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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시집 [☆사랑의 마키아벨리즘☆]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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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마키아벨리즘]
이문복 시집 / 人人사십편시선 009 / 작은숲(2014.03.24) / 값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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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마키아벨리즘 1
이문복
사랑한대 글쎄 그년을 사랑한다는 거야
내가 무섭대 무서워서 여자 같지 않아서 나랑 살고 싶지 않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떻게 그 인간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
이런 개 같은!
너 아니면 안 된다고 죽자 사자 쫓아다닐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뭐?
니가 왜 이렇게 됐는데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새끼들은 또 어떡하라고
다 필요 없대 그년만 있으면 된대
집도 통장도 새끼도 다 나한테 주겠다고
제발 그년한테 보내만 달라는 거야
얼씨구 그거 잘 됐네
가라지 뭐, 다 던져주고 빈 몸으로 가겠다는데 누가 말려
사랑? 웃기네 정말
(코고는 남편 옆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는 밤, 문득 호프집에서 엿들은 두 여인의 대화가 떠올라 다음 구절에 밑줄을 긋다
- 사랑과 두려움 중에서 굳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을 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는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이다. ‐
사랑의 마키아벨리즘 2
이문복
사랑?
그런 게 정말 존재한다고 생각해?
소유욕과 욕정의 다른 이름일 뿐이야
누군가에 기대고 싶은 의타심,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미화하려는
다른 동물보다 숭고한 존재이고 싶은 인간의 허영심이 만들어낸 말장난
권력욕, 명예욕, 지배욕, 물욕, 그거 다 애정결핍증이 낳은 일란성 쌍생아들이고
인간들이 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더 목매고 집착하는지
알아?
가질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열망이라는,
인간의 욕망 중 가장 강력하고 끔찍한 감정에 몰입하여
온갖 귀찮고 부담스럽고 골치 아프며 지질한 욕망과 의무를
잠시나마 잊고 싶은 거야. 뽕 맞은 중독자처럼, 아주잠시 황홀했다가 깨어날지라도
너와 그, 감정의 유효기간이 서로 달랐을 뿐
진실과 거짓의 문제는 아니야
그러니 제발, 확인하려 들지 마, 네가 준 게 진짜면 됐지, 사랑이면 됐지
아, 내가 말을 바꿀 게. 사랑, 그거 나도 인정해
영원한, 아름다운, 오로지 나만을, 따위의 수식어만 떼어낸다면
꽃과 열매의 시간
이문복
시멘트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저토록 밝고 따뜻하다니!
시멘트 구멍 하나 얻기 위해
구겨진 꿈
저 불빛 잡기 위해
저당 잡힌 날개
더 넓은 구멍
더 환한 불빛 향한 욕망
이제 그만 돌아가고 싶다
꽃과 열매의 시간으로
계절을 가늠하는 것
물과 바람으로 빚은 흙집에
호박꽃 초롱같은 불빛 밝히고
밤하늘의 침묵, 풀벌레 소리에
오롯이 귀 기울이고 싶다
그 마을이 정말 잇었던 것일까
이문복
가드레일 너머
저 길
왠지 낯설지 않아
고추밭 콩밭 머리 지나
자드락 길 따라 아슬아슬
산비탈 에돌아가면
잃어버린 옛 마을이
나타날 것만 같다
그 마을로 가는 암호문을
지니고 있었다
늦가을 잡목 숲 가랑잎 닮은
제 둥지 찾아가는 멧새 울음 같은
그 암호문 잃은 지 오래
밥 짓는 저녁연기
노을 따라 스러지면
들녘 쏘다니던 바람
구운 옥수수 내음 실어
고샅고샅 밤 마실 부추기고
잦아드는 모깃불에
마른 쑥 보태며
도란도란
옛이야기 깊어질 때
타작마당 맷방석 위로
쏟아질 듯 별빛 가깝던
그 마을이 정말 있었던 것일까
돌멩이
이문복
비에 젖어 글썽이는 작고 검푸른 돌
발끝에 차일 뻔한 슬픔을 준다
무지갯빛 조약돌에 홀려
송사리 놓치던 유년의 개울물
물고기 대신 무지개 잡아 돌
두근두근 돌아오던 유년의 신작로
시나브로 떠오르다
물빛 날아가 평범해진 조약돌,
찰랑이는 맑은 물속 되돌아갔더라면
다시 무지개 되었을 그 돌멩이
어디에 버렸는지 기억나지 않고
어리둥절 부끄럽고 미안했던 마음만
돌멩이 되어 남다
그대 안에 흐르는 물소리
가만히 귀 기울여 들을 뿐
여울물 속 영롱한 조약돌
차마 꺼내지 못한다네
물살에 부대껴 단단해진
그 슬픔 바라만 볼 뿐
낯선 역에서
이문복
목적지를 버릴 때
떠나온 길도 놓아 버렸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막막하고 두렵다
그 두려움의 힘으로
일상의 마지막 한 겹 밀어젖힌다
옷자락이 갑자기 싱싱해진다
사람들은
떠들거나 근심스럽게거나
웃거나 무표정하지만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는
고귀하지도 하찮지도 않고
잠시 스쳐가는 바람일 뿐
그러나
언제 따라온 것일까
철 지난 강가를 되돌아올 때
섶다리 건너 되돌아올 때
겨울 강 물비늘로 반짝이며
흘러가는 금심과 미소
강변 돌 꽃으로, 눈꽃으로 피어나는
이름 모를 사람들
육탈
이문복
비틀비틀 말라가는 사과 몇 알 거두어
바구니에 담아놓고 까마득히 잊었네
외출에서 돌아온 어느 날
싱싱한 바람 뒤따라 들어와
늪 같던 실내 상큼하게 출렁
과육을 빠져나온 향기
싱그러운 자유 되어 떠돌고
내 영혼에도
한줌 향기가 있다면
시들어 상해가는 육신 벗어놓고
향기로, 오직 향기로만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은 날
이문복
별 볼 일 없었던
하루의 끝자락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
길모퉁이 불빛 화사한 카페
이름도 발랄하여라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은 날」
나에게도 있었다
막연히 기대하며 설레던
가끔은 특별했던 날들
절망조차 달콤하여
특별하지 않아도 특별했던
청춘의 나날
특별한 날 그건
지루한 일상을 달래는 깜짝쇼
감자 꽃이 피리라
이문복
비에 잦은 텃밭을 둘러보다가
감자밭 머리에서 문득
나도 함께 젖는다
봄비 머금어 한결 싱싱해진
이파리 밑 촉촉한 흙 속
탱글탱글 영글고 있을 감자 알
감자의 내력이 생각난 거다
재작년 겨울이던가
집들이 다녀온 남편 손에
시커먼 비닐봉지
그 안에 쭈글탱이 감자 몇 알
아파트 분리수거 쓰레기통 옆
담배 한 대 피우고 돌아서는 발길에
툭 차이더라고
싹 나서 버려진 감자가 농사꾼을 만났으니
이제 어디 보통 인연이겠냐고
그 감자 텃밭에 묻혔다가
탐스러운 햇감자로 돌아왔는데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흙 감자, 첫 수확의 감촉
네 손끝이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 저 감자는
그때 그 감자의 손자뻘인 셈이다
머지 않아 감자 꽃이 피리라
묵은 슬픔
이문복
봄꿈에 갇혀 수척해진
산나물 한 줌
시린 겨울 물속
풀어 놓으니
시름시름 되살아나는
봄
물오른 가지에 새 잎 돋느라
골짜기마다 분주하던
봄 산의 기억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연두 빛 풋내음
싱그러운 빛, 풋풋한 향기
햇빛과 바람에 내어주고
아득히 잦아들며 깊어졌음이리
쌀쌀한 듯 수수하게 입 안 적시다
아린 듯 담배갛게 스며들어
씹을수록 깊어지는
묵은 봄의 맛
홀로 일어나 밥상 차리는
고적한 겨울 아침
묵은 슬픔으로 깊어진 영혼들 앞에
공손히 무릎 꿇어 바치고 싶은
묵은 맛의 그윽함
그리움의 본색
이문복
노을 등지고 산사 내려올 때
등 뒤로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
자갈밭 적시는 먼 바다 파도 소리
빈 항아리 휘돌아 나오는 바람 소리
가을바람에 수수 잎 서걱거리는 소리
가슴에 고인 아름다운 소리
풀어보라 하기에 취중에
주섬주섬 주워섬긴 것이었으나
아무래도 취기가 부족했던 것
노올자, 노올자, 담장 너머로
동무들이 부르는 소리
와릉따릉, 타작마당 탈곡기 소리
덩덩 덩더쿵, 순자네 마당 푸닥거리 소리
그대 나이를 버어리고 어느 놈의 품에 갔나~
동네 오빠들 불량기 뽐내던 ‘검은 상처의 부르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군 공관 영화 선전 차량 스피커 소리
저 소리들을 풀어냈어야 했던 것
아름답지 않았으나 어느덧
그리워서 아름다워진
봄밤
이문복
포릉, 포르르릉
해마다 찾아와
라일락 꽃봉오리 흔들어 주던
작은 새 한 쌍
라일락 꽃 지도록 오지 않는
봄
두메양귀비 한라 쑥부쟁이 지리산 패랭이 꽃
뒤뜰에 한 번 피었다가
제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
꽃들의 이름 쓸쓸히 불러보는
말할 수 있는 그리움으로
말할 수 없는 그리움 견디는
봄 밤
개똥참외
이문복
늦여름 묵정밭에
난데없이 참외덩굴
봉퉁아리진 개똥참외 서너 알
느릿느릿 익어간다
우리 아니면
먹어줄 사람도 없겠죠?
함께 가던 사람
싱긋이 웃으며
촉촉이 이슬 젖은 참외
하나 따서 슬며시 쥐어준다
개똥참외는
못 먹는 참외라던데
껍질 벗기고
한 입 베어 무니
뜻밖에도
아삭하고 삽상한 맛
때깔 좋고 달콤한 세상일수록
볼품없는 개똥참외 그립다
가을 민들레
이문복
여위어가는 햇살
여기 늘 쉬었다 갔나보다
봄꽃 홀씨 되어 날아간
민들레 어미그루에
새로 피어나는
가을꽃 한 송이
저무는 계절의
처연한 숨결
우황 청심환
이문복
그렇게 혼자 끌탕하지 말고 할 말은 좀 하고 살아라 답답하다 정말,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조선시재? 그 시대에도 남편과 잡고 시어머니 구박하며 산 여자 있었다더라 얜 처음부터 남편을 길들인 거야
안 그래도 나 폭발했었다 신들린 것처럼 할 말 못할 말 다 터져 나오더라 그동안 쌓이고 맺힌 얘기 다했어
그랬더니?
선불 맞은 짐승처럼 펄펄 뛰면서 분노하더라 기억에도 없는 지난 일들을 왜 들추느냐는 거야
남잔 원래 기억 못해 시시콜콜 담아놓고 있는 여자만 속 터지는 거지
남자여서가 아니라 가해자라서 그런거야 남자들도 제가 당한 분한 일은 죄 기억하고 있더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온 가장한테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은냐고, 네가 해주는 밥 더러워서 안 먹겠다며 차를 몰고 나가버리더구나
마누라야 곪아 터지거나 말거나 자기만 괜찮으면 된다 그거지 누군가를 위해 밥상 차려 본 적 없으니 알기를 우습게 알고
근데 이틀도 안 돼 돌아와서는 몸져눕는 거야 가슴이 빠개질 듯 아프고 죽을 것 같다기에 덜컥 겁이 나서 우황청심원환까지 찾아다 먹였지 뭐냐
그렇게 펄펄 뛰다가 의기소침해졌다는 건 네 말이 구구절절 맞다는 걸 알기 때문일 거야 알지만,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기 싫은 거지
그런 꼴을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 없고 속상해서 밥도 안 먹히고 잠도 안 오는데 이 남자, 말로는 죽고 싶다면서 마누라가 굶고 해주는 밥 따박따박 잘 받아 먹고 잠도 잘 자는 거야
남자들 그렇ㄱ지 뭐 그렇게 멋져 보이고 가슴 뛰게 하던 남자들, 이제와 생각해보면 탐나는 인간 하나도 없더라 남편? 한마디로 내가 너무 아깝지 결국 이거 깨닫자고, 결혼 하고 밥해주고 애 낳고 여기까지 온 거지 뭐냐
그래도 결혼 안 했으면 지그쯤 외롭네 어쩌네 하면서 후회하고 있겠지?
어쨌든 너희들, 우황청심환은 늘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리한테 뭔 일 생기면 남편들이 그게 어디 있는지 알고 찾아나 주겠니? 쌀독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남자들인데
우황? 그거 여기 있다(가슴 두드리며) 내 안에 이미 들어 있다고!
빈 칸
이문복
십여년 지녀온 낡은 지갑을 오늘 버렸습니다.
그다지 쓰일 것 같지도 않은 이런 저런 쯩과 카드, 명함까지 꼼꼼히 챙겨 새 지갑에 옮기고도 혹시나 싶어 헌 지갑 샅샅이 뒤지다가 지퍼 속에 숨어있는, 있는 줄 알았더라면 요긴하게 쓰였을 작은 칸 하나 찾아냈습니다.
십여년 지녔던 낡은 지갑을 쓰레기 태우는 불길 속에 던졌습니다. 시효 지나거나 인연 다한 카드와 명함들도 던졌습니다. 던지고 돌아설 때 한 번도 쓰이지 못한 빈칸에게 미안했습니다. 헤어진 인연들의 숨은 칸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내 안에도 당신에게도 아무도 모르는 작은 칸 하나 숨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괜찮겠지요, 쓰이지 않는 빈 칸 지니고 살아가는 일 때로는 쓸쓸하겠지만 닳지 않은 순결한 빈 칸 남몰래 지니고 살아가는 것, 어쩌면 은밀한 기쁨 아닐른지요.
엄마의 창
이문복
구멍 난 양말을 깁거나 뜨개질을 하는 짬짬이 엄마는 창밖을 내다보셨지
춥고 바람이 부는 북쪽으로 난 엄마의 창, 어린 내 눈에 비친 밖 풍경은 아름답지 않았어
함지박 이고 힘겹게 언덕길 오르는 허름한 아낙네이거나 갈지자로 비틀거리며 건공중에 삿대질을 날리는 욕쟁이 할아버지, 연탄 수레 끄는 사내의 남루한 옷소매
쯧쯧- 저 애기 엄마는, 저 영감님은, 혈육이라도 되는 양 그들의 내력을 구구절절 꿰고 있는 엄마의 애달픈 어조가 왠지 싫었어
엄마, 나는 춥고 우울한 엄마의 창이 싫어요. 산듯하고 화려한 나만의 창을 갖고 싶어요.
엄마의 집을 떠나온 나에게 펼쳐진 세상은 늘 햇살 가득한 날이어서 창문이 달린 집 따윈 필요치도 않았어 향기롭고 눈부신 날들이 흘러간 후 춥고 바람 부는 거리에서 비로소 깨달았지 내가 탕진해버린 모든 것들이 엄마에게서 훔쳐온 것임을
지친 몸 기댈 방 한 칸 얻지 못한 채 엄마의 집으로 돌아왔지
엄마는 깁던 양말을 잠자코 건네주시고는 남쪽 뜨락으로 난 작은 들창을 활짝 열어 보이셨어
아! 내가 꿈꾸며 그리던 풍경들이 거기 펼쳐져 있었던 거야. 네가 돌아왔으니 이제 그만 쉬고 싶구나 엄마는 들창 쪽을 향해 누우시고 나는 슬그머니 양말을 깁기 시작했어 여전히 춥고 바람 부는 북쪽 창밖을 짬짬이 내다보면서
성형외과
이문복
주물주의 편애, DNA의 불평등을 해결해드립니다.
시원한 눈매와 상큼한 콧날, 도툼한 입술과 갸름한 윤곽을 창조할 수 있지요.
잃어버린 젊음도 복원해드립니다.
구겨진 면은 판판하게, 무너진 선은 팽팽하게, 늘어진 근육도 당겨 올릴 수 있지요.
그러나 칼날과 이물질로 지워진 당신의 세월, 망가진 원판은 복원되지 않습니다.
아름다워진 혹은 팽팽해진 당신의 얼굴은 당신의 옛날과는 영원히 재회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옛날이 달라진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므로 젊은 날로 온전히 돌아가지 못합니다.
원판을 지니고 있다면 누구라도 가끔은 젊어질 수 있지요.
사람들 얼굴에 이따금 나타나는 옛 모습, 수십 년 세월을 한꺼번에 뛰어넘는 놀라운 복원력, 평범한 얼굴도 때로는 아름다워지는 표정의 생명력, 그 단순한 비결을 설마 모르시는지요
감자밭 사설
이문복
참말루 조화 속이여
한 뿌럭지서 났넌디 워떤 놈은 열사흘 달뎅이 같구, 워떤 놈은 제우 밤톨만 허구
아~ 따 무신 걱정이랴?
감자탕 지대루 끓일라믄 묵은지랑 돼지 뼈에다가 요 굵은 놈이 들어가야 허구
진간장으루다 짭쪼름허게 졸여서 자밥반찬 헐라믄 자잘~헌 놈이 안성맞춤인디
다 똑 같으믄 워쩌게?
그럼 그럼,
크믄 큰대루 작으믄 작은대루 다아 씀새가 있당께
크두 작두 않은 요 중간 놈은 쪄먹기 따악 좋구
버릴 거 하나 읎당께 그려
부녀회 관광버스 막춤
이문복
그러니께 뭐시냐
시방, 우리더러 무식허다 교양 읎다 그 말인감유?
그림거튼 해안도로 소나무 숲 끼구 갸웃갸웃 고갯마루 넘어가는
관광빠스 창밖으루다 시퍼런 바닷물이 저러키 넘실대는디
유행가 가사처럼 뽀오얀 물거품이 워환장허게 밀려와 쌓는디
조신허니 앉어서 경치나 우아~허게 감상헐 일이지
무신 뽕짝메들리에다가 볼썽시런 막춤이냐 그런 말이쥬?
됐시유, 일 읎시유
우리네야 허구헌 날 호미자루나 움켜쥐구 쭈구려 앉어서
콩 심구 김 매구 그러구 살었지, 원제 한가허게 그림 귀경이나 허구 살어봤간유 바다보담 막막허구 시퍼런 날들두 물거품처럼 야속허구 허망헌 날들두 다 히쳐왔넌디, 굽이굽이 넘어온 세월의 고갯마루가 몇 굽이인디
저딴 그림이 뭐시가 그러키 대단허겄슈 안 그류?
그럼유 그럼유
어질어질 넘어가는 요 고갯길이다가 가슴 미어지구 복장 터지는 우리네 사연이나 서리서리 풀어놓구
그러구두 남는 거 있으믄, 환장허게 시퍼런 조바다 속 깊이깊이 묻어놓구 갈 거구먼유
그럼유 그럼유 맺히구 쌓이구 답답헌 가슴 풀리구 풀리구 풀릴 때까정 기운껏 찌르구 비틀구 흔들 거구먼유 앗싸 앗싸 아~앗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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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삶이란
이토록 아름답고 불가사의한 우주 속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 있다 생각하거늘
무언가를 이루고 쥐어 보려는 노력들을 딱하게 여겨왔거늘
어쭙잖은 시편들을 세상 속으로 들이미는 심사가
쑥스럽고도 민망하다.
시대를, 환경을 잘못 만나 활짝 피지 못한 주면 여인들을
늘 안타깝게 여기셨으나, 정작 자신이 아까운 여인임을 모르신 채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서성이고 계신
내 어머니께 이 시집을 바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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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복 詩集 [※사랑의 마키라벨리즘※]
[ 해설 ] -
꿈꾸는 유토피아, 밥상과 들꽃
강병철(소설가)
춥고 우울한 엄마의 창이 싫어요, 산뜻하고 화려한 나만의 창을 갖고 싶어요. 엄마의 집을 떠나온 나에게 펼쳐진 세상은 늘 햇살 가득한 나날이어서 창문이 달린 집 따윈 필요치도 않았어, 향기롭고 눈부신 날들이 흘러간 후, 춥고 바람 부는 거리에서 비로소 깨달았지, 내가 탕진해버린 모든 것들이 엄마에게서 훔쳐온 것임을
-「엄아의 창(窓)」부분-
인생의 시계추 오후 네 시쯤의 도정에서 비로소 ‘엄마의 창’으로 돌아온 시인의 감회는 새롭다. 그러나 기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인은 남쪽으로 난 들창을 향해 편히 누운 엄마 대신 해진 양말을 깁기 시작했을 뿐이며, 이제는 시인의 창이 된 엄마의 북쪽 창은 여전히 춥고 바람 부는 우울한 창이다. 헤어짐의 인연들이 그렇듯 피붙이의 눈길조차 받지 못한 채 별리(別離)를 맞이하기도 하는데 마지막까지 순간의 정황을 놓치지 않는 시인의 시선이 남다르다.
신열에 들떠 두둥실 흔들리면서
지리산 산 그림자 물에 어리는
먼 옛날 섬진강 나룻배 타고 건너다
가을 노고단 억새풀 되어
바람 끌어안고 흐느끼다
-「천년의 노을」부분-
가장 가깝게 등장하는 소재가 ‘밥상’으로 통칭되는 ‘여자의 노동’이다.
‘간신히 쌀 씻고 국 끓일 만큼 어설프게 아픈 몸’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상 속에서 차라리 몸져눕기를 소망하기도 한다. 빈 방에서 혼자 앓는 정황을 외롭다 느끼기는커녕 ‘훗훗이 누워 늘어지게 앓을 수 있는 것도 행복’이라고. 그러나 눈물겹다고 말한다. 약 기운과 신열에 들떠 엄마의 칼도마 소리를 불러오고 할머니의 콩나물시루 물주는 소리 너머 살구꽃 복사꽃 산도라지 보랏빛이 노을로 펼쳐진다.
목숨보다 소중하고 애절한 사랑, 우리에게도 있었다. 지금 우리의 나날을 지배하는 건 ‘밥상 차리는 여자와 밥상 받는 남자’라는 전통과 관습의 굴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났으나 법보다 더 무서운 가부장적 질서의 힘으로 굴러가는 일상 속에 사랑은 없다.
- 「밥상」부분
이 땅의 ‘깨어있는 여성’은 헌신과 자존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특히 70-80의 도정을 지낸 그미들은 ‘박탈감과 희생의 미덕’ 사이에서 출구 없는 번민에 빠지는 것이다. 관성의 벽에 막힌 슬픈 사랑, 그것은 여성들에게는 ‘못 넘는 벽’이고 사내들은 관습과 통념을 방패삼아 은근슬쩍 ‘안 넘는 벽’이다.
그 와중에도 사물에의 애틋함에 몰입하는 여성성이 여기 저기 드러난다.
홀로 일어나 밥상 차리는
고적한 겨울 아침
묵은 슬픔으로 깊어진 영혼들 앞에
공손히 무릎 꿇어 바치고 싶은
묵은 맛의 그윽함
-「묵은 슬픔」부분 -
수척해진 산나물도 겨울 물살에 풀어놓으면 단내 나는 봄으로 되살아난다. 아직 풋내음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골짜기마다 시린 물을 끌어올려 골다공증 관절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묵은 몸 풀어내는 방식이 저마다 따로 건재하니 그게 연륜의 관조다.
특별한 날 그건
지루한 일상을 달래는 깜짝쇼
진부한 삶에 바쳐진 한낱 이벤트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은 날」부분
저무는 퇴근길 상호 이름을 추적하면서, 허방다리에 빠지기도 했으나 절망조차 달콤하였던 청춘의 흔적을 더듬는다. 이순(耳順)의 도정에서는 그렇듯 슬픔의 언어도 품격을 갖춰야 한다.
개울가에 쪼그려 앉은
작은 계집아이
물살에 실려 하염없이 떠가는
꽃 이파리 풀 이파리를 보인다
-「엽서」부분-
그의 유년은 조약돌에 홀려 송사리 놓치던 헛헛한 스크린에서 비롯된다. 지금은 조약돌로 가라앉은 쓸쓸한 추억들이 불현 듯 벋은 새순으로 피어나 유년의 꽃잎 편지로 도착하는 것이다. 기실 지난한 기다림으로 만난 정한이라서 아리고 시릴 틈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기억에 사무친다. 무당벌레 닮은 엽서 한 장을 종이비행기처럼 날려 보내며 모처럼 개울가 풍경을 되살리는 것이다.
가까이 있었다 해도
어쩔 수 없었으련만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으련만
-「안부」부분-
많이 힘들었다고 뒤늦게 전해 듣는 소식도 슬픔의 딱지다. 등짐 무거운 사람의 안부를 듣고 자신은 아직 견딜만하다고 전하는 마음이 아리고 미안하다.
속도를 거부하여 버림받은
버림받아서 아름다워진 옛길
굽이굽이 이 길 따라 흘렀을
나지막한 노랫가락이며 넋두리, 한숨소리
-「숨은 길」부분-
그 길을 나루터에서 아주 잠깐 인생을 헤아려보던 간이역과 상통한다. 그렇다. 질주하는 차창으로 무심히 스쳐가는 그 오솔길을 가슴에 담는 자만이 시를 쓸 수 있다. 그 눈은 속도를 거부하며 아름답게 숙성시킬 터이니, 타자의 아픔 속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다.
시멘트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
저토록 밝고 따뜻하다니!
시멘트 구멍 하나 얻기 위해
구겨진 꿈
저 불빛 잡기 위해
저당 잡힌 날개
-「꽃과 열매의 시간」부분-
필시 밥벌이에 지쳐 돌아오는 귀갓길일 터인데, 자신의 보금자리인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선이 자못 서늘하다. 아파트 불빛이 주는 따뜻함과 안락함을 일단 받아들였다가 내치며 고달픈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을 흙집과 호박꽃 초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치환하고 있다. 아파트 베란다에 된장 한숟갈 뜨러 나간 차에 분꽃 한 송이 조우하는 그림이다.
그 마을로 가는 암호문을
지니고 있었다
늦가을 잡목 숲 가랑잎 닮은
제 둥지 찾아가는 멧새 울음 같은
그 암호문 잃은 지 오래
-「그 마을이 정말 있었던 것일까」부분-
기실 시인이란 놓친 사연을 헤아리는 암호 해독자다. 고추밭 자드락길 따라가면 잃어버린 옛 마을이 요술처럼 나타날 것만 같다. 뭇 사람들이 잊은 기억들을 선명하게 되살려 여기저기 나눠주니 그게 시인의 업이요, 사명이다.
지상에서 사라진 그 산을
가끔씩 내 안에서 만난다
봄 아니어도 개나리꽃 눈부시고
바람에 나부끼는 하얀 빨래
보리 이삭은 내 안에서 자라
푸르게 출렁, 출렁인다
-「내 마음의 보리밭」부분-
진부하던 배경에서 시나브로 정이 든 옛 직장 3층 회의실 창밖이다. 풍경을 뚫는 안광의 힘으로 개나리 꽃단장한 함석집도 되살아나고 빨랫줄 아기자기 펄럭이는 초록색 마당도 불쑥 등장한다. 개발 팻말과 함께 파손된 자리에서 보리이삭 밭두렁 잡아내어 기어이 푸르게 출렁이는 가슴이라니.
그해 겨울이 그리도 모질었음인가
온실 속 분재 화분에서 풀려나와
볕 바른 돌담장 아래 뿌리를 묻던
첫 봄, 진분홍 꽃 몇 송이 피우고는
-「꿈꾸는 영산홍」부분-
한때 그는 폭압의 시대에 맞서는 전사의 길을 걸었다. 시몬느 베이유와 루카치를 읽었고 최루탄에 맞섰으며 촛불 집회에서 시를 낭송했다. 전교조 해직교사였으니 간난신고 끝에 돌아온 교단에 실망하여 명퇴교사의 도정을 걸었다. 내상을 입은 검객이 동굴로 숨어들 듯 산자락 아래로 거처를 옮기고 분필 대신 호미를, 시몬느 베이유와 루카치를 넘어 헬렌 니어링과 소로우를 가까이 한다. 소명 의식의 광휘에 가려져 미처 보지 못했던 일상적 삶의 소소한 진실과 사소한 생명들의 노래에 주목한다.
비에 젖은 텃밭을 둘러보다가
감자밭 머리에서 문득
나도 함께 젖는다
봄비 머금어 한결 싱싱해진
이파리 밑 촉촉한 흙 속
탱글탱글 영글고 있을 감자 알
감자의 내력이 생각난 거다
-「감자 꽃이 피리라」부분 -
텃밭 감자의 내력은, 분리수거 쓰레기통 옆에서 주워 왔으니 버려진 감자가 농사꾼 임자를 만난 거다. 그 텃밭이 탐스런 새끼들을 재생시키니 지금 저 감자는 그때 감자의 손자뻘인 것이다. 감자 꽃 기다리며 사내와 아낙이 합체된 모습이 모처럼 싸-하게 화사하다.
겉대로 지쳐져 버림받은
배추 이파리, 포근한 이불 되어
그 아래 새근새근 늦잠 자는
여리디 여린 연두 빛
봄소식
-「배춧잎 이불」부분 -
김장 때 팽개친 배춧잎 들춰 곰삭은 홑잎 아래서 오그르르 돋아난 나싱개도 찾아낸다. 파릇한 봄풀 틈에서 알몸으로 늦추위 견뎌낸 겨우살이의 서러움도 캐내어야 한다. 그래서 배춧잎 이불로 겨울을 보낸 여린 속잎은 ‘냉이’가 아니라 ‘나싱개’ 라고 쓰는 게 맞다.
터무니없이 작고 메마른 몸피로
제 생애의 이력을 들려주는
한 포기 생명 그러나
씨앗을 품지 못할
겨우 겨우 존재하다 스러질
-「겨우 겨우 존재하는」부분 -
그의 시에 등장하는 꽃들은 죄다 은둔하는 생명불이다.
쥐뚱나무 그늘의 아주 작은 쑥갓꽃이 등장하고 그 틈새에서 싹을 틔우며 울타리 바깥 햇볕 쪽으로 한사코 밀어내던 무수한 꽃 대궁들이 그렇다. 그 숨소리들이 딱히 시인만의 가슴에 혼자 담겨졌으므로 더욱 귀하다.
푸성귀라도 심어야 할 자리에
꽃을 심은 마음
-「살림살이 팍팍해도」부분-
결국 버려진 것들을 삼태기에 담는 것도 시인 혼자다. 지금이 이 순간이 날마다 가장 젊은 몸이라며,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내던 버림받은 것들에게 호오호 곱은 손을 쥐어준다. 점차 그는 마이다스의 손을 달고 다닌다. 고무다라나 플라스틱 화분에 핀 분꽃으로 온 골목을 어느새 환하게 비춰주고 그 처연함에 생명을 불어넣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채워주는 점액질로 살려내는 것이다.
집배원 아저씨
우편함에 물새가 둥지를 틀었어요
우편물은 돌담장 위에 놓아주세요
-「물새와 우편함」부분 -
디지털 시대의 우편함에는 편지나 무당벌레 엽서 대신 전기료 청구서나 청첩장만 쌓인다. 그래서 시인은 비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운 짐을 털며 작은 놈부터 건져내기 시작한다. 벌레 먹은 매듭을 사랑해야 하니 그게 존재의 화두다. 잡풀 속에 살던 개구리나 지렁이들이 집안 마당에 뛰어들면 권정생 생가처럼 정겨우리라.
내 그리움은 다르거든
남편과 아들이 보지 못한 그 애의 풋풋라고 발랄했던 옛날,
아슬아슬 위태로웠던 순수함, 이루지 못했지만 아름다웠던 꿈과 이상을 나는 아니까
세월이, 현실이 흐려놓은 그 애의 원판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하니까
-「친구」부분 -
망자가 된 아낙에 대한 사내와 여인들은 그 회한이 각자 다르다. 사내들은 여전히 ‘젖은 손의 애처로움’에 젖어드니, 솔직히 말하면 ‘무수리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다. 된장찌개처럼 구수하면서도 입에 딱 맞는 음식 그리고 잘 빨아서 다린 와이셔츠나 생산해주던 현모양처가 망자로 변신했으니, 불편하고 그립기도 하리라.
그러나 여자들은 다르다. 쇠한 몸 이전의 풋풋함과 발랄했던 몸이 본향이었음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이다. 고무줄놀이나 사방치기로 폴짝폴짝 뛰던 종아리 추억도 아리고 시리다. 젊은 날의 아슬아슬 위태롭던 사랑 놀음과 높이 날고 싶었던 ‘갈매기의 꿈’을 쌍둥 잘라버린 석별들이 허망하다. 그 ‘여자의 일생’들을 어떻게 벗어나고 어떻게 서술해야 할까?
이런 개 같은 자식
너 아니면 안 된다고 죽자 사자 쫓아다닐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뭐, 무섭다고?
-「사랑의 마키아벨리즘」부분-
코 고는 남편 옆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다가 뜬금없이 호프집에서 엿들은 여인들의 대화를 훔쳐내 마키아벨리즘에 오버랩 시킨다. 그러니까 사내와 아낙의 사적인 관계도 길들임과 길들여짐의 정치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폭로다.
남자들 그렇지 뭐, 그렇게 멋져 보이고 가슴 뛰게 하던 남자들. 이제와 생각해보면 탐나는 인간 하나도 없더라 남편? 한마디로 내가 너무 아깝지 결국 이거 깨닫자고, 결혼하고 밥해주고 애 낳고 여기까지 온 거지 뭐냐
-「우황청심환」부분 -
밥상을 차려본 적이 없는 사내들은 밥상을 거부할 줄은 안다. 그미들은 비분강개와 합리화를 빨리 판단하며 다시 일상의 에너지를 저울질한다. 그건 해방 직후 출산된 아낙 특유의 허구적 풍자이자 해학이다. 익살이 그냥 웃기기만 하는 희극이라면 해학은 미중적 생명성을 담보로 하니, 그의 문장은 후자다.
근디 이 여편네는 배달 나간지가 원젠디 아직두 함흥차사여? 싼 맛에 쓰긴 헌다만 속 터져 죽겄어 장사두 안 되는디 요번 달까지만 쓰구 자르던지 히야지 원 부려먹기 힘들어서(궁시렁궁시렁)
-「갑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부분-
수행비서 겸 기사가 뒷골목 식당 주인에게 퉁방구리 시비를 건 직후다. 여주인은 대충 비위를 맞추고 적당히 흘려버리는 식으로 접대했을 뿐이다. 심통의 순간을 모면한 다음 식당주(主)는 배달나간 종업원을 떠올리며, 여차하면 잘라버릴 궁리에 빠져니 그게 생존의 먹이사슬이다. 해답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은근슬쩍 던진 반전이 속화된 실체이자 해학적 비장미다.
그 놈이 그놈 같어두 그게 아닌 겨
감나무 집 딸 점 보라구 겉만 번드르헌 놈헌티 시집갔다가 오늘날 팔자가
뚱딴지 같이 웬 팔자타령이랴? 선거허구 혼인허구 뭔 상관이라구
상관이 왜 읎댜? 그게 다 사람 고르는 일이구 내 신세 맽기는 일인디
-「노인정 난상토론」부분-
위정자에 대한 공론으로 경로당 노파들의 잦아졌던 에너지가 순식간에 살아난다.
순종과 페미니즘의 갈등이 쳇바퀴처럼 지난하게 얽혀서 마침내 선거판 스토리로 전환된다. 단순 명쾌한 게 천상 그의 모습이다. 그렇다. 그는 짜릿한 절창을 피하면서 신랄한 주제의식을 담보한다. 디테일한 묘사, 비유, 상징, 허구, 비약을 거절하는 대신 통째로 비유하고 상징을 시도한다. 이야기를 추스르는데 바쁘니 상징이나 비약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소외된 주변부에 포커스를 맞춘 다음 전체를 한 방에 털어내 버린다.
무수한 엑스트라들이 세간의 주류가 되는 줄기를 찾아내는 것, 그게 시인의 주제의식이다. 밥상과 들꽃 그리고 마키아벨리즘까지 그 속에서 피워내지 못한 아우성을 토로한다. 그렇다. 굳은 땅 헤치고 비로소 첫 시집을 상재하는 노병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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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사의 글 ◆
밥상과 들꽃에서 꿈꾸는 유토피아
이문복 시인의 거처는 야트막한 산과 앙증맞은 호수 사이에 있다. 세월이나 인생을 암시하듯이 철철이 피었다 지는 유명의 꽃이며 草綠에서 暗褐로 가는 길을 묵묵히 따르는 무명의 풀이 그곳에 공생한다. 겨우겨우 존재나 할 뿐인 꽃을 꿈꾸며 투병중인 연산홍이나 볼품없는 개똥차모이나 버려진 감자도 모두 시인이 돌보는 소중한 식구다. 그 살붙이를 보살피는 정원사의 눈길은 한없이 따스하다. 보자마자 스르르 녹아 버리게 하는 온화한 눈길이다. 시인이 소요의 저잣거리에서 쏘아 올린 열망과 추억도 이따금 그 풀과 꽃의 정원에서는 명멸한다. 빛과 그림자를 함께 내포한 회한이라든가 이름 모를 그리움도 그 단아한 시크릿가든에서는 종종 부침한다. 존재와 세상에 대한 시인의 마남다른 감성과 성찰을 호수 옆 우편함은 물새처럼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 우편함은 우리에게 혹은 세상으로 꿈과 희망을 전하는 네루다의 우체부가 아닐는지!
- 김태현(문학평론가)
이문복 시인의 시 가운데 나는 제3부의 시를 주목하고자 한다. ‘무형식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시편들을 읽으며 나는 조선시대 후기에 발달한 사설시조를 떠올린다. 앞의 다른 시들이 정형화된 단형단형 서정시라고 한다면, 3부의 시들은 민중들의 문학적 요구가 반영되어 나타난 사설시조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나는 3부의 시에서 얼핏 고려 시대에 발달했던 패관문학을 떠올린다. 패관문학은 주지하다시피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패관들이 수집해 그 내용을 더하거나 빼거나 하여 새로운 형태로 발달시킨 문학이다. 이문복 시인은 이 시대 민중들의 삶이 직접 드러나는 이야기를 채록하다시피 하여 시를 썼다. 그러니 그 속에는 민중들의 애환과 풍자와 해학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그의 시에서 우리 문학사의 한 형식이 이어져 오고 있음을 보는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이다.
- 조재도(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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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문복 시인∥
∙ 충남 서산의 산자락에서 태어나 예산, 보령, 홍성, 천안을 전전하다가 충남 아산의 산자락 아래 깃들어, 텃밭 농사는 건성이도 주로 야생의 풀과 열매를 줍거나 채취하며 살고 있다.
∙ 삶에 대한 열정과 야망이 흐릿하여 책이나 읽으면서 평범하게 살기 위해 교사가 되었으나 평범하지 않은 시대를 만나 교직 생활이 평탄하지 못하였다.
∙ 시를 좋아했으되 시인을 꿈꾸지는 않았으나 뜻 같지 않은 세상살이에 대한 가슴앓이가 시를 쓰게 했다.
∙ ‘충남교사문학’으로 글쓰기를 시작했고, 현재 한국작가회의 충남지회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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