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노병철
워낙 먹는 것에 집착하는 성격이라 죽기 전에 맛있는 음식은 다 먹어보자는 주의이고 맛집을 찾아다닌 지는 삼십 년도 넘으니 요즘 맛집 찾아다니는 트렌드가 있기 훨씬 이전부터 난 그 작업을 해 왔던 것 같다. 여행을 다니면서 항상 그 근처 맛집은 꼭 찾아 먹기도 했고 맛집이 많을 땐 한두 시간 간격으로 그 음식을 다 먹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전주였다. 먹을 것이 너무 많았다. 혼자 다녀야 가능한 일이다. 여럿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배 터지는 인간이 꼭 하나쯤은 생기기 때문이다. 나의 사전에 없는 단어가 하나 있다. ‘체했다.’이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이 추어탕을 찾는다. 워낙 즐기는 음식이라 사시사철 추어탕을 먹는 나로선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지만 그래도 가을 추(秋) 자가 들어가는 음식이라 더위가 지나가면 찾는 모양이다. 추어탕을 진미를 맛보기 위해 남원, 상주, 원주 온갖 추어탕집을 다 다녀보고 했다. 하지만 지역적인 특성이 있을 뿐 어느 곳이 특히 맛있다고 평가하긴 쉽지 않다.
청도역 앞에 가면 추어탕집이 즐비하다. 청도에 가서 원조집 찾는 행위는 무의미하다. 전부 40~60년 된 전통을 자랑하는 추어탕 집들이다. 열댓 집을 다 가보았다. 명색이 경북 대표 음식으로 선정된 청도 추어탕이라 집집마다 맛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사실 그 차이는 별반 없다. 근처 청도천에서 잡은 꺽지, 메기, 동사리, 빠가사리 등의 잡어와 토종 미꾸라지를 같이 사용한다. 몇 집은 들깻가루를 풀지 않아 국물이 맑고 담백한 집도 있는데 시내 ‘상주 추어탕집’이랑 맛이 비슷하기도 했다. 청도추어탕은 미꾸라지보다 잡어가 훨씬 많고 그래서 오묘한 맛이 난다고 보면 된다.
전라도 남원추어탕은 단배추 시래기 대신에 무어청 시래기를 쓴다. 경상도는 배추 시래기인데 맛이 좀 더 있다. 그리고 남원은 일단 색깔이 빨갛다. 경상도는 모양만 보면 거의 시래깃국에 가깝다. 원주추어탕은 된장 대신 고추장을 사용한다. 얼큰한 맛이 난다.
“통추로 할까요? 갈추로 할까요?”
이런 질문을 받는 곳이 이젠 별로 없다. 원래 원주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사용하는 ‘갈추’가 아니라 통으로 사용하는 통추가 원조다. 그래서 미꾸라지를 씹어 먹어야 한다. 요즘은 통추를 내놓는 추어탕집은 거의 없다.
추어탕은 맛으로 먹는 사람도 있지만 나 같이 살짝 기대하는 효과를 바라보고 즐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추어탕은 옛날부터 정력에 좋다고 했다. 안방마님이 뭔가 밤일이 부족한 서방님을 위해 밤에 살짝 올렸다는 음식이다. 딱 일주일만 연달아 먹이면 죽었던 정력이 되살아 난다는 말이 있다. 내가 웃기려고 마구잡이로 내뱉는 말이 아니다. 본초강목이나 오주연문장전산고란 책에 분명히 적혀 있다. 금서(禁書) 취급을 받아 함부로 읽지 못한 야한 소설 금병매를 보면 미꾸라지가 정력에 엄청 좋다고 주인공 서문경을 통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진짜 웃기는 것은 우리나라 그 어느 양반집 음식 책에도 추어탕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상놈들이 먹는 음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내려오는 비서(祕書)엔 정력 떨어진 양반도 꽤나 즐긴 음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그 효과는 미미한 것 같다. 차라리 단백질 흡수를 촉진하고 위벽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뮤신’이 많아 건강에 좋다”는 의학적인 말이 더 신뢰가 간다.
추어탕에 빼고 먹으면 제맛이 나지 않는 향신료가 있는데 남원에 가니 ‘잰피’라고 쓰여 있고 대구엔 ‘제피’라고 적혀 있다. 조피라고 하는 곳도 있다. 다 사투리이다. 정확한 명칭은 ‘초피’이다. 산초와 초피는 완전 다르다. 같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던데 주둥이를 한 대 때려주고 싶다. 마산이나 부산 쪽에선 여기다 방아를 넣어 먹기도 하는데 식겁했다. 방아는 내 몸에서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남원에서 취재하다가 돌아가신 최명희 작가가 좋아했던 남자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다시 남원을 찾아 추어탕 맛과 함께 그 뒷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첫댓글 역시 가을 되니 추어탕 맛집 이야기가 많이 나오네요.
추어탕 맛은 거기서 거기고 그 집 김치 맛에 따라 추어탕 맛도 달라지던데...ㅎㅎ
추어탕은 추석 때 시골 가면 가마솥에 가득 끓여 놓은 큰형님표 추어탕이 최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어느 식당이 유명하니 어느 고장 추어탕이 별미라니 말도 많지만 제게는 엄마표 추어탕이 최고였습니다. 울 엄마한테 이야기 했더니 한마디로 귀찮다고 하시네요. 하긴 구순을 바라보는 노인한테 제가 무리했지요. 우리 추어탕 번개 한번 할까요. 이런 글 올릴때는 그만큼 책임도 지셔야징 ㅋ
잘 계시지요?
며칠 전 친구와 금호강변 산책을 하고
불로시장 추어탕 맛집이 있다면서 걸어가자고 했습니다.
두 군데 중 맛집이라는 데는 역시 김치가 맛있었습니다.
아양교 기찻길에서 부르시면 언제라도 추어탕 한 그릇 사겠습니다.^^
@장정순 아이쿵. 어마어마하게 반갑습니다.
작품도 올려주시고 소식도 좀 들려주세요.
고맙습니다.
@장정순 불로 고분군 밑에 있는 대구추어탕이 맛집으로 소문난 집이랍니다.
무한리필이 장점이죠.전 항상 두 그릇을 비우고 나옵니다.
번호표받고 한참 기다려야 들어가는 곳........
@유당 노병철 대구추어탕 언제 번개 합니까. 기대합니다.ㅎ
추어탕 번개 한 번 합시다.
국장님, 깃대 드세요.
나도 낑가 줄란감?
@남평(김상립) 너무 좋지요.
사무국장하고 의논해서 일정을 잡아 보겠습니다.
@小 珍 (박기옥) 그냥 재미있자고 농담한건데 신경쓰시니 미안.
@남평(김상립) 마실 한 번 가요, 선생님.
추어탕도 맛 있고,
주변 경관도 좋아요.
가을 나들이로 굿!
@小 珍 (박기옥) ㅎㅎ
ㅎㅎ 언제 환경이 좋아지면 한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유당 노병철 헉! 환경은 지금이 최고
저도 즐기는 음식이라 자주 먹곤하죠.
재미나게 쓴 추어탕 글을 읽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땡~큐 !
대구추어탕과 그 맞은편집 추어탕의 차이가 궁금합니다. 저는 맞은편집 추어탕을 애호하는데 경상도식 추어탕으로 그만하면 충분하다 생각하는데 ... 대구추어탕집은 과연 맛이 어떻길래 차례지어 기다리나 궁금하던 참입니다. 못 기다려 아직 먹어보지 못했는데 글을 읽어보니 무한리필을 해준다니 그것 때문일런지...