吊山人(조산인)
정동준(鄭東浚:1753~1795)
본관은 동래. 자는 사심(士深), 호는 동재(東齋).
177년(영조 51) 급제하여 1780년(정조 4)에 규장각대교를 지냈다.
1782년 이조좌랑과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을 지냈으며, 1785년 이조참의를
1785년 대사간을 역임. 1789년 경상도 관찰사. 1795년에 권유(權裕)에 탄핵되었으며,
이후 음독 자살하였다.
오실 때에는 흰구름 벗하여 왔다가
來與白雲來 내여백운래
갈 적에는 밝은 달을 따라가셨네
去隨明月去 거수명월거
오고 가는 것도 주인처럼 하시더니
去來一主人 거래일주인
마침내 어디에 머물러 계시는지
畢竟在何處 필경재하처
*
산인(山人)은 세상을 등지고 산에 사는 승려나 도인을 지칭하지만,
여기에서 吊(조)가 접두사처럼 쓰여 있으므로
장지(葬地)를 찾아가서 죽은 사람을 문상하며 쓴 시 같다.
요즘 보기 드물지만, 예전에는 장지(葬地)에서도 빈소를 만들어서
문상객을 맞았다.
시인이며, 사진작가이신 소래문학회 최영숙 님이
故 김종필(金鐘泌) 전 국무총리의 장례식 기록 사진을 촬영하면서
장지(葬地)에서 현지인들의 대화를 들었다고 한다.
그곳에 사시는 분들이
‘弔’ 와 ‘吊’ 를 구별하여 쓰신다는 말씀을 들었다.
활궁(弓)이 들어가는 ‘弔’ 字는 남성에게 쓰이며,
수건건(巾)이 들어가는 ‘吊’ 字는 여성에게 쓰인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다.
신분귀천과 남녀구별이 엄격한 봉건시대에
위의 말씀은 확실히 일리(一理)가 있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이 시를 쓴 정동준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하다.
‘吊’ 자를 쓴 것을 보면
분명 어느 대감집 부인의 弔問 아니면
자기의 부인의 弔文詩(?) 같은데
내용에 있어서 3행은 다소 파격적이다.
“去來一主人” 거래일주인
생사에 있어서 죽고 사는 것조차
마음대로 산 사람은 누구일까?
여성일까?
남성일까?
아니면 진짜 도인이었을까?
누구나 한 번은 왔다가 간다
구름과 달과 더불어 살지만
누구나 주인공처럼 사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삶을 주인처럼
잘 다스리고 사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