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약자석
임병식
대중교통에 노약자석과 임산부 배려석이 마련된 지도 오래되었다. 누구나 그 취지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전철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버스에서는 그 의미가 점점 퇴색해 가는 듯하다.
먼저 탄 사람이 먼저 앉고, 먼저 앉은 사람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 노인들은 버스에 올라서도 자리를 기대하지 않는다. 빈자리가 생기면 다행이고, 누군가 선뜻 양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오래전에 접었다.
학생이나 젊은 승객 가운데는 창밖을 바라보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목적지까지 가는 사람이 적지 않다. 눈을 감고 잠든 척하는 사람도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못마땅한 마음이 들다가도 '정말 피곤한가 보다.' 하고 애써 이해하려 한다.
전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반석에서는 자리 양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노약자석은 어떨까.
젊은 사람이 버젓이 앉아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신 노인인지 아닌지 경계가 모호한 중장년층이 자주 이용한다. 65세 이상 무임승차 제도가 시행되면서 스스로 노인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아졌고, 노약자석 역시 자연스럽게 그들의 자리가 되었다.
20년 전만 해도 이런 풍경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사회가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농촌에서는 일흔이 젊은 축에 들고, 마을 이장도 여든을 넘긴 경우가 드물지 않다. 젊은이는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마을에는 노인들만 남았다.
도시의 전철 풍경도 아이러니하다. 다리가 성한 사람이 노약자석에 앉아 있고, 배가 불러 힘겨운 임산부는 손잡이를 붙든 채 서 있다. 허리가 굽은 노인은 시선을 둘 곳조차 마땅치 않아 머뭇거리며 객차를 흔들린다.
한때 미덕으로 여겨졌던 자리 양보는 이제 개인의 선택이 되었다. 지방에 사는 내가 가끔 서울에 갈 때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도 바로 그 풍경이다. 노인도 아니고 젊은이도 아닌 중년 승객들이 노약자석을 차지한 채 가는 모습. 노란색 '노약자석'이라는 글자가 오히려 무색하게 느껴진다.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노약자석에 센서를 설치해 일정 연령 이상의 노인이나 임산부가 앉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앉으면 '삐-' 하는 경고음이 울리도록 만들면 어떨까. 물론 우스운 발상이고, 현실적인 대안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상은 제도를 바꾸자는 뜻보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되묻게 한다. 초고령사회가 되었는데도 노약자를 배려하는 문화와 제도는 아직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노약자석은 그대로인데, 그 자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식은 달라졌다.
결국 문제는 자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자리를 비워 두는 제도보다 먼저 비워야 할 것은 타인을 배려할 마음 한 칸인지도 모른다.
(2026)
첫댓글 눈을 감고 잠든 척하는 젊은이, 노약자석을 차지한 중장년층,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갈 곳 잃은 임산부와 고령층의 모습을 대조하여 강한 시각적 잔상을 남깁니다. 노약자석에 센서를 설치하자는 유쾌한 상상은 분위기를 환기하는 동시에 역설적인 메시지. "결국 문제는 자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자리를 비워 두는 제도보다 먼저 비워야 할 것은 타인을 배려할 마음 한 칸인지도 모른다."제도의 개선보다 더 시급한 것은 우리 내면의 '타인을 향한 여백(마음 한 칸)'이라는 본질을 짚어내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차가운 도시의 대중교통 풍경을 통해 초고령사회의 그늘을 짚어내고, 우리 가슴속 잃어버린 '마음 한 칸'의 온기를 되묻게 만드는 멋진 글입니다.^^
시내버스의 노약자석은 차라리 글씨를 지워버리는 것이 나을것 같습니다.
지금은 유명무실한 이름만 남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번씩 상경을 하면 전철 풍경는 더욱 눈살을 찌뿌리게 합니다.
대부분이 다리 멀쩡한 중늙은이들이 차지하고 있어요.
그바람에 정작 그 자리가 필요한 임산부나 나이드신 어른들이 통로에 서서
이리흔들, 저리 흔들 흔들리고 있어요.
볼썽사나웠습니다.
노약자라는 단어는 때로는 애매모호하기도 하지요 지극히 상대성이 있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극단적으로 어느 차내에 85세 노인들과 95세 노인이 타고 있다면 95세 노인이 노약자가 되겠지만 청소년들만 탄 차내에 50세 중년이 타고 있다면 당연히 장유유서가 작동해야겠지요 나이 많은 사람이 존중 받고 쇠약한 사람이 배려 받는 사회풍조가 점점 쇠퇴해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노약자석에 인공지능 센서를 설치하여 신체나이와 건강을 체크하여 통과한 사람만 노약자석에 앉을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하고 궁리해 보니 그도 문제점이 있어 보이네요
기댈것은 역시 양시인데, 그것이 작동하지 않으니 꼴불견이 연출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70대는 아직 젋은데 그런 연령의 사람들이 다리 쩍 벌리고 노약자석에 앉아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초고령사회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타인을 향한 시선과 배려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지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노약자석'이라는 표지판보다 더 필요한 것은 바로 누군가의 피로와 힘듦을 가만히 보듬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라는 말씀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언제나 세상을 향한 따뜻한 관심과 깊은 사유로 마음을 울리는 글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가정과 삶의 자리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위로와 기쁨이 가득하시길 소망합니다.
'노약자자석'은 유명무실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옆에 붙어있는 표지판이 낯설어보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