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한 목소리는 코가 막혀 있어 평소보다 듣기 거북했다.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는 눈도 젖어 있어 왠지 아파보였다.
하나미치와 루카와ㅡ 두명의 조그만 마법사의 제자들은 바로 조금 전까진 하루의 마지막 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끝나면 사부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맛있는 식사 후에는 잘 때까지의 즐겁고도 짧은 자유시간이 기다리고 있어 매일 이 시간의 작업에는 힘이 들어갔다.
오늘 일은 낮에 따온 버섯 선별이었다. 선별이라곤 해도 아직은 미숙한 제자들. 독버섯 등을 보고 구분할 수가 없기 때문에 2, 3종류 먹을 수 있는 종류만 있는 버섯중에서 크기를 세분하는 정도의 간단한 작업이었다.
헌데 희한하게도 루카와가 몇 번이나 실수를 저질렀던 것이다. 크기가 전혀 다른 것을 같이 넣어 버리던가, 이미 나눠져 있는 걸 다시 흐트려뜨려 놓는다던가, 끝에가서는 삿갓을 잘라뜨려 버린다거나.
"루카와! 걸리적거리 좀 마! 아무리 해도 끝나질 않잖아!"
큰 소리로 시끄럽게 구는 하나미치에게 루카와가 언제나 처럼 반격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엣취ㅡ!!"
하지만 입에 나온 건 평상시 늘 하던 말이 아니라 상대의 '똑같아'에 지지 않을 정도로 큰 재채기였다. 그것은 자신만이 아니라 하나미치 앞에 쌓아 올려 있던 버섯의 산도 요란하게 날려 버렸다.
사부가 지하 저장고에서 달려 왔을 때에는 버섯에 깔려 엉덩방아를 찧고 눈만 굴리고 있는 하나미치와 푹 엎어져 양손을 대고 어안이 벙벙하게 그 상태를 바라보고 있는 루카와의 모습이 있었다.
그 뒤의 마법사의 반응은 신속했다. 곧바로 루카와를 침대에 눕게 하고, 열을 재 조금 전의 진찰 결과를 알렸다.
"뭐, 나쁜 바람이 조금 몸 안으로 들어갔을 뿐이니, 영양을 많이 섭취하고 약을 제대로 먹은 다음 푹 쉬고 있으면 나을 거다"
걱정스러운 듯 들여다보고 있는 또 한사람에게도 들려주기 위해 사부는 안심시키려는 것처럼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듣자마자 하나미치는 침대 위를 향해 '메롱~' 하고 힘껏 혀를 내밀었다.
"헹이다, 이 허약한 녀석! 너 따윈 이몸과 달라서 단련이 모자라니까 그런 거에 걸리는거야. 와이ㅡ 와이ㅡ"
루카와가 침대 위에서 빨간 눈으로 찌릿 노려보았다.
"이 체력 제로"
"근성 제로한테 듣고 싶지 않아, 엣취!!"
"뭐라고옷ㅡ!"
난투가 되기 전에 사부가 선수를 쳤다.
"사쿠라기. 루카와가 쉬는 동안, 일은 전부 너 혼자서 해라"
"윽! 저, 전부...?"
하나미치의 얼굴이 눈을 까뒤집고 있던 채 굳었다.
마법사가 오묘한 얼굴로 끄덕였다.
"그래. 지금까지 둘이서 해왔던 일 전 . 부"
"땔감을 모으거나, 청소하거나, 약 냄비를 젓거나 밭에서 야채를 따오거나 하는 그걸 전부...?"
"그래 전ㅡ부"
마법사의 말은 가차가 없다.
"어째서 저 허약한 놈을 위해 첫째 제자인 내가ㅡ!"
"콜록! ...첫째 제자는 나야"
곧장 침대 위에서 주장하는 소리가 들렸다. 감기에 걸린 중이라도 루카와의 지기 싫어하는 성미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뭐라고! 사부! 이녀석의 어디가 감기야?! 평소랑 하나도 다름이 없잖아"
사부가 '저런ㅡ' 하고 한숨을 쉬었다.
"앗! 그런가! 너 꾀병이지! 일을 땡땡이치려고... 일어나 이...ㅡ!"
잡아 일으키려던 하나미치의 머리 위에 드디어 '쿵' 하고 주먹이 떨어졌다.
"병자에게 무슨 짓이냐! 바보 녀석!!"
"아얏ㅡ!"
사부는 양손으로 머리를 누르고 있는 제자의 귀를 잡아당겨 침대에서 끌어냈다.
"아야야야야야!"
"자, 꾸물거리지 말고 저녁식사 준비를 하자"
"쳇!"
하나미치는 아픈 듯이 귀를 누르며 곁눈질로 흘낏 노려보고 기세 좋게 등을 돌렸다.
"흥! 이 첫째 제자 사쿠라기님이 도움이 안 되는 녀석 2배로 일해주지"
"호오. 그건 또 기대하고 있으마. 루카와, 밥이 다 되면 깨워 줄테니 푹 자거라"
루카와가 고개를 끄덕 숙이고 이불로 파고들었다.
"좋아. ...그렇군, 마침 잘 됐다. 오늘밤엔 너희들이 따 온 버섯 크림 스튜로 하자. 몸이 따뜻해질 거다"
"내가 따온 건 루카와 녀석이 딴 것 보다 커서 틀림없이 맛있을 거야!"
"바보 녀석, 버섯은 삿갓이 그다지 크지 않은 쪽이 맛있다"
"엣ㅡ!"
하나미치가 괴성을 지르는 걸 남기고 문이 닫혔다.
두사람이 나가버리자, 방안은 갑자기 고요해졌다. 그러고 보니 잘 때에는 언제나 옆 침대에하나미치가 있었다. 여기서 혼자 자는 일 같은 건 거의 없었던 탓일지도 모른다.
닫힌 문 너머를 향해 루카와는 툭 중얼거렸다.
"첫째 제자는 나랬는데...... 멍청이"
타이밍 좋게 문 저쪽에서 하나미치의 항의가 담긴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처럼 뭔가 실패를 저지른 걸까?
루카와는 '후ㅡ' 하고 긴 한숨을 쉰 다음 눈을 감았다.
머리가 멍해져 있다. 열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어도 자신의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건 이상한 느낌이었다. 혼자 침대 안에 있는 것도 굉장히 묘했다.
하지만 소란스러운 제자의 떠드는 소리와 사부의 호통 소리를 자장가로 삼을 수 있다는 건 그 나름대로 귀중한 체험이었을지도 몰랐다.
창이 덜컹덜컹 울린다. 휘오오오 하고 멀리서 하늘이 소용돌이치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심해졌군"
마법사가 스튜를 입으로 옮기던 스푼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그 순간, 건너편 의자에서 나무 열매 빵을 먹고 있던 하나미치의 어깨가 흠칫 했다.
"왜 그러냐. 이제 와서 바람이 무서운 것도 아닐 테고"
"아? 아ㅡ, 뭐야. 그 바람인가(*일본어에서 바람과 감기는 발음이 같습니다) ...깜짝 놀랐네"
"흐흠. 뭐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짖궂은 마법사의 웃음에 하나미치는 서둘러 머리를 붕붕 저었다.
"아, 아니야. 나는 루카와에 대한 것 따위...!"
흐음. 그러냐는 말을 하며 혼자서 만족한 듯한 마법사는 하나미치를 점점 더 궁지로 몰았다.
한명이 모자랄 뿐인 식탁은 묘하게 조용했다.
루카와가 있어도 딱히 말수가 많은 건 아니다. 어느 쪽이냐면 언제나 하나미치가 혼자 남의 몇 배는 지껄이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그런데도 평소의 시끌벅적함이 거짓말 같았다.
어쩐지 안정이 안돼 빵을 베물며 하나미치의 눈이 이따금 무의식적으로 비어있는 옆 의자를 쳐다보았다.
루카와는 아직 침실에서 자고 있다. 지금은 깨우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해서 그때부터 계속 자고 있었다.
아까 잠깐 모습을 보러 갔었는데 그때의 모습은 왠지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때때로 조금 괴로운 듯 눈썹을 찌푸리거나, 자다가 몸을 뒤척이는 등...... 지금이라면 탁쳐도 움찔거리지도 못할 것 같았다.
사부와 둘 만이라면 반찬 싸움도 안 해도 되고, 먹고 있는 도중에 싸우게 되서 스프를 흘리거나 할 걱정도 없다. 산뜻하게 먹을수 있으니 맛있어야할 텐데 어쩐지 뭔가가 부족한 것 같아 맛이 없었다.
"그럼 난 감기약을 만들 테니 뒷정리를 잘 해둬라"
그 목소리에 퍼득 얼굴을 들자, 사부는 어느새 식사를 마치고 접시를 정리하고 있는 참이었다. 평소라면 하나미치도 비슷할 즈음에 다 먹는데 오늘은 자신도 모르는새 손과 입이 멈춰 있었던 것 같았다.
"안돼안돼! 나 사쿠라기 하나미치님이..."
하나미치는 음식을 서둘러 입안에 우겨넣으며 이쪽에 등을 돌리고 작업을 시작한 마법사에게 물어 보았다.
"저기, 사부. 감기약이라는 건 어떻게 만들어?"
"음? 아아, 재료말이냐? 몇 종류의 약초를 여름 『태양초』의 꽃에서 딴 벌꿀주로 우려낸 걸 뜨거울 때 마신다. 너희들이 만드는 건 아직 무리지만 약초의 종류는ㅡ"
'딸그락' 하나미치의 손에서 스푼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녀석ㅡ! 식기는 조심해서 다루라고 늘ㅡ"
"사부! 그 벌꿀주라는 거 꼭 필요한 거야?"
"그야 그렇지. 여름에 피는『태양초』의 꽃은 강한 태양빛을 잔뜩 머금고 있으니까 말이다. 감기에 걸렸을 땐, 열은 있어도 몸 안쪽은 차갑지. 그런 냉기를 물리치는 데는 제일 잘 듣고, 그걸 넣지 않으면 약초의 엑기스가 잘 섞일 수 없으니까"
마법사는 설명을 하면서도 손은 쉬지 않고 선반 안쪽에서 벌꿀주 병을 꺼냈다. 하지만, 그 뚜껑을 연 순간 눈썹을 찌푸렸다.
"이상하군.... 아직 남아 있었을 텐데......"
병 안은 멋지게 텅 비어 있었다. 핥아내기라도 한 듯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다.
"사쿠라기, 아래 저장고를 잠깐 보고 오..."
돌아선 마법사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하나미치가 스튜접시를 않은 채, 파랗게 질려 있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 일목요연했다.
"설마 너희들......"
"그, 그치만 그렇게 중요한 것인 줄 몰랐단 말야! 사부가 없을때 루카와랑 조금씩 핥아먹다가 정신이 들고 보고 전부 없어져 버려서..."
"바보ㅡ...!"
사부가 벼락을 내리려다 당황해서 목소리를 죽였다. 조그만 '녀석!' 이 덧붙이듯 이어졌다.
"선반에 있는 물건엔 손을 대선 안 된다고 그렇게 말했잖냐!"
하나미치는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스튜 속에 퐁퐁 조그만 파문이 생겼다. 크게 쇼크를 받은 것 같았다.
말없이 스튜에 짠맛을 더하고 있는 제자에게 마법사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마법사로서 저장물을 확실하게 관리하지 못했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술이라 해도 알콜은 거의 없어서 괜찮았던 것 같지만, 어쨌든 간에 몽땅 먹어치워버리거나 마셔버리는 건 엄금이다"
마법사는 목소리를 약간 부드럽게 해서 말하곤 자신의 방으로 가려고 발길을 돌렸다. 그 옷자락 끝을 조그마한 손이 꼭 잡았다.
하나미치가 눈물 어린 눈을 커다랗게 뜨고 물었다.
"사부! 사부는 굉장한 마법사잖아! 그럼 저 녀석의 감기 같은거 마법으로 금방 낮게 해줄 순 없는 거야?!"
대답은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가로젓는 것뿐이었다.
"어째서...! 회복 주문 같은 것도 있잖아!"
"사쿠라기"
사부의 커다란 손이 위로하듯 천천히 하나미치의 머리에 놓였다.
"마법이라는 건 만능이 아니다. 회복 주문이라고 해도 그 생물이 본래 가지고 있는 자신이 자신을 낮게 하는 힘에 조금 도움을 줄 뿐이야"
"자신이 자신을 낫게 하는 힘?"
퉁망울 눈으로 되묻는 제자에게 사부는 크게 끄덕였다.
"그래. 생물에는 모두 갖춰진 힘이다. 하지만 심한 상처와 무거운 병이 되면 자신의 힘만으론 나을 수 없을 때도 있어. 그럴 때 힘을 빌려주는 것이 마법사의 일이다. 다만 마법은 아무리 약한 것이라도 경우에 따라선 위험한 것이지.마법사 자신에게 있어서도 말이다. 그러니 언제나 말했던 것처럼 함부러 사용하면 안 된다. 알겠느냐?"
하나미치가 고개를 끄덕 했다.
"게다가 루카와의 감기는 가벼우니까 서툴게 마법을 썼다가는 힘이 너무 강해서 되려 몸에 좋지 않아. 그럴 땐 약과 먹을 것이 도움이 되지. 자신의 힘을 조금 나눠줄 생각으로 마법을 담아 만들면 훨씬 효과가 있다."
"사부가 아니더라도?"
"아아, 너라 해도 충분히 효과가 있지"
하나미치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 눈 속에서 각종 과일 주스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건 착각이 아닌 듯 했다.
"알았으면 얼른 밥을 마저 먹어라. 정리가 끝나면 스튜를 다시 에워서 루카와가 가져다주는 것도 잊지 말고"
"사부는 어디 갈 건데?"
방한용 망토를 꺼내온 마법사에게 하나미치는 불안스러운 듯 물었다.
"나는 벌꿀주를 얻어 오마. 바람이 강해서 빗자루를 쓸수 없으니까 늦어질지도 몰라. 먼저 자고 있어도 된다. 아참, 수호 부적을 붙여둘 테니 문은 절대 열지 마라"
모자 대신 머리부터 후드를 푹 덮어쓰고 서둘러 몸차림을 마치자 마법사는 출구로 향했다.
밖은 바람이 아까보다 더 심하게 신음했다.
하나미치는 사부의 등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저장고의 사과라면 써도 좋다"
사부는 문 너머로 돌아서 그 말만 하곤 바람이 부는 밤 속으로 나갔다.
"......뭐야, 눈 떴냐"
하나미치는 양초를 갖다댄 순간, 몽롱하게 쳐다보고 있는 루카와와 눈이 마주쳐 무의식중에 안도의 숨을 쉬었다.
사부가 외출한 뒤 주스를 만들기 위해 부엌에서 열심히 격투를 벌이고 있다. 간신히 다 만들어서 상태를 보러 온 참이었다.
"저렇게나 시끄럽게 굴면 싫어도 깨"
텁텁하게 끌어낸 루카와의 목소리.
"씨잇! 너어ㅡ, 감기 걸린 주제에 하나도 얌전해지지 않았잖아!"
평소대로 무심결에 소리를 크게 질러버린 하나미치는 당황해서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루카와에게.
"뭐 병자가 상대니까 오늘은 간병해 주마"
헛기침을 한 번 하고 거만하게 돌아섰다. 벽에 비친 조그만 그림자까지 양촛불에 흔들거려 건방져 보였다.
"휴ㅡ"
언제나의 커다란 한숨을 쉬기 전에 하나미치는 다시 부엌으로 갔다 스튜 접시를 올린 쟁반을 가지고 돌아왔다.
"일어날 수 있냐? 사부는 잠깐 나갔지만 될 수 있는대로 잘 먹어 두랬어"
"...먹을래"
루카와는 콜록콜록 작게 기침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 눈이 쟁반 위에 놓인 컵을 알아채고 의심스러워 하며 들여다보았다.
황색빛이 나는 액체가 찰랑거리며 양초의 빛에 반사되고 있었다.
약인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안에 든 건 아무리 봐도 사과주스였다. 하지만 과일 조각이 둥둥 떠 있어 보기에는 별로다.
"아ㅡ, 사과. 그건 이몸이 사부의 직접 가르침을 받아 마법의 마음을 담아 만든 거야. 고맙게 마셔"
루카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저 소동의 원인......?"
그러고 보니 조금 전의 소음은 쨍그랑쨍그랑 화려하게 식기를 깨뜨리는 소리와 '큰일났다ㅡ!' 는 다소 볼륨에 조심성을 담은 절규의 연속이었다.
"에이, 시끄러! 그걸 마시면 나쁜 바람 따위 금세 날아가 버릴 테니까 꼭 마셔!"
볼품없는 모양으로부터 추측하건데 부엌일이 서툰 하나미치가 열심히 만들었음에 틀림없었다.
루카와는 두렵사리 컵을 받아들고 조심조심 입을 댔다. 꿀꺽 하고 한 모금.
약간 신맛이 나는 달콤한 액체가 텁텁했던 뜨거운 목을 쓰윽 내려간다. 루카와는 자신의 목이 굉장히 말랐다는 것을 돌연 깨닫고 양손으로 컵을 꼭 잡고 반 정도를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러는 동안 눈을 접시처럼 둥글게 뜨고 주목하고 있던 하나미치가 컵이 놓여지자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루카와가 시선을 맞추고 딱 잘라 말했다.
"괜찮아 제대로 된 사과맛이야"
하나미치의 눈이 확 빛나더니 금세 득의만면하게 변했다.
"당연하지. 어때? 이몸의 실력을 알겠냐? 핫! 핫! 핫!"
사과를 갈아서 짜내는 작업 어디에 알게 해줄만한 실력이 있는지 수수께끼였지만, 루카와는 반론하지 않고 그냥 놔두었다. 그 정도야 뭐. 조금 어설픈 이 사과주스는 맛이 있었던 것이다.
그후에 먹은 향초가 들은 버섯스튜도 맛은 물론, 한입씩 먹을 때마다 몸의 심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유감스러운 단 하나 단점은 먹고 있는 내내 '나랑 사부 둘이서만 만든 거라구.' 라는 자랑의 말이 붙어있는 것이다. 덕분에 괜히 열이 더 오를 것 같아졌던 건 말 할 나위 없다.
휘이이잉
쏴아아 쏴아
밖에서 바람이 심하게 울부짖고 있다.
숲을 나뭇가지 끝을 세찬 밤의 울음소리가 돌아다닌다.
거인의 손으로 흔들고 있기라도 하듯, 창이 덜컹덜컹 시끄럽게 흔들렸다.
두껍고 단단한 벽 바로 건너편은 옛부터 내려오는 흉폭한 힘이 날뛰는 세계였다.
바람 소리에 가려 장작 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부엌과는 경계인 문을 조금 열었다. 난로에서 데워진 공기가 이 방안으로도 천천히 들어왔다.
"굉장한 바람이네. 커다란 짐승이 우는 것 같아"
하나미치가 창문 쪽을 올려다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신통치 않은 양초 등불이 침대 옆 의자에서 무릎을 안고 앉아 있는 모습을 어렴풋한 오렌지색으로 비추고 있다. 하나미치는 뒷정리를 한 뒤 의자를 거기까지 끌고 와서 자지도 않고 계속 그러고 있었다.
"어두운 밤의 마왕의 수하가 바람 늑대에 타고 돌아다니고 있어"
루카와가 베게에 얼굴을 묻은 채 대꾸했다.
"마왕? 바람 늑대?"
하나미치가 눈을 깜빡거렸다.
"전에 사부가 말했어. ...아아, 너는 앉아서 졸고 있었지. ...콜록"
"으~~"
기침이 덤으로 붙어 있어서야 하나미치도 평소처럼 반격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거야. 저 숲의 마신같은 건가?"
"훨씬 더 오래되고, 그리고 크구, 무섭대"
"저, 저 마신보다도?!"
하나미치가 굳어져서 반문했다. 루카와도 그 모습을 생각해내고 잠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숲 깊은 곳에 사는 마신 마키는 이제껏 본 누구보다도 강하고 두려운 존재였다.ㅡ그렇다곤 해도 무서웠던 건 처음 만났을 때랑 둘이 나쁜 짓을 했을 때뿐으로 그것외에는 굉장히 상냥하고 의지할 수 있는 마신이라는 걸 지금은 하나미치도 루카와도 알고 있었다.
그렇더라도 저 무섭고 강한 자신들의 사부가 이따금 마법의 힘을 빌리고 있으니 틀림없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 마신보다도 『훨씬 더』가 되면 두사람의 상상의 범위를 넘었다.
"...몰라. 하지만 이런 마왕의 수하가 날뛰고 있는 밤에 밖을 걸어다니거나 하면 바람 늑대에게 잡아먹혀버릴지도 모른댔어"
고오오오 하고 창이 소리를 냈다.
두 사람 다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았다.
유리창 바로 밖, 어둠 속에서 시커먼 나무 그림자가 기분 나쁜 괴물처럼 마구 흔들렸다.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가 두 개.
"...사부가 느, 늦네"
"사부라면 바람 늑대 따위 마법으로 처치할 게 틀림없어"
"그, 그렇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나미치와 루카와는 얼굴을 마주하고 조금씩 떨지 않을수 없었다.
양초 그림자가 흔들거린다. 조금이지만 어딘가 있는 틈에서 어두운 밤의 마왕의 난폭한 힘이 흘러들어와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두사람의 대화는 중단된 채였다.
하나미치는 의자 위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어쩐지 눈을 뗄 수 없게 되어 버렸던 것이다.
머리에 덮어쓴 태양 장식이 달린 후드가 불안을 그대로 비추듯 묘하게 크고 불안하게 흔들렸다. 지금이라도 당장 바람 늑대가 창문으로 들어와 옆에서 덥썩 잡아먹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제까지 몇 번이나 둘이서만 밤에 집을 지켰던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ㅡ.
평소와 같은 방에서 옆에는 언제나 처럼 루카와가 있는데ㅡ 보통 때랑은 다르다.
침대 위를 슬쩍 훔쳐보았다.
작은 불빛은 얼굴에서 조금 떨어진 폭신한 이불 위에서 차분한 그림자를 만들고 있다.
루카와의 두 눈꺼풀은 멍하니 그 움직임을 쫓으며 꿈뻑꿈뻑거려, 이제 곧 닫힐 것 같았다.
열이 있으니 당연히 자고 있는 편이 낫다.
그렇게 되면 이집에서 깨어 있는 건 단 한사람.
만약, 만약에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자신 혼자서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
적이 흉폭한 바람 늑대라도, 무시무시한 밤의 어둠의 마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미치는 머리 옆으로 양손을 꽉 쥐었다. 벽에 비친 그림자의 주먹은 실물인 자신의 손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해 보였다.
그때 갑자기 뭔가 소리가 들렸다.
어깨에 움찔 힘이 들어갔다.
숨을 죽이고 그대로 귀를 기울였다.
또다시 들렸다. 가볍고 딱딱한 소리다.
탁 탁.
루카와 쪽을 쳐다보았으나 잠들어버린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탁 탁 탁 탁.
뭔가가 문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는 것 같은.......
사부라면 노크할 필요 따위 없다.
아니, 어쩌면 마물에게ㅡ 진짜로 바람 늑대에게 습격당해 상처를 입고 스스로는 열 수 없는 걸지도....
그렇지 않으면 뭔가 무서운 것이 밖에 있어 안의 모습을 엿보고 있는 걸까...?
"하지만 사부는 수호 부적을 붙여놨다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앗!"
하나미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소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원인은 그 수호 부적이다. 필시 바람에 떨어져서 문에 부딪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놔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이대로 놔뒀다간 날려가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밖에는 바람 늑대가 있을지도.......
"우~~"
그치만, 그치만, 수호 부적이 떨어져서 밤의 어둠의 마왕이 집안으로 들어와 버리기라도 한다면.......
루카와는 일어날 기색이 없다.
하나미치는 뜻을 정하고 일어섰다. 소리를 내지 않도록 살그머니 침실을 빠져나갔다.
작은 소리는 역시 출입구 쪽에서 나고 있었다.
조그마한 몸이 빨갛게 타오르는 난로의 불빛을 등에 받으며 문 앞을 막아섰다. 하나미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아주 쪼오~~끔 정말로 잠깐만 문틈을 열어 수호 부적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확인할뿐이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괜찮아. 괜찮아......"
하나미치는 뜻을 정하고 일어섰다. 소리를 내지 않도록 살그머니 침실을 빠져나갔다.
작은 소리는 역시 출입구 쪽에서 나고 있었다.
조그마한 몸이 빨갛게 타오르는 난로의 불빛을 등에 받으며 문 앞을 막아섰다. 하나미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아주 쪼오~~끔 정말로 잠깐만 문틈을 열어 수호 부적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확인할뿐이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괜찮을 거야. 괜찮아. 괜찮아......"
하나미치는 자신에게 들려주듯 입 속으로 몇 번이나 외고 손에 힘을 주었다. 아주 천천히 민다. 처음은 금 정도의 틈을 슬슬 벌렸다.
한쪽 눈만으로 밖을 보았다. 문 연 곳만 밝은 지면에는 아무것도 없다.
눈을 좀 더 가늘게 떠 어둠을 뚫어 보았다.
그러나 소란스런 어둠에 뒤덮인 숲은 식물이건 동물이건 기색을 읽는 걸 방해당해 전혀 알 수 없었다.
조금 더 틈을 벌려 머리만 내밀었다. 강한 바람에 후드가 벗겨질 것 같아진다. 그것을 한손으로 누르고 문 겉쪽을 재빨리 관찰했다.
수호 부적은ㅡ확실하게 붙어 있었다.
다만 그것은 하나미치가 생각하고 있던 것 같은 종이부적이 아닌 은색의 조그마한 방울이었다.
안의 심이 빠져 있는듯, 흔들려도 소리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전에 사부한테서 들은 적이 있는 느낌이 든다. 바람은 울리게 하는 걸 좋아하니까 원래는 소리를 내는 것을 내지 않도록 해서 마법을 걸어두면 몹시 싫어해서 접근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물론 그것은 문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 벗겨지거나 하지 않았다.
그럼 무엇이ㅡ?
문을 위에서 아래까지 잘 보니, 경첩 끝에 바람에 날려 온 듯한 나무 가지가 걸려있다. 별 거 아니다. 이게 때때로 문 표면에 부딪쳐 신경쓰이는 소리를 내고 있었을 뿐인 듯.
하나미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과연 우리 사부야. 할 땐 한다니까. 감동 감동"
수호 부적이 무사하다는 걸 알았으니 여기 오래 있어야 소용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머리를 빼고 문을 닫으려고 하는 그때 숲이 '고오ㅡ'하고 울었다. 새로운 바람의 파도가 닥쳐왔다.
"왓!!"
한층 강한 바람이 덮쳤다. 불어닥친 돌풍에 하나미치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꼭 감았다.
작은 틈새로 바깥공기가 마구 밀려들어와 작은 제자의 몸을 밀어내고, 부닥치듯 문이 닫혔다.
벽에 매달려 있던 약초 다발이 바스락바스락 흔들리고, 난로의 불이 확 타오른다.
난폭한 바람은 방안을 순식간에 마구 휘저었다.
한순간, 그것에 섞여 검음 그림자가 달린 것을 눈을 감고 있던 하나미치는 알아채지 못했다.
정적은 어이없이 돌아왔다.
"후와~, 깜짝 놀랐다"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에서 얼굴을 드러내고 쑥스러운 듯 코끝을 긁으며 방을 둘러보았다.
운 좋게 바람이 날뛴 흔적은 남아있지 않아 보였다. 약초는 제대로 벽에 놓여져 있고, 난로의 불도 계속 잘 타고 있다. 문을 열기 전과 아무 것도 변한 곳은 없었다ㅡ
없었어야 할 터이다.
하나미치는 다시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침실로 돌아가려다 발을 딱 멈췄다.
아작 아작아작
뭔가가 뒤에서 소리를 내고 있다.
아까 나던 소리와는 다르다.
이번에는 집 밖이 아니다. 분명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기, 기분 탓이야, 기분 탓! 집안에서 소리가 날 리..."
툭 털썩!
뭔가...... 아니, 바구니가, 분명 선반 위에 높여 있었을 바구니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기, 기, 기, 기분 탓이 아냐......!
뭔가가 집안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머리가 새하애졌다. 그 하얀 세계를 이런 기분 나쁜 괴물과 저런 무시무시한 마물의 모습이 반짝반짝 점멸하며 뱅글뱅글 맹 스피드로 돌았다.
무릎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침실은 눈앞이다. 자고있는 루카와의 머리가 문 그늘에서 보일 정도다. 이대로 걸어 옆 침대로 숨어들어 이불을 덮고 잠들어 버리면 전부 꿈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러나ㅡ
으적으적 쩝쩝 아작아작
뭔가 찾아서 먹고 있어ㅡ!?
하나미치는 울고 싶어졌다.
차라리 벌레나 쥐라면 괜찮다. 하지만 이제 가을도 끝난 시기, 조금 전까지 그런 것은 없었다.
쩝쩝 으적으적 아작아작
ㅡ만약, 만약에 무서운 괴물이라서 이쪽을 습격한다면....
그 생각에 닿자 파랗게 질렸다.
병자인 루카와가 일어나는 기척이 났다. 평소엔 잠들면 잘 일어나지 못하는 주제에 어째 이런 때에만 묘하게 민감한지.
"오, 오지마, 루카와!"
하나미치가 서둘러 외쳤다.
"멍청이. 왠 소란이야...?"
"마물이야! 마왕의 수하가 들어와 버렸어...!"
등 뒤로 루카와의 숨이 삼켜졌다.
"괘, 괘, 괘, 괜찮아! 내가 이제부터 해치워 버릴 테니까 너는 자고 있어!"
그러나 루카와는 잠시간의 침묵 뒤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한다"
"바, 바보! 자라고 했잖아!"
"바보는 너야, 멍청이. 혼자에 마물 같은 것에 이길 리가 없어. 그렇다면 같이 하는편이 더 나아"
"씨, 씨이~"
『바보』와『멍청이』라는 응수에 둘 다 평소의 습관대로 울컥했지만 지금은 옥신각신 하고 있을 때가 아니였다. 아무리 승산이 없더라도 어쨌거나 지금은 힘을 합하는 편이 나을 것이 당연하다.
"할수 없지. 돕게 해주마"
"별수 없군, 도와주지"
흥!
그것이 신호였다.
루카와는 빗자루를 꼭 쥐고 둘이 딱 붙어 몰래 살금살금 테이블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침입자도 집안 사람의 움직임을 눈치챈 듯 했다.
한순간 소리가 멎었다.
기분 나쁜 그림자는 움직임을 멈추고 이쪽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는듯 했다.
조금씩 조금씩
테이블 다리 건너편이 서서히 드러난다.
바닥에 홀랑 엎어져 있는 바구니. 근처에 흩어져 있는 빨간 것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건ㅡ.
"흐앗!"
"웃!!"
하나미치와 루카와는 동시에 숨을 삼키고 굳었다.
그 녀석은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생물임이 분명했다.
이끼가 낀 듯한 심록색의 몸. 거기서 뻗은 짧은 다리와 기묘하게 긴 손. 납작한 머리. 그 머리보다 위로 솟은 귀. 귀뿌리까지 찢어진 입은 새빨갰다.
그것이 꾸물꾸물 움직이고 있다. 뭔가 삘긴 덩어리를 입에서 흘리면서 끊임없이 씹고 있었다.
기분 나쁠 정도의 빨강. 바닥에 떨어진 빨간 것. 빨간 덩어리. ......피?
아니, 그렇진 않았다. 분명 낮에 자신들이 숲에서 따 왔던ㅡ
"버섯...?"
이중창으로 외쳤다. 그것은 의심할바 없이 선명한 빨강색을 한 식용 버섯『베니야마 버섯』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생물은 오늘밤 안에 피클을 만들 생각이었던 그 버섯을 한입 가득 물고 먹고 있는 것이다.
루카와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옆을 보았다.
"마왕의 부하...?"
"낸들 아냐!"
하나미치도 자신이 가르침을 받았으면 싶을 정도였다.
그녀석의 모습은 정말로 이상했다. 특히 크게 삐져나온 입 등은 오싹한 데가 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 녀석은 상당히 작았다. 쥐보다야 크지만 새끼고양이 보다는 작다. 상상하고 있던 마왕의 부하상과는 상당히 차이가 났다.
그렇다고 해도 기분 나쁘다는 것에 변함이 없지만.
지금은 버섯에 매달리고 있지만, 실은 터무니 없이 흉악해서 인간도 먹어버리는 녀석으로 지금이라도 덮쳐올지 모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상,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녀석은 무기를 잡은 채, 날카롭게 찢어진 금색의 눈으로 선 채 얼어붙어있는 하나미치와 루카와를 빤히 보고 있었지만 스윽 경계태세를 취하듯 자세를 낮췄다.
달려든다....
둘의 얼굴이 공포로 굳었다.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면서 손에 든 무기를 휘둘렀다.
그 순간ㅡ
"후엣치ㅡ!!"
그 자리에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소리가 작렬했다.
하나미치는 자신도 모르게 부지깽이를 떨어뜨릴뻔 했다.
루카와의 특대 재채기였다. 그리고 혼신의 힘을 담은 타이밍이었던 까닭에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던 그것은 눈앞의 적을 정면 직격했다.
"키얏!"
비명인지 웃음소린지 모를 억눌린 소리와 함께 까맣고 작은 돌풍이 쌱 달려갔다.
그것은 단숨에 방을 빠져나가 굉장한 기세로 문에 부딪쳤다고 생각했더니 , 그것을 발판으로 삼기라도 한 듯 밖으로 달려나가 버렸다.
마법사의 제자들은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바닥을 보자 저 기분 나쁜 생물의 모습이 없다. 남아 있는 건 내뿜어진 빨간 버섯의 잔해뿐이었다.
ㅡ그렇다는 건, 지금 것은 그녀석이 달아나며 일으킨 바람이었다는 것일까.
달아났다......?
하나미치와 루카와는 조심조심 크게 열어 젖혀진 문으로 다가가서 밖을 내다보았다.
심하게 술렁거리는 침침한 숲.
그 숲을 등지고 거칠게 불어닥치는 어둠 속엔 멀거니 선 사람의 그림자가ㅡ.
"우왁ㅡ!"
"......웃!"
빗자루랑 부지깽이를 내팽개치고 끌어안다시피 해서 펄쩍 뛰어오른 둘에게 그림자는 천천히 다가왔다.
"이리로 오지 마! 오지 말라구!"
"저리 가ㅡ!"
하나미치와 루카와는 필사적이었다. 아까의 버섯처럼 먹혀버리는 건 싫었다.
눈을 꽉 감고 파닥파닥 발길질을 하고 있는 꼬맹이 둘을 그 인영은 재밌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으나 이윽고 큭큭 웃었다.
"이런이런. 상당히 성대한 환영이네. 나, 감격해버렸어"
귀에 익은 목소리에 두사람은 눈을 번쩍 떴다.
"세, 센도ㅡ!"
양손을 허리에 대고 장신을 구부리다시피 해서 들여다보고 있는 건 료 . 난 숲에 사는 젊은 마법사 센도였다.
하나미치와 루카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힘이 쭉 빠져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센도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빌려 주었다.
이 변덕스런 마법사는 이들에게 자주 수작을 걸어오는 방심할수 없는 상대였지만, 그 남을 우습게 여기는 듯한 웃는 얼굴이 지금 두사람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의지가 되었다.
둘은 내밀어진 손을 순순히 잡고 겨우 일어섰다. 평소였으면 틀림없이 뿌리쳤을 터 였다.
루카와의 손을 잡을때, 센도는 문득 눈썹을 찌푸렸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지금은 언제까지나 밖에 서서 이야기를 할말한 시간도 날씨도 아니다.
"우선 안으로 들여보내 줘. 이야기는 그 후에"
센도가 싱긋 웃고 말했다.
제자들은 난로 앞으로 당겨놓은 의자에 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는 동안 겨우 마음이 가라앉았다.
풋사과 비슷한 좋은 향기가 나는 카밀레차는 손님이 끓인 것이다. 잘 아는 동업자의 부엌이란 이유로 뭐가 있는지 대충 알고 있는 듯 했다.
김 속에서 두사람은 후 하고 심호흡을 했다.
"센도. 왜 밖에 있었어?"
하나미치가 먼저 부활했다.
"......조금 전 거, 봤어?"
루카와가 말을 이었다.
"봤어봤어. 이야 그런게 나오다니 여기는 변함없이 따분치가 않더라"
태평스런 말에 둘이 울컥해서 노려보았다.
그러나 센도는 꼬은 다리 위로 뺨에 손을 대고 심술궂게 곁눈질해서 물었다.
"그게 뭔지 알아?"
그렇게 나오면 순순히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점점 더 재밌다는 듯 가늘어진 센도의 눈에 난로의 불꽃이 춤췄다.
"저건 말이지, 내가 본 바로는 픽시의 일종이야"
"픽시?"
"사쿠라기는 몰라? 루카와도?" "...이름만"
"오케이. 픽시라는 건 뭐어, 말로하자면 요정과 난쟁이의 중간 같은 거야. 그렇게 말하면 알 수 있겠지?" 둘은 알 것도 같고 모를것도 같은 얼굴로 "음~. 대충은" 이라고 대답했다.
"말하자면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것이란 얘기야. 모양은 인간을 조금 닮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알맹이는 인간이나 동물 따위하곤 전혀 달라. 자주 나쁜 짓을 하지, 이야기는 통하지 않지, 사람을 습격하는 일도 있어. 결국 저녀석들은 질이 나쁘단 소리"
마지막 대사를그와 오래 알고 지낸 마신과 주변 사람들이 들었다면 성격 나쁜 너한테만은 듣고 싶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귀중한 임시교사였다.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하나미치가 질문했다.
"그럼 그녀석은 어두운 밤의 마왕의 부하가 아니야?"
"그렇지. 오늘처럼 이런 강풍을 타고 이동하긴 하지만"
루카와의 얼굴도 진지 그 자체였다.
"우리들을 먹거나 하지 않아?"
"글쎄ㅡ. 사람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
휴 하고 얼굴을 마주본 두사람은.
"하지만 혼을 빼간다는 말은 있었을지도"
바로 이어진 다음 한마디에 가슴을 '쿡' 직격당했다.
"어쨌거나 빼가지 못해서 다행이네. 응응. 핫핫하!"
태연하게 웃고 있는 센도에게 둘은 말없이 날카롭게 눈물어린 눈을 돌렸다. 이런점이 이 마법사의 질 나쁜 점이다.
"뭐, 그렇게 화 내지 마. 괜찮아, 이젠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녀석들이 좋아하는 건 혼 같은 게 아니라 따로 있어?"
"좋아하는 것? 그게 뭔데? 조금 전엔 버섯을 마구 먹고 있었지만ㅡ"
"설마......"
"버섯!!"
둘이 동시에 외쳤다.
"정답이야. 하필 오늘 밤은 이동하기 안성맞춤으로 바람 늑대가 날뛰고 있었고 버섯도 잔뜩 있었어. 너희들의 버섯은 녀석이 좋아할 먹이였다는 거지. ...평소라면 마법사의 집 같은 곳에 들어갈수 없지만, 주인은 부재지. 일부러 제대로 부적을 붙이고 나갔는데 안에서 열어버렸으니 결국 수호 부적은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겁니다"
센도의 말투가 도중에 바뀐 것을 알아차리고 제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손님은 천천히 돌아서서 씨익 웃었다.
"수고하셨어요, 아카기상"
문이 쾅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앗!!"
제자들이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소리쳤다.
그곳에는 그들의 사부가 망토 끝자락을 펄럭이며 거인상처럼 서 있었다.
"어서 오세요"
마법사는 싱글싱글 웃으며 손을 흔드는 센도를 귀찮다는 눈으로 힐끗 바라보았다.
"너한테 그런 말 하라고 한 적 없다. ...사쿠라기. 어째서 이 녀석이 여기 있느냐. 게다가 루카와, 병자가 일어나서 뭘 하고 있어"
첫댓글 기분도 꿀했는데 소설읽으며 삭히는중^^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