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네.”(야고 1,18)
정말 무더위라는 말에 걸맞게 폭염으로 우리를 괴롭혔던 여름이 가고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기운이 돌며 이제 곧 가을이 올 것임을 알려주는 9월의 첫 번째 주일, 전례력으로 연중 제 22 주일인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당신의 말씀으로 낳으시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우선 오늘 제 1 독서의 신명기의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지를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신명기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는 규정과 법규들을 잘 들어라. 그래야 너희가 살 수 있고, 주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신명 4,1)
이스라엘 민족은 이제 더 이상 이집트인들의 노예로서 종살이하는 민족이 아닌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난 민족답게 하느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그 여정의 매 순간,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아 주시고 그들이 새롭게 변화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며 그 변화의 표징으로서 계약을 맺어 주십니다. 곧 하느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난 이스라엘 민족이 지켜야 할 계명, 그 계명을 지킴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주님이 되어 주시는 표징으로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을 다음과 같은 말로 내려 주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에 무엇을 보내서도 안 되고, 빼서도 안 된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신명 4,2)
이처럼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계명, 곧 율법을 이야기하는 오늘 제 1 독서의 신명기의 말씀은 오늘 복음의 말씀으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마르코가 전하는 오늘 복음의 말씀 역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생겨난 설전의 주제로서 율법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상황은 식사를 하기 전 손을 씻지 않은 채 식사를 하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다음의 말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에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마르 7,5)
음식을 먹기 전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았다고 해서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따져 묻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습은 사실 좀 유난스럽게 느껴집니다. 실컷 밖에서 놀다온 아이가 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기 전 엄마로부터 가서 손을 씻고 와서 밥을 먹으라는 잔소리를 듣는 것 마냥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이 같은 질문이 조금은 유난스러운 극성으로까지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손 씻는 것을 깜박할 수도 있는 일인데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께 다가와 그 문제를 마치 굉장히 중차대한 문제인 것 마냥 심각한 문제제기를 할 필요까지 굳이 있어나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의 이 같은 극성에 대응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더 흥미롭습니다. 뭐 이런 것 가지고 이렇게 난리들이냐며 웃으며 넘길 수도 있는 일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질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따른다.”(마르 7,6-8)
이사야 예언자의 말까지 인용하며 그들의 잘못을 질타하는 예수님의 이 같은 모습은 사실 조금 낯설게 느껴집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너무 그러지 말라며 바리사이들의 제자들을 향한 문제 제기를 눙쳐 말할 수도 있었을 법하건만 예수님은 그들의 이 말에 정색하며 보다 더 진지하게 그들의 잘못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바리사이들 사이의 벌어진 이 설전의 진짜 중요한 핵심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기에 밥 먹기 전 손 씻는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호들갑이며 예수님은 그들의 문제 제기에 이토록 정색하며 대응하시는 것일까요?
이 같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바로 오늘 복음 말씀 안에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식사를 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비판하는 모습에는 그저 단순한 위생적 이유만 있지는 않습니다. 손을 씻지 않은 채 더러운 손으로 식사를 하는 그들의 모습을 단지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 같은 행동이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려주신 율법의 규정을 어긋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인들이 지켜야 하는 율법의 규정 중에는 실제로 식사 전 손을 씻으며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반드시 드리고 식사를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손을 씻을 물을 담을 그릇의 모양과 손을 씻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규정을 모두 지키고 ‘하모찌’라고 불리는 기도문을 외운 후에라야 비로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유대인의 이 규정이 바로 오늘 복음의 문제의 발단이 된 규정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로 이 율법의 규정을 어겼던 것이며 바로 이 이유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따져 물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라는 사람들이 하느님이 주신 율법의 규정을 어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이 같은 비판의 이면에는 그들의 또 다른 마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다음의 말씀 안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마르 7,6-7)
율법의 규정을 들어 주님이신 하느님께 대한 충실한 믿음과 실천을 강조하는 듯 보이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마음 이면에는 예수님이 지적하는 바로 이 점, 곧 하느님의 규정이 아닌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하느님을 헛되이 섬기는 잘못된 마음이 깔려져 있습니다. 곧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이 정한 인간적인 규정을 전통이라는 미명으로 감싸버린 후,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하느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함부로 이야기하면서 구원의 가능성을 자신들 스스로 규정짓는 결정적 우를 범하고만 것입니다. 하느님 외에 그 누가 감히 구원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그 누가 인간이 정해 놓은 규정들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구원의 가능성을 모두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인마냥 이 율법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으니 당신은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함부로 말하는 결정적 우를 범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켜야 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그 계명의 뒤에 숨어 하느님이 바라시는 삶이 아닌 온갖 더러운 것들로 자신을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이와 같은 모습을 비판하시며 그들의 모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마르 7,14ㄴ-15)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를 당신의 소중한 자녀로 불러 주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의 계명을 주심으로서 그 계명을 통해 우리를 당신과 함께 하는 기쁨과 행복의 삶으로 초대해 주십니다. 그 초대의 삶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계명, 곧 사랑의 율법으로 완성되는 삶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이 율법을 하느님이 주신 율법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과 선호에 따른 인간적 계명으로 대체시켜버림으로써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마음은 없이 입술로만 하느님을 공경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함으로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주신 하느님의 뜻에 맡게 살아갈 수 있게 될까요? 율법학자들의 우를 범하지 않고 입술만이 아닌 온 마음을 다해 하느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을까요?
오늘 제 2 독서의 야고보서의 말씀이 그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야고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1-22)
사랑하는 송동 교우 여러분,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당신의 말씀으로 낳으시고 그 말씀을 통해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그 말씀은 오늘 제 2 독서의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를 구원할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를 모든 위험에서 구원할 강한 힘, 그 어떤 어려움이나 시련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강한 힘을 지닌 그 말씀을 귀로 듣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고 우리 삶 안에서 그 말씀을 실천하려 노력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음으로서 나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내 삶으로 실천함으로서 말씀을 살아가는 사람, 말씀 안에서 살고 말씀을 통해서 살며 말씀과 함께 사는 삶을 살려고 노력해 보십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이 전하는 하느님의 보호와 그 분이 이끌어 주시는 기쁨과 행복의 삶으로 우리 모두 초대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전하는 이 하느님의 뜻을 여러분 모두가 마음에 새겨 말씀을 듣고 삶으로 실천함으로서 여러분의 삶이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쁨의 삶이 되시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