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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의 가르침은, 윤회 과정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주는 참나[眞我]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조건적인 현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험적인 자아가 존재할 뿐임을 설명합니다.
❐ 연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 북방 아비달마를 총괄하는 『이비담마 구사론』에 의하면 연기의 가르침을 다음의 네 가지로 이해한다고 적고 있습니다. <첫째> 한 찰나에 연기의 12지가 동시에 함께 일어난다는 것을 ‘찰나刹那연기’라 합니다. 예를 들면 살생을 행할 때 찰나에 12지가 모두 갖추어져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12찰나에 걸쳐서 연속적으로 12지가 연이어서 상속하는 것을 연박(連縛)연기라 합니다. <세 번째> 여러 생에 걸쳐서 시간을 건너뛰어서 12지가 상속한다는 것을 원속(遠續)연기라 합니다. <네 번째> 12지는 모두 오온을 본질로 하여 매순간 오온이 생멸하면서 상속하지만 특정 순간의 두드러진 상태[分位]에 근거하여 각각의 명칭을 설정한 것을 분위分位연기라 합니다.
• 『구사론』에 의하면, 경장에 나오는 연기의 가르침은 ‘유정(有情)’에만 한정시키나, 논장에서는 법의 참된 모습을 밝히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설하였기 때문에 ‘분위’로도 설하고 유정과 비(非)유정 모두 통하는 것으로 설하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이론은 『대비바사론』에서 분위와 원속은 오로지 유정에 국한되는 연기론이고, 찰나와 연박은 비(非)유정 즉 법에도 통하는 연기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연기각지가 한 순간에 동시적으로 일어나는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연기각지(A와 B)가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다는 것을 통시적(通時的) 연기라 하고, 한 순간에 함께 일어난다는 것을 공시적(共時的) 연기라 합니다. 예를 들면 ‘무명-행-애-취-유’의 5인(因), 그리고 ‘식-명색-육입-촉-수’의 5과(果)는 통시적일 수도 있고 공시적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인(因)-과(果)는 공시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과 동시(同時)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보아도 유→생, 생→노사는 공시적일 수 없습니다.
• 앞서 든 찰나연기는 공시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고, 연박연기와 원박연기와 분위연기는 통시적인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청정도론』에서는 식-명색,
명색-육입, 육입-촉, 촉-수, 애-취, 취-유의 여섯 가지 등은 함께 생긴 조건[俱生緣]으로 공시적 연기가 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 연기의 가르침은 ‘제법무아’를 밝히는 강력한 수단
• 불교에서는 ‘나’라는 개념적 존재를 오온(五蘊=色·受·想·行·識)이라는 법으로 해체해서 봅니다. 이 다섯 가지의 법이 서로 엉켜 붙도록 윤회의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이 무명과 갈애이고, 그로 인해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선업 또는 불선 업을 짓게 되어 그 과보의 회전에 따라 삼계 중의 어느 한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이 연기의 가르침입니다.
• 인간이 산다는 것은 눈·귀·코·혀·몸·마노[意]의 여섯 감관[六根]이 매순간 형상·소리·냄새·맛·감촉·법과 접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육근에서 정보를 받아들일 때 알음알이[六識]가 일어나는데 이때 반드시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는 세 가지) 느낌도 함께 일어납니다.
범부 중생들에게 느낌이 일어날 때 느낌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뒤따라 갈애가 일어나 12연기가 회전합니다.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갈애가 일어나서 자리 잡습니다. 여기에 집착하면 업 형성[有]이 생겨나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늙음과 죽음[老死]가 뒤따릅니다.
• 연기는 단지 조건을 얻은 정신·물질[名色]이 매 찰나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다음 생으로 상속될 뿐, 여기에 중생이나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연기는 통찰지의 토양입니다.
• 조건 짓는 법들과 조건 따라 생긴 법들을 ➀ 정신[名, nāma], ➁ 물질[色, rūpa], ➂ 정신·물질[名色]의 복합체로 분류하여 이 법들이 현재의 나[五蘊]에게 조건으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죽은 후에 재생연결에서 어떠한 업보를 가져올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 화두 참구를 해왔습니다. 그 결과 초기경전의 주석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윤회(saṁsāra)는 “5온(蘊)·12처(處)·18계(界)가 연속하고 끊임없이 전개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저가 어리석은 범부였을 때는 불변하는 아뜨만(자아)이 있어서 몸만을 바꿔서 금생에서 내생으로 간다는 ‘자아의 윤회(=힌두교의 윤회)’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조건을 얻은 이 법들이 다음 생으로 갈 뿐이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윤회해온 것도 아니고 원인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라는 『청정도론』의 가르침을 오롯이 새기며 ‘무아의 윤회’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의 가르침은, 윤회 과정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주는 참나[眞我]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단지 조건적인 현상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험적인 자아가 존재할 뿐임을 설명합니다.
• 아라한과를 얻지 못하는 한 중생들은 12연기의 길을 따라 윤회의 괴로움[苦]을 면할 수 없습니다. 열두 개의 고리를 끊기 위한 연기의 역관(逆觀)은 어떻게 수행하여야 하는가요? 열두 개의 연기각지 모두를 다 소멸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12지 가운데 어는 하나를 소멸하면 되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상윳따 니까야』에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건대 현재의 과(果)의 고리인 식-명색-육입-촉-수는 소멸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因의 고리를 제거, 소멸해야 하는데, 부처님께서는 무명의 고리와 갈애의 고리가 가장 부수기 쉽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마치 자전거 체인이 고리 한 개만 빠지면 그 역할을 못하듯이 무명의 고리를 끊기 위해 지혜의 빛을 밝혀야 하고, 또 갈애의 고리를 끊기 위해 ‘무아의 윤회’를 통찰함으로써 세상사에 대한 애착을 조금씩 줄여 나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12각지 가운데서 무명은 과거의 인이고, 갈애는 현재의 인이라 보기 때문에 갈애의 고리를 멸진시키는 것이 역관(逆觀)의 지름길이 아닐까 합니다.
❐ 12연기와 상호의존[緣, 조건]의 다른 점
• 불교에서는 사물들이 하나의 원인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며, 원인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초기불교는 상호의존 혹은 조건발생으로 존재 일반을 설명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조건은 초기 『아비담마』에서부터 24가지 조건으로 정리되었고, 『구사론』을 위시한 북방아비달마에서는 6인(因)-4연(緣)-5과(果)로 정리되었으며, 이것은 『유식』에 고스란히 전승되어서 10인(因)-4연(緣)-5과(果)로 정리되어 설명되고 있습니다. 『유식』에서는 존재와 인식은 제8아뢰야식의 이분화로 인한 주관과 객관, 능연(能緣)과 소연(所緣)의 관계맺음으로 발생한다고 설명합니다. 육근(六根)-육경(六境)-육식(六識)의 삼사(三事) 화합에 의한 인식 과정이 성립하는 데는 4연(緣)의 작용이 적극적으로 혹은 수동적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유학의 입장에서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명하는 12연기와 24연 혹은 4연(증상연, 등무간연, 소연연, 인연)과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 사성제는 12연기의 유전문과 환멸문과 한 치의 오차 없이 배대가 됩니다. 연기의 가르침이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체계적으로 드러내는 경장의 교학 체계라 한다면 상호의존관계(patthāna)는 주로 82법으로 정리되는 고유성질을 가진 법들의 상호관계를 24가지 조건의 체계를 통해서 밝히는 논장, 즉 아비담마의 가르침입니다.
• 불교에서는 사물들이 하나의 원인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며, 원인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흙과 씨앗, 온도와 물이라는 여러 원인으로부터 형상, 색깔, 냄새, 맛 등을 가진 새싹이라 불리는 여러 결과의 생김을 과학적 증명을 통해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부처님께서는 12연기의 가르침 가운데, “무명을 조건으로 업 형성들[行]이 일어난다.”라는 첫 번째 정형 구에서는 오직 무명 하나의 원인과 그 결과를 설하신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청정도론』에서는 세존께서는 설법하시는데 능숙함을 얻으셨고 또 교화 받을 사람의 근기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①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② 분명하기 때문에, ③ 특별하기 때문에 하나의 원인과 결과만을 설하신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