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씨의 '감기유감'은 평범한 일상적 소재 속에서 삶의 철학적 진실을 탐구하는 데 탁월한 인식과 감성을 보여주었다. 다소 호흡이 완만하다는 느낌이 있으나 그의 깊은 상상력이 이를 충분히 이끌고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전체적으로 투고 작품들은 미학적 조형성, 통합된 감수성, 표현의 절제성, 사상성 같은 것이 부족했다. 특히 관념적인 진술, 사변적인 토로, 해체된 자아의 불건강한 묘사는 최근 신인들을 중심으로 유행되고 있는 우리 문단의 시류성을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만들었다. 신인은 기성시단에 새로운 비전을 열어주는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당선시 : 감기 유감
정덕재 : 1966 충남 부여 출생, 배재대 국문과 대학원
감기유감
며칠간의 감기는
코에서 목으로 왕복하며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는 변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약을 먹기로 했다.
콘택 600 혹은 판피린을
조제하는 TV 앞에 앉아 있다가
소망약국 앞을 머뭇거리다
병원으로 향하는 것은
가운을 입지 않은 약사 때문이었을까
식당과 정육점 사이에서
약 냄새를 풀풀거리지 못하는
옅은 기운 때문이었을까
녹색 간판의 세지의원 2층 계단을 오르며
세지는 딸 이름일까
아내에게 감추고 싶은 첫사랑의
여자일까
힘없이 굽어지는 무릎이 관절염일까를
생각하며
손가락이 긴 의사를 만났다
감기 같은데요. 순간 아니다.
감기 걸렸는데요 라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스스로 진단하고 판단하는 것은
선고의 두려움을 베어내기 위함이다
두려움의 상처에
먼저
불을 지르고 맞불을 기다리는
이것은 소독이 아니다
온몸을 달구는
몸
살.
모두들 전염의 불덩이 하나씩 지니고 사는
사람들은
불신하지 않는 것은
죄라며
병원 복도에서 기침을 하고 있다.
감기가 아닐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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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심사평 : 신경림 , 김주연
우열을 가리기 힘든 가운데 '혈거시대'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벌레들의 방과 사람의 방, 우리들 가슴속의 방을 일상의 평이한 언어로 연결하는 가운데 부각되고 있는 상징성은 소박하면서도 독특하다. 시적인 포즈나 허세가 애초부터 배제된 분위기 속에서 삶을 사랑과 달관으로 마주보는 그윽한 눈길이 믿음직스럽다. 그 눈길 속에는 그러나 아둥바둥하며 살아가는 공해에 찌든 현실에 대한 묵시록적인 비판이 숨어있다. 결국 이러한 점이 높이 평가되어 당선작이 되었는데,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한다.
당선시 : 혈거시대
이정록 : 1964년 충남 홍성 출생. 공주사대 한문교육학과
혈거시대
1
어쩌다 집이 허물어지면
눈이 부신 듯 벌레들은
꿈틀 돌아눕는다
똥오줌은 어디에다 버릴까
집안 가득 꼴이 아닐텐데
입구 쪽으로 꼭꼭 다져 넣으며
알맞게 방을 넓혀간다
고추에는 고추벌레가
복숭아 여린 살 속에는 복숭아 벌레가
처음부터 자기 집이었으므로
대물림의 필연을 증명이라도 하듯
잘 어울리는 옷으로 갈아입으며
집 한 채씩 갖고 산다
벌레들의 방은 참 아늑하다
2
PVC 파이프 대림점 옥상엔
수많은 관들이 층층을 이루고 있다.
아직은 자유로운 입으로 휘파람 불고
둥우리를 튼 새들 관악기를 분다
아귀에 걸린 지푸라기나 보온 덮개 쪼가리가
빌딩 너머 먼 들녘을 향해 흔들린다
때론 도둑고양이가 올라와
피묻은 깃털만 남기고 가는
문명과 원시의 옥상으로
통이 큰 주인아줌마가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또 몇 개의 관이 땅 속이나 콘크리트 사이에서
우리들의 쓰레기나 소음으로 배를 채울 것이다
그리하여 관을 타고 온 것에는
새끼 잃은 어미 새 소리가 있고
회오리치는 바람 소리가 있고
도둑고양이 이빨 가는 소리가 뛰쳐나온다
피묻은 둥우리, 숨통을 막는
보온덮개의 질긴 터럭이
우리들 가슴에 탯줄을 늘이고,
PVC 파이프 그 어두운 총신들이
퀭한 눈으로 꼰아보고 있다
3
우리들의 가슴속에도
제 집인양 덩치를 키워온
수많은 벌레들 으쓱거린다
햇살 반대편으로 응큼 돌아눕는
그들과 우리는 낯면이 많다
코를 풀고 눈곱을 떼내며 아침마다
우리는 벌레의 집을 청소한다
그들의 방으로 채널을 돌리고 보약을 넣고
벌레의 집은 참 아늑하다
몽상의 행간을 지나치게 방황하고 있는 시들이 적지 않았다. 시의 본질적인 의미로서의 몽상, 근거가 불투명하여 철저한 정신으로 통제되어 있는 형이상학적인 공간으로서의 그것이라면 몰라도 객관적인 동일성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어서 혼란스러웠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김현파의 '한강갈매기'는 투명했다. 이 투명성은 시에서 자칫 긴장을 와해하고 평면으로 떨어질 위험성을 안고 있으나 김현파는 사실적인 밖의 갈매기를 화자의 내면적인 갈매기로 자리바꿈하고 그것을 다시 도시적 삶과 농경문화적 삶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는 오늘의 현실로 구체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입체화하고 있었다. 그의 시적 역량과 안정성은 함께 보낸 산문 형태의 시 '환시' 등의 작품에서도 고르게 나타나 있었다.
당선시 : 한강갈매기
김현파 : 1954년 대전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졸
한강갈매기
옅은 안개 깔린 강 표면에서 솟구치는
비둘기보다 큰 새를 보았다 차량행렬 위를
유유히 날아가는 흰 바탕에 회색무늬 날개를 가진 새
혹, 서해바다에서 날아온 갈매기가 아닐까
시내버스 손잡이에 흔들리며 선승의 깨달음처럼
번쩍 스치는 예감
삼각지 로타리를 돌아 서울역 남대문을 지나면서
그 새는 빌딩 숲 깊숙이 묻혀버렸다 화석 같은
짙은 흔적을 남기고
그날 이후 밤마다 꿈을 꾸었다
뱃고동 소리 파도에 부서지는 항구
하얗게 빛나는 등대 위에서 나는 은빛 날개로
푸른 하늘을 날았다 무인도를 지나
황톳물 출렁이는 대륙
사막을 날았다
만년설의 히말라야 산맥에서 날개를 접기도했고
먼 아프리카 조그만 어촌을 날았다
달빛 별빛 어우러지는 날 밤에는 너훌너훌
춤을 추기도 했다
대낮에도 꿈을 꾸며
청계천이나 남대문시장을 기우뚱대기도 하고
남산 꼭대기에 올라가 엉성한 곰빗으로 부리끝을
갈고 또 갈아보았지만
어느덧 무서리로 덮여지는 이 땅
벌써 은행잎은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고
보도블럭 위 플라타너스 잎은 한 장 두 장 떨어지는데
헛일이었다 정말 헛일이었다
손목시계를 차고
넥타이를 매고
오늘도 신발끈을 졸라매보지만 언제나 아스팔트 길에서
푸득대기만 한다
한 장의 낡은 양복으로 아물지 않는 상처를 감추고
두고온 해안
모래톱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이 그리우면
한강엘 간다
더 높은 하늘
더 넓은 바다가 그리우면 잡초 우거진 고수부지에서
끼룩끼룩 울어대기도 하고
콘크리트 강둑을 걷기도 한다 남 모르게
날개짓도 해보고
낚시줄을 제 목숨마냥 늘어 놓은 늙은 갈매기
젊은 갈매기들
노을에 일렁이는 물살을 보며 소주잔에
두고온 고향을 타 마신다
유람선 선착장을 맴돌다 한강철교를 향하여 날아가는
갈매기를 관찰한다
녹슨 망원경을 통하여
지금은 갈 수 없는 그곳을 생각하며
원동우의 '이사'는 생활의 슬픈 장면을 보면서도 냉정을 잃지 않은 시선이 돋보이거니와 묘사와 진술을 적절히 쓰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호의 대상이던 아내가 마지막에 가서 보호의 주체가 되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다.
심사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가슴으로 파고드는 시가 <세계일보 신춘문예>의 전통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음을 부기해둔다
당선시 : 이사
원동우 : 1963년 경기 가평 출생, 중앙대 문창과 졸업
이사
아이의 장난감을 꾸리면서
아내가 운다
반지하 네평 방을 모두 치우고
문턱에 새겨진 아이의 키눈금을 만질 때 풀석
습기찬 천장벽지가 떨어졌다
아직 떼지 않은 아이의 그림 속에
우주복을 입은 아내와 나
잠잘 때는 무중력이 되었으면
아버님은 아랫목에서 주무시고
이쪽 벽에서 당신과 나 그리고
천장은 동생들 차지
지난번처럼 연탄가스가 새면
아랫목은 안되잖아, 아, 아버지
생활의 빈 서랍들을 싣고 짐차는
어두워지는 한강을 건넌다 (닻을 올리기엔
주인집 아들의 제대가 너무 빠르다) 갑자기
중력을 벗어난 새떼처럼 눈이 날린다
아내가 울음을 그치고 아이가 웃음을 그치면
중력을 잃고 휘청거리는 많은 날들 위에
덜컹거리는 서랍들이 떠다니고 있다
눈밭에 흐려지는 다리를 건널 때 아내가
고개를 돌렸다, 아참
장판 밑에 장판 밑에
복권 두 장이 있음을 안다
강을 건너 이제 마악 변두리로
우리가 또 다른 피안으로 들어서는 것임을
눈물 뽀드득 닦아주는 손바닥처럼
쉽게 살아지는 것임을
성냥불을 그으면 아내의
작은 손이 바람을 막으러 온다
손바닥만큼 환한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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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심사평 : 황동규 , 김화영
전대호의 '상처'는 종래에 흔히 만나던 <신춘문예> 특유의 타성이 느껴지지 않아서 매우 신선하다. 매우 절제되고 정확한 묘사, 태를 부리지 않는 시선, 그리고 대담한 전환 모두가 유망한 자질을 보여준다.
이 시에는 극적 감각이 있다. 이 시인은 장식없는 사문적 언어의 어디쯤에 전기스위치를 넣으면 돌연 언어공간 전체에 폭풍이 일어나는지를 감지할 줄 안다. 그냥 말뿐이 아니다. 평범한 현상, 사실, 풍경의 어디쯤에 매듭이나 배꼽이 있는지를 가늠한다. 그 중심으로 모이는 순간의 격정이나 질서를 부여하는 역량, 그래서 이런 시의 여백은 삶의 깊이만큼 적막하다. 그의 또 다른 작품 '구름의 뿌리'도 수작이다. 부디 안이함에 정신을 맡기지 말고 정진하여 놀라운 시인이 되기 바란다.
당선시 : 상처
전대호 : 1969년 경기 수원 출생,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
상처
1
버스가 급하게 모퉁이를 돌았다. 옆에 선 사내가 근육을 긴장시키며 손잡이를 움켜쥔다. 사내의 팔뚝에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보인다. 둥글고 큼직하게 주위 살들을 잡아당기며 아문 흉터가 세 개 일렬로 박혀있다. 언제였던가 나도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술을 많이 먹고 친구들 앞에서 고통을 참으며 독하게 지졌었다. 상처는 많이 부풀어올랐다. 며칠동안 팔 전체가 화끈거렸고, 화끈거렸지만 아무 흉터도 남지 않았다.
햇살 내리네 저 햇살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 따사로운 햇살
사내는 아마 물집이 생긴 자리를 세 번 이상 더 지졌을 것이다. 아무도 근접못할 만큼 무시무시한 기억을 훈장처럼 팔뚝에 새겨넣기 위하여 사내는 아까처럼 근육을 긴장시키며...... 이를 악물었을 것이다. 젖은 숫돌처럼.
2
지나간 일들은 정말로 지나가 버린다. 그날에나 지금에나 햇살 저 햇살, 아래 집들은 웅크리고만 있다. 그런 식의 무례한 작별인사는 그를 자꾸 뒤돌아보게 했다. 들꽃에게라도 말 걸고 싶은 발걸음. 얘 너도 집이니? 아니 나는 성이야. 지나간 일은 일도 아니다. 기억만 고대 인류의 꼬리뼈처럼 진화의 문턱에서 흔들거릴 뿐.
예년에 비해 올해 투고된 작품들의 경향은 대체로 이념이나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시의 대상과 소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해졌다는 것이 선자들의 소감이다.
당선작으로 뽑힌 고두현의 '유배시첩'은 격이 있고 전통적인 운율과 동양적 정조가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신인으로서의 새로움과 당돌함 대신 노련함과 달관된 화법이 있다. "잘익은 시"로서의 깊은 맛이 있다. 유배된 인물 김만중의 감정에서 화자의 시법은 전통시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 보여준다. 그러나 선자들은 기왕에 발표된 "유배시"류들의 아류를 지적하고, 비판적 견해를 밝혔음을 첨언한다.
당선시 : 유배시첩
고두현 : 1963년 경남 남해 출생, 경남대 국문과 졸업
유배시첩
남해 가는 길
물살 센 노량해협이 발목을 붙잡는다.
선천서 돌아온 지 오늘로 몇 날인가
윤삼월 젖은 흙길을
수레로 천리 뱃길 시오리
나루는 아직 닿지 않고
석양에 비친 일몰이 눈부신데
망운산 기슭 아래 눈발만 차갑구나
내 이제 바다 건너 한 잎
꽃 같은 저 섬으로 가고 나면
따뜻하리라 돌아올 흙이나 뼈
땅에서 나온 모든 숨쉬는 것들 모아
화전을 만들고 밤에는
어머님을 위해 구운몽을 엮으며
꿈결에 듣던 남해바다
삿갓처럼 엎드린 앵강*에 묻혀
다시는 살아서 돌아가지 않으리.
울타리 밖에 채마밭을 짓고
흐린 날에 텃밭에 나가
익모초잎을 딴다
초막 뒤로 지는 노을
시린 팔목도 굽은 어깨도
진눈깨비에 젖어 흐르다 보면
못다한 이승의 아름다움
꽃대궁 뿌리마다 단단히 박아두고
어즈버 내가 없는 날
봄 푸른 들판 되어
꽃피고 새움이 돋듯 그렇게
다시 살았거라 두고온 것들도 수런대며
돌아와 뒤뜰 동백잎 함께 아물어 갈 때
일어나 터지거라 터지고도 모자라면
또 다시 누워 채마밭이 되고 새암이 되고
먼 데서 오는 한 벗 구름 뿐인 고요가 되고
슬픔이 되어 내 묻힌 노지나 묘등에
땅만 보고 섰을 풀줄기 되라
이번 응모작에서도 눈에 띄는 특징은 '修辭'의 범람이다. 수사란 원래 문학에서 중요한 공부거리였고, 한 대는 시와 수사법이 동의로 생각될 만큼 사람들은 시에서 수사의 전범을 찾아내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은, 수사의 '전범'이 되려면 글이 참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수사가 먼저가 아니라 참됨이 먼저이며, 두루 미치는 지각을 아우른 진정성이 없는 글이 공허한 수사로 떨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노릇이라고 하겠다. 달리 말하자면, 이건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해 볼 일이겠지만, 자기의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어떤 가짜와 모자람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좋은 글장이가 될 수 없는 법이라는 얘기이다. 예술가란 자기(즉 자기의 작품)가 무슨 가짜 상태나 모라자는 상태에 있는 걸 못견디는 정도에 따라 그 값이 정해지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영효의 '소금에 관하여'에서 작자는 소금을 "하얀불"이라고 말하면서 그 불이 온몸에 퍼져 몸을 청청하게 하고 꿈도 되살린다고 한다. 맛도 내고 방부제 노릇을 하는 "세상의 소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다만 맞춤범이 까다롭지 않은 낱말, 그래서 틀리기 어려운 낱말들을 몇군데서 틀리게 쓰고 있고, 한자표시 역시 그렇다. 있을 수 있는 실수 같지만 여러군데서 그러면 의심을 받기 쉽다.
당선시 : 소금에 관하여
서영효 : 1970 경남 진주 출생, 한국과학기술대 화공학과
소금에 관하여
부서진 은비늘이 모여
복귀할 수 없는
원시의 수초를 모래밭에 그리는
하얀 눈물자국.
과학적으로 말하면
이온 결합일 테지만, 미완의 입자들이
손 마주잡고
태양 아래서
날아갈 것은 날아가고
결정을 이룬 무리들이
맛을 낸다.
나의 몸이 싱거운 터라
한줌 집어 상처 위로 뿌리니
잊었던 꿈들이
일제히 강줄기 따라
횃불을 밝힌다.
그것은 하얀 불이었구나
피톨이 불을 당겨
곰팡이 홀씨 둥둥 떠다니며
간이나 위, 뼈 위로 꽃피우는
온몸으로
퍼지는 화염
靑靑한 몸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