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앗싸움
얼마 전 30대 계모가 전처소생의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한 후, 시체를 드럼통에 넣고 불태우는 끔직한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경악케 하였다. 사건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으나 계모와 전처의 자식이라는 점에서 행여 “시앗싸움”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앗”이란 남편의 첩을 말하는 명사이다.
고대(古代)에도 시앗싸움은 처절하기 짝이 없었는데,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피비린내 나는 시앗싸움은 아마도 한고조(漢高祖)의 부인 “여태후(呂太后)”가 저지른 일이 아니었을까?
사마천이 쓴 《史記》 『여태후본기(呂太后本記)』에 인체(人彘; 인간돼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소개해 보고자한다.
한고조(漢高祖; BC 206~ BC 195, 재위 12년) 유방(劉邦)은 조강지처 “여씨(呂氏)”가 있어 아들 <영(盈);후에 孝惠帝> 하나와 노원공주를 낳았다. 그리고 또 다른 부인 “척씨(戚氏)”에게서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이 후실의 아들이 “여의(如意)”이다.
“여씨”는 이팔청춘에 무명의 청년 유방과 결혼하여 유방이 대업을 성취하는데 온갖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천하통일만 되면 국모(國母)로서 황후가 되어 남편 유방과 더불어 여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굳게 믿으며......,
그러나 막상 천하통일이 되고 보니, 유방은 “여씨”에게 “황후”라는 칭호 하나만 남겨주고 하룻밤도 애정을 주지 않고 오로지 젊고 어여쁜 꽃다운 “척씨‘에게만 온갖 애정을 쏟았다.
그리고 척씨부인은 자기 아들인 “여의(如意)”를 태자로 만들기 위하여 유방에게 갖은 교태를 부리고 황후 자리마저 빼앗으려 책동을 하였다.
이렇게 되다보니 “여황후”와 “척씨부인”은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지간이 되었다. 그러다 남편 유방이 죽자 두 사람의 감정싸움은 극에 치달았다. “여황후”는 척씨를 옥에 가두고 그의 아들 ”여의’를 독주(毒酒)를 마시게 하여 죽이니 그의 나이 13세이었다.
“여의”를 죽인후 “여황후”는 “척씨부인”을 옥에서 끌어내어 손과 발을 모두 자르고, 눈을 파내버리고, 코를 잘라내고, 귀에는 뜨거운 김을 쏘이게 하여 귀를 먹게 하고, 약을 먹여 벙어리로 만들어 측간(변소)에 처박아놓고 『인체(人彘; 인간돼지)』라 부르게 하였다. 손과 발이 모두 잘려버렸으니 죽어 버리고 싶어도 죽을 자유마저 없는 비참한 “인간돼지”의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몇 년 후 아들 효혜제가 죽자 온 천하를 손에 쥔 “여황후”는 마지막으로 척씨부인을 처단하니, 사지(四肢)에 수레(車)를 매어 네 조각으로 찢어 죽인다.
참으로 잔혹하고도 끔직한 “시앗싸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