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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진실
영적 진실
영적 깨달음
의식의 장이라는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들....
물들지 않은 검증가능한 진실의 과학이 발달하는데 있어
필수적 토대이자 본질적 기초는
'의식자체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
이다.
그러한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진실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해명은
뇌화학의 기계적 환원주의(측정수준 410)와
철학의 추상적 주지화(측정수준 460) 사이에서
허둥댔다.
그것은
우회적 동어 반복을 낳고,
이는 결국 형이상학(측정수준 450),
신학(측정수준 450),
그리고 마침내 인식론(측정수준 460)으로 인도한다.
인식론이란
즉 이런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우리는 우리가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믿음과 신용을 둘 수 있는 원초적 기본이 있기는 한가?"
뉴턴적 패러다임내에서(측정수준 460),
과학(측정수준 460)은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면서도
믿을만하게 실용적으로 생산적이었다.
전통과학의 영역은
타고난 한계 및 구조와 형상의 규율에
칭칭 감겨있었다.
선형적인 것은
예측가능하며
타고난 확실성을 갖는데,
이로 인해
사회의 믿음은
결국 전통적 종교와 같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과학의 입증가능한
확실성과 이로움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현대적 마음에 대해 과학은
실재하고 객관적이다.
반면에
정신적이거나 주관적인 본성을 갖는
비물질적 현상과 경험들은 실체가 없고,
진위가 의심스러우며
의혹과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양자역학(측정수준 460)과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측정수준 460)의 출현은
실상에 대한 뉴턴적 패러다임의 지배가
종언을 고했다는 것,
그리고
예측 가능한 선형적인 것으로부터
예측 불가능한 비선형적인 것(측정수준 500에서 무한까지)으로
이끌어주는 보다 정교하고 앞선
과학의 진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전시대를 통틀어
인간 마음과 지성은
이성과 합리성이라는
엄청난 복잡성에 관한 조사의 주제임은 물론,
그러한 조사의 도구이기도 했다.
이같이 조사한 분량만으로
거대한 도서관이 가득찼고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늘어났다.
탐구는
결정적 해결이나 단순화보다는
당황스러운 전보증식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1950년대에
모티머 애들러를 의장으로 하는
박학다식한 교육자와 학자집단이
수세기에 걸친 위대한 사상가들의 지적노력에
조직적 승인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것은
"서양의 위대한 책들"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서양의 위대한 책들에 대한 측정치
J.S. 밀 465 | 라부아지에 425 | 밀턴 470 |
갈렌 450 | 라블레 435 | 버클리 470 |
갈릴레오 485 | 로크 470 | 베르길리우스 445 |
괴테 465 | 루소 465 | 보즈웰 460 |
기번 445 | 루크레티우스 420 | 세르반테스 430 |
길버트 450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445 | 셰익스피어 465 |
뉴턴 499 | 소포클레스 465 | |
니코마코스 435 | 마르크스 130 | 스위프트 445 |
다윈 450 | 마키아벨리 440 | 스턴 430 |
단테 505 | 멜빌 460 | 스피노자 480 |
데카르트 490 | 몽테뉴 440 | 아담 스미스 455 |
도스토예프스키 465 | 몽테스키외 435 | 아르키메데스 455 |
아리스토포네스 445 | 케플러 470 | 플라톤 485 |
아리스토텔레스 498 | 코페르니쿠스 455 | 플로티누스 503 |
아우구스티누스 503 | 타키투스 420 | 플루타크 460 |
아폴로니우스 420 | 토마스 아퀴나스 460 | 필딩 440 |
에우리피데스 470 | 톨스토이 420 | 하비 470 |
에픽테토스 430 | 파스칼 465 | 헤로도투스 440 |
아이스킬로스 425 | 투키디데스 420 | 헤겔 470 |
엥겔스 200 | 패러데이 415 | 호머 455 |
윌리엄 제임스 490 | 푸리에 405 | 호이헨스 465 |
유클리드 440 | 프란시스 베이컨 485 | 홉스 435 |
초서 480 | 프로이트 499 | 흄 445 |
칸트 460 | 프톨레마이오스 435 | 히포크라테스 485 |
그 속에는
진실에 도달하고 진실을 정의하려는 시도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빼어난 학자와 사상가중에서도
단연 가장 빼어난 이들의 저서가 포함되었다.
인간 지성사에 대한 이 연구는
지속적이고 광범위하며
그것의 가치는 현재 전국 학자연합이 뒷받침해주고 있는데,
전국 학자연합에서는
위대한 책들을 10년에 걸쳐
진지하게 연구하는 일정을 권고하고 있다.
전집의 목차에는
전 역사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이룬
큰 기여가 포함되어 있다.
그 사상가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책들은 전체적으로 450으로 측정되지만 칼마르크스를 제외하면 465로 측정된다. 이렇듯 200(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임계점) 이하로 측정되는 철학은, 역사와 요즘 연구가 잘 입증해주는 것처럼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와 대조적으로 소저자 자신이 아닌 소크라테스는 540으로 측정된다.
진실의 본질적 성격을 발견하는 일의 중차대함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와
학자들이 경주한 노력의 크기와 정도에서
추론해 낼 수 있다.
위의 저자들은
서구세계를 대표할 뿐이다.
비슷한 노력 및 그에 비길만한 위대한 사상가 명단을
다른 문화들과 아시아,
중동의 지적전통에서 찾아낼 수 있다.
불행히도
인류의 가장 초기작업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48년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 화재로
소실되었다.
여러세기에 걸친
학술적이고 지적인 탐구에 뒤이어
새로운 탐구법이 시작되었는데,
그 중에서
물질적 영역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과학적 방법은
인간 마음과
그것의 생리학에 대한 연구에 적용되었다.
서양의 위대한 책들 마지막 권이
프로이트에게 바쳐진 것은
주목할만하다.
프로이트의 가장 독창적 발견은
무의식적 마음의 중요성 및
그것이 정신적 감정적 삶의 모든 측면에서
차지하는 주된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정신분석의 커다란 기여는
경험의 선험적 기층으로서
주관의 결정적 역할과 그에 대한 해석 및
그것의 심령내적 역동을 입증한 것이었다.
프로이트 이후
심리학이 융성했는데,
그 중에서 칼 융의 발견은
그가 인간 영을 개인적 집단적으로 강력하고 의미깊은 요소로서
인간의식에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가장 의미심장했다.
무의식에 대한
좀더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
융은 고유한 패턴들이 큰 원형임을 분명히 했다.
프로이트의 저작은 499로 측정되는 반면
융의 저작은 520으로 측정되는데,
그것은 패러다임의 중요한 그리고
결정적인 발전을 가리킨다.
실험적인 학문적 심리학은
보다 기계적인 쟁점들과
학습이론에 국한되었다.
대략 같은 기간에 의미론자들은
언어학과 언어자체의 기본구조에 관해
연구했다.
하야카와와 아이어는
데카르트가 이미 분명히 밝힌
본질적 요점(레스 코기탄스대 레스 엑스테르나)에 관해 설명했는데,
그것은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라는 것이고,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인간정신작용의 그러한 결함이 갖는
중요성이다.
의식자체는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 원리의 중대한 발견과
추론의 귀결로서,
과학적 탐구의 초점이다.
아인슈타인(그의 연구는 499로 측정)은
하이젠베르크 원리가 갖는
철학적 함의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지만,
데이비드 봄은 그것을 이해했다.
봄은
함축된/나타난/, 접혀진/펼쳐진 실상의
패러다임들에 관해 묘사하고 서술했다.
봄의 연구의 의식수준은
505다.
보다 발전된,
우주에 관한
그러한 맥락화는
존재의 나타나지 않은 기층을
그리고
그것이 잠재성으로부터
현실로 펼쳐지는 실상을
공히 인지한 것이었다.
양자역학의 개념적 철학적 함의와
새롭게 부상하는 비선형 동역학 덕분에,
과학과 의식을 주제로 한 일련의
연례 학술대회가 에리조나 대학과
그밖의 곳에서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의식연구저널(journal of consciousness studies 1996년 발행)으로
이어졌다.
위의 학회와 학술지들의 의식수준은
대략 410에서 450으로 측정되는데,
이는 그러한 것이
일차적으로 고등과학이론 및 관련된 수학을 이용한
지성의 노력임을 가리킨다.
대략 같은 시기에 연구분야로서의 정신의학은
정신분석을 버렸고,
사람이 그것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연속체로서,
다시말해
사건에서 사건으로 이어지는 것 뿐 아니라
진화적 단일체로서 경험하고 해석하는
주관적 실상의 영역전체를 버렸다.
정신의학은 또한
뇌화학의 기계적 환원주의에 굴복했으며,
독특하게
사적인 인간 경험과의 공감을
점차 상실하면서
역설적으로 점점 더 비인간화 되었다.
일상적 정신과 진료는
보험산업을 통해 도입된
사업모델의 지배를 받는 것은 물론
효과적인 정신약리학 발달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정신약리학 발달의 긍정적인 면은
정신병, 우울증, 불안과 같은
고통스러운 주관적 증상들에서 생겨나는
괴로움이 폭넓게 경감되는 이로움과 실용적 가치였다.
그러한
이로움은
다수의 환자들에게
쉽사리 이용가능하고
접근가능한 것이 되었다.
반면에
제약산업의 발달이전에는
정신분석과 같은
집중적 정신치료에 시간을 쓰거나
실제 투자할 여유가 있는 환자들이 드물었다.
인간욕구의 진공을 채우는 일을 돕기 위해
비의료인 심리치료사들이
공감하는 치료자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한 역할의 주요양식은
심리적 통찰과 감정교육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그것은
주관의 결정적 중요성 및 사적 경험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금 재차 강조했다.
정신요법 발달의 대단히 의미심장한 측면은
인간심령의 영적 측면이 갖는 중요성 및
그러한 측면이 행복과 신체적 정신적 건상의 실현에 기여하는 바의
중요성을 재차 긍정한 것이었다.
성직자들의 상담에는
수세기를 내려온 어떤 기초가 있었는데,
거기서 중심을 이룬 것은
전인적 개념으로서의
치유라는 관념이었다.
또한 연구를 통해
영성이나 종교적 가치를 포용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훨씬 건강하고 장수하며
이혼율이 낮은 것은 물론,
질병과 범죄와 가난을 덜 경험한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런 사람들은
더 행복에 잘 적응했으며
기능을 더욱 잘하는 자녀를 두었다.
이러한 주제에 관해서는 요즘 릴리 기금에서 후원하는 연구 프로젝트 "청소년과 종교에 관한 전미연구" 중 청소년의 태도와 자아상에 대한 4개년 연구 프로젝트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초개인 심리학회와 같은 주요 심리학회에서는
영적실상을 인정하는 것 및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대한
영적실상의 기여를 인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영성 건강저널 journal of spiritual health"에서는 오직 그러한 주제만을 다룬다.
지구 곳곳의 수백만 사람들의
삶과 회복에 영향을 미친 큰 발달은
익명의 알콜중독자회(540으로 측정)에서 시작된
12단계 회복프로그램이었다.
덕분에
회복은 다수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와 행동들에 대해 효율적이며
변형을 가져오는 해결책으로서
보다 일반적이고 광범위하게 수용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불치병에서 회복되었으며
그에 대해 수백만에 달하는 친지, 가족, 고용주, 친구,
감사넘치는 배우자들이 그러한 회복을 목격했다.
수감자들 속에서
믿음에 기초한 치료모임은
재범률을 35%까지 떨어뜨렸다.
의식연구에 따르면
12단계 원리는
외견상으로 가망없는 대단히 다양한 인간문제에 폭넓게 확산되고
적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복모델과 훈련의 핵심은
물들거나 더럽혀지지 않았다.
그것은
상업화나 악용을 거부했으며,
세속적 상업화나 타인에 대한 통제의 유혹에
떨어지지 않았다.
12단계 운동은
그것이 기반으로 삼은 영적 진실의 내적규율에 따라
외부의 쟁점에 관해 어떠한 의견도 갖지 않았고,
부와 명망, 정치적 영향력을 거절했다.
그것이 가진 힘의 바탕에 있는 것은
오직 무조건적 사랑과
사심없는 정직성이라는
540으로 측정되는
그 자체의 의식수준이었다.
오늘의 세계를 사는 사람들은
접근 가능한 사회적 지식의 보급이
항상적 인간조건이었다고 추정하고 있는 점에서
순진하다.
극소수 특권층이 쥐고 있었고,
대중은 그것을 이용할 수 없었다.
인쇄술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교육받은 이들은 그 수가 극히 적었다.
가장 큰 인기를 누린 박식한 학자들조차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도구나 수단을
갖지 못했다.
따라서
오류가 포함되는 것은 불가피했는데,
예를들면 니케아 종교회의 뒤에 벌어진
기독교 의식수준의 심각한 저하가
그것이다.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독점적 영역은,
그 다음에 그것으로
타인을 통제하려는 유혹이 되었고,
독점성에 대한 주장은
편협성과 다툼에 불을 지핀
바로 그 연료가 되었다.
게다가 논쟁적인 마음은
진실의 중요요점을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을 통일시키기 보다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세부를 과장하는데 집착해서
사람들을 나눠놓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종교는
교회의 권위를 세웠다.
그것은
결의된 경전을 지정함으로써
분열을 야기하는 불일치를 예방하려는 것이었다.
합의된 경전의 신빙성은
그 다음에 경전화 과정을 통해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것은 더한 남용으로
그리고 정교신앙의 고수를 강제하려는
무시무시한 협박으로 이어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르침들의 진실에 관한
의식수준의 연구를 통해,
높은 수준의 진실은
세월의 시험을 견뎌 낸
위대한 영적 고전과 마찬가지로
항상 접근했다는 것과
앞으로도 계속 그러하리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런 진실에 대한 추가적 검증을 제공해주는 것은
다양한 문화전반에 걸쳐
전혀 다른 시기에
똑같은 기본적 진실이
독립적으로 재발견된 일들이다.
그에 대한 증거는
풍부하다.
앞선 의식을 지닌
검증가능하게 진짜인 모든 신비가나 개인은
문화적 환경이나 성격에서 독립된
본질적으로 동일한 역사적 진실을
선언한다.
의식의 측정가능한 수준들은
장구한 세월에 걸쳐
반복적으로 거듭
단언되어 온 어떤 내재적 실상을 확증해준다.
인간계에서
가능한 최고의 측정된 의식수준은
역사적으로 1000이었다.
그것은
세계에서 인정받은 위대한 화신들(인류의 구세주들)과
신성으로 각성된 고대의 깨달은
현인들의 의식수준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지성, 마음, 이성, 논리의 최고 한도는
499로 측정되는데,
그 수준은 선형적 영역을 통달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의식수준 500은
의식자체인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기층을 포함함으로써
펼쳐지는 실상에 관한
새롭고 보다 앞선 패러다임이
출현했음을 반영하는데,
의식자체는
오직 그것의
환원 불가능한 경험적 실상으로 말미암아
인식가능하다.
에고는
설계상으로 자기애적이며
일차적으로 자기 지향적이지만,
반면에
500수준에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지배적이 되고,
사랑이라는 독특한 성질이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통계적으로
500수준에 도달하는 비율은
세계인구의 4%이고,
540수준의 무조건적 사랑에는 0.4%가,
600수준이상에는 단 몇명이 도달할 뿐이다.
의식의 매우 앞선 상태는
지극히 드물다.
현 시기에 600이나
그 이상으로 측정되는 현인들은
지구상에 6명있다.
그중 600-700사이에 3명,
700-800에 1명, 800-900에 1명,
900-1000수준에 한명있다.
그들은 200이상으로 측정되는 인구와 더불어
200이하로 측정되는 세계인구 대다수의
엄청난 부정성을 상쇄하고 보완해준다.
총 결과
요즘 인류의 전체적 의식수준은
207이다.
사랑은
측정된 의식척도상에서 나타난다.
최초로 출현할 때,
그것은 감정적이고 이원적이다.
더욱 진화하면서
사랑은 점차
비이원적으로 되고
살아가는 방식이 되며,
감정만은 아닌 것이 된다.
감정대신
사랑은
사람이 된 것을 가리킨다.
사랑의 힘은
변형을 일으키고
경험을 재맥락화하며,
그리고
형상으로서의 장의
제한된 선형적 내용대신에
장의 비선형적 퍼져있음에
점진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그 다음에는
중점이 얻는 것에서
주는 것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행복이란
타인의 행복에 기여함으로써
자신의 자율성은 물론
잠재성을 실현하는 일의 내재적이고
자동적인 귀결임이 밝혀진다.
임상적으로
모든 치유하는 성직자,
신앙의 체계,
회복양식들은
부정적 신념체계와 감정을 놓거나 내맡기고
자신과 타인을 향해
보다 자비롭고 용서하는 태도를
채택하는 일의 중요성을 믿는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사람이
위기감정, 분개, 시비분별을 포기할때,
전에는 타인에게 투사되었던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줄어든다.
대신 긍정적인 건강한 감정이
부정적 감정을 대치하며,
그 결과 뇌 자체의 우세한 생리적 경로에
변화가 일어난다.
나중에 7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영적지향이 있는 이는 뇌에서 정보를 사실상 다르게 처리하는데, 그것은 긍정적 심리적 생리적 이로움을 낳는다.
역설적인 것은 이익은
에고가 이타심이 대단히 이롭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에고의 사리추구에 의해 파생된다는 것이다.
에고가
자기 중심적 목표를 놓는 것이
이롭다는 것을 배울 때
겸손함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고,
무지가 아닌 지혜라는 점을 각성하면서
에고 자체는
그 다음에 영적 탐구를 위한 도약대이자
그 자신을 초월하는 수단이 된다.
용서하고 잊으려는 자발성은
540으로 측정된다.
용서하고
신에 내맡기려는 자발성은
550으로 측정된다.
첫댓글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우리는 우리가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리고 믿음과 신용을 둘 수 있는 원초적 기본이 있기는 한가?"
영적지향이 있는 이는 뇌에서 정보를 사실상 다르게 처리하는데, 그것은 긍정적 심리적 생리적 이로움을 낳는다
더욱 진화하면서
사랑은 점차 비이원적으로 되고
살아가는 방식이 되며,
감정만은 아닌 것이 된다.
감정대신 사랑은 사람이 된 것을 가리킨다.
사랑의 힘은 변형을 일으키고
경험을 재맥락화하며,
그리고 형상으로서의 장의 제한된 선형적 내용대신에
장의 비선형적 퍼져있음에
점진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감사합니다_()_
일어날 일은 일어나리라!!
감사합니다
정신의학은 또한 뇌화학의 기계적 환원주의에 굴복했으며, 독특하게 사적인 인간 경험과의 공감을 점차 상실하면서 역설적으로 점점 더 비인간화 되었다
역설적인 것은 이익은 에고가 이타심이 대단히 이롭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때 에고의 사리추구에 의해 파생된다는 것이다. 에고가 자기 중심적 목표를 놓는 것이 이롭다는 것을 배울때 겸손함은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고, 무지가 아닌 지혜라는 점을 각성하면서에고 자체는 그 다음에 영적 탐구를 위한 도약대이자 그 자신을 초월하는 수단이 된다. 용서하고 잊으려는 자발성은 540으로 측정된다. 용서하고 신에 내맡기려는 자발성은 550으로 측정된다.
용서하고 잊으려는 자발성은 540으로 측정된다. 용서하고 신에 내맡기려는 자발성은 550으로 측정된다.
용서하고 신에 내맡기려는 자발성은 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