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속삭임 / 김경빈
“싫어. 싫다고!”
현우가 잠을 자다가 소리를 지른다. 잠을 자던 현우 엄마는 아들의 비명 소리에 눈을 떠 아들의 방으로 달려간다. 현우가 허공에 손을 휘저으면서 잠꼬대를 한다. 눈물까지 흘리고 있다.
“현우야, 왜 그래? 꿈꾸었어? 무서운 꿈이야?”
“아, 꿈이었구나! 괜찮아요.”
한숨을 쉬면서 옆으로 돌아서는 현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렸으나 눈을 감고 다시 잠이 드는 것을 보고 현우의 방을 나온다.
‘현우가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조잘대던 아이가 요샌 말수도 줄인 것 같아. 뭘 숨기는 것은 아닐까? 학교나 학원을 둘러봐야겠다.’
감자기 며칠 전 부모가 교사인데도 자살을 선택했던 중학교 1학년생 사건이 떠올라 불안이 앞서기도 한다.
다음날 현우가 학교를 가는데 표정이 예전처럼 밝질 않다. 학교에 가는 길이 소풍가는 것처럼 신나게 출발하던 모습이 아니다. 학년 초만 해도 작년과 똑같은 담임을 만났다고 아주 좋아하던 아이였다.
“걱정이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 줄래?”
“네~”
현우는 맥없이 대답을 하고 학교로 향한다. 성수가 현우네 가족한테 말하면 가족까지 모두 가만두지 않겠다던 소리가 귀에 윙윙거린다. 성수의 얼굴이 떠오르자 엄마한테 말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것처럼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오늘은 기어이 담임한테 말을 직접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성수는 선생님이 안 보이는 곳에서만 집요하게 현우를 괴롭히고 있다. 처음엔 담임한테 말을 한다고 했더니 담임한데 말하면 널 죽여 버리겠다며 말을 못하게 협박을 했다. 갑자기 악마로 변해버린 친구가 무섭기만 한 현우다.
“네가 담임선생님한테 말하면 그날 너는 죽는 줄 알아, 그리고 네 부모님한테 말하면 네 자족들도 모두 가만히 안 둘 거야. 네 집도 불을 질러 버릴 거야.”
부모님한테 말이라도 하면 집에다 불을 지르고 현우네 집을 완전히 망가뜨려버리겠다는 식으로 나쁜 아이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흉내 내며 현우를 괴롭히는 중이었다. 그러다 다른 친구들이 오면 친한 척 어깨동무를 하고 같이 노는 척을 하기도 했다. 갑작스런 성수의 이중성에 소름이 돋았다. 피하고 싶지만 담임이나 엄마한테 말하면 또 죽이겠다는 협박을 하니 어린 현우로선 겁을 먹지 않을 수가 없다.
쉬는 시간에 혼자서 레고를 쌓고 있는데, 또 성수가 곁에 다가와 앉더니 레고를 흩어지게 하기 시작했다.
“넌 나쁜 아이야. 선생님한테 이를 거야!”
“내가 뭘?”
현우는 더 이상 당하고 싶지 않아서 용기를 내어 담임한테 말을 하려고 일어섰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담임한테 다 말을 하려고 교실 앞으로 갔다. 현우가 성질을 내며 담임을 향해 가자, 바로 뒤에 따라오면서 살을 비틀고 꼬집으며 입을 실룩거린다. 악마로 변한 성수가 만약 선생님께 이르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신호이다.
“선생님!”
현우가 담임을 부르는 순간, 성수는 효성이하고 놀고 있던 정구의 머리통을 갈겨버린다.
“아얏! 왜 그래?”
현우가 담임을 불렀는데 담임의 눈에는 성수에게 맞은 정구가 들어온다. 성수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면서 반성을 시키고 성수는 정구에게 사과를 하라고 시켰다. 현우는 자신의 말을 하지도 못했는데 쉬는 시간이 끝나버린다. 성수는 공부는 못하면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또 지능적으로 현우를 괴롭히고 있다.
2학년 때는 운동장에서 놀 때 현우만 따라다니던 성수였고, 그대로 3학년이 된 학년 초에는 둘이선 친했다. 성수가 현우 집에 놀러오면 현우 엄마도 아주 잘 대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의 성수는 현우에게 마귀나 다름이 없다. 공부시간에 발표를 잘했다고 담임의 칭찬을 받으면 쉬는 시간에 가까이 와서 치근덕거리며 시기를 보이고, 놀이 시간에 현우와 다른 친구가 놀고 있으면 꼭 끼어들어 억지를 써댔다. 바른말이라도 하면 오히려 현우에게 잘난 척하지 말라며 우기기도 했다. 같이 놀다가도 현우의 엄마나 아빠를 들먹이며 괴롭혔다. 성수가 언제부터 자신을 괴롭히기 시작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구가 교실에서 성수네 가족 흉을 본 이후인 것 같았다.
일주일 전, 성수하고 정구가 교실에서 크게 싸움을 한 적이 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성수와 정구는 담임한테 늘 지적이나 받고 친구를 괴롭히는 말 그대로 말썽만 피우는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성수가 완전히 흥분을 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구가 성수를 실실 웃으면서 놀린 것이다.
“병신, 히히.”
“뭐?”
정구가 먼저 성수를 놀렸다. 신체적으로 정구는 조그맣고 성수는 반에서 제일 큰 편이라서 싸움이 일어난다면 정구는 성수의 깜도 안 되는데, 전날 성수네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교실에서 떠벌리고 싶었는지 성수를 놀리기 시작했다. 전날 성수의 아빠가 술을 마시고 성수 엄마를 마구 때리고 소란을 피워서 아파트 주민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고 경찰까지 다녀간 걸 정구가 알게 된 것이다.
“주정뱅이 가족!”
정구가 또 놀리자, 성수는 정구를 세게 주먹으로 쳤다 퍽 소리가 났다. 친구들은 둘이 싸우는 것 구경하고 있는데도 그 때까지 독서에 빠져 있던 현우는 정구의 비명소리에 깜짝 놀랐다.
“성수야, 왜 그래?”
현우는 깜짝 놀라 성수한테 소리를 질렀다. 평소에는 현우의 말이라면 잘 따르던 성수였는데 현우가 말리는데도 대꾸도 않고 정구를 더욱 세게 밀쳐버리기까지 했다. 정구는 옆에 있는 책상에 머리를 찧게 되어 피까지 흘렀다. 얼굴은 아니고 책상모서리에 머리를 다친 것 같았다. 현우는 성수의 눈이 너무 무서웠지만 무시하고선 선생님을 큰소리로 불렀다.
“선생님, 피나요, 성수가 정구를 때리고 밀쳤어요.”
현우의 소리를 듣고 담임이 달려 왔다. 그 때까지 성수는 정구를 노려보기만 했다.
“어머, 성수 왜이래? 눈을 허옇게 뜨고? 현우야, 빨리 보건 선생님 오시라고 해.”
담임은 화장지를 많이 떼어서 정구의 피가 흐르는 머리 부분을 눌러 지혈을 했다. 보건선생님이 달려와서 정구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성수의 엄마는 학교로 불려 와서 담임의 지도를 받았다. 그때 현우는 용감하게 성수 엄마한테 상황 설명까지 자세하게 말했었다.
다음날 학교에 온 성수의 얼굴에는 멍이 많이 들어있었다. 귀밑까지 찢겨져 반창고가 붙어있다는 것은 자기의 아빠나 엄마한테 혼이 난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박현우, 넌 앞으로 내 적이야, 내가 우리 아빠한테 두들겨 맞은 것도 네가 우리 엄마한테 그 잘난 입으로 떠들었기 때문이야. 두고 봐 앞으론 내가 널 가마두지 않을 거야.”
째려보는 성수가 무섭게 느껴졌다. 현우는 가만히 일어나서 화장실로 갔다. 일단 그 자리를 피하려고 일어났었다.
“너 도망가면 내가 못 따라갈 줄 알아?”
소변을 보고 있는 현우의 엉덩이를 꼬집기까지 했다. 그 때 아이들은 주변에 없어서 성수가 괴롭히는 것을 증언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반에서 늘 정구와 싸우고 조그만 효성이를 괴롭히던 성수는 현우의 악마가 되어서 교실에서 화장실로 남들이 없을 때만 현우를 괴롭히고 있었다. 현우는 정당한 말을 했을 분인데, 성수는 갑자기 현우를 타깃으로 한 악마로 변해버린 것이다. 성수를 피하지 못해 학교에 오는 일이 부담이 가기도 했다. 친구들이 알아채어야한데, 친구들이 오면 정다운척하고 말도 부드럽게 하기까지 하니 2학년 때처럼 둘이 친한 사이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성수는 담임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교묘하고 은밀하게 괴롭히는 현우의 귀에만 속삭이는 악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현우 엄마는 현우를 위해서 맛있는 저녁을 준비했다.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자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집을 나서던 현우가 마음에 걸렸다. 담임과 상담을 하러 가더라도 현우와의 대화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아이의 기분을 풀어볼 겸 저녁식사에 좀 더 신경을 썼다.
집안으로 들어서던 현우는 음식냄새에 속이 부글거렸다.
“현우야, 네가 좋아하는 갈비찜을 했어. 요새 공부하느라 기운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아서.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걸들로 저녁을 차렸어.”
“별로 먹고 싶지 않은데요?”
식탁에 앉아서도 시큰둥한 현우를 보고 엄마는 더욱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한 접시를 거뜬히 먹어치우는 현우지만 입안에서 밥알을 굴리기만 하고 갈비까지 울겅울겅 한 입 넣고 씹고만 있어서 부드러운 걸 골라 아주 조금 억지로 먹게 했다.
설거지를 마무리 하는데 현우가 배가 아프다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현우엄마는 아는 분이 있는 병원으로 택시를 불러 타고 갔다.
“위경련이네요.”
“저녁에 갈비찜을 해 주었는데, 많이 먹지도 않았어요. 아이가 넘어가지 않는다 해서 제가 조금 억지로 먹였을 뿐이에요. 아주 조금요. 그런데도 탈이 났을 까요?”
“그렇다면 제가 보기에는 음식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있지 않나 생각을 해볼 수 있겠네요. 여기에서 차분히 재운 다음에 제가 살살 달래볼게요. 오늘은 가서 주무시고 내일 오시면 어떨까요?”
“그래도 현우를 곁에서 지켜봐야 하지 않을 까요?”
“아니에요, 이런 경우는 엄마가 안 계시는 게 더 나을 수 있죠. 내일 아침에 바로 오시지 말고 천천히 오세요. 제가 상황을 지켜봐 드릴 게요.”
다음날 병원을 찾은 현우의 엄마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내생각대로 음식이 아니였어요. 스트레스가 아주 많이 쌓여 있었어요,”
“아, 네. 현우가 요즈음에 조금 힘들어 하는 것 같기는 했어요. 어제도 학원 선생님께서 현우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며 전화까지 하기도 했죠. 아이가 아직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해서 지금 기다리는 중이었고요.”
“학교를 안가도 된다고 했더니, 슬슬 맘속의 걱정을 쏟아내더라고요.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어요. 다른 아이들이나 담임도 눈치 채지 못하게 현우만 따라다니면서 조용히 괴롭히고 있었어요. 엄마한테 말한다고 하면 부모나 집까지 가만두지 않겠다는 말에 아이는 말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성수라는 아이가 그랬다고요? 내가 그 애를 얼마나 예뻐하고 잘해주었는데요?”
“괴롭힘을 주는 경우는 잘해주는 경우에서 나타나기가 더 쉽죠. 그러기에 부모들이 눈치를 못 채는 것이지요.”
현우의 얼굴이 모처럼 차분해 보인다. 의사선생님께 다 털어놓고 나니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난 것 같다.
“현우야,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으면 엄마한테 말을 했어야지?”
“무서웠어요, 날마다 엄마한테 말을 하면 죽여 버린다며 협박을 했거든요. 성수는 악마였어요. 내 귀에만 속삭이는 악마요.”
“며칠 여기에서 입원을 했다가 옆의 학교로 전학을 시켜줄 게. 그 학교에서 자리가 하나 생겼다고 전학을 시킬 것이냐면서 연락이 왔었거든, 너하고 상의를 할까 했는데 미련 없이 이 학교를 떠나는 게 맞을 것 같다.”
“좋아요, 저를 꼭 전학시켜 주세요. 악마도 이제는 제 곁에 못 오겠네요.”
“엄마가 이제라도 알았으니 걱정마라. 성수가 괴롭히기 시작할 때 바로 말을 해주었으면 이렇게 고통을 받질 않았을 텐데. 엄마가 학교 일 다 처리하고 담임한테도 자세히 말해서 피해 받는 다른 아이들이 없도록 해야겠다.”
‘성수 얼굴에 또 멍이 들겠군,’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소한지 현우의 얼굴에 웃음기가 지나간다. 현우는 조금 더 자고 싶다며 미소까지 보이며 잠 속으로 빠져든다.
첫댓글 폭력은 없어져야 합니다. 인간의 간악한 따돌림 근성, 우리 속담의 이웃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사실, 시기하는 풍조들 업어져야합니다. 학교나 직장의 왕따를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학교폭력을 당하는 학생은 주고 싶겠다
역시 오랜 아이들 교육을 감당 하셨기에
이런 좋은 글이 나올 수있겠습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싸움을 잘 해 약한 친구들을 많이 보호 해 주었지요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것이 저 였습니다
불의를 못보는 성미 때문에 실패도 많이 했었습니다
선생님의 동화를 읽으며 새삼 어린 시절이 떠 오릅니다
풋볼님의 정의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두분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Evergreen님, 잘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에 악마, 귀신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도록 돌변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 비극입니다.
그런데 교실의 이런 모습이 성인 사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있을까요.
교육이 국력이니 학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성을 기르는 초등 교육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네
전교조가 그 일익을 감당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비극이 벌어지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