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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송(後送)
서 정 인
1
“성중위님, 참모장님이 부르십니다.”
잘 닦아 번쩍이는 계급장을 단 상병이 삐걱거리는 판자바닥 위로 몇 걸음 걸어오면서 말했다. 콧날이 뾰죽하게 야윈 장교는 아무런 반응이 없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사병은 자기의 말소리가 분명히 상대방에게 들릴 만큼 컸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장교의 눈 간 곳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퀀셋의 열려진 녹색의 창문이 있었고, 그 너머로는 텅 빈 높게 갠 가을 하늘뿐이었다. 사병이 다시 성중위에게 시선올 돌렸을 때, 그는 천천히 업무일지와 만년필을 집어 들면서 일어서고 있었다. 전갈 온 상병은 자기의 말이 전달되었음을 알아채고 덧붙였다. “약간 저기압인 거 같어요.” 그러고는 엄지손가락으로 뿔을 만들어 보이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면서 씩 웃어 보였다. 성중위는 노여운 듯 상병의 호의에 별로 주의를 주지 않고 퀀셋을 빠져나갔다. 이해할 수 있지……. 성중위는 하얗게 빛나는 지휘부 석축 막사로 다가가면서 생각하였다. 비번 참모들은 서울 외박을 나갔겠다. 업무량은 평상근무 때보다 더 밀리겠다. 화나게도 됐지……. 그는 지난해 추석 때 그가 어디 있었는가를 생각하면서 참모장실로 들어갔다.
“알았어.”
대령은 수화기를 막 입에서 떼고 있었다. 참모협조의 장소로서 시장처럼 붐비는 그 방은 비어 있었다. 참모장은 담배를 피워 물었다.
“성중휘, 포병 테스트장에 나가게.”
“지금 후송수속을 밟고 있습니다.”
“뭐? 어디가 아퍼서?”
“귀…… 귀가 고장입니다.”
“귀가 어쨌단 말야.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은 걸 가지고…….”
“수도육군병 원에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곧 후송입원하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왜 하필 바쁠 때 아프냔 말야.”
한가할 때도 안 아픈 것이 좋을 텐데요……. 성중위는 그러나 그것이 그의 책임인 듯 잠자코 서 있었다. 참모장은 잠시 담배만 빨고 있다가 말을 이었다.
“좋아. 우선 나가 있어. 곧 교대시켜 줄 테니까.”
그날 오후 포사(砲司)에서 떠난 주부식 보급차 이와 이분의 일톤 차량에 편승하여 성충위는 사단 사령부에서 사십오 마일 떨어진 포사격장으로 나갔다. 낮이면 더웠고 밤이면 추웠다. 마른 풀을 깔고 천막 속에서 자기에는 밤공기가 싸늘하였다. 진지는 매일 이동되었다. 포들은 밤낮으로 불을 뿜으며 둔중한 폭음으로 빈 벌판을 울렸다.
성중위가 후송을 마음먹은 것은 몇 달 전부터였다. 그러나 군의관은 매번 후송불요라고 판정을 내렸다. 그때 그는 연대 관측소 수색 소대장으로 있었다.
“후송 보내 주십시오.”
성중위는 이마에 땀을 씻으며 말했다.
“어디가 아프시지요?”
군의관은 사무적인 말투로 물었다. :
“귀가 이상입니다.”
“봅시다.” 군의관은 확대투시경으로 성중위가 내미는 왼쪽 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고막 중앙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을 뿐 별 이상은 없습니다.”
“……”
성중위는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고막천공으로는 후송이 안 됩니다. 머큐롬을 발라서 간단히 치료
할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성중위는 답답하다는 듯 이마를 좁히며 조급히 말했다.
“그게 아닙니다. 그건 치료돼도 좋고 안 돼도 좋아요. 그것으로 해서 아프거나 청력에 장애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요?”
군의관은 성중위의 다음 말을 예측할 수 있다는 듯이 눈가에 미소를 약간 지어 보이며 재촉했다.
“귀에서 소리가 나요.”
“그렇지요. 소리가 난다는 건 드물지만 반대로 안 들린다는 경우는 많아요. 특히 사병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만. 그러나 성공한 예는 드물지요.”
이 자식은……, 성중위는 생각하였다. 선입관을 갖고 진찰하고 있구나……. 환자의 호소를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성중위는 군의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몰론,” 군의관은 성중위의 시선을 피하며 부드럽게 그러나 자신있게 말했다. “소리가 날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건 자각증상입니다. 자각중상이 진단에 많은 도움을 주는 건 사실입니다만, 단을 내리는 것은 항상 의사 쪽입니다.”
“그렇다면,” 성중위는 참으면서 말하였다. “귓구멍 이 뒤집히기 전에는 안 되겠군요.”
“그건 그때 진찰해 봐야지요.”
성중위가 파견 나간 지 일 주일째 되는 날, 셋째 번 포대가 시험을 마치고 최종집결지에 집합했고 넷째 번 포대가 시험을 받기 위해서 싱싱하게 하늘로 뻔친 긴 포신들을 꽁무니에 끌고 사격장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성중위를 교대해 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타나리라는 소식도 들려 오지 않았다. 넓은 벌판 서쪽 가녘은 엷은 낙조로 물들었고 해는 크고 둥글어 갔다. 하루 중 태양이 가장 의식되는 시각이었다. 말라 가는 옥수수의 키 큰 그림자가 이랑을 가로질러 길게 굽이쳤다. 사홀 동안의 야영훈련에 그을리고 지친 포병들이 부대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이른 저녁밥을 대강 해치우고 장비점검을 하고 있었다. 성중위는 초조했다. 그리고 망설였다. 부대이동 IP통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성중위는 결심하고 포사령관 앞으로 다가갔다.
“사령관님, 부대에 좀 들어가겠습니다.”
“왜? 파견근무가 고달픈가?”
“그런 건 아닙니다만……. 들어가서 교대하든가 다시 제가 나오든가 하겠습니다.”
“응, 그렇게 해.”
포사령관은 순순히 응낙했다.
잠시 후 선도차가 사이렌을 울렸다. 모든 차량은 발동을 걸었고 성급한 운전병은 클랙슨을 울렸다. 성중위는 반쯤 닫힌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밖을 내다보았다. 시야를 막는 산은 없는데 시야는 어디쯤에선가 제한을 당했다. 어둠이 깔려 오고 있었다. 크고 넓게 그리고 조용하게 어둠은 벌판의 계곡으로 기어오고 있었다. 죽음의 손길처럼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밤의 장막은 다가오고 있었다. 밤, 밤이. 그것은 죽음과 삶의 차이를 없애 버린다. 보라, 저 허물어져 가는 퇴색한 묘비도 사라져 가고 새로이 진지를 편성하는 구릿빛 포병의 영구히 약동할 듯한 육신도 사라져 가지 않는가……. 삶이 영원한 죽음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지 않은가…….
군의관의 말은 그러나 그가 지휘하는 675고지 관측소에 와보면, 이상한 효력을 발생하였다. 적어도 의사가 건강하다고 보장을 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건강하다……. 의사가 그렇다고 말하였다……. 이런 식의 묘한 자신 속에서 얼마 동안은 실질적으로 편히 지낼 수가 있었다. 시효가 다해 감에 따라서 약효도 떨어지면 그는 다시 멀리 의무중대를 찾아갔다. 그리고는 번번이 언어상의 처방만으로 헛되이 되돌아오곤 하였다. 그러다가 그가 사단 군수처로 전속이 되었다. 군수처에 있게 되자 기술참모인 의무참모와 접촉이 잦아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얼마쯤 친숙하게 된 어느 날 오후, 정례 브리핑이 끝난 다음, 퇴근하던 성중위는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는 의무참모를 발견하였다. 의무참모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왜 안 가고 계세요?”
“차가 달아나 버렸어.”
“전화를,” 성중위는 의무참모 곁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걸어 보시지 그래요, 중대로.”
“방금 출발시켰대.”
의무참모는 줄이지 않은 품 넓은 작업복 상의의 커다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권했다.
“킹 사이즈군요.”
성중위는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풀 위에 주저앉았다.
“오피 하나 주세요, 참모님.”
“뭐? 이 사람이…… 수상하다? 큰일나요. 조심해야지 괜히.”
“아이 참모님, 오바센습니다.”
“아니야, 조심해야 돼요. 특히 총각 장교들.”
“어련할라구요. 장화 신고 들어가는데.”
“장화? 하하하. 그렇지, 그게 제일 안전해. 하하하.”
“그건 그렇구요, 정말 부탁이 하나 있어요.”
“또 무슨 부탁야?”
“후송해야 되겠어요.”
“후송? 건 또 왜?”
“뭐라고 할까요, 꼭 죽을 거 같은 예감이 들어요.”
“하하하, 난 또 무슨 얘기라고.”
“어느 구석엔가,” 성중위는 웃지 않고 계속했다. “죽음이 도사리고 앉아서 내 방비가 약한 틈을 타서 내게 달려들 것만 같아요. 그러니 나는 항상 주의를 게을리 할 수가 없지요. 무심히 지나다가도 문득 긴장합니다. 까닭 모를 긴장을요.”
“노이로제 군.”
“무엇인가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육감에 첫째 잠을 이룰 수가 없어요. 어쩌면 잠을 못 이루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지요. 땅을…… 일정한 면적의 땅을 매일 파보라고 그러드군요. 땅은 안 파봤습니다만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안 와요. 이를테면 서울 외출 나가서 종일 돌아다니고 두어 시간 버스에 시달리면서 돌아와 자리에 누워도, 피곤하긴 솜처럼 피곤한데, 눈은 점점 더 말똥말똥해져요.”
“혼자지요?”
“혼자 있습니다.”
“성곽을 가지시오. 그래서 그 성주가 되어 보시오.”
“결혼 말씀이지요?”
“그렇지요. 월등히 나아질 수가 있어요. 달콤한 육체적 피곤을 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관심올 집중케 할 테니까.”
“그것도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도움도 있겠지만 부담도…… 더 복잡해질 것 같아요, 문제만. 왠지 자꾸 최악의 경우가 떠올라서요.”
“그게 병이오. 너무 심각해지는 것이 탈이란 말요.”
“남 보기에는 우스울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를테면 편지에 우표를 붙이지 않습니까? 딱지에 침을 발라서 붙이면 잘 안 붙는 것 같아요. 사실은 잘 붙었는지도 모릅니다만. 그래서 풀을 칠해서 붙입니다. 그런데도 우체통에 넣고 돌아서서 몇 결음 가면 우표가 붙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며 가슴이 철렁해집니다. 어떤 때는 담배 꽁초를 내팽개치고도 귀중한 물건을 버린 듯한 착각에 후딱 놀라기도 합니다.”
“좀 쉬어야 되겠소.”
“산꼭대기에 있을 때는 좀 나았습니다. 거기선 제가 왕 아닙니까.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먹고 싶을 때 먹었지요. 애들 얼마 안 되는 거 말 잘 듣습니다. 봉급 때 월급 조급 떼어서 술 사면 참 잘 놉니다. 아무리 떠들어도 떠드는 사람 외에는 들을 사람 있습니까? 이튿날 일어나 보면 손바닥이 부어 있어요. 박수장단 치느라고요. 신경도 덜 쓰이고 긴장도 완화되는 거 같았어요. 무섭기야 산꼭대기가 더 무서울 거 아니겠어요? 간첩 남하 통로가 바로 그 줄기 아닙니까? 처음엔 밤에 보초도 안 세웠어요. 이걸 연대 정보수임이 알고는 된통 쿠사리였지요. 무장간첩이 능선을 지나다가 수류탄을 던져 막사 안의 우리들을 전멸시켜 버린다――는 이야기였습니나만 그렇게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이치를 따지자면야 사단 사령부 부근에 있으면서 죽음의 손길을 느낀다는 것보다 거기서 불안해한다는 것이 훨씬 더 있올 법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치는 이치고 기분은 기분인데 어떡합니까?”
“그렇지, 그건. 어디 아픈 데는 없소?”
“아픈데……는 없습니다만 신체상 이상은 있습니다.” 성중위는 담뱃불을 비벼 껐다. 그리고 계속하였다. “귀에서 소리가 납니다.”
“귀에서?”
“귀에서…… 발성기관도 아닌 귀에서 소리가 납니다.”
“티나이투스 증상인 데…….”
의무참모는 성중위를 쳐다보았다. 성중위는 시선을 돌렸다. 사단사령부 측문으로 사분의 일톤 차 한 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차가 옵니다.”
성중위가 말했다.
“심하오, 그게?”
의무참모는 차 오는 쪽을 한번 쳐다보고 물었다.
“여럿이 있을 때는 종종 잊혀져요. 의식된다 하더라도 참을 만합니다. 문제는 혼자 있을 땝니다. 그때도 못 참는 바는 아니지만 자꾸 신경이 그리로 쏠려요. 라디오를 조그맣게 틀어 놓고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차가 장교식당 앞을 맴돌아 방향을 바꾸어 느티나무 앞에서 멎었다. 운전병이 차에서 내려 차 사용자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피면서 말했다.
“7호차로 들어가신 줄 알고 그냥…….”
의무참모는 일어서서 그의 운전병에게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 성중위에게 말했다.
“후송하시오. 후방 병원에 가서 좀 쉬어요.”
성중위도 일어섰다. 의무참모는 차에 올랐다. 운전병은 발동을 걸었다.
“잠깐.” 의무참모는 되돌아보며 말했다. “내일 오피 한 병 갖다 주께.” “감사합니 다.”
성중위는 경례를 했다. 참모는 답례를 하고 몸을 의자등에 기댔다. 차가 미끄러쳐 갔다. 향기로운 휘발유 냄새가 성중위의 코로 스며들었다. 차는 점점 더 빨리 작아져 갔다.
자동차의 전조등은 상당히 밝아져 있었다. 어둠이 짙어 가는 데 반비례해서 앞길을 비추는 불빛은 밝아 갔다. 차의 행렬은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산골의 밤은 빨랐다. 굽이도는 산길 위로 시커먼 괴물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불빛와 긴 깔때기를 밀며 나아갔다. 불빛은 촉수처럼 길을 더듬었다. 뒤차의 불빛에 쫓겨서 앞차에 끌려가는 포는 포신을 흔들며 달아났다. 성중위는 자세를 바꾸어 쿠션에 몸을 기댔다. 피곤했다. 높고 낮은 검은 나무들이 천천히 다가와서 빨리 사라져 갔다. 그는 어디론가 먼 여행을 떠나고 있다고 느껴졌다. 앞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전조등의 제한된 조명으로 길을 찾아 나가고 있었다.
성중위는 의무참모와 이야기가 된 후 얼마쯤 지나서 틈을 내어 의무중대로 군의관을 찾아갔다.
“그렇다면,” 그에게서 대강 이야기를 듣고 난 군의관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후송수속을 밟으십시오.”
후송수속을 밟기 위해서 성중위는 그가 소속해 있는 사단 본부중대 의무지대로 지대장을 찾아갔다. 지대장은 성중위의 얘기를 듣고, 그리고 성중위의 왼쪽 귀를 진찰하고 나서 말했다.
“참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후송상신은 해드립니다.”
군의관은 야전의무표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쳐 놓고 펜에 잉크를 묻힌 다음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물론 사단 의무중대는 벗어나실 겁니다만 야전병원을 빠져나가기는 어렵습니다. 설사 그곳을 빠져 나간다 하더라도 후송병원은 더 까다롭습니다. 거기는 야전군 경계를 벗어나는 거니까요.” 군의관은 잠시 성중위의 표정을 살피다가 계속했다. “여기서 후송은 많이 갑니다. 그러나 보통 군단병원에서 한 일 주 묵다가 빠꾸돼 와요. 그런 헛수고를 뭣 하러 합니까?”
“헛수고를 할 수는 없지요.”
성중위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퀀셋 칸막이 저쪽에서 위생병들이 장기 두는 소리가 들려 왔다.
“어폐 있는 말씀 같습니다만,” 군의관이 침묵을 깨뜨리고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 “정 귀에서 그런 중상이 있으시다면 시설이 좋은 육군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끊어 오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야전병원에나 후송병원에는 시설이나 설비가 불충분해서 군의관이 드러난 증상 외에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가시겠다면 제가 편지를 적어 드리지요. 수도육군병원에 동기생이 있습니다.”
수도육군병원에 있는 지대장의 동기생은 안과 군의관이었다. 쪽지에 의하면 성중위와 지대장은 절친한 사이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계집애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그 안과 군의관은 치과의처럼 친절하였다.
“눈은 혹시 아프지 않으세요?”
“눈은……,” 성중위는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아직 쓸 만합니다.”
“그럼 이비인후과로 가보실까요? 진찰권을 안 끊으셨죠? 아래충 입퇴원과에 가시면 외래진찰권이 있습니다.”
이비인후과는 조용하고 한가한 안과와는 반대로 한창 붐비고 있었다. 입원환자는 보이지 않았으나 외래환자 서너 명이 촙은 치료실에 통로를 피하여 여기저기 우두커니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치료대 위에는 나이 어린 소녀가 앉아서 두려움과 아픔을 얼굴로 표현하고 있었다. 아버지인 듯한 고급장교가 옆에 서서 소녀의 어깨를 붙들고 있었다. 커다란 반사경을 머리에 들처맨 군의관은 혼자 바빠, 치료하다가도 하얀 가운 자락을 펄럭이면서 방안을 오락가락하였다. 의사가 치료대를 떠날 때마다 소녀의 얼굴에는 집행이 연기되었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안과 군의관이 틈을 붙잡아 이비인후과 군의관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넸다. 이비인후과 군의관은 잠시 한쪽에 서 있는 성중위를 바라보더니 그들을 데리고 옆엣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에는 군의관 소령이 앉아 있었다.
“과장님, 히어링 테스트 케이습니다.”
소령은 성중위를 관찰하였다.
“오디오 미터로 안내 하시오.”
성중위를 향해서, 그러나 자기 과 군의관에게 소령이 말했다. 성중위는 조그마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짐차의 운전대 절반쯤 되는 크기의 방이었다. 군의관은 밖에 남아 있었다. 방 안은 온통 구멍 뚫린 흡음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작고 두꺼운 유리창을 통해서 환자와 의사는 연결되고 있었다. 성중위의 귀에는 리시버가 씌워졌다. 손에는 체크 스위치가 쥐어졌다. 성중위는 그때까지 가스실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방음장치된 좁은 밀실은 답답하였다. 군의관들이 유리 저편에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성중위는 좁은 운전대에서 뛰어내렸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차량이동이 아르피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적이 짙어 있었다. 그는 사단 사령부로 가는 사분의 일톤 차에 다시 편승하여 그의 숙소로 돌아왔다. 그의 방은, 물론 텅 비어 있었다. 일 주일 전 아침에 그가 나가면서 한쪽으로 밀어 치워 놓았던 이불이 그대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갑자기 피곤하여졌다. 그는 아무렇게나 이불 위에 쓰러졌다. 추석 지난 달이 늦게 돋아올라 창문을 위로부터 비춰 오고 있었다.
이튿날, 임무교대를 마친 성중위는 의무대로 지대장을 찾아갔다.
“들어오셨군요, 외박 나가셨다더니.”
“아, 예. 며칠 됐습니다. 그 애한테 들러 봤어요, 수도병원에 말입니다.”
“그려셨어요? 도움올 많이 받았습니다.”
“청력 검사를 받으셨다구요?”
“예, 그런대 지원부대가 아니라서 진단서는 발행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 대신 이 의견서를…….”
성중위는 호주머니에서 십육절지 종이쪽을 꺼내 지대장에게 주었다.
“예, 들었습니다. 이거면 될 겁니다.” 지대장은 종이를 펼쳤다. “청력표군요.”
“청력검사를 하고 나서 그걸 사본해 주더군요.”
“여기 나타나 있습니다. 사천 사이클에서 청력이 저하되는군요. 여기 와서 곡선이 갑자기 급강하했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결국 뒤집어 말하면 4KC의 소리가 귀에서 난다는 거지요.”
“예. 수도병 원에서도 대강 그렇게 얘기해 주더군요.”
“입실하세요. 의무중대에서 한 일 주 누워 계시면 특명이 날 겁니다. 이건 잘 간수하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군의관은 종이쪽을 성중위에게 돌려주었다. 영어로 등사된 용지 위에 볼팬으로 도표가 그려졌고, 하단에 역시 영어로 비고란을 군의관의 날인된 의견이 메우고 있는 그 서류를 성중위는 다시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군의관은 야전의무표를 작성하였다. 성중위는 군의관이 묻는 대로 그의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 외에 또,” 군의관이 말했다. “아픈 데는 없으세요? 에, 고막천공이 있었지요……. 이를테면 귀를 심히 앓았다거나? 어렸을 때밖에는 없었다구요? 한 십 년 전이라 해둘까요. 있을 만한 것은 죄다 끌어다 붙여 놓읍시다.”
군의관은 길고 폭이 좁은 용지를 거의 영어로 메웠다. 영국에서는……, 성중위는 생각하였다. 의사들이 무슨 말로 쓸까……. 나전어로 쓴다던가?
2
성중위가 사단 의무중대에 입실한 지 닷새째 되는 날 후송특명이 났다. 입실하자 그는 갑자기 한가해졌다. 채광 안 된 헛간에서 퀴퀴한 냄새를 참아 가며 필요한 물건을 찾다가 집어치우고 활짝 열린 햇볕 속으로 뛰쳐나왔을 때처럼 허전하도록 시원하였다. 우선 얽매여야 할 책임이 없어졌다. 참모의 턱이 움직이는 데 따라 종종결음을 쳐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브리핑 시간의 임박도 없었고 우발적으로 불시에 들이닥치는 호출도 없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삐걱거리는 퀀셋 속으로 기어드는 대신에 거기서 빠져나와 천천히 늦가을의 다사로운 햇볕을 온몸에 받으며 중대 주변을 거닐었다. 중대는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었다. 풀 위에 앉아 있으면 솜 같은 먼지를 일으키며 국도를 달리는 차들이 보였다. 달리는 차들은, 군용차는 군용차대로 버스는 버스대로, 성중위에게 향수를 느끼게 했다. 그것들은 그에게 멀고 가까운 여러 가지 장면들을 가져다 주었다.
거닐다 지치면 퀀셋으로 돌아갔다. 칸을 막지 않은 넓은 병실에서 침대에 누워 그는 책을 읽었다. 방랑 끝에 짐차에 편승하여 ‘앨’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점심시간이 되었고 다시 철조망 근처를 서성거리고 나면 짧아 가는 해는 서쪽으로 비꼈다. 황혼이 오면 허전해졌다. 포기하고 돌아섰을 때 정작 포기한 것의 가능성이 등 뒤에서 손짓하는 듯한 느낌이, 후회 비슷한 느낌이…… 마음을 스쳤다. 사람은 패배를 인정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변명은 항상 마련되어 있으니까. 변명이 고갈될 때 사람은 무너진다. 이 편리한 방패가 깨어지는 일은 드물지만.
위생병이 후송 특명 사본올 가져왔을 때 성중위는 병실에 누워 있었다. ‘앨’은 짐차 운전수와 헤어져서 오래 떠나 있었던 집을 향하여 다가가고 있었다. 후송 특명올 받은 성중위는 의무참모를 찾아갔다. 의무참모는 숙소에서 그 지방의 조류분포도를 만들고 있었다. 널따란 탁자 위에는 반쯤 채색된 모조지가 천지로 펼쳐 있었고 구석에는 물감과 붓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는 그의 출신대학 동창회가 주최한 발표회에서 그의 동 보고가 관심을 끌었다는 점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성중위도 단과대학은 다르나 같은 대학교라는 사부을 발견한
참모는 환호성횰 올렸다. 참모는 유쾌하였다. 자기의 세계를 가직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성중위는 느꼈다.
체구가 좋은 사람에게 혼히 있는 막히지 않은 웃음을 한마탕 웃고 난 다음 참모는 담배를 빼어 물었다.
“그런데,” 담배에 불을 붙여서 한 모굼 빨고는 연기를 위아래로 내뿜으면서 그가 말했다. “특명이 났소? 결재는 어제…… 그제 났는데.”
“예, 조금 전에 받았습니다. 그래서 인사를 드릴려고 왔습니다. 배려해 주신 덕분에…….”
“아, 그랬어요? 출발은…… 언제지요?”
“일변일이 오늘로 되어 있습니다.”
“아하 그래요? 바쁘시겠군요. 그런데…… 저기 가면 일이 좀 더딜 거야. 가만있자, 내가 편지를 하나 써 드리지요, FH원장에게.”
그는 담배를 이빨 사이에 물고 연기를 피하기 위하여 한 눈을 가늘게 뜨고서 간단한 편지를 썼다. 쓰고 나서 그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로 옮겨 쥔 다음 두어 번 눈으로 읽어 보고는 서명하여 성중위에게 주었다. 성중위는 그것을 받아 넣었다. 그러나 그 편지는 수취인에게 전해지지는 않았다.
성중위가 위생병과 함께 제,?야전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일과 끝 삼십 분 전이었다. 무슨 행사가 있었던 모양, 군의관들과 간호장교들이 기념촬영을 끝내고 해산하고 있었다. 수다스런 작별이 이루어지고 딴 데서 온 사람들은 사분의 삼톤 차들에 분승하여 병원을 떠났고 그 병원 사람들은 둘씩 셋씩 짝을 지어 단충의 퀀셋 병동으로 사라져 갔다. 성중위는 병원에 와 있다는 인상을 강렬하게 받았다. 하얀 모자와 하얀 제복을 과시하면서 나이 어린 아가씨들이 명랑하게 지껄이며 지나갔다. 녹색의 작업복들로 가득 찼었던 그의 눈에는 그들이 돋보였다. 하이힐 위로 쪽 곧은 두 다리들이 하얀 옷자락 아래서 생동하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새 사실이었다. “한국에는,” 외국에서 오랜 음악활동을 하다 귀국한 어떤 지휘자의 말이 생각났다. “미인이 많소. 종로 네거리에 가서 십 분만 서 있으면 틀림없이 한 사람은 지나갈 것이오.”
같은 간격에 같은 모양으로 늘어선 같은 크기의 둥근 퀀셋 병실 주위에는 푸른 옷을 입은 환자들이 흩어져 있었다. 창문으로 내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도 역시 구경하고 있었다. 더러는 손잡이가 긴 깡통식기를 들고 식당으로 가기도 했다. 야전삽이라 불리는 강철제의 커다란 수저로 식기를 꽹과리로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성중위는 그의 출현이 필요한 간단한 입원수속을 마친 후 나머지는 사단 위생병에게 맡기고 장교병실이라 일러주는 곳을 찾아갔다. 권셋의 삼분의 일이 칸막이로 막아져서 장교병실을 만들고 있었다. 저쪽은 치과병실이라고 했다. 침대가…… 병상이 일곱 개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야전침대와 포단과 담요, 그리고 하얀 홑이불이 남은 일은 들어가 눕는 것밖에 없는 훌륭한 병상을 제공하고 있었다. 위생병이 그의 모자와 작업복과 군화와……를 빼앗아 조그마한 옷장에 넣고, 푸른 샤쓰와 하얀 바지, 그리고 적십자가 박힌 하얀 고무신을 내주었다. 그는 갑자기 환자가 되었다.
“환자 장교님은 이제 세 분이 되었습니다.”
위생병이 말했다. 위생병은 둘이었다. 성중위는 침대들을 두루 살폈다. 칩상은 모두 새로운 파괴를 기다리고 있었다.
"외츌 나가셨어요, 두 분 다. 오늘쯤 들어오실 것 같습니다만.”
성중위는 아무 데나 걸터앉았다. 사단 위생병이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들어왔다.
“큰일났는데요.” 그가 들어오며 말했다. “피복표를 안 받아 줄려고 그래요. 지난번에 돈을 좀 빌린 쯔이 있는데…… 지금 꼭 갚으라고 그러누만요. 삼백 환인데.”
그는 성중위를 살피면서 주전자에 물을 따라 목을 축였다. 이 녀석이…….
그러나 성중위는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말은 잘해 놨습니다마는.”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나가 버렸다. 성중위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몇 모금 빨고 있을 때 위생병이 다시 들어왔다.
“다 되었습니다.” 그는 시원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그래?”
성중위는 호실 위생병에게 그의 작업복 윗주머니에서 오백 환짜리를 꺼내 오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사단 위생병에게 주었다.
“버스비나 해.”
“아닙니다. 공용완장이면 돼요.”
그는 까만 완장을 바지 뒷호주머니에서 비죽이 내보이며 씨 웃었다.
“지금 중대에 들어가면 저녁밥이 없지 않을까?”
위생병은 머리를 두어 번 긁고 모자를 반듯이 고쳐 썼다. 그러고는 경례를 했다. 성중위는 답례를 했다. 그는 사단으로 돌아가는 위생병의 등을 향하여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잘 가라.”
위생병은 어두워 오는 밖으로 퀀셋을 빠져나갔다. 성중위는 고개를 숙이고 자기의 위아래를 살폈다. 푸른 상의에 하얀 바지,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병원의 첫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는 그의 가방에서 빨간 데에 하얀 띠가 들려 있는 표지를 한 책 한 권과 광석 라디오를 꺼내 머리 맡에 놓고 침대 위에 키대로 누워 버렸다. 철물 퀀셋 안에서는 잡음이 많았다. 안테나를 길게 뽑았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그는 개폐기를 꺼버렸다. 애들은……, 그는 관측소 시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라디오를 굉장히 좋아했었지……. 특히 장병장은. 장병장은 그의 연락병이었다. 누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뉴욕에서 에이피……. 그는 흉내도 곧잘 내었어……. ‘다음’을 ‘돔’이라고 입술을 동글게 하여 흉내내고는 웃었지……. “성중위님이 군수처로 내려가신 다음 전에 있던 윤중위님이 올라오셨어요. 연락병을 김일병으로 바꾸어 놓았더니 저를 부르시어 그동안에 마음이 변했나? 하시던데요.” 케이 비 에스. 여기는…….
그는 다시 개폐기를 넣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들려 오는 라디오 소리로 쏠리지 않았다.
외출 나갔던 환자 중의 한 사람이 들어온 것은 밤이 깊어서였다.
위생병들은 잠자고 있었다. 익숙하게 자기 자리로 찾아가서 환자는 웃을 갈아입고 삐꺽 소리를 내면서 담요 사이로 기어들어가더니 이윽고 잠이 들어 버렸다. 성중위는 돌아누웠다. 침대에서 삐꺽 소리가 났다. 누워 있는 사람의 조그마한 움직임도 침대는 놓치지 않았다. 밤이 깊어 갈수록 낡은 야전침대는 민감해져 갔다.
이튿날 날이 밝자 제50야전병원에 대한 성중위의 첫인상은 수정되었다. 그것은 그가 보았던 것과는 다른 딴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무거운 쇠줄을 늘어뜨리고 정문을 지키고 있는 집총한 위병과 그들의 위병소, 부대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철조망, 그 철조망 밖으로는 아스판트 깔린 국도가 연변의 점점 작아지는 가로수들과 함께 멀리까지 뻗쳐 있었고, 안으로는 쓰레기 무덤과 푸른 옷을 입은 창백한…… 창백한, 머리 깎은 사나이들, 그리고 단조로운 단충의 암갈색 막사들이 떠오르는 태양광선 속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성중위의 머리에는 그것에 대한 잔인한 그러나 적절한 표현이 떠올랐으나 그는 굳이 그것을 소리내어 입 밖으로 발설하려 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푸른 옷을 입고 있었으니까. 푸른 옷들 틈에 섞인 녹색의 작업복은 그 단정하게 죄어 맨 목 높은 워커와 더불어 우선 씩씩하게 보였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독선적이기도 하였다. 복장의 분류는 사람의 분류를, 따라서 사람의 통솔을, 도와 주고 있었다. 그가 그의 병실로 돌아왔을 때, 양동이로 날라온 아침밥이 분배되어 있었다. 늦게 들어온 환자는 아직 자고 있었다. 위생병들이 그를 깨웠다. 그는 대위였다. 대위가 늦게 시작한 그의 아침밥을 끝낸 다음 담배를 피워 물고 침대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을 때 호실 담당 간호장교가 들어왔다. 성중위는 시계를 보았다. 여
덟시 십분이었다. 참모조회를 하고 있겠구나……. 벌써 끝났을까? EE-8 전화기는 열을 올리기 시작하겠지…….
“간수장님, 돌아왔습니다, 약속대로 어젯밤에.”
대위가 말했다. 간수장이라 불리운 간호장교는 노여워하지 않고 웃어 보였다. 소매 짧은 햐얀 제복을 입은 그녀는 가을날 아침 공기가 몸에 차가운 듯 두 어깨를 움츠렸다. 역시 하얀 모자가 나비처럼 뒤통수에 붙어 있었다. 그녀는 중위였다.
“어마, 새로 오셨군요. 어디서 오셨죠?”
중위가 중위에게 물었다.
성중위는 그의 전 소속과 군번 계급 성명을 대었다. 총명하게 생긴 삼각형의 얼굴을 한 문중위는 간호일지를 작성하였다.
그날은 침대 위에 누워서 성중위는 책을 보며 지냈다. 집에 돌아온 ‘앨’이 두들겨 맞춘 커다란 짐차 위에 가구와 가족을 싣고 캘리포니아에의 먼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그가 초진을 받은 것은 그 이튿날, 그러니까 그가 입원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야전병원에는 이비인후과가 없었다. 그는 외과부장 군의관 대위 앞에 불려 갔다.
“십 년 전에 중이염을 앓으셨군요.” 그는 야전의무표를 보면서 말했다. “지금까지 어떻게 근무하셨지요?”
“중이염인지 뭔지 모르나 하여튼 옛날에 앓은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그건 그때 다 치료됐었습니다.”
“그럼 어디가 아프세요? 어디 봅시다.”
그는 성중위의 왼쪽 귀를 들여다보았다.
“이쪽은 이상이 없고…… 저쪽을 봅시다.”
“오른쪽은 더 이상이 없을 겁니다.”
“그래요? 그런데 귀에서 소리가 난다는 말씀이죠?”
“그렇습니다.”
“후송하라고 소리가 납니까?”
“농담할 기분이 아닌데요.”
“그러시겠지요. 농담은 그만둡시다. 진찰도 끝났습니다. 이상 없습니다. 퇴원하십시오.”
“퇴원은,” 성중위는 군의관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다 나은 사람이 하는 거겠지요.”
“나을 것이 없어요, 장교님은.”
“그럼 제가 여기까지 놀러 왔단 말씀입니까? 그리고 나을지 안 나을지를 치료도 안 해보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치료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요.”
“그 단서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병이 없다는 것 아니겠지요?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 성중위는 호주머니에서 청력표를 꺼냈다. “전문의의 진단 결과서 있습니다.”
“군의관이 괜찮다고 하는데 왜 자꾸 그러시지요?”
그는 청력표를 받아서 펴보며 말했다.
“그러나 아픈 것은 군의관이 아니니까요.”
성중위는 군의관을 주시했다. 군의관은 청력 도표를 대강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은 그 아래에 있는 영문으로 된 날인된 군의관의 의견란에서 멎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성중위는 눈을 돌려 창 밖을 내다보았다. 백양나무의 잎들이 하얗게 펄럭이면서 떨어지고 있었다.
“알았습니다.” 군의관이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가 계세요. 그리고 이건 병상일지에 첨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중위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군위관은 성중위를 데리고 온 호실 위생병을 불렀다.
“김상병, 문중위더러 이 장교님 후송 상신하라고 그래.”
성중위가 제17후송병원으루 후송되어 떠난 것은 그로부터 나흘 뒤 오후였다. 장교 병실에서는 그와 그 대위에게 후송특명이 났었다. 특명 사본을 받아 들자 대위는 즉시 행동을 개시하였다.
“여보 성중위, 지금 떠납시다.”
성중위는 팔깍지를 해서 베고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네 시가 다 되었는데요? 내일 갑시다. 날짜도 있는데…….”
“세시 사십…… 칠분인데 뭘 그루? 여기 나가서 버스 타면 삼십 분밖에 안 걸려요.” 그는 벌써 군화 끈을 매고 있었다. “아이 난 진저리가 나서……. 당신은 참 빨리 난 셈이오. 일 주일밖에 안 됐지요? 나는 이 주일 이상을 썩었더니……. 저긴 참 좋습니다.”
“좋긴 뭐가 좋다고 그러세요?” 성중위 대신 위생병이 받았다. “새로 짓는 중이어서 엉성합니다. 기간 사병들은 매일 사역이래요, 일과만 끝나면요.”
“새로 지었으니 좋지이? 이 콘세또에 비해? 야야 그건 그래 봬도 영구건물이다. 장교 병실두요, 부록크 막사 한 채를 다 차지하고 있어요. 침대 수는 많은데 내가 갔을 땐, 그젠가 갔는데, 있는 장교는 십여 명밖에 안 돼요. 갑시다. 여기 있음 뭘 해요?”
“사람이 많아서요, 물건만 잘 없어진대요. 여기서 간 이중위님 가던 날로 시계 잃어버리지 않았어요?”
“어머 그랬대요?”
책상에 엎드려 글올 쓰고 있던 간호장교가 참견하였다.
“그야 자기가 부주의한 탓이지 뭐.”
대위는 구두끈을 다 매고 일어서서 바지를 털었다.
“미리 가면 뮐 합니까? 천천히 갑시다.”
누운 채 성중위가 말했다.
“혼자 어떻게 가요? 같이 갑시다. 아직 시간은 충분해요.”
“어……˙, 그럼 그럭합시다.”
성중위는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았다.
“성중위님은 여기에 정이 드셨나 봐, 그 동안.”
위생병이 말했다.
“그래?”
성중위는 자기 소지품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그랬는지도 모르지……. 그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내 작업복과 군화를 다오.”
이윽고 출발 준비가 다 되었다.
“간수장님, 그 동안 폐 많이 끼쳤습니다.”
대위가 말했다.
“그 동안 규칙을 잘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호장교는 웃어 보였다.
“자, 그럼 안녕히들 계세요.”
성중위는 대위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라디오를,” 남아 있는 사람이 가는 사람을 떠나 보냈다. “잘 간수하세요.”
3
제l7후송병원이라 쓴 부대 간판은 국도에서 이백 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정문을 들어서자 소꿉장난 같은 자그마한 동산이 꾸며져 있었고 그 한쪽에는 각 부서를 가리키는 화살표들이 초행자를 돕고 있었다. 성중위는 입퇴원과를 찾아갔다. 대위는 수속은 내일 밟는다면서 병실 쪽으로 사라졌다.
“이비인후과시군요.”
성중위가 내준 병상일지를 한 장씩 넘기면서 입퇴원과장이 말했다. 그러고는 귀를 보자고 했다. 보고 나서 그는 계속했다.
“입원이 안 될 것 같은데요.”
또 절벽이구나……. 성중위는 생각하였다. 이 녀석에겐 어떻게 귀를 뚫어 준다?
“이비과 군의관에게 가봅시다.”
입퇴원과장은 성중위를 데리고 옆방으로 갔다. 후송병원에는 안과와 이비인후과가 합쳐져 있었다. 안 이비인후과장은 성중위의 귀를 진찰하였다.
“디스차지? 어드밋송?” 입퇴원과장이 이비과 군의관에게 속삭였다.
“디스차지!” 이비인후과장이 대답했다.
입퇴원과창은 성중위를 돌아보았다.
“입원이 안 되겠답니다.”
“50야전에서 여기까지 오는 사이에 병이 다 나은 모양이군요.”
성중위는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거기에는 이비인후과 없어요.”
이비인후과장이 말했다.
“50야전에서 여기까진,” 성중위는 이비인후과장의 참견에는 관계없이 입퇴원과장에게 계속했다. “삼십 분밖에 안 걸리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거기에는 이비인후과 전공 군의관이 없단 말씀에요.”
이비인후과장이 소리를 질렀다.
“거기서 작성 된 병상일지를 보셨습니까?”
성중위가 드디어 이비인후과장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말했다.
“보나마나예요.”
“경솔하시군요.” 성중위가 말했다. “거기에는 특수시설을 사용한 전문의의 진단 결과가 첨부되어 있는데.”
“특수시설요?”
이비인후과장은 입퇴원과장에게 눈짓을 했다. 입퇴원과장은 밖으로 나갔다.
“방음장치된 조그마한 밀실입니다. 수도육군병 원에서…….”
“오디오 미터군. 알고 있어요.”
이비인후과장은 성중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했다.
“아시겠지만, 거기서 수신기를 둘러쓰고 청력검사를 받았습니다. 군의관은 밖에서…….”
“글쎄 알고 있대두요.”
이비인후과장은 다시 성중위의 말을 방해했다. 입퇴원과장이 성중위의 병상일지를 가지고 왔다. 이비인후과장은 단번에 청력표를 찾아서 펼쳤다.
“사천 싸이클에서 청력이……. 잘 아시겠지만.”
성중위가 말했다. 이비인후과장은 성중위를 노려보았다.
“나는 전공이 달라서,” 입퇴원과장이 막연히 말했다. “보았자 눈이 발바닥이 야.”
그러고는 성중위를 향해서 설명하였다.
“이분은 수도병원에서 일루 오신 지 얼마 안 됩니다. 거기 이비인후과에 오래 계셨지요.”
“이중위가 테스트했군.”
이비인후과장이 병상일지를 덮으면서 말했다. 그는 그것을 입퇴원과장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어도밋숑,”
입원수속을 마친 성중위는 장교 병실로 향했다. 병원은 시설을 확장중에 있었다. 새로 지은 블록 독립 건물들 중 하나가 장교 병실이었다. 새 건물들은 모두 같은 크기에 같은 모양이었고 서로의 간격도 일정하였다. 한편에는 기초공사가 진행 중에 있었다. 파헤쳐진 구덩의 크기는 같은 건물이 세워질 것을 예상케 했다. 난민 정착용 집단주택들 중의 임의의 하나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으로 성중위는 장교 병실에 들어섰다. 건물 한 채가 방 하나를 만들고 있었다. 들어선 문 저쪽 끝에는 같은 모양의 문이 또 있었고 양쪽에는 낮고 큰 창문이 대칭을 이루면서 나 있었다. 그 아래 야전침대의 병상들이 두 줄로 가운데에 복도를 만들면서 배열되어 있었다. 우선 그를 당혹케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었다. 조용히 누워 있는 대신에 군데군데 바둑과 장기판을 벌이고 거기에 요란한 훈수까지 곁들여 있었다. 더욱 요란하게 보인 것은 사람들이 일정한 환자복을 입지 않고 각기 제멋대로의 가지각색 잠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성중위는 피로를 느꼈다. 위생병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방안을 살폈다. 한쪽 끝에서 같이 온 대위가 그를 손짓해 불렀다. 그는 성중위를 위해서 자리를 잡아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입원은 되었수?”
“예. 수속 다 마쳤습니다.”
성중위는 대강 자리를 정리한 다음 구두도 벗지 않고 침대 위에 누워 버렸다. 그의 사십여 일간의 후송병원 생활이 시작된 것이었다.
입원한 지 며칠 후 그는 초진을 받기 위해서 다시 이비인후과장 앞에 섰다. 군의관 옆에는 책상을 나란히하여 가냘프게 생긴 간호장교가 앉아서 백지에 싼 소설을 책상 서랍에 감추어 읽고 있었다. 군의관은 병상일지를 기록하였다.
“그런 중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지요?”
“한 이 년 되는 거 같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할 수 없소?”
“그때가 중동부전선에 있었을 때니까…… 이십 개월쯤 됩니다.”
“이십 개월. 어떻게 시작되었지요?”
“총을 쏜 다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구경 .45권총 말입니다. 세 박스를, 그러니까 백오십 발을 선 자리에서 다 쏘아 없앴지요. 총열의 과열도 생각지 않고 그냥 쏘아 댔습니다. 무엇이 있었냐구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먹고 버린 빈 깡통이 하나 뒹굴고 있었지요. 그리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밖에는,”
빈 깡통을 본 순간, 그는 그것을 없애 버리고 싶었었다. 버려져서 뒹구는 빈 깡통이었다. 그는 그것을 향해서 연방 탄창을 갈아 끼우며 방아쇠를 당겼었다. 탄환이 떨어지고 어깨가 무거워지며 피로가 온몸을 습격해 왔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후련해져 있었다.
“그때부터 계속해서 소리가 났습니까?”
격발반동은 쾌감을 주었다. 충격이 어깨에 전해질 때마다 쾌감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상쾌한 고통이 폭음과 더불어 짜릿하게 전신은 파고들었다. 격발할 때마다 총구와 깡통은 동시에 튀어올랐다. 격발은 반복되었다. 쾌감도 따라 올랐다. 탄환이 떨어지자 격발은 그쳤다. 갑자기 피로하여졌다. 빈 깡통은 보기 흉하게 이지러져 있었다.
“그때부터 소리가 계속해서 났느냔 말이에요.”
군의관이 소리를 높여서 재차 물었다.
“그렇습니다.” 성중위는 자기의 시선이 상대방에게가 아니라 그 너머 약장 위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약장 위의 약병들을 보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때부터 죽……. 처음에 귀가 먹먹하도록 소리가 났습니다만 사격 뒤에 으레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대수롭잖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소리는 이삼 일 사이에 훨씬 작아졌지만 그치지는 않았어요. 그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종의 신경외상입니다. 포병장교에게 많지요.”
군의관은 병상일지를 덮었다. 그리고 계속하였다.
“적당한 치료법이 없어요. 약물도 별로 없고……. 오디날이란 약이 시장에 나와 있긴 한데 별루 신통하진 못해요.”
“수도병원에서 진찰이 끝난 다음, 간단한 치료를 받았습니다만.”
“어떻게 해줍디까?”
“귀로 바람을 넣어서 코로 빼는…….
“통풍치료요? 그것도 자신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별 도리가 없으면 그거라도 받아 보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한 이삼 개월 계속하면 나아질는지도 모른다고 말씀하시던데, 거기서.”
“그야 그렇지요. 안 받는 거보다 받는 게 낫지요. 뿐만 아니라 수도병원이 시설이 젤 나아요. 오디오 미터도 부속병원과 수도병원에밖에 없습니다.”
“그리로 후송 보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쎄, 이 청력표 의견란에도,” 군의관은 병상일지에 첨부된 청력표를 펼쳤다. “특별치료를 위해서 수도육군병원에 후송입원하라고 되어 있는데……. 이 의견과 여기서의 후송 방향과는 별 문젭니다.”
“수도병원으로 입원해서 특별치료를 꼭 받아 보라고 말씀하시던데.”
“여기서 수도로 못 갑니다. 응급환자 외에는. 위궤양으로 위가 터진 환자 같으면 야전병원에서도 수도로 헤리콥타 후송을 합니다만.”
“그럼 어느 병원이 그 담으로 시설이 좋습니까?”
“그 외엔 다 비슷비슷하지요. 대구가 좀 낫다고 그러지만.”
“그러면…… 어느 병원으로 가야 수도로 후송이 될 수 있습니까?”
“여기를 벗어나면 수도로 가기는 더욱 어렵지요. 수도가 이비인후과 시설이 좋다는 이야기지 일반적으로 보면 명칭은 육군병원이지만 후송병원 비슷해요. 거기서도 후방 육군병원으로 많이 후송 보내고 있습니다. 거기는 병상 수가 적어서 항상 환자가 넘치니까요. 그런데 후방 육군병원에서 그리로 후송이 되겠어요?”
“갈려면 여기서 가야 되겠군요.”
“그렇지요. 그런데 여기선 그리로 보내 드릴 수 없다 그 말씀이에요.”
“……”
“그리고 어디로 후송 가느냐 하는 문제보다 후송이 되느냐 하는 것부터 생각해 봐야죠.”
“후송이 되느냐, 라뇨? 입원 환자에게 적당한 치료방책이 없으면 후송시키는 거 아닙니까?”
“입원은 내가 시켰지만 후송은 내가 안 시켜요. 후송심사위원회라는 것이 있어요. 군사령부 의무참모부에서도 나오지요. 그리고 개인 후송도 없어요. 다 집단 후송입니다.”
“그렇지만 담당 군의관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겠어요? 거의 결정적일 텐데요?”
“물론 그렇지요. 그러나 보장은 못 한다 그 말씀에요.”
군의관은 성중위의 병상일지를 서랍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딴 환자들의 것을 한 묶음 책상 위에 내놓으며 덧붙였다.
“자, 이걸 언제 다 본다!”
성중위는 병실로 돌아갔다. 병실은 이미 낯설지 않았다. 빈 벌판에 천막을 치고 풀을 깔고 그 위에서 지내는 야영도 며칠 밤을 자고 나면 아늑한 곳이 되지 않았던가. 아무리 허술해도 성곽은 성곽이었다. 대위는 작업복을 입은 채 침대 위에 비스듬하게 누워서 방송을 틀어놓고 야구 중계를 듣고 있었다. 그는 성중위의 노여운 낯빛을 살피면서 초진 결과를 물었다. 성중위는 대강 이야기해 주었다. 듣고 나서 대위는 충고했다.
“약을 써요, 약올. 나두 50야전에서 일로 넘어올 때 바이스로이 한 보루 썼지 않았수?”
“그래요? 환자가 되레 의사에게 약을 쓴단 말씀이지요?”
성중위는 생각하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의사라고 다 건강한 건 아닐 테니까…….
“써봐요. 생각했던 것보다 빠를 테니까, 효과가.”
“그럴 기분이 안 나요. 까짓거 내버려두면 어때요. 지 알아서 하겠지요.”
성중위는 내뱉듯 말하고 침대 위에 길게 누워 버렸다.
대위는―― 50에서 성중위와 같이 온 장대위는 곧잘 서울에 나갔다. 밤에 나가서 며칠씩 묵어 오곤 하였다. 성중위는 방송을 자꾸 틀었다. 기대를 가지고, 그러나 실망을 거의 예감하면서 개폐기를 넣곤 하였다. 그의 예감은 대개 들어맞았다. 보도원은 말을 좋아하였다. 뒤늦은 유행가 하나를 들려 주고는 문학소녀 같은 넋두리를 늘어놓곤 하였다. 가슴에 맺힌 것을 풀어헤치면서 육박해 오는 놀라운 관현악이 들려오면, 반드시 그에 값하는 군소리가 뒤따랐다. 대화가 번거로워지고 말마저 귀찮아져서 생각조차 하기 싫어질 때 돌부처가 되지 않는 방법은 음악에 있었다. 음악은 강요함이 없이 언어 이상의 것을 말하여 주었다. 직관은, 불완전하고 오해의 가능성이 많았으나 그만큼 신졍의 소모가 적었고 편리하였다. 음악을 들으면서 제멋대로의 상상을 하고 있을 때, 한정된 영상을 강요하며 참섭해 오는 언어는 질색이었다. 그럴 때면 그는 방송기기를 발길로 차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개폐기를 꺼버리곤 하였다. 차라리 침묵을 택하자는 것이었다. 침묵은 금은 아니었으나 언어보다 즐겼다. 그는 침대 위에 번듯이 누워서 천장에 배열된 합판을 헤아렸다.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또는 하나씩 또는 둘씩, 가능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합판의 수를 헤아렸다. 헤아리다 지치면 책을 읽었다. ‘앨’은 그의 가족과 함께 ‘오키’가 되어 캘리포니아의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한국의 유명한 가을 하늘이 높고 맑게 갠 어느 날 오후 드디어 ‘앨’은 죽었다. 성중위는 책올 덮어 가방 속에 집어넣고 침대에 걸터앉아 창 밖을 내다보았다. 마주 서 있는 저쪽 병실도, 어슬렁거리는 푸른 옷의 환자도, 경쾌한 하얀 옷의 간호부토, 그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번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도 백운대는 멀리서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활엽수 넓은 잎에 고착된 태양광선이 찬란하게 작열하고 있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그는 ‘앨’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앉아 있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무엇인가가 그를 늘러 오고 있었다. 그는 일어섰다. 새삼스럽게 생각이 난 듯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 군화 끈을 매었다. 한 칸씩 한 칸씩 정확하게 매어 나갔다.
국도 건너편 멀지 않은 곳에 도봉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었다. 성중위는 거기를 향해서 걸었다. 지프차가 달려오고 그 뒤에 숨어서 새까맣고 납작한 고급승용차가 소리 없이 다가왔다. 군용 짐차는 소리를 내면서 질주해 갔다. 선명한 색체로 채색된 버스가 머리를 내밀면서 나타나서 거대한 차체를 끌고 둔중하게 달렸다. 성중위는 도봉산 입구께로 접어들었다. 차량은 계속해서 달려오고 달려갔다. 그 중에서 그의 주의를 끈 것은 버스를 앞질러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작은 짐차 한 대였다. 그것은 역학적 균형이 잘 잡힌 중심이 낮은 신형 미군 사분의 삼톤 차였다. 성중위 옆을 지나 때 운전대 옆에 앉은 흑인 병사가 손을 창 밖으로 내어 흔들면서 하얀 이빨을 드러내 놓고 웃었다. 차는 빨리 작아져 갔다. 성중위는 움직이지 않고 선 자리에 서서 사라져 가는 차의 꽁무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차는 마침내 나지막한 언덕 너머로 자지러져 갔다.
성중위는 17번 도로의 험한 내리막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나는 첫여름이었다. 등뒤에는 내리막을 달리는 가벼운 원동기 소리가 멀리서 들려 왔다. 그는 길가에 비켜서서 차를 기다렸다. 편승해 가자는 심산에서였다. 차가 산모퉁이를 돌자 원동기 소리는 갑자기 커졌다. 차는 작은 짐차였다. 그것은 속력껏 달려오고 있었다. 성중위는 손을 쳐들었다. 그러나 차는 속력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운전대 옆에 앉은 중위가 손을 가로저어 거절했다. 차는 바람 소리를 내며 성중위를 지나쳤다. 그때 성중위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때부터 내리막이 끝나고 굽굽이가 있는 산모퉁이로 차가 자취를 감출 때까지는 기껏 십 초 이내였다. 그 동안 성중위가 마음속으로 무엇이라 말하였을까. 그것은 성중위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차가 굽이를 돌아서 사라진 것과 거의 동시에 하얀 먼지가 둥글게 푹 솟아올랐을 때는 성중위는 십 초와 십 분의 구별도 할 수 없었다. 전신에 긴장을 느끼면서 그는 모퉁이를 돌아섰다. 그리고 보았다, 그 속력에 그 정지를 차는 네 다리를 하늘로 뻗고 있었다. 자동차의 네 바퀴가 허공에 떠 있는 것은 충격적인 풍경이었다. 어디선가 신음 소리가 났다. 우거진 풀숲 속에서였다. 부상한 사병이 신음하는 중위를 업고 기 어나왔다. 누워 있는 차가 가리키는 방향에서 미군의 작은 짐차가 달려왔다. 성중위는 그 살아 있는 차를 세웠다. 미군은 사태를 간파하고 측시 차를 돌렸다. 그리고는 그들을 싣고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맨 처음 적십자가 눈에 띈 집 속으로 그들은 운반되었다. 운전대 옆에 앉아 있었던 중위가 제일 중태였다. 민간인 의사는 중위의 작업복 소맷자락을 어깨에까지 가위로 베었다. 중위는 소리쳐 아픔을 호소했다. 성중위는 그것을 보고, 아니 듣고 있었다. “아아 아 아.”
그 소리는 성중위가 연대 본부에 가는 도중에도 그치지 않았다. 성중위는 그것을 강력히 부인했다. 그는 소리 없이 외쳤다. 그때 나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더구나 그것을 바라지는 더욱 아니하였다……. 절대, 절대 바라지는 않았었다……. 다만 내리막에서 저렇게 속력을 내다간 위험하지 않을까, 라고만 생각하였었다……. 다만 위험하다고 생각했었을 뿐이다……. 위험하다고만……. 사실 위험 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달리고서 사고가 안 날 수 있었겠는가……. 사고가…… 사고가 말이다……. 그는 열심히 주장하였다. 주장하고 보니 설복된 듯도 하였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은 허전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 허전함이 정통으로 찔리었다. 연대 작전과에 돌아와서 그가 그 사고 얘기를 대강 했을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사병이 무심코 지껄인 한마디는 그의 아픈 데를 바로 때렸다.
“성중위님을 안 태워 줘서 그랬어요, 그 새끼들.”
사병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성중위는 웃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고의 현장을 목격해 왔었다. 폭발사고는 교통사고보다 더 참혹했었다. 그러나 그가 보아 온 어떤 사고도 이번 것만큼 충격적인 것은 없었다. 그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속도와 정지의 결정적 대조도 있었고, 그 차에 편승했을 경우를 상상하는 데서 오는 사고자들과의 동일시 의식도 있었다. 마치 죽음이 그를 스치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례적인 충격의 원인이 그뿐이었을까? 그는 그들을 저주하였었는지도 몰랐다. ‘자식들, 꼬라박아 버려라!’ 그렇다면 그의 저주는 너무 빨리, 너무 선명히, 그리고 너무 비참히 실현된 셈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살쾡이를 돌로 맞혀 죽인 일이 있었다. 돌을 던진 것은 맞히기 위해서였지만 그의 돌에 날쌘 살쾡이가 맞아서 더구나 죽으리라고는 거의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살쾡이는 거짓말처럼 픽 쓰러졌다. 그리고 네 다리를 뻗었다. 어린 그는 놀랐었다. 두 손을 가슴 위에 웅크리고 선 자리에서 무서움에 떨었다. 그는 그곳을 도망쳐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엄마는 그를 꾸짖었다. 그는 울었다. 엄마는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꾸지람을 듣고 나자 그의 무서움은 적이 풀렸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그를 꾸짖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는 그와 그 사고 사이에 보다 더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그러나 분명치 않았다. 분명한 것은 다만 귀에 박힌, 소리치는 신음 소리뿐이었다. “아아 아 아―” 죽음이 그를 스쳐갔다……. 스쳐서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를 향해서 쏜 화살이 엉뚱하게도 무고한 사람의 가슴…… 가슴 위에……. 아아 아 아一.
도봉산 산보에서 돌아왔을 때 성중위는 술에 젖어 있었다. 날은 이미 저문 다음이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넌 어떻게 마실수록 얼굴이 창백해져? 얼굴빛 가지고는 네가 취했는지 안 취했는지 알 수가 없단 말야. 그러나 난 금방 알아낼 수가 있지. 취하기만 하면 넌 곧잘 히죽히죽 웃으니까 말야.”
‘코페르니쿠스’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녀석은 첫 잔에 얼굴이 빨개졌지……. 코부터 말야……. 정말 그 녀석은 코빼르니쿠스였어……. 그는 웃었다. 병원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을 배경으로 시커먼 건물들의 윤곽이 뚜렷이 드러났다. 모든 풍경은 새로워 보였다. 거울을 통해서 거꾸로 볼 때처럼 같은 세계가 또 하나의 다른 세계로 나타났다. 그의 수정체는 채색되어 있었다. 그것은 편리한 채색이었다. 각도를 달리해서 볼 때완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보이는 대로 보는 대신에 보고 싶은 대로 볼 수 있었다. 보았던 것을 안 볼 수도 있었고 안 보았던 것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풍경화가 더 진실에 가까웠는지 말하기 어려웠다. 이쪽 수정체가 술에 젖어 있다면 저쪽 렌즈는 습관에 물들어 있었으니까. 하나의 풍경에 두 개의 풍경화……. 성중위는 드문 풍경화를 보고 있었다. 하늘이 기울고 지평선도 따라서 기울었다. 확실히 지구는 움직이고 있었다. ……네 나이 몇 살이냐, 대답해요, 사알짝 대답해요……. 아이 답답해 답답해 저엉말 답답해……. 도라 도라지, 도라 도라지, 도라도라 도라지 산도라지가…… 나는 나는 조오아요오……. 그는 흥얼거리며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에는 불이 저쪽 끝에 하나만 켜져 있었다. 긴 병실, 불빛이 희미해진 곳에 그는 서서 병실 안을 관망하였다. 그것은 선실이었다. 하루의 긴 항해가 끝나고 피곤한 선원들이 그들의 그물 침대 속에 혹은 엎드려 고향에 편지를 쓰고, 혹은 누워 아내의 사진을 꺼내 보고 있었다. 성중위는 그의 병상 위에 걸쳐 앉았다. 반은 밝았고 반은 어두웠다. ‘앨’이 들어있는 그의 가방이 침대와 침대 사이에서 희끄무레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방에 붙은 하얀 쇠붙이는 차갑게 반짝였다. 그것은 관 모서리에 달린 백동 장식이었다. 그리고 그 관 속에는 ‘앨’이 잠들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4
성중위가 후송된 것은 그로부터 이 주일 후였다. 후송되기 전날까지도 그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장대위에게서 후송심사가 있다는 귀띔을 받고 그는 그의 담당 군의관을 찾아갔다. 이비인후과장은 모른다고 잡아떼었다.
“언제쯤 있을지도 모르시겠어요?”
“글쎄 잘 모르겠단 말씀에요.”
“당분간 없다면 휴가나 좀 갔다 왔으면 합니다만.”
성중위는 유도작전을 썼다.
“휴가요? 건 알아서 하세요. 그러나 난 책임 못 져요. 언제 후송심사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성중위는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물러 나와 버렸다. 후송심사는 그때 진행되고 있었다. 성중위는 불려가지 않았다. 그러나 후송자 명단이 발표되었을 때 거기에는 그의 이름도 끼어 있었다. 그는 서류심사로 통과된 모양이었다. 포화상태에 이른 환자들은 후방 각지의 육군병원으로 분산되어 특명이 났다. 성중위는 부산으로 났다.
환자들은 십칠시 이전에 저녁을 먹어 치우고 각자의 소지품을 가지각색으로 꾸렸다. 지구 적십자 지사에서 나와 크고 맛 없는 빵이 셋씩 들어 있는 봉지를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사분의 삼톤 구급차들과 이와 이분의 일톤 짐차들이 연병장에 집결하였다. 열 대 미만의 차량들은 환자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십팔시에 병원을 출발하였다. 낙엽이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성중위는 비좁은 구급차에 쭈그리고 앉아서 뒤로 사라져 가는 계절의 잔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물어 가는 계절의 저물어 가는 날이 포도 위로 깔려 오고 있었다.
차량 이동 십 분에 그들은 기차역까지 이르렀다. 기차는 이십시에 도착 예정 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기열차가 아니었다. 각 후송병원을 거치면서 열차 후송환자들을 주워 싣고 후방 육군병원을 순방하는 후 송열차였다. 17병원은 그 기차가 방문하는 마지막 후송병원이었다. 한적한 시골의 간이역은 때 아닌 인구 증가로 붐비었다. 환자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양지를 찾아서 기차를 기다렸다. 그들을 싣고 왔던 차량들의 마지막 차가 먼지를 뒤로 남기고 사라져 갔다. 해는 서산에 떨어지고 있었다. 허술한 역사 안에서 전화통이 울었다. 기차가 × ×역을 방금 출발했다는 전달이 왔다. 그리고 도착이 예정보다 늦으리라는 결론도 나왔다. 성중위는 딴 보행환자들과 함께 역 앞 대폿집으로 갔다.
날은 어두워 갔고 또 쌀쌀해져 갔다. 탁한 술기운이 뱃속을 뜨뜻이 하면서 얼굴로 퍼져 올랐다. 성중위는 자신의 뺨을 의식할 수 있었다. 마치 뺨의 피부가 자기와는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굴을 스치는 찬 공기가 상쾌하였다. 그는 낮은 판자 울타리에 비스듬히 기대 서서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웃고 있었다.
길고 긴 병원열차가 도착한 것은 이십일시 이십분에였다. 옆구리에 적십자를 한 하얀 열차였다. 그러나 성중위는 타고 나서 실망하였다. 침대칸은 만원이었고 남은 것은 딱딱한 의자칸뿐이었다. 환자들은 쌀쌀한 밤공기에 난방장치를 아쉬워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한 의자에 같이 앉으려 하지 않았다. 대개가 의자 하나에 한 사람씩 앉아서 어두운 창 밖을 내다보았다. 찻간은 텅 빈 듯하였다. 위생병과 수송 하사관이 오락가락할 뿐, 차 안은 조용하였다. 조용히 그들은 차가 떠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십이시가 되자 기차는 출발하였다. 서로 다른 많은 환자들을 싣고 기차는 새로운, 그러나 단순한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향하여 캄캄한 간이역을 떠나 어둠 속을 달렸다.
(『강』, 문학과지성사, 1987. 1995년 부분 수정)
2016년 5월 6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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