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마음… 피란지에 울려퍼졌네
안해의 노래 1948 김백희,김다인 작사, 손목인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_EczpvajIwk
당신이 가신길은 가시밭 골짜기오나
기어코 가신다면 내 어이 살으리까
가신 뒤에 내 갈 곳도 님의 길이요
까마귀가 울어도 떨리는 가슴 속엔
피눈물이 흐릅니다 피눈물이 흐릅니다
가신단 그때 종은 꿈 속에 울었나이다
이 몸은 죽어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넋이야 있든 없든 님 향한 마음
이 세상이 휘돌아 떨리는 가슴속엔
잊을 길이 있으리까 잊을 길이 있으리까
아내의 노래 모음곡 - 김백희 첫취입 SP(1948년), 심연옥 첫취입 SP(1952년),
https://www.youtube.com/watch?v=do_cL-xJwKc
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마음… 피란지에 울려퍼졌네
국방일보
기사입력 2020. 04. 24 17:03 최종수정 2020. 04. 26 08:19
아내의 노래 - 작사 유호·작곡 손목인·노래 심연옥
1949년 발표, 방송 전속 가수 김백희가 부른 대중가요
국군 초창기 소집된 군인들 아내·어머니들 위로하다
정전협정 후 개사… 인기가수 심연옥 노래로 다시 제작
<아내의 노래>는 원한 맺힌 38선이 낳은 곡이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949년 발표된, 김백희가 부른 대중가요인데 1951년 심연옥이 재취입해 전쟁 중 피란지에 울려 퍼진다.
1926년 11월 서울 중구 정동에 설립된 경성방송국(JODK)은 한국 최초의 방송국이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의 광복과 함께 JODK 시대는 끝났다. 같은 해 9월 경성방송국은 서울중앙방송국으로 개칭하고 기구를 개편했다. 이것이 국영방송의 시발점이 됐다. 그 후 여러 차례 명칭 변경을 거쳐 현재 KBS(Korean Broadcasting System:한국방송공사)로 이어졌다.
정부에서는 1947년 HLKA(KBS)방송국에 방송경음악단을 조직하고 방송가요를 만들었다. 광복과 더불어 일본제국주의 문화를 불식하고 민족주체성을 강조할 수 있는 새 노래를 보급하기 위해서였다. 이어서 국방경비대가 조직됐고, 1948년 정부 수립과 동시에 국군이 창설됐다. 이즈음 초창기 국군에 소집된 군인들의 아내와 어머니를 위무한 노래가 이 곡이다.
6·25전쟁 이전 국군은 서해안에 육군본부 직할대 17연대, 문산 지역에 1사단, 의정부 지역에 7사단, 춘천 지역에 6사단, 동해안 지역에 8사단을 배치해 북한군과 대치했다. 후방에는 서울과 대전·대구에 각각 1개 사단씩(2·3·5사단)이 배비돼 있었다. 이 무렵 38선에서는 작은 충돌이 잦았는데, 당시 38선 접경지역 전투의 대표 사례가 육탄십용사 전투다. 개성 송악산 295고지를 중심으로 한 비둘기고지와 유엔고지 전투였다. 이 노래는 이때 군인의 아내로서 남편을 싸움터로 보내고 후방에서 굳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국민 홍보 방송가요였다.
이런 방송가요는 전속 가수들의 노래로 정기방송 시간을 통해 전파를 탔다. KBS는 방송가요 모음으로 레코드도 제작했으며 그때 이 곡을 최초로 취입한 사람은 방송 전속 가수 김백희였다. 1950년 6·25전쟁 때 많이 불렸고,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환도(정부 1953.8.15, 국회 1953.9.16)한 직후 인기 가수 심연옥의 노래로 다시 레코드가 제작됐는데, 이로 인해 가요계에서는 이 노래가 심연옥의 노래라고 알려졌다.
당시 22세였던 심연옥은 1929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1947년 주한 미군정청 산하에 미군부대 위문공연을 주목적으로 설립한 KPK악단(단장 김해송)에서 활동했으며, 6·25전쟁 당시 대구로 피난해 오리엔트레코드에서 금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 김백희 노래의 <안해의 노래>를 유호가 개사한 <아내의 노래>로 취입했다. 또 1952년 손로원 작사 최병호 작곡의 <한강>을 취입했고, 반야월이 불로초라는 필명으로 작사해 1954년에 발표한 <야래향>을 불렀다. 1950년대 백년설과 결혼, 197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그 시절 방송국의 전속 가수들은 월급쟁이였다. 지금과 달리 음원 저작권 제도가 없던 시절이다. 그래서 노래를 한 곡 부르거나 열 곡을 부르거나 급여는 같았다. 행사에 출연해 2~3곡 부르고 큰돈을 받는 요즈음과 비교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작사가 유호, 일명 호동아는 본명이 유해준이다. 유호는 맑은 호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1921년 황해도 해주 출생인데, 군수와 부지사를 지낸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와서 계동에 50칸이 넘는 집을 짓고 살았으며, 양조장과 금광 경영으로 집안이 윤택했다. 일본제국미술학교 도안과를 수료하고 동양극장 미술부와 문예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창작력이 뛰어나 1945년 KBS 편성과로 옮긴 후 라디오 작가로 데뷔했고, 국내 최초의 낭독소설 ‘기다리는 마음’을 집필했다. 1949년에는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로 입사했고, 전쟁 중에는 육군본부 정훈국에서 근무했으며, 1954년 경향신문사로 돌아와서 문화부장을 지냈다.
작곡가 손목인은 1913년 진주에서 출생했으며, 본명은 손득렬이다. 한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서울로 와서 재동초등학교와 경신고보를 졸업했고, 학창 시절 기독교 청년연맹에서 서양음악을 접했다.
이후 일본 도쿄고등음악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돌아와 처음으로 만든 노래가 고복수의 <타향살이>였으며, 이듬해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을 작곡했다. 이후 <짝사랑> <해조곡> <아내의 노래> <아빠의 청춘> 등을 히트시켰고, 김정구·남인수·박단마 등을 길러냈다.
1965년 월남 파병 당시 아들 프랭키 손과 같이 월남 위문공연을 갔다가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한국·미국·일본을 왕래했으며 1999년 11월 부인 오정심과 함께 일본에 갔다가 택시 안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86세.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지키는 일은 가장 명예로운 일이다. 군인에게 군번은 또 하나의 ‘나’다. 군인으로서의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다. <아내의 노래> 속 아내들은 군번 있는 사람들의 명예로운 안사람들이다.
유차영 한국콜마홀딩스 전무/예비역 육군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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