인 귀여운 친구에요.
자기네는 둘 다 물고기자리라서,
횟집에서 만난 게 운명이라나요?
그 때만 해도 민우가 내 옆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이젠 내 앞에, 낯선 사람이 되어서 서 있네요.
그가 열리고..닫힙니다.
저 스크린 도어가 그의 마음이라면 좋겠어요.
그의 마음으로 다시 들어갈 수 있다면..좋겠습니다.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으면 이루어질 거라고,
용기 내 다시 한 번 그의 마음을 노크해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